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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재 목사님 매일큐티 9.29 녹취본 2022.09.29

김양재 목사님 매일큐티 9.29 녹취본

등록자 : 김선웅(ksw1***) 0 163

김선웅(ksw1***)

2022.09.29

0

163

[ 2022 ]

 

매일큐티 929일 목요일 ​◈

 

나는 날마다 죽노라 ( 고린도전서 15:20-34 )

 

첫 열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깨어 의를 행하고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김양재 목사님 매일큐티노트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 큐티인 )) 말씀은 고린도전서 1520절에서 34절까지에요. 하나님 아버지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로써 사명을 위해 날마다 기쁘게 죽는 우리가 되기를 원해요.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 날마다 죽는 인생이 되려면

 

첫째, 주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야말로 분열의 온상이었어요. 파벌 싸움에 끼리 끼리에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로 옥신각신하지 않나 방언의 은사를 지나치게 강조해 갈등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린도 교인들을 젖 먹이 다루듯 하며 하나하나 사랑으로 권면하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알고 있는 복음의 핵심 진리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확고히 심고자 하지요. 그가 전한 핵심 진리는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에요.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 이것이 바로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 진리이지요. 20절에서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첫 열매는 무조건 하나님께 드려야 했는데 이는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신앙고백이었어요. 하나님은 첫 열매를 바치게 하심으로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드리지 않아도 마치 다 받으신 것처럼 인정해 주셨어요. 따라서 예수님이 죽은 자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주 안에 있는 모든 성도가 이미 부활의 능력과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지요. 다시 말해 부활의 능력과 생명이 현재 나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곧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여 그의 고난에 참여한 자는 부활하여 영생을 얻게 될 것이에요. 그러니 이 땅에서 그리스도로 인해 고난 받는 것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우리의 고난은 나에게 있는 부활의 능력을 점검하게하시는 하나님의 증표에요. 24절에 마지막은 종착점을 의미하는 말로 세상에 마지막이 반드시 온다는 의미예요. 그때까지 예수님이 왕 노릇하며 세상을 통치하시는데 그 통치의 절정이 바로 사망을 멸하시는 것이지요. 예수를 믿는다는 건 곧 예수님의 통치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기에 우리는 날마다 나를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삶으로 보여야 해요. 날마다 말씀으로 주님과 동행하고 예수님이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하나님에게 복종하셨듯 우리도 주어진 질서와 역할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통치를 삶으로 나타내며 사망이 멸하여지고 부활의 능력을 나타내는 길이지요.

 

적용해 보세요.

 

왕 되신 주님의 통치를 잘 받기 위해 오늘 주신 말씀을 성실히 묵상하고 계세요? 그리스도 안에 속하고자 오늘 내가 적용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 날마다 죽는 인생이 되려면

 

둘째, 부활의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29절 이후부터 바울은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을 향해 반문하며 부활이 얼마나 확실한 진리인지를 전합니다. “ 만일 부활이 없다면 어찌하여 우리가 복음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느냐 고 해요. 누구보다 부활의 소망이 확실한 바울이기에 날마다 죽음의 위협 속에 사는 것을 도리어 자랑하며 31절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 고백합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예수님의 죽음을 자신의 몸에 짊어지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겠다는 선포였어요. 그래서 맹수와 같은 핍박자들과도 담대히 싸울 수 있었던 것이지요. 부활의 소망이 없는 이 세상은 내일이 없기에 그저 오늘 풍족하게 먹고 마시며 현재 내가 잘 사는 것만이 자랑거리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예수라는 푯대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이기에 날마다 내 자아가 죽지 않으면 하루도 지탱할 수 없어요.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구원을 위해서 날마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 처절한 싸움이 도리어 성도의 자랑이라고 합니다. 날마다 주 안에서 죽는 것이 정령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적용해보세요.

 

내가 사명을 위해 날마다 죽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부어라 마셔라 먹고 죽자 하면서 성전인 내 몸을 망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 묵상간증 ]

 

▷▷ 세상 즐거움을 쫓던 예전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가 딸의 문자 한 통에 하나님께 딱 걸린 기분이 들어 돌이키게 되었다는 한 집사님의 (( 큐티인 )) 묵상간증이에요. ( 아빠, 딱 걸렸어 )

 

청년 시절 저는 여자 친구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어요. 이후 결혼을 준비하다가 아이 엄마와 헤어지고 미혼부로 아이를 양육했답니다. 하지만 저는 부모의 의무를 가족과 친척에게 떠넘긴 채 세상 즐거움을 쫓아 살았어요. 그러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지인의 소개로 믿음의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어요. 그 후 공동체에 지체들의 기도와 권면 덕분에 저는 아빠의 때를 지키며 아이를 잘 양육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어느덧 6년이란 세월이 흘렀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맘대로 즐겁게 살 수도 있는데, 왜 일주일 내내 집, 직장,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거지? 너무 바보처럼 사는 거 아닌가? ” 하는 생각이 올라왔어요. 그리고 저는 큐티도 대충하며 제게 즐거움을 주는 일들을 하나씩 계획했답니다. 그 날도 이런 생각을 하며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날따라 일찍 하교한 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딸은 제가 거실에 있는 것을 보고 아빠 아직 집에 있었구나 하며 반가운 마음에 제가 다가와 안겼답니다. 그리고 그날 딸은 학교 갔다 왔는데, 아빠가 집에 있어서 너무 좋았어 라고 제게 문자를 보냈어요. 오늘 34절에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고 하는데 그 문자를 받고 뭔가 하나님께 딱 걸린 기분이 들어 회개가 나왔어요. 사실 그날 계획한 일들은 집에 혼자 있을 딸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다 나만 즐겁자고 세운 것들이었어요. 이후 다시 말씀을 묵상하며 아빠로써 딸을 잘 돌봐야겠다고 다짐했답니다. 적당히 죄짓고 즐기며 살던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저를 딸아이를 통해 돌이키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로 깨어있게 하시는 하나님 감사해요.

 

저의 적용은, 딸이 집에 친구들을 데려오면 간식을 챙겨주고 하나님을 전하겠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된 딸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절반으로 줄이겠습니다. 입니다.

 

부활은 없다고 말하는 이 세상 속에서 날마다 죽지 않는다면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속아 넘어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한동안 인생은 한 번 뿐임을 강조하면서 즐기고 살자는 일명 욜로 라이프 ( Yolo life ) 가 유행했지요. 정말 부활을 모르면 이 땅의 생이 끝나니 오늘을 즐기자는 이 말이 얼마나 복음 같겠습니까? 그러나 욜로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욜로 욜로 하면서 흥청망청 살다가는 골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33절에서 바울도 이런 세상 풍조에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이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라고 합니다. 악한 동무들은 누구인가요? 32절에서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고 즐기자 하며 대놓고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가리키지요. 그러나 이런 사람만 악한 동무입니까? 우리가 쉽게 접하는 드라마나 영화, TV 프로그램, 베스트셀러 등등 우리의 사회가 밀접해 있으면서 인본주의를 강조하고 성경을 대적하게 하는 악한 동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34절에 이런 세상 가운데서 깨어 일을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해요. 이것은 분별력을 갖으라는 간곡한 호소이자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자행되는 죄를 단호하게 잘라내라는 강력한 권면입니다. 부활을 부인하며 세상 풍조를 따라 분별없이 내 행실을 더럽히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주 안에 있는 우리도 부활의 능력과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죽을 것처럼 먹고 마시며 오늘을 즐기자 하는 세상 풍조에 휩쓸려서는 안 됩니다. 삶에서 주님의 통치를 잘 받으면 사명을 위해 날마다 기쁘게 죽는 것이 주 안에서 정령 사는 길입니다.

 

기도드릴게요.

 

주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고 바울 사도도 부활의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 우리는 여전히 육체에 속해 나는 날마다 사노라를 부르짖기 때문에 주님 저희들의 인생이 힘이 듭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시간 부모자식 간에, 부부 간에, 또한 형제간에 일어난 갖가지 사건으로 고난 받고 있는 지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정에 한 사람이라도 부활을 실제로 믿고 있다면 이것이 예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부활하여 영생을 얻게 될 너무나 큰 상급이라고 하셨사오니 이 땅에서 고난 받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게 해 주시옵시고 그래서 그야말로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하며 주님의 통치를 삶으로 나타내고 부활의 능력을 나타내는 저와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부활의 주님을 나타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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