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히 통곡 하니라
예수님이 심한 통곡과 간구로 울었다.
눈물은 성경적이고, 명성이다.
남의 눈물을 이해하는 사람이 공감하고 치유할 수 있다.
*베드로가 심하게 통곡한 이유는?
1.예수님을 부인했기 때문이다.
멀찍이 따라서 문제가 많다.
예수님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니 너무 초라하기에 계집종이 무시하는 것에
전자동으로 부인했다.
베드로는 십자가 복음이 아니다.
믿음이 있어도 가만히 있는 사람이 더 무섭다.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나 잘났다” 이다.
2.맹세하면서 부인했기 때문이다.
주님께 피하지 않고 세상 속으로 피하면 더 무시를 더 받는다.
내 일이 않되는 것은 베드로의 통곡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예수 안 믿는다고 맹세하고 부인했다.
남들이 천하게 여기는 모든 비참한 환경이 하나님께 영광돌리기에 좋은지 알아야한다.
맹세하고 부인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다.
3.저주하고 맹세하고 부인했기 때문이다.
자기를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이다.
죄를 찾고자 하면 찾아진다.
빚이 있으면 더 커지기에 얼른 청산해라
부인하는 장면의 주제는 예수님의 끌려가심이 아니라
베드로의 기막힌 실수에도 쳐다보시는 주님이시다.
베드로의 제자양육은 실패하지 않은 주님의 양육이다.
주님은 실수하지 않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처럼 잘하려는 것은 교만이고, 예수님은 표본이 될 수 없다.
말씀에 항상 깨어 있어야한다.
*느낀 점 및 적용*
생각해보면 예수님을 부인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내가 지금보다 예수님을 덜 알았을 때는 교회에서 캠프를 가서 은혜를 받고 와도
친구가 “너 교회 잘 다녀?” 라는 질문에 나를 교회 다닌다고 낮게 볼까봐 또 장난으로라도 “얘는 교회 다니니까~”라는 식으로 비꼴까봐
난 “다니기만 열심히 다녀. 나도 잘 몰라” 라는 식으로 하나님을 부인해 왔다.
내가 여태 교회 다닌 것은 내 힘든 점을 위로받기 위함이었고 하나님을 더욱 알기 위해서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었고,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런 점들은 내 마음 속에만 있었고 난 생활 속에서 항상 예수님을 부인하고 창피해 하고 있었다.
우리 반에는 교회를 정말 열심히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자신이 하나님을 만났다고 자랑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영적인 선물을 주셨다고 말하고 그 친구가 힘들 때 항상 붙잡아 주셨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런 얘기를 듣고 친구들의 반응은
“우와~ 정말?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 였다.
순간 난 친구들이 비꼴까봐 못했던 말들이 비꼬기는 커녕 하나님을 더 알게 하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정말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부인해 온 것이 창피하고 후회되고 큰 죄가 하나 더 생긴 듯 했다. 그 친구처럼 항상 당당하게 하나님을 섬겨야겠다고 느꼈고, 정말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