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본문을 처음 읽을땐 잘 몰랐지만..
수요예배 전에 다시한번 읽으면서,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시는가를 알게 되었다.
수요일 QT.
1. 말씀요약.
그 뒤 안식일에는 시민들이 거의 다 모였는데, 유대인들이 모인 무리들을 보고 시기함으로 바울과 바나바를 비방한다.
그 반박과 비방에 대해서 바울이 너희가 받지 않았기에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는 설교를 하자, 이방인들은 기뻐하여 믿으나, 유대인들은 경건한 귀부인, 시내 유력자 들을 선동해서 바울 일행을 성에서 쫓아낸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을 향해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향한다.
2. 말씀 묵상.
전체 - 김양재 목사님이 느헤미야 설교를 시작하시면서, 방해와 대처 에 관해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이 본문을 보는 순간 그 말씀들이 떠올랐다. 본문에 나오는 바울 일행도, 전도여행을 시작하는 차에 방해를 받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싶다.
묵상중에 목사님이 인간의 삶은 방해와 대처의 역사 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는데, 그 때는 이해가 안되던 것이, 이제는 방해에 대한 대처가 삶의 결론 으로 나와서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오늘 본문에는 여러가지 방해가 나오는데, 그 유형이 다 느헤미야와 그 공동체 가 겼었던 방해와 비슷하다. 수백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사단의 방해의 역사는 비슷비슷한 유형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45절) 우선, 유대인들이 시기가 가득함으로 방해를 시작한다.
시기. 남이 잘되는 것을 시샘해서 미워하는 것이라고 한다. 거의 모든 시민들이 말씀을 듣고자 해서 회당에 나왔으면,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인간은 100% 죄인이기에 그럴 수가 없다. 바울일행을 시기할 수 밖에 없고, 반박하며 비방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나약한 인간인 것 같다.
=> 나는 시기함으로 누군가의 일을 방해한 적이 있는가? > 물론.. 있다. 사실, 난 승부욕이 많은 사람이다. 그만큼 지기 싫어하고,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인정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을 할때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경쟁상대로 보고 그냥 무작정 광렙/광전사 모드에 돌입한다^-^;
이런 내 성격때문에,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버그를 악용해서 다른 사람의 연승행진을 멈춰버린다던지 한 적도 있다. 이런 내가, 말씀을 받지 않고 시기함으로 방해만 해대는 유대인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내 죄를 회개해야겠고, 다른 사람이 잘될때 그 사람을 축하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50절) 선동해서 방해를 이어간다. = 안되면 다구리; 연합전선을 통한 방해.
내가 하는 게임(비유가 참..- _-; 내가 봐도 맨날 게임만 나온다. 사람이 그 안에 있는게 나온다고 했는데..ㅜ)에 유명한 말이 있다. 모든 FPS게임이 다 그렇겠지만, 다구리에 장사없다 는 말이다.- _- 정말 명언이다.ㅋㅋㅋㅋㅋㅋㅋ
자신들만으론 안되겠으니까 그 도시의 유력자와 경건한 귀부인 들을 모아서 선동해서 쫓아낸다. 그런데 하필 그중에 섞인게 경건한 귀부인 이다;
=>왜 경건하다고 써져 있을까 생각해본 결과, 이 경건은 형식적인 경건인 것 같았다. 나는 혹시 두얼굴로 안과 밖이 다르진 않은지 점검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이 방해한다는 것이다. 수요말씀에 목사님이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고 하셨는데, 유대인들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바울의 말에 반박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 믿을 것 같은 사람이, 내 말을 들어주고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은 사람이 나를 비방하고, 전혀 믿어줄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내 동역자가 되어주는 것이다. 유대인이 나를 비방하고 이방인이 듣고 기뻐해서 믿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신뢰의 대상이 아닌가보다.(맞나?;ㅎ)
* 무엇보다, 이 방해들에 대한 바울일행의 대처는, 느헤미야의 대처처럼 완벽 그 자체였다. *
(51절)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는 것이 대처이자 적용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서 사역시키실때, 영접치 아니하거든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셨었다. 감정적인 대처를 하지 않고, 그 명령 받은 그대로만 행하고 가는 것이다.
내가 해야할 일만 하고, 구원받기로 작정되었던 이방인들은 다 믿게 되었기에, 미련없이 떠나가야 1,2,3차 전도여행이 지속되는 것이다. 내 감정을 삭이고 이고니온으로 가야지 사도행전 14장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발의 티끌은 떨어버려야 한다. 그 악은 심판 당해야 하기에 발의 티끌을 떨어서,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한 심판을 받게 해야한다.
=> 이 부분을 묵상할때, 두가지 적용할 것이 생각났다. ①내가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회개해야하고, 또, ②앞으로 살아가면서 떠나가야 할 때를 잘 알고 지켜야 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②번을 생각하면서, 꿈꾸는 땅끝 책이 생각났다. 조교감님이 외국인노동자 사역을 하시다가, 이제 수고한 것이 열매가 되려는 순간! 새터민 사역을 시작하셨다는 부분.. 그 부분이 생각났다.
내가 앞으로 살면서 힘써 수고한 것이 열매가 될때, 그 방면의 고문 으로 남아서 안주하고 싶을때가 있을 것인데 그럴 때에 적용함으로 넘어가야 사도행전과 전도여행이 이어진다는 것... 그것이 내게 주시는 말씀인 것 같다.
내 감정으로 티끌이 아닌, 신발을 집어던지며 싸우면 안된다는 것. 그것을 적용해야겠다.
3. 적용하기.
1. 다른 사람이 잘될때 축하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자. 시기함으로 비방하며 반박하지 말자.
2. 두 얼굴로 형식적인 신앙생활 하지 말자. -> 적용하는 삶을 살자..
3.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실것을 생각하며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는 이상, 이하의 대처도 하지 말자.
-> 화를 참는 실력을 기르자.
4. 욕심으로 남아서 정착하려 하지 말고, 내가 적용해서 이고니온으로 가야 전도여행이 이어짐을 깨닫자.-> 욕심부리지 말고, 학생때 할일.. 공부 열심히 하자.
4. 기도하기.
하나님, 오늘은 바울 일행에게 시작되는 방해와, 그것에 대처하는 것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게도 앞으로 살면서 방해가 있을텐데, 그 방해들에 현명하게 대처하게 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