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구원할 믿음>
본문:야 2:14~21
그리스도인의 언행 일치.
믿음을 가졌다고 그 믿음이 구원할 수 있는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믿음은?
1) 행함없는 믿음
사도 바울- 믿음으로 살리라. 그 은혜로 인하여 받았다 (에베소서 참고)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
믿음을 강조한 이유는 이방인이 수신자였기 때문이다.
야고보 - 흩어진 유대인(디아스포라) 제사만 드리고 땡! 쳤다.
구세주가 나온 민족이라는 긍지에 넘쳐서 민족 우월주의에 빠졌다.
형식적, 율법적, 습관적으로 제사를 드렸다.
옛날의 영광에만 목말라 구약만 좋아한다. 문자적 적용을 시켰다.
믿음은 바울, 야고보는 그 위의 행함. 둘이 틀린 말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모든 걸 갖춘자가 왜 이럴까?
믿음과 행함 중에 순서는 딱히 정할 수가 없는 것 같다.
믿음이 생긴 다음에 행해야 할지, 행하면서 믿음을 만들어가야 될지...
야고보서는 상당히 잠언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조금 더 마음에 와 닿는다고 해야할까..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난 이방인보다는 유대인에 더 가까운 듯 싶다.
우리들 교회에 와서 세상적 교만은 좀 깎였다 싶었더니, 또 다른 교만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성경을 잘 몰라서 묻는 사람이 있으면 겸손한 마음으로 가르쳐줘야 되는데, 이것도 모르나? 하면서 비웃는 등의 교만이 생긴다.
아직 예수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전도해야하는데, 전도하지는 않고 그냥 믿는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끼리끼리 당파를 만드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2) 죽은 믿음
적용을 하긴했다.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쓸것을 주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서로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일을 왜 하나? 주님이 손해난다고 얘기하면 알겠습니다. 하고 인정해야 한다.
평안히 가라-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는 인사인데, 그런 마음이 하나도 없이
습관적으로 한다.
지체의 고통을 체휼하지 못해서 힘들다.
천국에서 상속받는 자는 생색낼 줄 모른다. 자신의 선행을 기억하지 못한다.
자기 돈은 아까워하면서 또 사랑베푸는 자로 보이고 싶다.
이런 악이 내 안에 있다. 이단 앞에서 말씀 없으면 무너진다.
잘보는 구별력을 길러라. 생각만 많고 행동을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성경지식을 알고 있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니다.
이것할까 저것할까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못한다.
행함없는 믿음=죽은 믿음 이런 믿음 가지고 공허한 고백으로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면서... 율법적 행위(할례)
믿지 않아도 행함이 훌륭한 자가 있다. 하지만 주님의 마음을 가진 행함이 아니다.
(Mr. 스피처)
가난한 자를 제대로 도와주지 않으면서 무슨 유익이냐? 행함없는 믿음은 그 사람을 죽게 만드는 짓이다.
믿음따라 나오는 행함 VS 성품의 행함
난 별 힘든일 없이 자라서 그런지, 다른 사람의 힘든일을 같이 공감해주는 것이 부족하다. 힘들다고 나에게 얘기해도 아, 힘들겠구나. 단지 이것뿐 진심으로 체휼해주지 못했다. 내 이기심을 알게 해줬다.
내 일이 아니라고 신경도 안쓰고 살았다. 나에겐 다 너무 먼나라 얘기였다.
성경은 물론, 친구들의 고민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내 냉담한 태도 때문에 진정한 친구가 한명도 없었던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친구가 힘들다고 하면 손을 잡아주면서 안부를 물어보는 주님의 마음을 배워야겠다.
3) 귀신 믿음
행함 없고 믿음이 있다는 것, 행함이 있고 믿음이 없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귀신도 믿음이 있고, 하나님이 한 분인것을 안다.
영적이다. 무저갱으로 가지 말라 한다.
예수님을 무서워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구원을 얻진 못한다.
예수님과 상관없다고 소리지른다.
모든 사실을 지식적으로만 믿는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결단력이 없다.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귀신은 인간보다 똑똑하다.
믿을래야 믿을 수가 없다. 하나님 아래 신이라고 생각한다.
귀신 같이 잘하는... 귀신 믿음이 될 수 있다.
최고의 치료, 치유는 자신의 삶을 오픈하는 것이다.
내가 죄인인 것을 알면서 걸어갔다.
베토벤은 귀신 같이 작곡을 잘했다. 그래서 교만해질까봐 27년동안 귀머거리로 만드셨다. 그래도 주옥같은 곡을 작곡했다.
나의 환경은 하나님의 완벽한 세팅이다.
최고의 행함은 내가 죄인인 것을 아는 것에서부터 나온다.
simple deep
도덕적 행함과 헷갈리지 말자. 흩어진 자의 영적 교만은 누구에게나 있다.
솔직히 이번주 설교 말씀은 내가 들은 설교중에 젤 어려웠다.
딱 이분법으로 나눌 수도 없는, 맞는 것 같으면서도 틀리고.. 굉장히 애매모호했다.
그래서 다른때보다 2배는 더 집중해서 들었는데도 한 50%밖에 이해를 못한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그동안 난 내 행함이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는지, 그냥 도덕적인 행함인지 굉장히 헷갈렸었다.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것도 그랬다.
저번에 길을 걷다가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결국 경찰서에 신고했다.
내가 망설였던 이유는 그냥 내가 성품적으로 하는 것일까봐 겁이 나서 그랬던 것 같다.
아직도 내 행위가 도덕적인 행위인지, 예수님의 마음으로 하는 행위인지는 헷갈리지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거니까...
생각하는 힘을 더 길러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