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역사 그리고 나의 고난
우리 부모님은 불신결혼이였다. 엄마는 중학생부터 교회를 다니셨지만 아빠가 다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빠는 다행히 결혼 후 엄마와 같이 교회를 다녔고 나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것이다.
유치원시절 우리 집 에는 아무런 고난이 없었다. 그냥 평범하고 화목한 가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내가 어릴 때 오빠는 이미 중학생이여서 사춘기로 인한 부모님과의 싸움이 잦았고 엄마 아빠의 싸움도 잦았다. 나는 그 때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속의 내적갈등이 엄청 심했다. 어릴 적 부모님한테 많이 들었던 질문은 ‘만약 엄마랑 아빠랑 이혼하면 재희는 누구 따라 갈 꺼야?’라는 질문인 것 같다. 그 정도로 부모님의 싸움은 격했고 엄마와 오빠 그리고 아빠와 오빠의 싸움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오빠는 나와 달리 초등학교 때 높은 성적을 유지하며 학교에서 주는 상장은 모두 휩쓸어 오는 우리 오빠였다. 하지만 부모님의 만족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더 큰 것을 바랬기 때문에 오빠가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게 컸다. 오빠의 사춘기를 이해를 못한 우리 아빠는 오빠에게 심한 손찍엄을 했고 할 때마다 일주일은 넘게 휴우증이 남은 것 같다. 오빠가 쓰러지기 전 아빠에게 전화를 하라고 엄마가 오빠에게 시켰지만 오빠는 나에 다시 시키며 내가 아빠랑 통화하는거 봤냐? 하면서 나에게 시킬정도로 아빠와 오빠는 서로 적이였다.
그렇게 지내던 우리집은 내가 고학년때 고난을 받게 된다. 아빠는 기존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삼촌 공장이 있는 함양으로 내려가야 되었다. 아빠는 내가 5학년 초부터 내려가신 것 같다. 그야말로 우리집은 기러기 가족이 되었던 것이다. 매주 토요일에 올라서 일요일에 다시 돌아가시는 일을 반복했고 일요일마다 전철역까지 같이 가주고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 그때는 혼자 집에 가면서 엄청 울었던 생활을 반복해왔다. 그렇게 지낸 1년이 지난후 우리는 이렇게 살면 우리가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 아빠는 삼촌 공장에서 나와 다른 회사를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아빠는 몇 번의 면접 끝에 지금 다니고 있는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된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런 고난이 없이 2년을 지냈다.
하지만 2007년 10월 14일 우리에게는 감당치 못할 엄청난 고난이 왔다. 평소에 다닌던 교회에 문제가 생겨 부모님이 CTS방송에서 김양재 목사님의 방송을 보고 우리들교회로 교회를 바꾸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리들교회 처음 오게 된 날이였다. 난 6학년 오빠는 고2 우리둘은 처음 가기 때문에 둘다 부끄러움이 많고 쑥수러움이 많아 엄마가 심히 걱정하여서 아빠는 어른1부를 보시고 엄마 오빠 나는 중고등부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난 아직 6학년이여서 등록을 안하고 오빠만 새친구에 이름을 적었다. 예배도 은헤를 잘 받으며 드리고 새친구 환영 축도를 하는 시간이였다 나는 자랑스러운 우리 오빠를 보기위해 허리를 곳게 세우고 오빠를 봤다 내가 잠깐 눈 깜짝하는 사이 키가 커서 잘 보이던 우리오빠는 쿵 소리와 함께 내 시아에 보이지 않았다. 그동시에 새친구담당 선생님께서 엄마와 나를 찾고 있었다. 그순간 우리 오빠는 심장이 멈춰 죽은 몸과 같았다. 119차가 오고 휘문고등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서울의료원으로 갔다. 서울의료원의 응급실에 도착하고 한 2시간 정도를 거기서 보낸 것 같다. 그 2시간은 악몽의 시간이고 엄마와 나는 펑펑 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빠도 많이 울고 계셨다. 그 후 정말 기적적으로 오빠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오빠의 뇌세포는 60조억게가 죽었다고 한다. 의사는 아무 희망이 없다고 했지만 오빠는 기적적으로 호흡기를 띠는 연습부터 좋은 성적으로 아예 호흡기를 띨 수 있게 되었고 한3달간 아무것도 못 먹다가 코로 곡물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중간에 수술도 3번 정도 했지만 할 때마다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의사들은 힘 빠지는 희망이 없다 라는 소리만 하고 있다. 하지만 오빠는 지금 현재 곡물이 최고영양식과 소화를 너무 잘해 중간에 마시는 요구르트도 잘 먹고 있다. 그리고 휠체어도 타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들 같은 경우 처음 타면 멀미도 하고 하지만 오빠는 너무 편안한 표정으로 잠까지 자면서 휠체어를 타고 있다.
솔직히 나의 고난은 열등감과 오빠가 나의 고난이다. 나는 고난 없이 사는 것이 고난이라는 말을 이해가 가는 것 같다. 고난이 없을때는 하나님을 만나기가 어려웠고 하나님께 울부짓으며 기도한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최고의 선택은 우리들교회에 나오기로한 선택인것 같다. 앞으로 우리의 고난의 언덕은 얼마나 높고 험악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QT로 나에게 오는 고난을 잘 헤쳐 나가며 고난이 축복으로 만드는 인생을 개척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