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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신간 『가정아 기뻐하라』 가 나왔습니다. 아하하, 저는 이미 주문을 했지요.
5/2 말씀 요약입니다.
예수 안 믿으면서 훌륭한 사람이 있다. 유사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 보면 외적인 의인은 거의 구원될 뻔한 처지에 있으나 결국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너의 하나님이라며 입으로만 하나님을 부르짖음이 있다.
1. 가는 길이 다르다
에서는 따라가자고 말한다. 야곱은 따라가나 안 따라가나 고민 중이다. 에서가 400명의 군사로 동행하겠다고 하면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에서는 세일, 자신의 길로 돌아가 렸다. 에서는 하나님이 원하는 구속사의 길에서 이 장면을 끝으로 사라져버린다. 성경에서 이삭의 장례식에 잠시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형이라도 불신자와 신자는 함께 갈 수는 없다. 사이좋게는 지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같이 갈 수는 없다. 문제는 에서와 같은 유사 그리스도인. 유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성도가 되는 일의 증거는 될 수 없음. 예를 들면 바로는 요셉을 좋아했지만 구원을 받을 수는 없었다. 아합, 바사의 고레스 왕 등 죄인과 하나님의 자녀 사이에는 깊은 불일치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외적인 탁월함, 자신에게 신실하고 도움이 되면 인간은 사랑하게 되어 있다. 제한적이고 한계가 뚜렷한 사랑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거듭남의 증거가 되는 사랑은 영적인 사랑, 의인의 사랑으로 의인을 알아보는 사랑이다. 야곱은 부족해도 나의 하나님, 에서는 잘 났어도 너의 하나님이다. 나의 하나님과 너의 하나님을 만나면 함께 갈 수는 없다. 에서의 도움이 있으면 편히 갈 수는 있지만 야곱은 그 수준은 뛰어 넘었다. 믿는 사람이 아닌 것은 소망이 없는 것. 아름다운 화해와 돈까지 생긴다면 이때가 위기일 수 있다.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은데, 불신앙의 사건이 찾아온다면 그것이 위기이다.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되었기 때문에 야곱의 가치관이 바뀌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일곱 번이나 절을 했는데 같이 가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될 행동이다. 불신자와는 길과 목적이 다르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기 위해서 홀로의 시간을 주신다. 나의 하나님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훈련시키신다. 용서하는데는 1인이 필요하지만, 재결합을 위해서는 2인이 필요하다. 용서는 내면의 문제지만, 재결합은 관계의 문제다. 에서와 야곱은 가는 길이 다르다. 길이 다른데 합리화시키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그냥 거절을 해서는 안된다. 거절의 기술이 있다.
2. 거절의 기술
형과의 화해 후에 거절한다. 남이 아니라 가족일 경우에도, 덕을 세우면서 지혜롭게 거절하는 방법이 있다. 야곱은 강자보다 약자를 돌보겠다고 말했다. 강자를 돌보기보다 약자를 돌아보겠다고 말하면 거절해도 상처를 덜 받는다. 이기적인 의도로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이에게 갈 때 상대가 상처를 받지만,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면 상처를 받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지 않되 지혜롭게 거절해야 한다. 호의를 가지고 도와주겠다는 에서의 모습,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야곱은 갈 길이 세일이 아니고 가나안이다. 에서는 야곱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에서에게 열심히 주고, 도움 받을 것은 받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에게 줄 것은 다 주되, 받지는 않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0대 여자의 삶에서 거절의 기술이 필요하다. 20대 여성들은 모든 이들이 자기를 좋아해주길 원하기 때문에 가능한 남의 접근을 잘 거절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좋지 않은 일을 당할 수도 있다. 사이좋게 지내야 하지만 아닌 것은 딱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거절을 담백하게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거절을 받으면 상처를 받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편익과 이득이 아니라 공공의 가치를 위하면서 거절해야 한다. 믿음 때문에 거절해야 하고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때는 솔직히 말하는 것이 낫다.
3. 나의 하나님을 부르지만 온전한 순종을 하지 못하는 야곱도 있다.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는다. 사람은 또 시험이 없으니까 우리끼리 자식끼리 살아보자라고 생각한다. 나의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사명을 찾아야 할 때인데도 사람 위주로 살게 된다. 숙곳에서 오래 살았다.
4. 나의 하나님을 불렀더니 확실한 소망을 붙잡게 하신다.
밧단아람에서부터 가나안에 평안히 입성하게 되었다. 믿음의 땅에 정착하기 위해서 값을 치르고 땅을 사게 되었다. 확실한 소망이 생기면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소망을 꽉 붙잡아야 한다. 멀리 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결정은 다르다. 엘 엘로헤 이스라엘 - 하나님이라는 말이 세 번 들어가 있다. 야곱의 변한 이름이 들어가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는 부족하여도 내가 하나님을 부르고 가야한다.
기도제목은 좀 있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