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에서 발행하여 (창35:16~20) 2010-06-06
재테크에 실패하는 7가지 유형을 보면 다다익선(무조건 상품가입, 책 다 읽고, 팔랑귀), 벼락치기(대출받아 사면 망함), 꼭두각시(금융회사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한방(위험성을 듣지 않음), 마이너스통장, 부화뇌동, 젊어서 노세 등이 있다. 죽어도 안 끊어지는 주식 중독은 나쁘다는 것을 알아도 끊어지지 않는다. 야곱은 하나님을 믿어도 끊어지지 않는 라헬 중독이 있다.
딸의 강간당함과 아들들의 살해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야곱의 예배가 회복되게 하셨고 야곱은 다시 주시는 복을 받고 별 인생이 없는 구속사적 평등과 본질의 복, 사명의 복을 말씀으로 깊이 깨달았다. 어떤 환경에서도 돌 기둥에 기름을 붓고 헌신하겠다며 엘 벧엘을 부르짖고 성령 충만하여 떠났는데, 그 사명은 결코 녹록하지 않아서 가장 슬픈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1. 가장 슬픈 일이 기다리고 있다
(16절)에브랏은 열매가 번창한다는 뜻인데, 10년 동안 기다린 득남이 라헬에겐 두려움의 근거였다. (17절)라헬이 요셉을 낳고도 “다른 아이를 내게 더하기를 원하노라” 기도하며 야곱에게 생떼를 부린 적이 있다. 죽기 전에 기도 제목이 이뤄져서 기뻐해야 하는데 라헬은 두려워하고 있다. 야곱이 라헬 중독이라면, 라헬은 아들 중독이 있다. (18절)생명을 낳고 죽음을 맛 보는 것을 통해 우리는 언젠가 영혼은 떠나온 곳으로 되돌아가며 그 후엔 심판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따라서 성도는 죽음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라헬은 그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왜냐하면 평생 불릴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 즉 슬픔, 불행, 고통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원했던 아들이지만 언약의 개념에는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기쁨이 없으면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하는 고통만 있을 뿐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마10:28)” 라헬은 영생을 누리지 못하고 몸을 죽이는 것을 두려워해서 아들을 맡긴다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12지파의 조상이 될 아들을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을 위해 애곡할 때 쓰이는 ‘벤오니(슬픔)’라 이름을 지었다. 혼자 남겨질 아들과 십자가를 위해 울어야 하는데, 자기 죽음이 슬퍼서 아들에게 저주를 남기고 간 것이다. 예배 때 은혜가 아닌 자기 연민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낮아지지 않아서이다. 울 때 안 울고 안 울 때 우는 모습이 라헬과 똑같다. 야곱과 같이 발행했지만 라헬은 자기 죽음이라는, 야곱은 라헬이 죽는 가장 슬픈 일이 일어났다. 이것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야곱과 라헬의 상반된 대처를 볼 수 있다.
2. 위로 받지 못하는 라헬, 우리가 있다
“라마에서 통곡, 라헬의 애곡”(렘31:15), (마2:18) 라헬의 죽는 장면은 굉장히 중요하다. 출애굽기의 영아살해, 바벨론의 포로 영아 학살, 헤롯의 영아 학살이 있을 때 성경은 라헬의 통곡을 이 민족의 통곡으로 묘사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사건을 통해 죄악이 관영하여 세상이 빠지기 쉬운 자식 우상을 경고하신다. 자녀를 영적으로 키우지 않으면 육의 자식으로 자란다. 내가 예수를 믿어도 자식이 우상이 되어 영의 자식이 없는 것에 울어야 한다. 라헬은 이미 요셉과 베냐민이 있었지만 자식이 없다고 통곡을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잘해주는 야곱이 있어도 자신이 죽게 되니까 통곡을 하며 죽었다. 내가 복음으로 영적 자녀를 길러내지 못하면 어떤 사건이 와도 위로가 안 되고, 인생이 해석되지 않는다. “아이 밴 자, 젖 먹이는 자는 …겨울, 안식일 되지 않게 기도하라(마24:19)” 슬픔이 있어도 깨어 있으라. 다른 생명을 살리고, 나를 개혁하면 어떤 영혼도 위로해 줄 수 있다. 내가 복음으로 자식을 낳지 못해서, 양육을 하지 않아서 위로를 못 받는 것이다. 인간은 선한 것이 없다. 당해보지 않아서 선해 보일 뿐이다. 요셉처럼 훌륭한 아들이 있었는데 결국 유다가 예수님의 직계조상이 되었다.
3. 슬픔에서 기쁨을 끌어내는 사람
(18절)야곱은 라헬의 죽음이란 불행에서 베냐민의 이름을 오른손, 능력, 기쁨의 아들이라며
생명으로 바꾸었다. 디니가 강간당했을 때는 때를 기다렸는데 지금은 자녀들의 아비로 아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야곱이 구속사의 평등을 깨닫고 바뀌니까 드보라와 라헬을 비교해본 후 비로소 라헬의 실체를 알았다.
4. 고통의 구원을 끊어 주신다
(19절)라헬은 열조의 무덤이 아니라 약속의 땅이 보이는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다. 야곱에게서 많은 국민이 나와야 하는데, 라헬 중독을 못 끊어 정신을 못 차리자 하나님이 라헬을 끊게 하셨다. 야곱이 믿어도 끊지 못하는 문제가 우리에게도 있다. 이런 중독적 관계를 끊으려면 구체적으로 다짐해야 한다. 배우자에게 애착한다면 자신을 발견하고 배우자를 놓아줘야 한다. 자기 자신의 악함을 돌아보며 내 부족함을 보는 것은 비굴함이 아닌, 자존감을 높이는 비결이다. 늘 같이 다니면 힘들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벧엘 공동체가 회복되어야 끊어낼 수 있다.
5. 수치의 죄패인 돌기둥을 세우다
(20절)구속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라헬이 부럽다. 하지만 믿음 좋은 사람은 다 묘비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야곱은 인생을 통틀어 기둥을 4번 세웠는데 에서, 라반, 세겜사건, 그리고 라헬을 위해서였다. 좋은 일이 아니라 큰 시험이 끝나고 세웠던 기둥들이었다. 묘비는 라헬을 사랑해서 세운 게 아니었다. 라헬의 묘비는 왜 세워졌을까? 이쁘고 욕심많고 투기심 많은 라헬이 인간의 사랑을 받다가 길에서 죽은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라헬은 믿음의 여인 같았으니 결국 약속의 땅(열국의 묘실)에 못 들어간 여인이다. 핍박보다 힘든 게 유혹이다. 라헬이 정리가 안 되면 야곱은 믿음(약속)의 조상으로 가지 못한다. 하나님 자리에 라헬이 있어서 못 끊는 것을 하나님께서 끊어주셨다. 벧엘의 예배가 회복되니 야곱은 라헬의 실체를 확인했다. 창35장 드보라의 장례에서 야곱은 통곡을 했지만 라헬의 장례에서는 침착하게 불행을 기쁨으로 바꿨다. 그리고 라헬의 실수는 자기의 실수라 생각해서 라헬의 묘비를 통해 자신의 수치를 만 천하에 드러냈다. 야곱과 라헬의 사랑을 보면서 결국 낭만적인 사랑의 신화는 없고 100%거짓말인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이러면 망한다는 것을 알아도 못 끊는 게 있다. 그래서 성도의 견인은 택함 받았기 때문이지 그의 올바른 행위 때문이 아닌 것이다.
목장 나눔: 예배를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권욱진: 가게에서 국산 쇠고기만 쓰는 상황을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다. 이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억울하다고 느낄 때 예배가 방해를 받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갖추고 늦게 믿은 사람과 나의 상황을 비교해볼 때 억울함을 느낀다. 왜 하나님께 더 매달리지 않을까, 교만해서일까? 그리고 야동은 기본이고 게임, 책, 음악 등을 많이 접하는데 남들보다 더 많이 알고 만족하고 싶은 것도 예배를 방해하는 요소인 것 같다.
(목자님 한마디)우리 다 그래. 찌질해도 오픈 하는 것이 내 죄패를 세우는 것이야. 그러면 주님이 네 안에 들어오셔. 단 고민을 하면서 정죄하지는 말자.
김수연: 지난주에 우울증은 아닌데 가슴이 답답해서 뛰쳐나갔다. 지금은 괜찮아졌고 이번 주에 2~3번 새벽예배에 참석해서 기도를 많이 했다. 공허하고 우울할 때 브리팝을 즐겨 듣는다. (나머진 비밀~)
박병배: 이번 주엔 회사 이사 때문에 많이 바빴다. 나는 2차가 예배를 방해하는 요소이다. 금식해야겠다.
(목자님 한마디)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지 모르니까, 이거 밖에 할 줄 몰라서 그런 너의 심정을 잘 알고 있다. 오늘 목사님 말씀처럼 공동체 지체와 시간을 같이 보내면 훨씬 건강해진다. 그러니 입교를 위한 기초 양육과 수련회에 참석하도록 하자.
이형배: 나를 사랑해서 교만하고 한편으론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자기연민에 눈물을 흘린다. 영적 자녀를 낳거나 양육하지 않으면 사건이 해석이 안 된다고 하셨는데, 난 전도 대상자를 정착시켜본 적이 없다. 교회 안과 밖의 모습의 차이로 VIP가 거슬려서 일회성 전도로 생색을 냈기 때문이다. 일하면서 동료들에게 우리들교회 나눔을 전해준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복음을 제시하지 못하고 교양 있는, 나이스한 크리스천으로 남는다.
양성훈: 혼자서 하는 것보다 같이 하는 당구, 농구, 술, 여자 등 난 관계중독이다. 끊기 싫고 힘들고 왜 그래야 하는지. 그러나 지난 주 목원들 불참으로 낮아졌다. 그리고 선거로 옳고 그름을 따지느라 바쁜 한 주였다. 음악 작업을 밤새하며 평범하게 보냈다. 공동체 안에서 건강하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기도제목 댓글로 달기로 했는데, 제가 너무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목보도 성의가 없어 보이네요, 다음엔 자세하게 올릴게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