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세기 1:29 ~ 2:3)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은 무엇인가?
1.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인생은 다 이루는 삶이다.
하나님께서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동물과 달리 인격이 있는 인격체인 인간에게 씨맺는 것을 주신다.
항상 이 씨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영적인 예수씨는 인간에게 중요하기에 이런 단어를 언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것은 완벽한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이 완벽하고 보기 좋은 세상에서 인간이 타락했기에 노아의 홍수와 같은 재앙을 주신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어주시면서 ‘다 이루었다.’하신다.
피를 흘리고 구속하셨지만 우리에게 우리를 위한 새하늘, 새땅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셔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기다려 주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녀가 말을 안 들어도 탄식으로 그 자녀를 위해 기다리다 보면 ‘이루니라.’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이 ‘이루니라.’의 삶은 끝까지 사랑하고 기다리고 죽어주는 사랑, 생색이 나지 않는 사랑, 바라지 않는 사랑인 것이다.
아이를 양육할 경우에 부모는 어린 아이에게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아이가 성장해서 부모의 사랑을 배반하고 부모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부모는 자녀가 어릴 때 베풀었던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
남편고난이 있는 어느 여집사님은 먹을 것이 생겨도 남편 주기 싫고 목장식구들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귀한 것이 생겨 줄 것이 있으면 목원들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영혼구원을 위해 애쓸 때 내 처지와 상황을 아시는 주님은 우리의 일을 주님께서 알아서 해주실 것이다.
2. 안식하는 삶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인생이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모든 것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 하나님은 지쳐서 쉬신 게 아니라 더 이상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 것이 없어서 쉬신 것이다.
세상의 ‘노동의 대가’로 쉬는 관점에서 보면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주중이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주말로 보게 된다.
그러나 창세기는 믿는 우리에게 세상과는 구별된 안식일의 시각을 제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육일째 되는 날 만들었다. 그리고 잠들었다 깨어나니 그 날이 안식일이다.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것 누리고 안식하라는 것이기에 하는 일없이 안식을 하게 된다. 인간은 안식을 누리도록 창조됐는데, 세상적으로 쉬려고 하니까 공동체에서 공동체지체들을 궁상스런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세상 적으로 끼리끼리 노는 것은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것이 아닌 것이다. 믿는 우리에게 ‘좋은 주일 보내세요.’가 적합하지 ‘좋은 주말 혹은 좋은 일요일 보내세요.’는 표현이 적절하지 못하다.
주일에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 힘으로 주중을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우리는 구원과 구속의 개념이 있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 서양역사에서 로마제국은 여가문화로 인해 망하게 되었다.
내안의 다른 발견이 자기반성의 전제조건이다.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이 자기 자신도 잘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죄책감은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두려움으로 침식한다. 자기 자신에게만 집착하는 것은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다.
공동체에서 나 자신을 직면하여 내 죄가 하나하나 드러나서 나타나야 되는데, 좋은 말만 하고 좋은 말만 들으려 하니 문제가 치료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현실을 직시해야 되는 것은 그 안 되는 문제를 살펴보고 쓸데없는 기대감을 버리고 안식을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의6(주중), 휴식의1(주일, 안식일)의 개념은 몸을 쉬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자기반성을 하라는 것이며, 말씀 듣고 ‘우리가 어떻게 살겠다.’ 다짐하는 시간을 갖는 진정한 안식을 누려야 됨을 의미한다.
3.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은 거룩으로 나가는 것이다.
안식은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 거룩한 것은 구별되는 것이다. 일곱째날 마지막에 무릎끊고 찬양하고 경배하면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믿었다는 것은 정화단계로 가는 것이다. 날마다 말씀묵상과 주일예배, 수요예배, 목장예배로 주님 말씀에 ‘맞습니다.’ 하고 기도하면 거룩하고 깨끗하며 정결케 되는 것이다.
누구도 정죄하지 않는 가운데 자기 죄를 보아야 한다. 애통하고 가난해서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복이다.
예배가 회복될 때 내 자아를 깨뜨려서 죄를 깨우쳐 주시는 것은 성령님이다. 사람이 누군가를 가르쳐서 되는 것은 없고 하나님이 하시고 가르쳐주실 수 있기에 우리는 예배를 중수하며 그 누군가가 변화되도록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예배의 즐거움을 최고의 감정과 시간으로 삼으며 투자해야 한다. 구별되이 살려면 죄의 통치를 끊고 예배를 중수해야 한다. 그러면 자유롭게 돼서 고난을 고난이라 느끼지 않게 된다.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거룩’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성경전체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 거룩은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심히 좋은 인생이 되려면 안식해야 하고 거룩해야 한다. 예배가 회복될 때 우리의 삶은 구별되는 거룩한 삶이 되는 것이다. 어떤 고난과 환경가운데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한 자유함을 입어 고난을 고난자체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해석하고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기도하기 바란다.
기도제목
이창엽
장인어른이 목장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허리통증이 완쾌될 수 있도록
문보호
세상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성광모
부모님이 구원받고 건강할 수 있도록
일과 관련해서 인도함 얻을 수 있도록
유시윤
뇌출혈로 회복 중인 선배의 어머니가 잘 완쾌되고 구원될 수 있도록
최성남
말씀적용 잘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 융통성 있고 지혜로운 경영을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