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
창세기 3장 1-8절
일반적으로 술, 담배를 생각하면 가장 큰 타락이라 생각을 한다. 에로스의 사랑은 육욕적 사랑이라 한다. 그런데 태고적 생물학적 충동을 비너스라고 하는데, 비너스가 가장 축소될 때 가장 숭고한 사랑을 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육욕적 사랑(에로스적인 사랑)을 하면서도 육적인 충동이 일어나지 않고 성관계를 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 가장 숭고한 사랑이라 생각한다. 바울은 배우자에 대한 몰두 때문에 마음이 분산될까봐 혼자 살라고 권유하는 것이지 침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큰 유혹은 육욕이 아니고 탐욕이다. ‘우리는 불행해도 같이 살 수 있어~’ 이런 외침이 없으면 에로스의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이것이 가장 무섭고 고귀한 타락이다. 현실을 무시하고 하나님 없이 신적인 사랑을 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타락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회개할 것이 없다. 너무나 착하고 너무 헌신적이고 돈도 바라지 않아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할 것이 없는 것이다. 고귀한 타락도 타락인 것이다. 그러면 타락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1. 사단의 유혹으로 인간이 타락하게 됩니다.
사단은 이미 있었다. 사단은 인간을 질투하여 인간도 자기처럼 똑같이 타락하게 만드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우리가 아무리 좋아도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으면 늘 시험받을 요소가 있는 것이다. 십자가를 통과하면 어떤 일이 와도 놀라지 않는다. 십자가를 통과하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았기에 아담과 하와가 시험에 걸려든 것이다. 사단은 어떻게 유혹을 합니까? 사단은 뱀으로 왔다.
1)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비밀이 많고 베일에 싸여 있는 사람과 놀지 말라! 조심하라.
2) 간교함으로 찾아온다. 간교하다는 것은 ‘지혜롭다’의 어원과 똑같다. 무지한 사람들은 분별하지 못한다. 간교함으로 오니까 비교할 수가 없다. 뱀은 똑똑하고 영특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되기 쉽다. 그래서 똑똑하고 영특한 사람들은 사단의 통로로 사용되기 쉽다.
3) 사단은 강한자보다 약한 자(약점)부터 공격한다. 뱀이 아무리 예뻐도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짐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 약점 때문에 뱀이 공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깨어있지 못하면 공격당하게 되는 것이다.
2. 사단은 점진적으로 말씀을 훼방합니다.
1)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간교한 질문을 통해서 자존심을 슬쩍 긁어놓는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1절)
의심하도록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긁어낸다.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타락이 오면서 여호와를 빼고 ‘하나님’만 사용한다. 전능하신 하나님만 생각한다. 이 땅에서 잘되는 것만 강조한다. 언약의 하나님은 격하 시킨다.
2)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켜 자존심을 긁어 놓는다.
사단은 ‘네가 자연을 다스리는 주인인데 먹지 말라고? 말도 안 된다. 정말이야? 사실이야?’고 자존심을 살살 긁어냅니다. 말 한마디에 따라서 우리가 올라온다(분노). ‘네 남편이 때렸어? 사실이야? 정말 그럴 줄은 몰랐어. 사실이리가 없어’ 먹지 못한다는 것만 강조한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 싶었었는데, 사단이 그 욕망을 딱 건드려 주었던 것이다. 사단은 나보다 더 나를 잘 안다. 나의 욕망을 긁어 준 것이다. 2절.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각종나무’를 ‘동산 나무’로 축소시키고, ‘먹지 말라’를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라고 과장 시켰다. ‘정녕 죽으리라’는 ‘죽을까 하노라’로 약화 시켰다. 정녕 죽으리라는 절대 들리지가 않는다. 그 이유는 내 욕심 때문에 들리지가 않는 것이다.
3)사단이 대화에 성공했다.
사단이 관심이 있는 주제를 건드려 주니까 여자가 끌려 들어갔다. 우리는 누구와 대화하느냐가 중요하다. 사단과 대화를 하다보니까 하나님과의 이간질이 되는 것이다. 이단을 고쳐보겠다고 하는 것은 사단에게 ‘날 잡아 잡수’하는 것과 같다. 이단들은 기운이 있어서 내가 끌려가게 되어 있다. 사단과 얘기를 한 여자는 이미 하나님께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그러니까 하나님이 싫어지는 것이다. 사단의 말이 옳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욕심이 있어서 이단에게 가는 것이다. 누구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다. 나의 말에 옳다고 하는 사람에게 따라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사단의 말에 귀가 활짝 열리는 것이다. 거짓말의 진화 자기 정당화의 심리학을 쓴 엘리엇 엘어슨→대다수의 사람들은 말을 할 때 자기에게 유리한 내용은 덧붙이고 불리한 내용은 뺀다고 하면서 자기를 정당화 한다고 한다. 아버지가 폭력을 쓰는 것을 얘기하면서 자신이 맞을 만한 얘기는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심리인 것이다. 억압하지 않는 내적치유가 나를 숨을 수 있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내적치유를 빙자하여 자신을 숨을 수 있는 길을 만들게 되었다. 가정이 파탄이 되면서까지 나의 정당화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나는 항상 똑똑하고 유능한데 내 환경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선악(옳고 그름)과이다. 선악과(옳고 그름)를 먹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을 원망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사람은 자기의 말도 끝임 없이 왜곡하고 가감한다. 이것의 사단의 유혹인 것이다.
3. 사단의 정면도전에 넘어감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정녕 죽으리라’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사단은 하나님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게 됩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잘된다고 혹하게 합니다. 성공한다고 합니다. 약속의 하나님을 부르는 것보다 전능의 하나님을 부르면 우리는 기분이 쬐진다. 정녕 죽으리라는 말은 너무 듣기 싫다. ‘정말 이혼하고 싶은데, 학교 붙을 거야, 불신 교제해! 절대 괜찮아! 결코 죽지 않는다.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사단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하와는 ‘아멘 아멘, 옳소이다’하고 이런 복음을 듣고 싶었다 한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킴으로 정면으로 도전하게 하여 타락하게 만듭니다.
4. 아무리 유혹해도 결국 본인이 선택함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6절)
인간은 기계가 아니고 자유의지를 가졌기 때문에 선악과를 따 먹는 선택을 하게 된다. ‘부자로 살다가 죽지 뭐~, 불신교제하다 죽지 뭐~’ 뱀과 얘기하다 보니까 뱀에게 은혜를 받아서 보로 간 것이다. 정녕 죽으리라는 잘 안 들리는데, 결코 죽지 아니한다는 말은 잘 들린다. 목사님이 결혼할 적에 남편의 스펙과 좋은 환경에 못이기는 척하고 “해 볼까~”했다. 보는 게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내 얼굴에 눈물 안 흘리게 해준다면서요?”라는 목사님의 말에 남편이 “어휴~ 그걸 믿었냐?”라고 하셨다. 목사님은 내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신다. 보는 것이 문제이기에 죄를 같이 짓는 것에 안도하기 때문에 남편에게 주고 남편도 “그도 먹은지라” 그래서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아담이 먹었기 때문에 모든 죄가 아담에게 돌아갔다. 7절.“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눈이 열렸다. 선악을 보아야 하는데, 선은 약화되고 악이 부각되었다. 그러면서 죄의식과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목사님이 자신의 부끄러움 모습(시집살이)을 감추고(나뭇잎으로-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싶어서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것(나뭇잎)은 완전하게 가려지지 않는다. 어느 순간 믿음을 택하지 않고 돈을 택했다는 부끄러움이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교회 나가기도 싫어졌고 피해버렸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목사님을 택하셨기 때문에 찾아오신 것이다. 현실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 성관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가장 고귀한 타락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약도 없다. 나중에 천국에 가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셨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사랑을 정당화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에로스의 사랑은 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사단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일대일로 절대 이길 수 없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다. 공동체의 고백으로 사단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느낀점
종율형(목자님)이 "내가 소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서로 각자 나눔을 하면서 내게 소망이 없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내의를 지키기 위해 남들에게 인정 받으려는 것과 매형에게 고맙다는 말하기가 그렇게 어렵고(쑥쓰럽고 용기가 나지않아), 내힘으로 하려고 하는 일들, 돈 욕심이 많아 사명을 잊어버리는 것들이 내 자신에게는 정말 소망이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 안에 욕심이 너무 많아 사단에게 속고 나도 속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만이 유일한 우리의 소망임을 보게됩니다. 우리들의 찌질하고 수치스런 모습이 들어날때마다 예수님의 죽음이 더욱 값지고 보배로운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타락으로 얼룩져졌지만 서늘한 때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임을 고백합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여 어떤 고난과 유혹이 와도 공동체의 고백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를 살리게 하고 남도 살리게 할 것을 믿습니다. 목장이 있어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기도제목
종율형: 1) 나에게 소망이 없다는 것을 뼈속 깊이 깨닫고 살아갈 수 있도록.
2) 큐티와 예배가 소망의 날이 되도록.
3) 본격적으로 CCM을 만들려고 하는데, 일을 하기 전에 구하는(기도하는) 내가 되도록.
보호형: 1) 일상적인 생활(학교)에서 나태하지 않도록.
2) 큐티가 습관이 되어 잘 할 수 있도록.
수연형: 1) 어머니 건강과 부모님이 교회에 나오셔서 등록하고 목장에 나갈 수 있도록.
2) 초등부를 섬기는데 사랑으로 심방 잘 잘 수 있도록.
3) 일대일 양육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잘 마칠 수 있도록.
성남: 1)중등부를 섬기고 있는데, 목장 개편시 새로운 아이들을 잘 섬길 수 있도록.
2) 우리학원에 우리교회 학생이 등록했는데 학원에서도 보고 교회에서도 보는데(우리반) 잘 섬길 수 있도록.
욱진: 일대일 양육 잘 받을 수 있도록. 훈련을 통해서 머리와 마음이 겸손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