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29.
주일예배
본문: 마가복음 14:53-62
제목: 내가 생명이라
이성은 목사님
설교 말씀
낙태를 막으려고 여러 아이디어를 생각하는데, 문화 콘텐츠를 도구 삼아 생명 살리기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개척 때부터 지금까지 매 예배 때마다 생명을 지키는 일을 두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도 나라의 근간은 가정, 가정의 근간은 생명이라고 줄기차게 강조하십니다. 이런 기도가 쌓여 이제는 행동하라고 재단을 세워주신 줄 믿습니다.
목사님께서 먼저 적용해 주셔서 헌물하신 그 병원 건물에서 우리들 사회복지재단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서 재판받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를 죽이려고 모인 이들과 달리 예수님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가운데 생명을 낳고 지키는 사역이 예수님의 길처럼 외로운 싸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과 같은 길을 걷는 것 같아요.
오늘 큐티인의 제목이 [내가 그니라] 인데요, 비슷하게 지어봤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현장에는
1. 멀찍이 따라가는 베드로가 있습니다.
53절.
체포되신 예수님을 신문하기 위해 공의회가 열리고 장로, 서기관, 제사장들이 모였습니다. 한밤중에‘다’ 모였다고 합니다. 악을 도모하는 일에는 귀신같이 모입니. 악은 결합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악의 목적은 나의 편의와 쾌락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일에 연합하는 공회원들의 모습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너무 닮아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낙태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야 기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의 사망 원인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비율은 암이 1위입니다. WHO에 따르면 암으로 사망하는 인구가 1년에 1천만명이라고 합니다. 2위는 심장질환으로, 900만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낙태를 이 순위 안에 넣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낙태로 사망하는 인구는 1년에 7천 2백만명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1953년, 전쟁 이후에 형법으로 낙태는 범죄라는 법을 제정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때는 아기가 생기면 낳아야 했습니다. 1960년대가 되어 출산이 경쟁에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산아제한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그 때부터 낙태는 아주 정상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2천년대가 들어서며 종교계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낙태 반대운동이 시작되게 됩니다 (Pro-life). 하지만 시작 후 10년 후에 프로 초이스 (Pro-Choice)운동이 힘을 얻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이 가치관이 급속도로 커져가면서 프로라이프 운동을 하는 비율이 10~15%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2019년 4월에 헌법재판소에서 낙태가 범죄라는 형법은 헌법에 맞지 않다고 판결내렸습니다. 이후 국회는 낙태를 합법화 하는 법안을 계속 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만삭이어도 낙태를 허락하는 법안을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예수를 죽이는 일에는 한 마음으로 연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악을 도모하는 군중에 휩쓸려 있으면 올바른 분별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런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합세하고 있을까요?
54절.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갔다고 합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베드로가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체포되시고 재판에 끌려가는 현실을 마주하니 몸을 낮추고 멀찍이 섰습니다.
우리가 오늘도 예수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진짜 믿음은 생각지도 못한 현실이 눈 앞에 펼쳐졌을 때 나옵니다. 원치 않는 임신이 되었을 때 이것을 어떻게 알려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현실에 대한 걱정이 펼쳐지니 멀찍이 서고 싶은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큐페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답변에 ’숨긴다‘는 답이 많았습니다.
멀찍이라는 말은 도망갈 거리를 확보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반, 세상 반의 세상입니다. 왜 우리는 온전한 신앙으로 살지 못할까요? 주님을 믿지 않아서일까요? 베드로는 주님을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십자가가 보이기 때문에 멀찍이 서서 따라갔습니다. 우리는 은혜는 받고 싶지만 희생은 바라지 않아요. 그래서 십자가 앞에, 예수님 앞에는 아무 사람이 없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은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지키는 운동이 10% 밖에 남지 않은 것은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생명 운동이 하나님의 뜻이 맏다는 것을 반증하는 표증입니다.
적) 여러분은 목장 모임보다 더 재밌어서 빠지지 않고 나가는 세상 모임은 무엇이 있습니까?
문제가 생겼을 때, 말씀에서 멀찍이 서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프로초이스와 프로라이프 중 어느 쪽을 지지하십니까?
2. 답정너 공회원들이 있습니다.
55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서기관들이 바야바의 집에 모였습니다.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하고 형식적으로 증거를 찾기 위해 비밀스럽게 모였습니다.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원래 증거를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이미 죽이기로 판결하기 위해 증거를 찾고 있습니다. 이미 원칙이 무너진 거짓 공의회입니다.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답을 정해놓고 그 증거를 찾으러 다닙니다. 화내는 것이 합당하다는 증거,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증거,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살아가요.
우리가 이렇게 진리를 알고싶어 하지 않아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내가 틀린 사람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그런데 답을 정해놓고 듣고 싶은 말만 찾아다니면 어떻게 될까요?
56절.
그 좋은 증언들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증언들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거짓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찾아야 할 증언은 유일한 진리되신 하나님의 증언, 말씀밖에 없습니다.
사회 복지재단을 섬기게 되면서 멀리서 들었던 생명윤리 문제, 낙태, 저출산 등의 사회적 문제의 현장에 들어가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증거만 찾는 느낌이었습니다. 인권이라는 답을 정하고 합리화 하기 위해 급급해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떤 명분으로 생명을 죽일지 증언을 모으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인간의 결정은 모두가 일치되지 않는 거짓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싫으면 틀린 것이고 불편하면, 손해보면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기준, 결정입니다. 이런 일치가 안되는 인간에게 답을 정하라고 하는 것은 다 같이 죽자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의 말씀에서만 답을 찾아야 할 줄 믿습니다.
적) 사람의 증언을 찾습니까, 말씀의 증언을 찾습니까?
정해놓은 답을 고집하느라 목장의 권면을 듣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유튜브에서 신앙 콘텐츠보다 더 많이 보는 세상 콘텐츠는 무엇입니까?
3. 생명을 살리는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60-61절.
모두가 일치되지 않는 증언들이 난무하는 공회에서 예수님은 너무 억울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
62절.
예수님께서 억울함 가운데서 끝까지 침묵하신 이유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오신 구원자가 예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억울함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셨습니다. 이런 구원의 사명으로 모든 수치와 조롱을 참으실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긴 침묵 끝에 ‘내가 그니라’ 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십니다. 말할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말, 해야할 말을 분별하고 계셨습니다. 거짓증언을 하는 사람의 말은 인본적이기에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진리의 말씀 앞에서는 침묵할 수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지 않으셨다면 사실 수 있으셨습니다. 공의원들이 덮어씌우는 죄가 신성모독입니다. 예수님이 반대로 거짓증언에 항변하시고 질문에 침묵하셨다면 사실 수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침묵하면 생명을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침묵의 기준이 오직 구원입니다. 착하고 마음이 넓고 성품이 좋아서 희생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해야 하는 사명 때문에 끝까지 침묵하시고 희생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결론이 생명을 낳고 지켜야 한다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불쌍해서가 아닙니다. 윤리 도덕 선행을 실천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구원을 이뤄가시는 말씀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적) 나의 안위와 편의를 지키기 위해서 죽이고 싶었던 예수(생명)은 누구입니까?
그 죽이고 싶은 사람이 나를 구원해주는 그리스도라는 것이 인정이 되십니까?
오늘 내가 구원의 사명으로 살려야 할 생명은 누구입니까?
a
1. 목장식구들 영육간 강건 할수 있기를
2. 신교제 하나님의 때를 잘 기다릴수 있기를
b
1. 재건축 빨리 할 수 있길
c
1. 쓰는 큐티 할 수있길
2.건강관리 더 잘 할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