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본문: 욥기 14:1-6
제목: 고난을 대하는 욥
대구성명교회 배준현 목사님
설교 말씀
대구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대구는 담임목사로 안가려고 합니다.
설교할 때 해결책을 줘야 하는데, 말씀과 이어 해결책을 주려고 하다 보니, 문제가 진행중일 때는 관심을 덜 두게 되는 모습을 되돌아보며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인생에는 여러고난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씀을 갖고 나눠보겠습니다.
욥기에서 가장 많이 설교로 인용되는 본문은 1, 2장, 42장입니다. 인내로 기다렸더니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이 고난을 해결해주신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14장입니다. 욥이 한창 고난 가운데에 있는 내용입니다.
큐티를 할 때, 말씀 안으로 들어가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답이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은 맞지만, 욥은 어떨까요? 자기 고난이 언제 끝날지 몰라 두려워합니다. 고통에 몸부림칠 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것이 두려움입니다. 이 고통은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하는데, 이것이 외로움입니다.
욥이 한밤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그에게 비난합니다. 친구들은 하나님이 이렇게 끝없이 고난을 주신 것을 본 적이 없다며 어떤 죄를 지었는지 고백하고 회개하라고 공격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욥이 어떻게 기도하는지 봐야 합니다.
1-2절.
욥이 짧은 생을 사는데, 걱정에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꽃과 같은 인생이라고 합니다. 활짝 펴서 전성기라고 생각하지만 금방 끝나는 것이 사람의 인생입니다.
3절.
하찮은 존재인데 굳이 눈여겨보시고 재판을 주고 고통을 주시는지,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지 묻는 기도입니다.
4절.
더러운 인간에게 더럽게 살았다고 벌을 내리시는지 묻습니다.
5절.
하나님께서는 선을 그으시고 그 어떤 인간도 넘을 수 없는데, 한계가 있는데, 그런 인생에 상관하시고 재판하신다고 합니다.
6절.
생이 끝날 때까지 그냥 내버려 둬 달라고, 지나치시다고 하는 것이 욥의 기도입니다.
14:21-22절.
자신이 아파서 아들이 잘되는지 못되는지, 성공하는지 비천한지 안보인다고 합니다.
이 고통을 누가 주셨나요?
14:20절에서 주님이 고난을 주셨다고 합니다. 고통과 두려움, 외로움에 휩쌓인 욥의 기도문이 14장입니다.
적) 여러분에게 닥친 고난은 무엇입니까? 숨 쉬기도 힘들게 하는 여러분의 고난은 무엇입니까?
나의 고통 때문에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고난과 고통에 몰아넣으신 하나님을 여러분은 어떻게 대하고 계십니까?
욥기를 읽다 보면 3장부터 끝까지 내용이 넋두리입니다. 그래서 읽기 힘들어 합니다. 그런데 욥기가 읽기 힘든 이유는 해결책을 찾기 때문입니다.
1장을 보면 천상회의가 열립니다. 하나님이 가운데 앉아계시고, 하늘의 아들들 중 사탄을 지목해서 어디에 다녀왔는지 물으십니다. 그 대답이 두루뭉실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단에게 욥에 대해서 물으십니다. 그는 악을 떠나있다고 하십니다. 이때가 욥의 고난의 시작입니다.
욥은 잘못한 적이 없습니다. 온전하고 정직하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을 떠난 사람입니다. 죄를 지어서 고난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린 욥기를 읽으며 욥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죄를 찾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욥의 잘못을 지적하는 구절이 한 구절도 없습니다.
고난이 온 이유가 우리가 잘못해서일까요? 기성세대가 잘못했습니까?
기성세대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일했습니다.
물론 죄를 짓거나 실수를 해서 고난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죄를 지어서 고난이 닥쳤을 때, 죄에 비해 고난이 지나치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모든 고난에는 욥의 고난과 같은 측면이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고난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욥의 친구들은 욥을 공격했을까요?
친구들이 바보같아서가 아니라 고난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갖고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없어야 하는 것, 부끄러운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난은 꼭 있어야 합니다. 고난을 그저 고난으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난의 이유를 주변인들에게 돌린다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고난의 이유를 나 자신에게서 찾는다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고난의 이유를 하나님에게서 찾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나를 아낄 줄 모르면 이웃을 사랑할 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젊은 때에 자기 자신을 격려, 위로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이성 친구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난의 이유를 주변에서 찾으면 이것을 지킬 수 없습니다.
고난을 해결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 게으르면 안됩니다. 문제가 있으면 기도의 자리에 나와 말씀을 붙잡고 큐티를 하고 답을 구하고 은혜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때문에 주님을 붙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고난은 고난입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를 향한 주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본문을 다시 보면 자신의 생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 욥이 사람다워집니다. 우리가 자신의 건강, 젊음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비인간화가 일어납니다. 욥이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자신이 더럽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4절) 자신의 원죄, 존재적 더러움, 인간의 한계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한계를 넘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5-6절). 욥이 모든 순간을 거치며 인간화 되고 있습니다. 겸손해지고 있습니다. 고난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이렇게 지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갓난아기로 오셨습니다. 갓난 아기는 온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입니다. 동물의 새끼는 나자마자 걷고 뛸 수 있는데, 사람은 곁에서 돌보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런 아이로 태어나서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겪으십니다. 30살에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고난당하십니다. 끝에는 십자가에 매달려 창에 찔리고 피를 철철 흘리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빨리 끝내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고통을 통과하셨습니다. 고난이 고난 자체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시대적으로 겪는 어려움, 개인적으로 겪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에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고난을 지혜롭게 견디는 방법입니다.
적) 고난을 그저 고난으로 받아들여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해결이 안 되는 한이 있어도, 고난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까?
고난 받는 우리를 위해 고난의 한복판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의 고난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변할까요?
고난의 복판에 오셔서 겪으신 예수님을 깨달으면 어떻게 달라질까요?
담임목사님의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깊이 지나고 해석하시는 모습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목사님의 자세를 교회에 적용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습니다.
고난에 머무는 시간을 통해 주님이 나를 만들어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지만, 때로는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하지만 고난은 천덕꾸러기가 아닙니다. 때로는 고난이 우리를 살릴 수 있습니다. 고난을 통과하고 지나가야 합니다. 책임을 찾고, 원인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나가야 합니다.
적)고난을 말씀으로 해석하기 위해 매일 큐티, 매일 기도를 실천하고 계십니까?
목장에서 듣는 타인의 고난에 얼마나 공감하고 위로하고 계십니까?
말씀으로 고난을 해석하여, 예수께서 우리에게 선물하신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어떤 것부터 실천해야 할까요?
a
1.조울증이 재발되지 않도록
2.말할때 한번더 생각하고 말하기
b
1.하나님과 관계회복이 1순위가 되기를
2.예배와 말씀 붙드는 삶을 살 수 있기를
3.이번 한 주 외근도 지켜주시길
c
1.건강 관리 잘 할 수 있도록
2.공부 잘 할 수 있도록
d
1.심신 잘 붙들고 하나님 바라보기
2.새로 시작하는 한주 직장동료가 실수 안할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