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4.(주일) 욥기 14:1-6 「고난을 대하는 자세」
배준현 목사님(대구성명교회)
모임장소 : 카페 로쥬
모임인원 : 이진국 목자님외2명
1.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2.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
3.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여겨 보시나이까 나를 주 앞으로 이끌어서 재판하시나이까
4.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5.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6.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가 품꾼 같이 그의 날을 마칠 때까지 그를 홀로 있게 하옵소서
1. 누구도 이해 못할 욥의 고난
욥기는 사실 설교하기 쉬운 본문은 사실 맨 앞 아니면 맨 끝이에요. 맨 앞에 있는 본문은 어느 정도 잘 아시죠? “욥이 어떤 고난을 당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이 하나님 앞에 배신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끝까지 붙들었다. 여러분도 고난 중에 주님을 붙드십시오.” 이렇게 설교하기 아주 좋은 본문이에요. 그리고 이제 마지막 42장에 가보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죠. 욥이 “나는 지금까지 듣기만 했는데 이제는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고백하기도 하고 그리고 모든 어떤 건강의 문제, 재산의 문제, 자녀의 문제 다 해결이 되죠. 이제 그러니까 “끝까지 인내하면 주님이 이렇게 고난을 해결을 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끝까지 인내하십시오.”뭐 이런 식의 설교를 하기가 좋아요. 하지만 사실 처음과 끝은 1장, 2장 끝에 42장, 즉 3장밖에 안 돼요. 욥기의 대다 수는 다 ‘얼마나 고난이 있는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이런 것들을 계속 나열 하면서 진행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4장 본문도 마찬가지예요. 14장의 본문의 욥은 한창 고난 중에 있어요.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이미 내용을 알잖아요. 그러니까 약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읽어요. 그러니까 욥이 지금 막 고통스러워하고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거야’ 이렇게 속 편한 마음으로 욥기를 읽어요. 근데 한번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한번 이 14장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요. 욥은 언제 이 문제가 해결될지 몰라요. 욥은 이 자신의 고난이 언제 끝날지, 어떻게 끝날지, 이 고난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배울지 아무것도 몰라요. 그러니까 지금 욥은 고난 가운데 있어요. 이 고통도 힘든데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두려움과 그리고 오롯이 홀로 견뎌야 한다는 외로움. 이런 것에 짓눌려 있어요 그러니까 마치 한밤중̇ ̇ ̇ 같아요. 한밤중. 몸이 아픈 사람은 밤에 자다가 아파서 깨요. 아파서 깨면 굉장히 외로워요. 왜냐하면 가족들은 다 자고 있죠. 자기 아프다고 가족들 깨울 수 있어요. 오롯이 혼자 버텨야 돼요. 고통도 힘들지만 ‘이게 언제 끝날까?’ 마치 이 밤이 끝이 없을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리고 도대체 이것을 나 혼자 견뎌야 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래서 그 고통과 그 두려움과 외로움이 엄습하는 때 한밤중. 근데 그 한밤중에 지금 욥이 있거든요 욥이 이 한밤중에서 욥의 친구들은 어떻게 하냐면 계속 비난을 해요. 이런 식이에요. “하나님께서 너에게 이런 벌을 내리신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다. 나는 한 번도 이런 걸 본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한 사람에게 순식간에 이렇게 엄청난 고난을 쏟아부으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건 분명히 이유가 있다. 이유를 찾아내라. 이유를 실토해라. 너 뭐 잘못했냐? 가난한 자들을 수탈하거나 또는 괴롭혔냐? 아니면 어떤 성적인 죄를 지었냐? 도대체 하나님 앞에 뭘 잘못한 거냐? 당장에 말해라!”친구들은 끊임없이 욥을 공격해요. 그런 상황 속에서 욥이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려요.
14장 1절 2절입니다.
1.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2.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_욥 14:1-2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한마디로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이 하찮은 존재다” 이 말이에요. 내가 세상에 태어났는데 나는 너무나 하찮은 존재예요. 왜요? 그 생이 짧아요. 그 생이 짧은데 그 짧은 생이 뭐로 가득 차 있나요? 걱정으로 가득 차 있어요. 여러분 이런 생각 안 해보셨나요? 하루살이는 하루밖에 못 살아요. 날아다니는 하루살이 있잖아요. 근데 그 하루살이̇가 그 하루 날면서 온갖 걱정에 휩싸여있다. 우스워 보이지 않나요? ‘하루 사는 네가 뭘 할 수 있길래 그렇게 걱정을 많이 하냐?’ 하나님이 봤을 때 인간이 그래요. 생이 짧은데 그 짧은 생에 온갖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차 있어요. 게다가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어’요. 마치 꽃이 탁 펴 가지고 영원히 살 것처럼 전성기̇̇가 왔어요. 영원히 살 것처럼 쫙 피어오르는데 사실은 순식간에 시들어버려요. 그게 사람의 인생이라는 거예요. ‘지나가며 머물지 않아’요. 그게 인생이에요. 마치 자기가 이제 쫙 피어나 영원토록 살 것 같은 그때에 깨달아요. ‘아! 이게 안개같이 사라지겠구나!’ 그게 사람의 인생이라는 거예요.그런 인생을 보고 “도대체 그 인생이 잘못을 해봐야 얼마나 잘못할 수 있다고 주님이 그런 자들도 상관을 하십니까?” 그게 욥의 기도예요.
3절을 보시면 욥이 이렇게 기도해요.
3.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여겨 보시나이까 나를 주 앞으로 이끌어서 재판하시나이까_욥 14:3
“아니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 이렇게 별거 아닌 존재를 데리고 주님 도대체 뭐 하십니까? 이렇게 하찮고 뭐 잠깐 피었다가 금방 시들어버릴 인생. 그 인생마저도 근심으로 가득 차 있는 아무것도 안 한 인생을 두고 주님 뭐 하십니까?
하나님의 그 크시고 전능하시고 영원하시고 거룩하심을 가지고 주님 뭐 하십니까? 그런 자들을 왜 눈여겨보시고 그런 자들을 왜 재판하고 계십니까?”
그러면서 4절에 이렇게 말해요.
4.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_욥 14:4
“하나님 모르셨어요? 인간들이 죄인인 거 모르셨어요? 그 더러운 곳에서 무슨 깨끗한 걸 찾을 수 있어요? 주님 뭘 기대하신 거예요? 죄인에게서 죄밖에 안 나오고 더러운 자들이 더러운 것밖에 안 내지 거기에 깨끗한 것을 바라셨어요?
아무것도 아닌 존재. 그 인생마저도 짧아 금방 시들어버린 그 인생을 왜 재판하고 계세요?”욥의 고백이 그거예요.
“왜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두고 왜 주님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왜 그들에게 벌을 주십니까? 그게 무슨 그게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그러니까 결론은 뭐예요?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그 얘기예요.
5절 말씀을 한번 보면
5.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_욥 14:5
사람의 인생이 이와 같다는 거예요. 이미 주님이 선을 그으셨어요. 선을 그으셨기 때문에 못 넘어가요. “아니, 죄를 지어봐야 하나님이 정하신 선을 벗어나지도 못하는 인생. 뭘 그렇게 상관하십니까?” 그거예요. 우리 지난주 설교 들으니까 아몬이 2년 만에 죽었죠. 그 하나님이 축복이라고 목사님 말씀하셨죠. 축복이죠. 선이 그어졌어요. 선이! 죄를 지어봐야 2년이에요. 하나님께서 선을 그으시면 못 벗어나요. “그런 인생을 두고 뭘 그렇게 재판까지 하십니까? 뭘 그렇게 벌을 내리시며, 뭘 그렇게 신경을 쓰십니까?” 이거예요.
그래서 6절에 이렇게 말해요.
6.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가 품꾼 같이 그의 날을 마칠 때까지 그를 홀로 있게 하옵소서_욥 14:6
“그냥 두십시오. 해봐야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데 그냥 두십시오.
그 하찮은 존재에 뭘 그렇게 신경을 쓰십니까?” 이게 욥의 기도예요. 욥은 자신의 이 고통에 질려 있는 상황. 그런 상황을 같은
14장 21절 22절에서 이렇게 표현했어요.
21. 그의 아들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그가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
22. 다만 그의 살이 아프고 그의 영혼이 애곡할 뿐이니이다_ 욥14:21-22
자녀가 존귀하게 돼도, 자녀가 비천하게 돼도 신경을 못 써요. 왜요? 자기 살이 아프고 자기 마음이-자기 영혼이- 아파서 자기 자녀가 잘 되는지 못 되는지 어떻게 사는지 신경을 못 쓸 정도로 그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이 고통을 주신 분이 누군가요.
20절에 보니까 주님이시래요.
20. 주께서 사람을 영원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보내시오니_욥14:20
주님이̇ 떠나게 하시고 주님이̇ 쫓아내시고 주님이̇ 고통을 주시고 주님이̇ ̇벌하시는 그런 고통을 지금 오롯이 감당하고 있는 욥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토로하는 거예요. 언제 회복될지 몰라요. 언제 구원받을지 몰라요. 자신은 이 외로움 속에서 끊임없이 고통 가운데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게 욥의 상황이에요.
▪ 적용질문
Q. 여러분에게 닥친 고난은 무엇입니까? 숨 쉬기도 힘들게 하는 여러분의 고난은 무엇입니까?
Q. 나의 고통 때문에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Q. 고난과 고통에 몰아넣으신 하나님을 여러분은 어떻게 대하고 계십니까?
2. 고난을 대하는 방법
욥기는 이런 넋두리가 길게 기록돼 있어요. 혹자는 욥기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냐 하면 “사실은 세 줄만 있으면 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3줄. “이렇게 고난이 왔다 이렇게 극복했다 그냥 몇 줄이면 끝난다는 거예요. “이렇게 길게 쓸 필요가 없다. 처음 1장과 2장과 마지막 42장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런데 욥기의 대부분은 어때요? 그 가운데 넋두리로 가득 차 있어요. 이와 같은 넋두리예요.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고 “왜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이런 기도. 친구들과 싸우고 이런 기도들로 가득 차 있어요. 사람들이 이 욥기 읽기를 힘들어 해요. 이유가 뭘까요? 여러분 욥기를 읽어보면 욥기가 그나마 한 장 한 장이 좀 짧아서 그나마 읽을 만하지. 이 욥기 읽기 쉽지 않거든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자꾸 해결책만 찾아서 그래요. 욥기에는 해결책이 없어요. 그러니까 욥기에서 뭔가 ‘이 고난에서 벗어나 해결책’ 못 찾아요. 그러니까 읽다 보면 힘들어요.
욥기 1장을 보면 천상회의가 시작되는데, 사탄에게 하나님께서 욥을 자랑하시잖아요. 뭐라고 자랑하냐 하면,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다” 이렇게 자랑을 하거든요. 이게 발단이에요. 이게 발단 이게 시작이에요. 욥이 뭘 잘못해서 시작된 게 아니에요.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예요. 욥에게 잘못이 없어요. 욥에게 원인을 구하고 있지 않아요, 욥기는. 근데 욥기를 읽는 사람들은 자꾸 욥에게 원인을 돌려요. 왜냐하면 이해가 안 되니까. “도대체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돼?” 이해가 안 되니까 자꾸 욥에게 원인을 찾아요. 그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자꾸 얘기하려고 해요. 그래서 “그가 이전에는 듣기만 했다”고 하면 “그가 듣기만 하지 않았냐? 그가 주님을 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는 죄인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그런데 성경은 욥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아요. 욥이 죄인이 아니라는 게 아니에요. 세상 모든 사람은 죄인이에요. 하지만 그것을 부각시키지 않아요. 이유가 뭘까요?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와 같은 욥의 고난의 소리를 담담히 듣게 해요. 이 시기에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은 나의 고난의 원인과 해결책 찾기를 때로는 멈춰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이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에게 잠시라도 여러분의 고난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를 멈추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러분 저는 보통 이 고난에 대해 설교할 때 당연히 대다수의 설교자가 그러는 것처럼 “고난의 원인은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해결은 이런 방식으로 됩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고난을 극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이런 식으로 고난을 극복한 간증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고난을 극복하십시오.” 이런 설교 너무 좋은 설교예요. 저도 여러 번 했어요. 하지만 때로는 우리는 고난 가운데 머물 필요가 있어요. 고난 가운데 멈출 필요가 있어요.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걸 요구하실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설교를 통해서 섣불리 답을 찾기보다 차라리 고난에 머물면서 이런 기도를 같이 하나님께 올려드리자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왜 이렇게 우리를 괴롭게 하세요? 주님! 왜 나같이 연약하고 나같이 부족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 아니, 큰 죄를 지어봐야 이 연약하고 부족하고 한계가 있는 존재가 큰 죄를 지어봐야 얼마나 짓겠으며! 우리가 주 앞에 범죄해도 뭘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이렇게 괴롭게 하십니까?”하는 기도를 같이 올려드리자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욥기의 메시지 자체가 바로 이와 같은 욥의 토로이자 불평이자 절망이기 때문이에요. 욥기의 대부분은 이와 같이 불평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어요. 정답만 찾는 것이지 능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고난 가운데 머물러야 돼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왜 욥의 친구가 끊임없이 그렇게 욥을 정죄했을까요? 고난에 대한 편협한 시각 때문이에요. 틀렸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 측면이 있어요. “고난은 악이다. 고난은 없어야 정상이고, 고난을 당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고난은 네가 큰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하는 어떤 아주 편협하고 치우친 생각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끊임없이 욥을 정죄할 수밖에 없어요. 그 욥의 그 고난을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근데 물론 여러 가지 많은 케이스 중에서 죄 때문에 고난이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건 사실이에요. 그 부분을 우리가 무시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모든 고난에는 다른 측면이 존재를 해요. 그래서 한 부분만 보면 그 다른 측면이 안 보이기 때문에 해석이 안 돼요. 우리가 고난을 대할 때 물론 우리가 잘못해서 당하는 고난도 있죠. 근데 여러분 이런 생각도 안 해보셨나요? ‘내가 이만큼 잘못했는데 왜 나에게 벌은 이만큼 오지?’ 물론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실수한 게 있어요. 그런데 나에게 온 고난은 너무 큰 거예요. 그럼 뭐예요? ★욥이 당하는 고난의 측면이 존재하는 거예요. 근데 그 부분을 무시하고 한 부분만 보면 고난이 해석이 안 돼요. 고난이 당연히 해결이 안 되죠. 끊임없이 고민하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을 보세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어요. 33년 계셨잖아요. 그분이 갓난아기로 태어나셨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갓난아기로 태어나는 걸 이해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요? 근데 예수님은 갓난아이로 태어나셨어요. 그리고 유아기, 유년기, 청소년기를 다 보내셨죠. 청년기를 보내시고 30살이 되셨어요. 그리고 30살 이후에 공생애를 지내셨는데 그 3년을 꽉 채우셨어요. 그리고 고난당하기 시작하실 때부터 보면 너무 끔찍할 정도예요. 그 희롱과 그 고문과 고통. 말로 다 못해요. 근데 그런 고난을 당하고 있는 그 예수님̇̇이 “아 이거 너무 쉽지 않다. 이거 빨리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해 버려야지” 이러시지 않았어요. 온전히 다 겪으셨어. 온전히 온전히 다 느끼고 온전히 다 견디시고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셨어요. 십자가에서도 끝까지 버티셨어요.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 주님이 이 고난을 내가 빨리 치워버려야지 이거 빨리 해결해 버려야지 하지 않으셨다는 얘기예요.
★우리에게도 그런 자세가 필요해요. 여러분에게 닥친 고난을 어디서 원인을 찾으세요? 여러 가지로 원인을 찾을 수 있어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부모님이나 여러분의 친구나 여러분의 배우자나 여러분의 가족이나 또 다른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면서 원인을 여러분이 계속 찾는다면 여러분은 일부 원인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 이웃을 사랑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주님은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는데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어요. 만약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의 모든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다면“나 때문이야. 내가 뭘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해서” 만약에 여러분의 모든 고난의 이유를 여러분에게서 찾는다면 여려분이 여러분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누구한테 이해받죠? 만약에 그 모든 원인을 하나님께 돌린다면 “하나님 왜 나한테 이렇게 하셨어요?”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고 만약에 주님을 그런 식으로 떠난다면 우리는 주님을 사랑할 수 없을 거예요. 주님은 우리에게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그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 어려울 거예요.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그 명령도 지키기 어려울 거예요.
★때론 고난은 그냥 고난대로 둬야 될 때가 있어요.고난은 그저 고난이고 우리는 그 고난을 그냥 만났을 뿐이에요.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 고난을 해결해 달라고 기도해야 돼요. 하나님은 좋은 분이에요. 하나님은 굽어 살피시는 분이시고 그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보다 더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은 우리 삶의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요. 주님은 그렇게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세요. 하지만 여러분 ★모든 고난이 무조건 악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고난을 보는 폭을 넓혀야 돼요. 오늘 본문을 보세요. 이 고난 당하고 있는 이 욥이 어떠한 깨달음을 얻는지를 봐야 돼요. 우리가 한 번 더 보겠습니다. 1절부터 3절을 보면 “욥이 무엇을 깨달았는지” 봐야 돼요.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다. 걱정이 가득하다. 시든다. 지나가며 머물지 않는다.” 이렇게 고백했어요. 욥은 지금 이 상황을 겪으면서 뭘 보고 있는 거냐 하면 자신의 인생의 한계를 보고 있어요. ‘내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 여러분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뭔지 아세요? 욥이 사람 같아져요. 욥이 겸손해져요. 욥이 인간다워져 여러분 사람이 가장 비인간적일 때가 언젠지 아세요? 자기가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할 때예요. 자기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때예요. ‘내 전성기가 끝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에 그 사람은 괴물이 돼요. 인간다워지지 않아요. 그런데 고난 가운데 ‘내가 얼마나 한계 속에 있는가! 내가 얼마나 풀의 꽃 같은가! 내가 얼마나 일시적인가!’ 이런 것을 깨닫는 순간에 그 사람은 인간다워져요. 사람다워져요.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게 돼요. 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아요. 4절부터 6절에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이 더럽다는 걸 고백해요. 6절에 보니까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습니까? “나는 더러운 존재입니다” 하는 것을 고백해요. 여러분 이 말을 가지고 욥이 죄가 있어서 이런 고난을 당했다고 말하면 안 돼요. 성경은 분명히 그가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이것은 보통 사람의 어떤 수준의 죄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의 어떤 본질적인! 존재론적인! 내가 특별히 어떤 나쁜 죄를 지었고, 내가 어떤 쓸데없는 짓을 했고, 이런 게 아니라 자기가 자기 안에 원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아! 내가 뿌리부터 죄인이구나! 내가 최선을 다해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살아왔지만 여전히 나는 더럽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그리고 5절과 6절에 보면, 5절에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그래요. 6절에도 ‘그의 날을 마칠 때까지’ 그래요. ‘아! 내가 한계가 있구나! 내가 끝이 있구나! 내가 그 전능자 영원자 하나님 앞에 너무나 티끌 같은 먼지 같은 존재구나!’ 이걸 깨닫는 거예요. 이런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욥이 이런 것을 깨닫기 시작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고난이 우리의 어리석음, 우리의 죄 때문에 기인했을 수 있어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우리의 고난이 우리의 죄의 결과일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떤 고난은 거기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어요. 바로 우리가 티끌과 같은 존재, 더러운 가운데에 있는 존재, 고난에 허덕이는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거를 알아야 돼요. 주님이 그런 우리를 위해서 오셨잖아요. 주님이 고난 밖에서 더러운 밖에서 “여기로 나와”라고 손짓하지 않으셨어요. 주님은 그 더러움 속으로 들어오셨어요. 그 순결하신 분이 그 악의 한가운데로 들어오셨어요. 인간이 되셨어요. 우리와 함께 사셨어요. 그들과 함께 뒹구셨어요.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가르치셨어요. 주님이 그걸 위해서 오신 거예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리고 함께 고난을 겪어주신다” 하는 것이 우리가 이 고난에서 해결할 수 있고 나올 수 있고 또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아주 핵심적인 증거예요.
▪ 적용질문
Q. 고난을 그저 고난으로 받아들여 보신 적이 있습니까?
Q. 해결이 안 되는 한이 있어도, 고난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까?
Q. 고난받는 우리를 위해 고난의 한복판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의 고난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요?
3. 고난을 지나는 분들에게
저는 이번에 우리 띵크 목회자 세미나 참석하면서 고난을 대하는 우리 김양재 목사님의 태도에 감명을 받았어요. 사실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어요. 고난이 깊고 그 고난을 말씀으로 해석하는 깊이가 깊다 보니까 제가 책도 읽었고 강의로도 들었는데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근데 보다 더 이 고난을 직면하고 이 고난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그 고난이 해석될 때까지 말씀을 붙들고 기다리는 그 태도에 감명을 받았어요. 이런 태도가 우리에게 지금 필요하지 않는가! “해석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된다.” 그러면서 말씀으로 고난을 재해석하고 그 고난을 해결하려고 하는 태도 말이에요. 아픔이 많은 시대에 꼭 필요한 태도가 아닌가 특별히 고난을 대하는 태도로서 꼭 필요하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이 큐티-매일의 말씀 묵상-으로 시작되는 게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그리고 제가 이 부부 목장을 참관했는데 굉장히 충격적인 순간들이 많았어요. 이거를 사실 얘기를 좀 하긴 해야 되는데. 아, 이게 쉽지 않아요. 사실은 이걸 다 얘기한다는 게 그래서 제가 과일로 비유를 했어요, 제가 원고에는. 이거 다 얘기를 못할 것 같아 가지고 제가 과일로 비유를 했어요. 블루베리로 시작해 가지고. 블루베리가 뭐냐 하면 주일 예배는 빠지는 거예요. “블루베리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목원이 이야기를 하니까. 그 인도자께서 “그리고?” 이렇게 물어요. 별로 말도 많이 안 해요. 그러니까 이제 그분이 “그리고 포도 같은 문제도 있어요.” 이러니까 약간 언성을 딱 높이시면서 “지금 목사님 와 계시다고 지금 거룩한 척하는 거야?” 막 이러시는 거예요. “빨리 얘기해!” 그러면서 그래서 갑자기 “요즘 수박은 안 해?” 이러는 거예요. 갑자기. 아니 뭐 중간에 복숭아도 있고, 망고도 있고 작은 크기들 많잖아요. 근데 갑자기 룸싸롱 간 이야기를 갑자기 하니까 제가 그러면서 막 전문 용어를 막 뭐라 그러셨더라 막 뭐 ‘텐프로’ 그랬나? 막 이런 표현들을 막 쓰시면서 막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인도자가 갑자기 저를 딱 보더니 “목사님 이거 무슨 말인지 아세요?” 그러는 거예요. “자세히 설명 드려!” 막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순간에 이거를 내가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가지고 저도 모르게 “아! 알아요. 알아요. 제가 그거 다 압니다.” 제가 그렇게 얘기는 했는데 뭘 알아요 알기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나중에 제 미나이(AI)한테 물어봐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용어도 잊어 먹었어요. 제가 난감하더라고요. 근데 다른 목원들은 막 깔깔깔 웃고 막 넘어가요. ‘아, 이 순간에 내가 웃어도 되나?’ 그분에게는 굉장히 아픈 상처이고 또 그럴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거 내가 웃어도 되는 건가’ 근데 또 웃기도 하고 진지하게 듣기도 하고 이렇게 왔다 갔다 해서 저도 혼란스러워 가지고 그 제가 진지하게 듣고 있잖아요. 그러면 못 알아 듣나 싶으셔 가지고 “무슨 말인지 아시겠냐?”고 그러면서 더 자세히 설명을 하니까 제가 또 난감하고. 또 진지하게 듣고 있으면 “목사님, 놀라셨죠?” 그러면서 걱정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한테 자꾸 뭔가 이렇게 집중되는 게 굉장히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래 가지고 웃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또 울지도 못하고 진지하게 듣지도 못하고 상당히 난감한 시간을 보냈어요. 누구 한 분이 그래요? 목사님, 이런 얘기하면서 이렇게 깔깔깔 웃는 사람은 처음 봤다는 거예요. 자기는 이것 때문에 막 이혼할 뻔하고 자기 이것 때문에 인생이 망가지고 자기 이것 때문에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이 얘기를 하면서 깔깔깔 웃는 거예요. 목원들이 자기 이런 얘기하면서 이렇게 깔깔깔 웃는 사람들은 처음 봤대요. 그래서 제가 참관하러 간 사람이니까 전혀 안 묻고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었는데 진짜 궁금해서 하나 물어봤어요. “그러면 집사님 요거 이런 얘기하실 때 깔깔깔 웃는 게 좋아요? 아니면 진지하게 듣는 게 좋아요?” 이렇게 제가 물었어요. 그랬더니 뭐라 그러셨대요? 깔깔깔 웃는 게 좋대요.
제가 그때 딱 떠오른 거는 그 김애란 작가라고 여러분 혹시 아시나요? 소설가가 있는데 최근에 그분이 인터뷰를 했어요. 김애란 작가의 작품은 그가 사회학자라는 평론이 나올 정도로 사회의 어떤 여러 비극적인 사건들을 소설에 담아요. 그래서 비극적인 얘기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분의 소설의 특징은 끊임없이 유머 코드가 있어요. 유머가 있어요. 계속 유머가 지나가요. 그래서 그 기자가 물었어요. “그 유머가 당신에게 어떤 뜻이냐?”고 물었더니 김혜란 작가가 무슨 말을 했냐 하면 “너무 진지하게 위로를 하면 그 진지함의 비장함 때문에 위로를 받는 사람이 부채감이 든대요.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거죠. 그런데 그 사이에 유머와 농담을 섞으면 그것이 그렇게 뜨겁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차갑지도 않게 그렇게 무겁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가볍지도 않게 상대방에게 부채감을 덜 주고 빚진 마음을 덜어주면서 위로할 수 있대요. 그래서 그 웃음이 위로를 준다는 거예요” 근데 제가 사실 김애란 작가의 이 인터뷰를 보면서 100% 이해를 못했거든요. 그런데 이 목장에서 이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아! 지금 위로가 진행되는 중이구나’ 제가 그 얘기를 했어요. 저한테 소감을 얘기하라고 그러길래 제가 김애란 작가의 이런 인터뷰를 가지고 위로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인도자가 딱 그러시더라고요. “우리는 위로하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공격하려고 하는 거지!” 이러시는 거예요. 제가 많이 놀랐어요. 그런데 제가 이번에 목회자 세미나 통과하면서 이게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을 했어요. ‘그런 순간이 없었다면 내가 한 영혼의 소중함을 지금보다 더 몰랐겠구나. 내 목회가 지금만 하지 못했겠구나’ 이런 생각을 조금씩 하면서 제가 그래도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을 했어요. 여러분 고난이 닥칠 때 만약에 제가 거기에서 도망 나오는 선택을 했다면? 우리가 뭐 쉽게 절교를 하든지~ 이혼을 하든지~ 뭐 자살을 하든지 뭐 이런 식의 방식으로. 그런 생각도 사실 했었거든요. 한 시간 차 타고 내려가니까 일하러 가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근데 일은 안 하러 가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내려가면서 ‘사고라도 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제가 했었거든요. 이런 식의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면 아마 제 인생은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근데 고난은 때로는 그냥 고난에 둬야 돼요. 때로는 고난 가운데 머물러야 돼요.
★그러면서 꾸준히 하나님을 붙들며 말씀을 붙들며 큐티하면서 그 말씀이 내 삶을 내 고난을 해석해 줄 때까지 기다려야 돼요.
기다릴 때 하나님은 우리 삶에 때로는 놀라운 전기를 마련하게 해주세요. 그래서 그 생에서 우리의 삶을 회복하게 해주세요.
▪ 적용질문
Q. 고난을 말씀으로 해석하기 위해 ‘매일 큐티, 매일 기도’를 실천하고 계십니까?
Q. 목장에서 듣는 타인의 고난에 얼마나 공감하고 위로하고 계십니까?
Q. 말씀으로 고난을 해석하여, 예수께서 우리에게 선물하신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어떤 것부터 실천해야 할까요?
여러분 삶 속에 고난을 거추장스러운 천덕꾸러기처럼만 여기지 마시고 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어떻게든 밀어내려고만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하나님 말씀에 머물면서 때로는 그 고난을 힘드시겠지만 온몸으로 버텨보세요. 그 고난을 통해서 여러분이 주시는 음성이 있으실 거예요. 여러분 고난은 고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고난을 지나가신 것처럼 우리는 때때로 그렇게 묵묵히... 때로는 기꺼이... 기꺼이 할 수 있을까요? 기꺼이 고난을 통과해야 돼요. 그 고난을 통과할 때 우리는 생명과 치유와 부활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은 이와 같이 이 부활을 지나게 하시고 부활을 통과하여 우리를 더 새롭게 하시는 그런 변화를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누구도 이해 못할 욥의 고난
Q. 여러분에게 닥친 고난은 무엇입니까? 숨 쉬기도 힘들게 하는 여러분의 고난은 무엇입니까?
Q. 나의 고통 때문에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Q. 고난과 고통에 몰아넣으신 하나님을 여러분은 어떻게 대하고 계십니까?
2. 고난을 대하는 방법
Q. 고난을 그저 고난으로 받아들여 보신 적이 있습니까?
Q. 해결이 안 되는 한이 있어도, 고난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까?
Q. 고난받는 우리를 위해 고난의 한복판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의 고난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요?
3. 고난을 지나는 분들에게
Q. 고난을 말씀으로 해석하기 위해 ‘매일 큐티, 매일 기도’를 실천하고 계십니까?
Q. 목장에서 듣는 타인의 고난에 얼마나 공감하고 위로하고 계십니까?
Q. 말씀으로 고난을 해석하여, 예수께서 우리에게 선물하신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어떤 것부터 실천해야 할까요?
“고난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같이 중보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
1. 성숙하고 실력있는 자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길
2. 주님보다 앞서지 않는 신교제 누리고 신결혼 준비 잘 할 수 있도록
3. 책 결과물이 잘 나올 수 있도록
4. 사업과 아이디어와 학교 강의 위에 기름부어 주시길
5. 아버지 요양병원 입원하셨는데 치료 잘 받고 속히 회복 되시도록
6. 간호하는 어머니 힘 주시고 지치지 않으시고 목과 허리 치료 잘 받고 속히 회복하시도록
7. 부모님 병원에서 잘 주무실 수 있도록
나
1.저희 어머니 자궁내막암 대장암 잘 유지되게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2.저희 어머니 삼성병원 6월8일 결과 나오는데 좋은 결과 나올수 있도록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3.신교제 신결혼 간절히 소망합니다.
4.직장 고난이 있어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사람에 속지 말고 환경에 속지말고 질서의 순종 잘하며 나아갈수 있도록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5.교회와 목장 사랑부 그리고 십일조 생활 잘 유지될수 있도록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6.요즘 신경이 예민해서 자주 날카롭게 말을 하고 반응을 하는데 주님께 맡기며 하루 하루 소중하게 보낼수 있도록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다
1. 매주 예배를 참석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2. 바꾼 비염 약에 몸이 적응을 해서 잠을 덜 자고 효과를 보게 해 주세요
3. 엄마 지금의 건강 유지하여 고혈압, 관절염 관리가 되게 해 주세요
4. 목장 모임 참석할 수 있는 시간, 환경을 열어 주세요
5. 오빠 조경일 할 때 안전운전과 체력을 꾸준히 허락하시어 영육 모두 건강히 전도할 수 있게 해 주세요
6. 신교제, 신결혼 허락하시어 주님의 사랑이 살아 있는 가정을 만들게 해 주세요
7. 영적으로 깨어 있어 저의 생각을 고집하지 말고 주님의 뜻을 알고 따르고 꾸준히 기도하게 해 주세요
라
1.가족구원과 건강
2.회사일이 순적하게 잘 진행되도록
3.신교제, 신결혼에 소망을 버리지 않도록
4.큐티 잘하고 말씀이 잘 해석되도록
마
1.어머니가 빨리 회복되어서 아버지랑 예수믿고 구원받게 하시길
2.신결혼할수 있도록 만남의 축복주시길
3.글씨 잘 깨우쳐 큐티와 기도 쉬지 않도록 은혜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