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4.(주일) 욥기 14:1-6 「고난을 대하는 자세」
배준현 목사님(대구성명교회)
1.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2.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
3.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여겨 보시나이까 나를 주 앞으로 이끌어서 재판하시나이까
4.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5.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6.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가 품꾼 같이 그의 날을 마칠 때까지 그를 홀로 있게 하옵소서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대구성명교회 배준현 목사라고 합니다.
또 이렇게 휘문 채플에서 예배드리시는 분들께도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제가 휘문중·고를 졸업해서 제가 ‘혹시 휘문에 가서 설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제가 사실 했었는데... 판교에 있는 게 불만이라는 얘기는 아니고. 제가 인사를 좀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목회자 세미나 참석하면서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는데 또 이렇게 말씀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고요.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또 특별한 은혜를 주시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하나 먼저 보시고 같이 시작을 하죠. (유키즈의 악뮤 캡쳐 화면) 이분들 아시나요? 유재석씨 옆에 이제 출연자들 2명이 있었는데 악동 뮤지션, ‘악뮤’라고 불리는 혼성 그룹이죠. 이 두 사람-이찬혁, 이수현-은 선교사의 아들, 딸이고 대중문화계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분들이죠. 이수현 씨는 최근까지 심각한 슬럼프에 빠져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방 안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이렇게 막 살은 찌고 건강은 안 좋아지고 미래는 포기하고 이제 이런 시간을 오랫동안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여러 인터뷰, 특별히 아까 보셨던 유키즈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했는가?’ 이런 것에 대해서 설명했어요. 제가 그 인터뷰를 보고 또 몇몇 기사들을 보면서 제가 무슨 생각을 했냐면 ‘아! 이 슬럼프의 극복 스토리는 설교 때 한번 언급해도 되겠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는 순간에 제 자신이 굉장히 부끄러웠어요. 왜냐하면 제가 이수현 씨가 오랫동안 슬럼프로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는데 그때는 사실 설교에 언급해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어려움을 극복을 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걸 보면서 극복 스토리를 들으면서 ‘아, 이거 설교에 한번 써 봐야지’라고 생각하는 제 자신이 조금 얄팍하게 느껴졌어요. 내가 어떤 고난의 ‘극복’ 간증 또는 ‘성공’ 스토리, ‘영달’ 스토리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져서 저 스스로가 좀 부끄러웠어요.
그리고 약간의 자괴감도 좀 들었는데 왜 그러냐면 설교자는 ‘성도들에게 답을 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각자의 고난이 있는데 ‘이런 고난이 있다’ 하고 드러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고난은 이렇게 극복할 수 있다. 이렇게 극복 할 수 있으니 이렇게 극복을 하세요.’ 이제 이런 식의 설교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제 그러다 보니까 실제로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의 스토리는 약간 외면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제가 받았어요. 외면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보류? 유예? 좀 두고 보자. ‘아, 이게 과연 옳은가?’ 이런 생각이 좀 들면서 이수현 씨가 한창 힘들 때는 외면하고 있다가 그가 뭔가 극복을 하고 뭔가 회복을 했다는 걸 보면서 ‘아 뭔가 좀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저 자신을 보면서 조금 부끄럽고 창피하고 약간의 자괴감도 좀 들었어요.
우리의 인생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고난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이 고난이 꽤 오래 갈지도 몰라요. 물론 우리가 천국에 가면 다 해결이 되겠지만. 이 인생 속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생각할 때 상당히 이게 쉽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뭐 고난의 경중을 따지는 것이 뭐 적절하진 않아도 어떤 사람의 고난은 ‘아, 이거 뭐 해결이 될까? 하나님이 뭔가 막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면 이게 해결이 될까?’ 이런 생각이 드는 고난들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고난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오늘 욥기를 통해서 <고난을 대하는 자세>를 우리가 한번 점검해 보면 좋겠습니다.
1. 누구도 이해 못할 욥의 고난
욥기는 사실 설교하기 쉬운 본문은 사실 맨 앞 아니면 맨 끝이에요. 맨 앞에 있는 본문은 어느 정도 잘 아시죠? “욥이 어떤 고난을 당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이 하나님 앞에 배신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끝까지 붙들었다. 여러분도 고난 중에 주님을 붙드십시오.” 이렇게 설교하기 아주 좋은 본문이에요. 그리고 이제 마지막 마지막 42장에 가보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죠. 욥이 “나는 지금까지 듣기만 했는데 이제는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고백하기도 하고 그리고 모든 어떤 건강의 문제, 재산의 문제, 자녀의 문제 다 해결이 되죠. 이제 그러니까 “끝까지 인내하면 주님이 이렇게 고난을 해결을 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끝까지 인내하십시오.” 뭐 이런 식의 설교를 하기가 좋아요.
하지만 사실 처음과 끝은 1장, 2장 끝에 42장, 즉 3장밖에 안 돼요. 욥기의 대다수는 다 ‘얼마나 고난이 있는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이런 것들을 계속 나열하면서 진행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4장 본문도 마찬가지예요. 14장의 본문의 욥은 한창 고난 중에 있어요.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이미 내용을 알잖아요. 그러니까 약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읽어요. 그러니까 욥이 지금 막 고통스러워하고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거야’ 이렇게 속 편한 마음으로 욥기를 읽어요. 근데 한번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한번 이 14장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요.
욥은 언제 이 문제가 해결될지 몰라요. 욥은 이 자신의 고난이 언제 끝날지, 어떻게 끝날지, 이 고난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배울지 아무것도 몰라요. 그러니까 지금 욥은 고난 가운데 있어요. 이 고통도 힘든데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두려움과 그리고 오롯이 홀로 견뎌야 한다는 외로움. 이런 것에 짓눌려 있어요.
그러니까 마치 한밤중 같아요. 한밤중. 몸이 아픈 사람은 밤에 자다가 아파서 깨요. 아파서 깨면 굉장히 외로워요. 왜냐하면 가족들은 다 자고 있죠. 자기 아프다고 가족들 깨울 수 있어요. 오롯이 혼자 버텨야 돼요. 고통도 힘들지만 ‘이게 언제 끝날까?’ 마치 이 밤이 끝이 없을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리고 도대체 이것을 나 혼자 견뎌야 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래서 그 고통과 그 두려움과 외로움이 엄습하는 때 한밤중. 근데 그 한밤중에 지금 욥이 있거든요.
욥이 이 한밤중에서 욥의 친구들은 어떻게 하냐면 계속 비난을 해요. 이런 식이에요. “하나님께서 너에게 이런 벌을 내리신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다. 나는 한 번도 이런 걸 본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한 사람에게 순식간에 이렇게 엄청난 고난을 쏟아부으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건 분명히 이유가 있다. 이유를 찾아내라. 이유를 실토해라. 너 뭐 잘못했냐? 가난한 자들을 수탈하거나 또는 괴롭혔냐? 아니면 어떤 성적인 죄를 지었냐? 도대체 하나님 앞에 뭘 잘못한 거냐? 당장에 말해라!”
친구들은 끊임없이 욥을 공격해요. 그런 상황 속에서 욥이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려요. 14장 1절 2절입니다.
1.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2.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_욥 14:1-2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한마디로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이 하찮은 존재다” 이 말이에요. 내가 세상에 태어났는데 나는 너무나 하찮은 존재예요. 왜요? 그 생이 짧아요. 그 생이 짧은데 그 짧은 생이 뭐로 가득 차 있나요? 걱정으로 가득 차 있어요. 여러분 이런 생각 안 해보셨나요? 하루살이는 하루밖에 못 살아요. 날아다니는 하루살이 있잖아요. 근데 그 하루살이가 그 하루 날면서 온갖 걱정에 휩싸여 있다. 우스워 보이지 않나요? ‘하루 사는 네가 뭘 할 수 있길래 그렇게 걱정을 많이 하냐?’ 하나님이 봤을 때 인간이 그래요. 생이 짧은데 그 짧은 생에 온갖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차 있어요.
게다가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어’요. 마치 꽃이 탁 펴 가지고 영원히 살 것처럼 전성기가 왔어요. 영원히 살 것처럼 쫙 피어오르는데 사실은 순식간에 시들어버려요. 그게 사람의 인생이라는 거예요. ‘지나가며 머물지 않아’요. 그게 인생이에요. 마치 자기가 이제 쫙 피어나 영원토록 살 것 같은 그때에 깨달아요. ‘아! 이게 안개같이 사라지겠구나!’ 그게 사람의 인생이라는 거예요.
그런 인생을 보고 “도대체 그 인생이 잘못을 해봐야 얼마나 잘못할 수 있다고 주님이 그런 자들도 상관을 하십니까?” 그게 욥의 기도예요.
3절을 보시면 욥이 이렇게 기도해요.
3.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여겨 보시나이까 나를 주 앞으로 이끌어서 재판하시나이까_욥 14:3
“아니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 이렇게 별거 아닌 존재를 데리고 주님 도대체 뭐 하십니까? 이렇게 하찮고 뭐 잠깐 피었다가 금방 시들어버릴 인생. 그 인생마저도 근심으로 가득 차 있는 아무것도 안 한 인생을 두고 주님 뭐 하십니까? 하나님의 그 크시고 전능하시고 영원하시고 거룩하심을 가지고 주님 뭐 하십니까? 그런 자들을 왜 눈여겨보시고 그런 자들을 왜 재판하고 계십니까?”
그러면서 4절에 이렇게 말해요.
4.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_욥 14:4
“하나님 모르셨어요? 인간들이 죄인인 거 모르셨어요? 그 더러운 곳에서 무슨 깨끗한 걸 찾을 수 있어요? 주님 뭘 기대하신 거예요? 죄인에게서 죄밖에 안 나오고 더러운 자들이 더러운 것밖에 안 내지 거기에 깨끗한 것을 바라셨어요? 아무것도 아닌 존재. 그 인생마저도 짧아 금방 시들어버린 그 인생을 왜 재판하고 계세요?”
욥의 고백이 그거예요. “왜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두고 왜 주님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왜 그들에게 벌을 주십니까? 그게 무슨 그게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결론은 뭐예요?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그 얘기예요. 그게 5절 6절에 나와요. 5절 말씀을 한번 보면
5.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_욥 14:5
사람의 인생이 이와 같다는 거예요. 이미 주님이 선을 그으셨어요. 선을 그으셨기 때문에 못 넘어가요. “아니, 죄를 지어봐야 하나님이 정하신 선을 벗어나지도 못하는 인생. 뭘 그렇게 상관하십니까?” 그거예요. 우리 지난주 설교 들으니까 아몬이 2년 만에 죽었죠. 그 하나님이 축복이라고 목사님 말씀하셨죠. 축복이죠. 선이 그어졌어요. 선이! 죄를 지어봐야 2년이에요. 하나님께서 선을 그으시면 못 벗어나요. “그런 인생을 두고 뭘 그렇게 재판까지 하십니까? 뭘 그렇게 벌을 내리시며, 뭘 그렇게 신경을 쓰십니까?” 이거예요.
그래서 6절에 이렇게 말해요.
6.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가 품꾼 같이 그의 날을 마칠 때까지 그를 홀로 있게 하옵소서_욥 14:6
“그냥 두십시오. 해봐야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데 그냥 두십시오. 그 하찮은 존재에 뭘 그렇게 신경을 쓰십니까?”
이게 욥의 기도예요. 욥은 자신의 이 고통에 질려 있는 상황. 그런 상황을 같은 14장 21절 22절에서 이렇게 표현했어요.
21. 그의 아들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그가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 22. 다만 그의 살이 아프고 그의 영혼이 애곡할 뿐이니이다_욥14:21-22
자녀가 존귀하게 돼도, 자녀가 비천하게 돼도 신경을 못 써요. 왜요? 자기 살이 아프고 자기 마음이-자기 영혼이- 아파서 자기 자녀가 잘 되는지~ 못 되는지~ 어떻게 사는지~ 신경을 못 쓸 정도로 그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이 고통을 주신 분이 누군가요. 20절에 보니까 주님이시래요.
20. 주께서 사람을 영원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보내시오니_욥14:20
주님이 떠나게 하시고 주님이 쫓아내시고 주님이 고통을 주시고 주님이 벌하시는 그런 고통을 지금 오롯이 감당하고 있는 욥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토로하는 거예요. 언제 회복될지 몰라요. 언제 구원받을지 몰라요. 자신은 이 외로움 속에서 끊임없이 고통 가운데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게 욥의 상황이에요.
적용질문
Q. 여러분에게 닥친 고난은 무엇입니까? 숨 쉬기도 힘들게 하는 여러분의 고난은 무엇입니까?
Q. 나의 고통 때문에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Q. 고난과 고통에 몰아넣으신 하나님을 여러분은 어떻게 대하고 계십니까?
2. 고난을 대하는 방법
욥기는 이런 넋두리가 길게 기록돼 있어요. 혹자는 욥기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냐 하면 “사실은 세 줄만 있으면 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3줄.
“이렇게 고난이 왔다~ 이렇게 극복했다~” 그냥 몇 줄이면 끝난다는 거예요. “이렇게 길게 쓸 필요가 없다. 처음 1장과 2장과 마지막 42장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런데 욥기의 대부분은 어때요? 그 가운데 넋두리로 가득 차 있어요. 이와 같은 넋두리예요.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고 “왜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이런 기도. 친구들과 싸우고 이런 기도들로 가득 차 있어요.
사람들이 이 욥기 읽기를 힘들어 해요. 이유가 뭘까요? 여러분 욥기를 읽어보면 욥기가 그나마 한 장 한 장이 좀 짧아서 그나마 읽을 만하지. 이 욥기 읽기 쉽지 않거든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자꾸 해결책만 찾아서 그래요. 욥기에는 해결책이 없어요. 그러니까 욥기에서 뭔가 ‘이 고난에서 벗어나 해결책’ 못 찾아요. 그러니까 읽다 보면 힘들어요.
욥기 1장을 보면 천상 회의가 시작되는데, 사탄에게 하나님께서 욥을 자랑하시잖아요. 뭐라고 자랑하냐 하면,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다” 이렇게 자랑을 하거든요. 이게 발단이에요. 이게 발단 이게 시작이에요. 욥이 뭘 잘못해서 시작된 게 아니에요.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예요. 욥에게 잘못이 없어요. 욥에게 원인을 구하고 있지 않아요, 욥기는. 근데 욥기를 읽는 사람들은 자꾸 욥에게 원인을 돌려요. 왜냐하면 이해가 안 되니까. “도대체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돼?” 이해가 안 되니까 자꾸 욥에게 원인을 찾아요. 그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자꾸 얘기하려고 해요.
그래서 “그가 이전에는 듣기만 했다”고 하면 “그가 듣기만 하지 않았냐? 그가 주님을 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는 죄인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그런데 성경은 욥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아요. 욥이 죄인이 아니라는 게 아니에요. 세상 모든 사람은 죄인이에요. 하지만 그것을 부각시키지 않아요. 이유가 뭘까요?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와 같은 욥의 고난의 소리를 담담히 듣게 해요. 이 시기에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은 나의 고난의 원인과 해결책 찾기를 때로는 멈춰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이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에게 잠시라도 여러분의 고난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를 멈추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러분 저는 보통 이 고난에 대해 설교할 때 당연히 대다수의 설교자가 그러는 것처럼 “고난의 원인은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해결은 이런 방식으로 됩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고난을 극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이런 식으로 고난을 극복한 간증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고난을 극복하십시오.” 이런 설교 너무 좋은 설교예요. 저도 여러 번 했어요.
하지만 때로는 우리는 고난 가운데 머물 필요가 있어요. 고난 가운데 멈출 필요가 있어요.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걸 요구하실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설교를 통해서 섣불리 답을 찾기보다 차라리 고난에 머물면서 이런 기도를 같이 하나님께 올려드리자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왜 이렇게 우리를 괴롭게 하세요? 주님! 왜 나같이 연약하고 나같이 부족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 아니, 큰 죄를 지어봐야 이 연약하고 부족하고 한계가 있는 존재가 큰 죄를 지어봐야 얼마나 짓겠으며! 우리가 주 앞에 범죄해도 뭘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이렇게 괴롭게 하십니까?” 하는 기도를 같이 올려드리자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욥기의 메시지 자체가 바로 이와 같은 욥의 토로이자 불평이자 절망이기 때문이에요. 욥기의 대부분은 이와 같이 불평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어요. 정답만 찾는 것이지 능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고난 가운데 머물러야 돼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왜 욥의 친구가 끊임없이 그렇게 욥을 정죄했을까요? 고난에 대한 편협한 시각 때문이에요. 틀렸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 측면이 있어요. “고난은 악이다. 고난은 없어야 정상이고, 고난을 당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고난은 네가 큰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하는 어떤 아주 편협하고 치우친 생각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끊임없이 욥을 정죄할 수밖에 없어요. 그 욥의 그 고난을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근데 물론 여러 가지 많은 케이스 중에서 죄 때문에 고난이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건 사실이에요. 그 부분을 우리가 무시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모든 고난에는 다른 측면이 존재를 해요. 그래서 한 부분만 보면 그 다른 측면이 안 보이기 때문에 해석이 안 돼요. 우리가 고난을 대할 때 물론 우리가 잘못해서 당하는 고난도 있죠. 근데 여러분 이런 생각도 안 해보셨나요? ‘내가 이만큼 잘못했는데 왜 나에게 벌은 이만큼 오지?’ 물론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실수한 게 있어요. 그런데 나에게 온 고난은 너무 큰 거예요. 그럼 뭐예요? ★욥이 당하는 고난의 측면이 존재하는 거예요. 근데 그 부분을 무시하고 한 부분만 보면 고난이 해석이 안 돼요. 고난이 당연히 해결이 안 되죠. 끊임없이 고민하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을 보세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어요. 33년 계셨잖아요. 그분이 갓난아기로 태어나셨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갓난아기로 태어나는 걸 이해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요? 근데 예수님은 갓난아이로 태어나셨어요. 그리고 유아기, 유년기, 청소년기를 다 보내셨죠. 청년기를 보내시고 30살이 되셨어요. 그리고 30살 이후에 공생애를 지내셨는데 그 3년을 꽉 채우셨어요. 그리고 고난당하기 시작하실 때부터 보면 너무 끔찍할 정도예요. 그 희롱과 그 고문과 고통. 말로 다 못해요. 근데 그런 고난을 당하고 있는 그 예수님이 “아~ 이거 너무 쉽지 않다. 이거 빨리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해 버려야지” 이러시지 않았어요. 온전히 다 겪으셨어. 온전히 온전히 다 느끼고 온전히 다 견디시고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셨어요. 십자가에서도 끝까지 버티셨어요.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 주님이 이 고난을 내가 빨리 치워버려야지 이거 빨리 해결해 버려야지 하지 않으셨다는 얘기예요. ★
우리에게도 그런 자세가 필요해요. 여러분에게 닥친 고난을 어디서 원인을 찾으세요? 여러 가지로 원인을 찾을 수 있어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부모님이나 여러분의 친구나 여러분의 배우자나 여러분의 가족이나 또 다른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면서 원인을 여러분이 계속 찾는다면 여러분은 일부 원인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 이웃을 사랑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주님은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는데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어요. 만약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의 모든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다면... “나 때문이야. 내가 뭘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해서...” 만약에 여러분의 모든 고난의 이유를 여러분에게서 찾는다면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누구한테 이해받죠? 만약에 그 모든 원인을 하나님께 돌린다면 “하나님 왜 나한테 이렇게 하셨어요?”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고 만약에 주님을 그런 식으로 떠난다면 우리는 주님을 사랑할 수 없을 거예요. 주님은 우리에게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그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 어려울 거예요.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그 명령도 지키기 어려울 거예요. ★때론 고난은 그냥 고난대로 둬야 될 때가 있어요. 고난은 그저 고난이고 우리는 그 고난을 그냥 만났을 뿐이에요.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 고난을 해결해 달라고 기도해야 돼요. 하나님은 좋은 분이에요. 하나님은 굽어 살피시는 분이시고 그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보다 더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은 우리 삶의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요. 주님은 그렇게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세요.
하지만 여러분 ★모든 고난이 무조건 악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고난을 보는 폭을 넓혀야 돼요. 오늘 본문을 보세요. 이 고난 당하고 있는 이 욥이 어떠한 깨달음을 얻는지를 봐야 돼요. 우리가 한 번 더 보겠습니다. 1절부터 3절을 보면 “욥이 무엇을 깨달았는지” 봐야 돼요.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다. 걱정이 가득하다. 시든다. 지나가며 머물지 않는다.” 이렇게 고백했어요. 욥은 지금 이 상황을 겪으면서 뭘 보고 있는 거냐 하면 자신의 인생의 한계를 보고 있어요. ‘내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
여러분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뭔지 아세요? 욥이 겸손해져요. 욥이 인간다워져요. 욥이 사람 같아져요.
여러분 사람이 가장 비인간적일 때가 언젠지 아세요? 자기가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할 때예요. 자기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때예요. ‘내 전성기가 끝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에 그 사람은 괴물이 돼요. 인간다워지지 않아요.
그런데 고난 가운데 ‘내가 얼마나 한계 속에 있는가! 내가 얼마나 풀의 꽃 같은가! 내가 얼마나 일시적인가!’ 이런 것을 깨닫는 순간에 그 사람은 인간다워져요. 사람다워져요.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게 돼요.
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아요. 4절부터 6절에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이 더럽다는 걸 고백해요. 6절에 보니까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습니까? “나는 더러운 존재입니다” 하는 것을 고백해요. 여러분 이 말을 가지고 욥이 죄가 있어서 이런 고난을 당했다고 말하면 안 돼요. 성경은 분명히 그가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이것은 보통 사람의 어떤 수준의 죄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의 어떤 본질적인! 존재론적인! 내가 특별히 어떤 나쁜 죄를 지었고, 내가 어떤 쓸데없는 짓을 했고, 이런 게 아니라 자기가 자기 안에 원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아! 내가 뿌리부터 죄인이구나! 내가 최선을 다해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살아왔지만 여전히 나는 더럽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그리고 5절과 6절에 보면, 5절에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그래요. 6절에도 ‘그의 날을 마칠 때까지’ 그래요. ‘아! 내가 한계가 있구나! 내가 끝이 있구나! 내가 그 전능자 영원자 하나님 앞에 너무나 티끌 같은 먼지 같은 존재구나!’ 이걸 깨닫는 거예요. 이런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욥이 이런 것을 깨닫기 시작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고난이 우리의 어리석음, 우리의 죄 때문에 기인했을 수 있어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우리의 고난이 우리의 죄의 결과일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떤 고난은 거기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어요. 바로 우리가 티끌과 같은 존재, 더러운 가운데에 있는 존재, 고난에 허덕이는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거를 알아야 돼요. 주님이 그런 우리를 위해서 오셨잖아요. 주님이 고난 밖에서 더러운 밖에서 “여기로 나와”라고 손짓하지 않으셨어요. 주님은 그 더러움 속으로 들어오셨어요. 그 순결하신 분이 그 악의 한가운데로 들어오셨어요. 인간이 되셨어요. 우리와 함께 사셨어요. 그들과 함께 뒹구셨어요.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가르치셨어요. 주님이 그걸 위해서 오신 거예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리고 함께 고난을 겪어주신다” 하는 것이 우리가 이 고난에서 해결할 수 있고 나올 수 있고 또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아주 핵심적인 증거예요.
Q. 고난을 그저 고난으로 받아들여 보신 적이 있습니까?
(“누구(뭐) 때문이야” 하지 않고. 그냥 고난을 고난으로. 그냥 내가 고난을 만난 것으로 느껴 본 적이 있어요?)
Q. 해결이 안 되는 한이 있어도, 고난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까?
Q. 고난받는 우리를 위해 고난의 한복판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의 고난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요?
3. 고난을 지나는 분들에게
저는 이번에 우리 띵크 목회자 세미나 참석하면서 고난을 대하는 우리 김양재 목사님의 태도에 감명을 받았어요. 사실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어요. 고난이 깊고 그 고난을 말씀으로 해석하는 깊이가 깊다 보니까 제가 책도 읽었고 강의로도 들었는데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근데 보다 더 이 고난을 직면하고 이 고난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그 고난이 해석될 때까지 말씀을 붙들고 기다리는 그 태도에 감명을 받았어요. 이런 태도가 우리에게 지금 필요하지 않는가!
“해석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된다.” 그러면서 말씀으로 고난을 재해석하고 그 고난을 해결하려고 하는 태도 말이에요. 아픔이 많은 시대에 꼭 필요한 태도가 아닌가 특별히 고난을 대하는 태도로서 꼭 필요하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이 큐티-매일의 말씀 묵상-으로 시작되는 게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그리고 제가 이 부부 목장을 참관했는데 굉장히 충격적인 순간들이 많았어요. 이거를 사실 얘기를 좀 하긴 해야 되는데. 아, 이게 쉽지 않아요. 사실은 이걸 다 얘기한다는 게 그래서 제가 과일로 비유를 했어요, 제가 원고에는. 이거 다 얘기를 못할 것 같아 가지고 제가 과일로 비유를 했어요. 블루베리로 시작해 가지고. 블루베리가 뭐냐 하면 주일 예배는 빠지는 거예요. “블루베리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목원이 이야기를 하니까. 그 인도자께서 “그리고?” 이렇게 물어요. 별로 말도 많이 안 해요. 그러니까 이제 그분이 “그리고 포도 같은 문제도 있어요.” 이러니까 약간 언성을 딱 높이시면서 “지금 목사님 와 계시다고 지금 거룩한 척하는 거야?” 막 이러시는 거예요. “빨리 얘기해!” 그러면서 그래서 갑자기 “요즘 수박은 안 해?” 이러는 거예요. 갑자기. 아니 뭐 중간에 복숭아도 있고, 망고도 있고... 작은 크기들 많잖아요. 근데 갑자기 룸싸롱 간 이야기를 갑자기 하니까 제가 그러면서 막 전문 용어를 막... 뭐라 그러셨더라 막 뭐 ‘텐프로’ 그랬나? 막 이런 표현들을 막 쓰시면서 막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인도자가 갑자기 저를 딱 보더니 “목사님 이거 무슨 말인지 아세요?” 그러는 거예요. “자세히 설명 드려!” 막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순간에 이거를 내가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가지고 저도 모르게 “아! 알아요. 알아요. 제가 그거 다 압니다.” 제가 그렇게 얘기는 했는데 뭘 알아요 알기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나중에 제미나이(AI)한테 물어봐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용어도 잊어 먹었어요. 제가 난감하더라고요. 근데 다른 목원들은 막 깔깔깔 웃고 막 넘어가요. ‘아, 이 순간에 내가 웃어도 되나?’ 그분에게는 굉장히 아픈 상처이고 또 그럴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거 내가 웃어도 되는 건가’ 근데 또 웃기도 하고 진지하게 듣기도 하고 이렇게 왔다 갔다 해서 저도 혼란스러워 가지고 그 제가 진지하게 듣고 있잖아요. 그러면 못 알아 듣나 싶으셔 가지고 “무슨 말인지 아시겠냐?”고 그러면서 더 자세히 설명을 하니까 제가 또 난감하고. 또 진지하게 듣고 있으면 “목사님, 놀라셨죠?” 그러면서 걱정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한테 자꾸 뭔가 이렇게 집중되는 게 굉장히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래 가지고 웃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또 울지도 못하고 진지하게 듣지도 못하고 상당히 난감한 시간을 보냈어요.
누구 한 분이 그래요? 목사님, 이런 얘기하면서 이렇게 깔깔깔 웃는 사람은 처음 봤다는 거예요. 자기는 이것 때문에 막 이혼할 뻔하고 자기 이것 때문에 인생이 망가지고 자기 이것 때문에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이 얘기를 하면서 깔깔깔 웃는 거예요. 목원들이 자기 이런 얘기하면서 이렇게 깔깔깔 웃는 사람들은 처음 봤대요. 그래서 제가 참관하러 간 사람이니까 전혀 안 묻고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었는데 진짜 궁금해서 하나 물어봤어요. “그러면 집사님 요거 이런 얘기하실 때 깔깔깔 웃는 게 좋아요? 아니면 진지하게 듣는 게 좋아요?” 이렇게 제가 물었어요. 그랬더니 뭐라 그러셨대요? 깔깔깔 웃는 게 좋대요.
제가 그때 딱 떠오른 거는 그 김애란 작가라고 여러분 혹시 아시나요? 소설가가 있는데 최근에 그분이 인터뷰를 했어요. 김애란 작가의 작품은 그가 사회학자라는 평론이 나올 정도로 사회의 어떤 여러 비극적인 사건들을 소설에 담아요. 그래서 비극적인 얘기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분의 소설의 특징은 끊임없이 유머 코드가 있어요. 유머가 있어요. 계속 유머가 지나가요. 그래서 그 기자가 물었어요. “그 유머가 당신에게 어떤 뜻이냐?”고 물었더니 김혜란 작가가 무슨 말을 했냐 하면 “너무 진지하게 위로를 하면 그 진지함의 비장함 때문에 위로를 받는 사람이 부채감이 든대요.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거죠. 그런데 그 사이에 유머와 농담을 섞으면 그것이 그렇게 뜨겁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차갑지도 않게 그렇게 무겁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가볍지도 않게 상대방에게 부채감을 덜 주고 빚진 마음을 덜어주면서 위로할 수 있대요. 그래서 그 웃음이 위로를 준다는 거예요” 근데 제가 사실 김애란 작가의 이 인터뷰를 보면서 100% 이해를 못했거든요. 그런데 이 목장에서 이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아! 지금 위로가 진행되는 중이구나’ 제가 그 얘기를 했어요. 저한테 소감을 얘기하라고 그러길래 제가 김애란 작가의 이런 인터뷰를 가지고 위로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인도자가 딱 그러시더라고요. “우리는 위로하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공격하려고 하는 거지!”^^;; 이러시는 거예요. 제가 많이 놀랐어요. 여러분 제가 많이 놀랐어요.
제가 미국에서 잠깐 공부한 적이 있는데 미국에 가서 한 8개월 정도 지나고 돈이 다 떨어졌어요. 제가 결혼 다 하고 나이 먹어 가지고 갔거든요. 애 둘에, 제 아내에, 장모님에, 장모님이 키우던 강아지까지 데리고 갔어요. 그래 가지고 이제 거기서 이제 여섯 식구를 먹여 살려야 돼요. 제가 그런데 돈이 똑 떨어진 거예요. 제가 이게 이해가 안 됐어요. “하나님 공부하러 보내놓고 돈을 안 주면 어떻게 해요? 돈 좀 주세요.” 근데 하나님이 묵묵부답이에요. 아내가 일을 하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지금 같으면 일을 하라고 할 텐데 그때는 제가 자존심에 “일은 내가 하지 왜 아내가 당신이 하느냐고 집에 있으라고. 내가 벌어 온다.” 말은 해놓고 사실은 방법이 소식이 없었어요. 그래서 간절히 기도했죠. 그때 큐티하면서 본 말씀이 시편 42편 “네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 하는 그 말씀이에요. ‘내가 내 소망을 어디에 두고 있나’ 하나님께 간절히 의지했더니 주님이 저에게 일자리를 주셨어요. 식당에서 3일 일하는데 하루 12시간 일해요. 하루 12시간 주 3일 ‘월 화 수’ 그리고 ‘목 금’은 공부를 해요. 남들은 일주일 내내 해도 안 되는 공부를 저는 이틀 만에 해야 돼요. ‘목 금’만에 해야 돼요. 그리고 ‘토요일과 주일’은 2시간 반 거리에 주를 바꿔서 제가 버지니아에 있었는데 노스캐롤라이나까지 내려가서 거기에서 교회 사역을 했어요. 토요일과 주일. 그렇게 하면 스테이 할 수 있었어요. 스테이. 거기에서 살 수 있었어요.
근데 여러분 제가 사실은 일을 잘 못하거든요. 공부만 해봤지 제가 무슨 일을 해 봤겠어요? 식당에서 3일 일하는데 그 식당 일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식당에서 혹시 일해보신 분들이 계세요? 식당 일은 육체 노동이에요. 그 음식 재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아세요? 여러분 그 음식 재료 무거운 걸 다 옮겨다가 다 손질에다가 또 옮겨다가 그걸 가지고 요리를 하고. 제가 거기서 주방에서 요리를 했는데 왜냐하면 주방에서 요리를 하면 시간당 1불을 더 준다고 그래서 제가 주방에서 요리를 했어요. 그런데 사장님의 그 방법은 뭐냐 하면 불판을 가장 뜨겁게 하고. 철판 요리집이었는데 철판을 가장 뜨겁게 해서 기다렸다가 주문 들어오면 바로 요리해서 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손이 익어요. 그렇게 3일을 일하니까 손이 난리가 나고 손이 안 펴져요. 손가락 몇 개가 접혀 가지고 안 펴지는 거예요. 그렇게 이제 주 3일을 일하는데 1년 정도 했어요. 그렇게 1년을 쭉 하고 나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냐 하면 ‘아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한 네 번 하면 하루가 지나가요. 진짜 진짜.^^;;
근데 그렇게 하는데 그날은 날이 너무 더웠고 오후 4시부터 힘들었어요. 오후 4시부터 밤 9시 반까지 일을 해야 되는데 근데 4시부터 머리가 아프고 다리에 힘이 없고 한 번 도저히 못 참아 가지고 요리를 하다가 뒤로 가서 잠깐 주저앉았는데 못 일어나겠더라고요. 근데 일을 해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그리고 일을 했어요. 일어났어요. 그리고 9시 반이 지났어요. 그리고 이제 집에 가요. 울분이 터지는 거예요. 울분이. “하나님 나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지금 나 미국에 왜 왔어요? 공부하러 왔는데 월 화 수 일하지 토요일 주일 일하지 목 금만 공부하고 있는데 이거 지금 공부하러 온 거예요? 이럴 것 같으면 안 왔죠!” 근데 이미 그렇게 공부하러 왔죠. 그냥 들어가기는 싫은 거예요. 자존심 때문에 그러니까 막 혼자 울부짖으면서 막 기도하면서 갔어요. 가는 데 한 시간 오는데 한 시간이거든요, 직장이. 1시간 내내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서. 여러분 그렇게 운전하면 굉장히 위험해요. 눈물이 나면 멈춰야 돼요. 근데 저는 그렇게 갔어요. 올라가면서 막 하나님께 화를 내면서 근데 주님이 저한테 아주 고요하게. 그런데 그 고요한 것도 요즘 말로 킹 받아요. 나는 이렇게 열받는데 하나님은 너무 고요하게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너 이거 다 알아도 유학 올래?” 그래서 그랬죠. “당연히 안 오죠!” 그 화가 나 가지고 “당연히 안 오죠!” 하는 그 순간에 딱 그 생각이 들었어요. ‘아 그래도 와야겠다. 이렇게 고생스러워도 와야 되겠다’ 이유가 뭐냐 하면 제가 파트 사역하고 있는 그 교회 청년들. 제가 청년부하고 찬양팀을 맡았는데 청년부가 9명이에요. 그 교회가 80명 모이는 교회거든요. 청년들이 9명이에요. 그 9명 청년들이 굉장히 힘들어요, 삶이. 삶이 어려워요. 미국에 살아본 사람들은 알아요. 이민자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그 자녀들이 얼마나 참 여러 가지로 제약이 많은지. 그 9명이 다 힘들어요. 근데 그 9명이 생각이 나는 거예요. ‘저 9명 목회하기 위해서 와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주님 그래도 와야 되겠네요.”
그리고 제가 한 게 뭐냐 하면 제가 목요일 금요일 공부한다고 그랬잖아요. 목요일 금요일 공부하는 그 날짜 중에 하루를 빼요. 그 날짜밖에 못 빼니까. 그 하루를 빼서 얘네들이 심방 다니는 거예요. 얘네들이 대학생들인데 저희 집에서 제가 있었던 곳에서 막 4시간 5시간 거리에 대학에 다녀요. 왔다 갔다 하면 10시간이에요. 그럼 가 가지고 만나서 밥 사주고 뭐 이렇게 하면 하루가 다 가는 거죠. 하루를 그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위해 쓰는 거예요. 근데 뭐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해봐야 9명인데 뭐. 두 달이면 끝나요. 그래서 그 한 명 한 명을 만나러 다녔어요. 이야기를 듣고 기도를 해주고. 제가 지금 그때까지는 아마 교회에서 파트 사역을 해도 돈벌이 때문에 했던 것 같아요. 제가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목사인데 목사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런데 그제서야 비로소 제가 목양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내가 뭐 때문에 왔는가’를 생각했을 때 공부도 공부지만 그 한 명 한 명! 그 한 명 한 명을 살려야 되겠다. 그래서 한 명 한 명 만났어요. 이렇게 만나서 같이 이야기 들어주고 같이 울어주고 같이 기도해 주고.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저는 그냥 한 번씩 만났을 뿐이고. 그들도 제가 힘든 거 알고 나도 그들이 힘든 거 알고 이러니까 이게 공감대가 형성돼서 그런지 그들이 살아나기 시작을 했어요. 그러면서 어떤 일이 벌어졌냐 하면 그들이 살아나는 걸 보고 그들의 친구들이 신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나도 한번 그 교회 가보자.” 교회 안 다니는 애들도 그래서 순식간에 25명이 돼버렸어요. 80명 모이는 교회에 청년부 25명 이해돼요? 순식간에 그렇게 되더라고요. 순식간에.
여러분 제가 이런 순간을 사실 지나면서도 제가 미국에서 유학을 박사까지 3년 만에 마쳤어요. 저희 학교에서 신기록이에요. 신기록. 그게 가능하더라고요. 어떻게 가능하냐면 월화수 진짜 고통스럽거든요. 근데 더 힘든 거는 목금 공부할 때예요. 주경야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막 일하잖아요. 그러면 거기에 모든 초점과 관심이 거기에 집중이 돼 있다가 갑자기 공부하라고 그러면 공부가 안 돼요. 머리가 안 돌아가요. 근데 그때 반드시 해야 돼요. 페이퍼를 막 10장씩 20장씩 써 내야 되고. 그래야 박사 과정을 이어갈 수 있어요. 공부하고 토요일 주일 딱 사역하러 가잖아요. 사역하면 깨끗하게 씻겨요. ‘내가 월요일에 뭐 때문에 힘들었지?’ 생각이 안 나요. 힘들었던 기억이 사라져요. 그러니까 월화수를 또 보낼 수 있어요. 또 고통스럽죠. 목금은 더 힘들죠. 토요일 주일 지나잖아요. 싹 씻겨요. 그러니까 버틸 수 있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진짜 빨리 마쳤어요. 제가 신기록이에요. 신기록. 저처럼 빨리 마친 사람이 없어요, 저희 학교에서. 그래도 이해가 안 됐어요, 사실 그래도. “하나님 내가 뭐 배우는지 알겠고 한 영혼이 귀한 거 내가 알겠는데 이렇게까지 하셨어야 됐어요? 이렇게까지 나를 궁지로 모셔야 했어요? 나를 그렇게 벼랑 끝으로 모셔야만 했어요?” 이런 생각이 좀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처음에 했던 생각은 제가 방향 감각이 없는데 ‘미국 쪽이 어딘지는 몰라도 그쪽으로는 고개를 안 돌리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해석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제가 이번에 목회자 세미나 통과하면서 이게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을 했어요. ‘그런 순간이 없었다면 내가 한 영혼의 소중함을 지금보다 더 몰랐겠구나. 내 목회가 지금만 하지 못했겠구나’ 이런 생각을 조금씩 하면서 제가 그래도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을 했어요.
여러분 고난이 닥칠 때 만약에 제가 거기에서 도망 나오는 선택을 했다면? 우리가 뭐 쉽게 절교를 하든지~ 이혼을 하든지~ 뭐 자살을 하든지~ 뭐 이런 식의 방식으로. 그런 생각도 사실 했었거든요. 한 시간 차 타고 내려가니까 일하러 가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근데 일은 안 하러 가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내려가면서 ‘사고라도 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제가 했었거든요. 이런 식의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면 아마 제 인생은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근데 고난은 때로는 그냥 고난에 둬야 돼요. 때로는 고난 가운데 머물러야 돼요. ★그러면서 꾸준히 하나님을 붙들며 말씀을 붙들며 큐티하면서 그 말씀이 내 삶을 내 고난을 해석해 줄 때까지 기다려야 돼요. 기다릴 때 하나님은 우리 삶에 때로는 놀라운 전기를 마련하게 해주세요. 그래서 그 생에서 우리의 삶을 회복하게 해주세요.
Q. 고난을 말씀으로 해석하기 위해 ‘매일 큐티, 매일 기도’를 실천하고 계십니까?
Q. 목장에서 듣는 타인의 고난에 얼마나 공감하고 위로하고 계십니까?
Q. 말씀으로 고난을 해석하여, 예수께서 우리에게 선물하신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어떤 것부터 실천해야 할까요?
여러분 삶 속에 고난을 거추장스러운 천덕꾸러기처럼만 여기지 마시고 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어떻게든 밀어내려고만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하나님 말씀에 머물면서 때로는 그 고난을 힘드시겠지만 온몸으로 버텨보세요. 그 고난을 통해서 여러분이 주시는 음성이 있으실 거예요. 여러분 고난은 고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고난을 지나가신 것처럼 우리는 때때로 그렇게 묵묵히... 때로는 기꺼이... 기꺼이 할 수 있을까요? 기꺼이 고난을 통과해야 돼요. 그 고난을 통과할 때 우리는 생명과 치유와 부활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은 이와 같이 이 부활을 지나게 하시고 부활을 통과하여 우리를 더 새롭게 하시는 그런 변화를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송가 337장 -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1절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후렴)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2절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난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인자한 주님 날 건지사 사랑의 품에 안으시네
3절
내 짐이 점점 무거워질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원하사 내 대신 짐을 져주시네
4절
마음의 시험 무서운 죄를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예수는 나의 능력이 되사 세상을 이길 힘 주시네
우리가 같이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고난 가운데 계십니까? 고난을 누구 탓으로 돌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고난의 모든 화살을 여러분 자신에게 겨냥하고 계십니까? 고난 가운데 외롭습니까? 고난이 거추장스럽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그 고난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를 죽이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고난 가운데 머물러서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힘들지만 주의 말씀 붙들고 굳건히 버티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간 같이 한번 기도할 때, 하나님 이 고난을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내 자의와 어떤 내 고집과 내 원망이 아닌 주의 말씀으로 이 고난을 해석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이 고난을 해결하게!
예수께서 고난을 대하신 그 방식대로 견디고 버티고 때로는 기꺼이 이 고난을 감당해서 고난을 통해서 주시는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우리 주 한 번 부르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 우리를 그렇게 주의 자녀로 삼으시며, 또 부활의 첫 열매를 이어서 부활할 수 있는 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시는지. 우리는 주 앞에 더러운 존재이고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는 고난의 이유도 찾지 못하는 한계가 있고, 내 인생에 여러 고난 가운데 그 고통과 그 두려움과 외로움 가운데 허덕이는 존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고 말씀을 주셔서 그 고난을 해석하도록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이 고난 가운데 머물러 있을 때 많이 고통스러워도 그 고난을 허락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확실하게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그 주님을 굳게 붙들고! 말씀을 붙들고! 말씀으로 이 고난을 해석하고 언젠가 해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예수님께서 그 모든 고난 이후에 부활하여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 고난 가운데 머물러서 이 고난을 때로는 기꺼이 감당하면서 주님과 함께 그 생명의 치유와 부활을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포기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쉽게 해결하려고 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고난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붙드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담임 목사님 코멘트(1부)
박사님의 고난 강의가 또 대단하시죠.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또 3년 만에 박사를 하셨대요. 그러니까 천재신가 봐요. 진짜 제가 봐도 어떤 분은 처음부터 이제 딱 말씀이 들리는가 하면 우리들교회에 10년 있어도 안 들리시는 분이 있는데 이렇게 택자가 되셔서 왜 부흥하는지 딱 알았어요. 이 고난에 대한 얘기를... 우리가 욥기를 큐티도 했는데 이해가 많이 되셨나요? 진짜 우리는 고난 전공인데 오늘 얘기해 주신 것처럼 욥기 1장 2장과 마지막 42장에 세 장만 보면 다 되는데 진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고난에 대한 질문을 욥처럼 하고 온 것 같아요. 막 그냥 원망했다~ 불평했다~ 또 이제 막 친구들한테 이렇게... 증명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죠. 그러면서... 그걸 이렇게 설명하면서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사명 또 사역까지 이렇게 하게 된 것 같아서. 진짜 그 환경에서 우리는 공부하러 왔는데 지금 이제 접시 닦고 요리하고... 그게 맨날 이상하잖아요. 괴리감이 들잖아요. 그런데 그 경험이 목회하는 데 너무 도움이 되셨을 것 같아요. 육체적으로 밑바닥 그거를 해보는 것이 목회하는 데 너무 정말 도움이 되셨을 것 같고. 또 그걸 통해서 청년들의 아픔을... 또 미국에서 9명에서 25명이면 거의 3배의 부흥을 일으킨 거 아니에요? 그죠?
그래서 지금 또 정말 복음의 불모지라고 할 대구에서 굉장히 지금 부흥을 일으키는 게 뭔가 해석이 제가 딱 됐는데. 그러니까 말씀에 관심이 있으셔서 이번에 대구성명교회에서 이 목회자 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게 금세 흔쾌히 허락하셨는지 딱 제가 이해가 됐어요. 그러니까 경상도 지역이 쉬운 지역이 아니거든요. 근데 이제 이렇게 장로님들 초원님들이 전부 다 이제 단장이 돼서 가는데. 어떤 초원은 교인이 한 30명이라는데 100명이 가는 데가 있어요. 그래서 초원님들이 정말 열심을 또 내셔야지 지금 이제 더. 모든 여름 휴가는 경상도로 아셨죠? 이거보다 보람 있는 게 어디 있어요? 우리가 선교를 하는데 해외와 경상도로 이렇게. 그리고 이제 경상도에 있는 모든 교회 목사님들은 이게 8월 말에 하는 목회자 세미나에 성명교회로 다 모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부터 홍보를 할 예정이에요. 다 오셔서 정말 경상도 지역에 구속사가! 우리의 그 지역 감정을 풀 길은 구속사밖에 없는데 이런 진짜 요즘에 참 기독교가 욕도 많이 먹는데 우리가 이렇게 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욥이 너무 힘드니까 이제 고난을 통과하면서 ‘맨날 왜 나한테 이거 주나’ 맨날 해석하다가 그러니까 “저 좀 도와주세요.” 그게 막 저절로 나올 것 같아요. 저 좀 도와주세요. 할 게 하나도 없으니까.
“고난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기도제목 ***
A: 히람의 도움으로 다윗이 성전을 지은 것처럼 주님의 은혜로 사는 인생임을 알고 하루만 살도록B: 젊은 날 헌신한 모든 시간과 눈물들 계수하시고, 참 잘했다 칭찬받도록C: 직장, 이사, 가족의 문제가 큰 약재료인 것을 알고,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은총 허락하시고 제주도 아웃리치 인리치 하는 시간 되도록D: 맡겨 주신 직장과 학생들 돌볼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허락하시고 정해진 자리(경계)가 가장 좋은 곳임을 깨달아 있으라고 한때까지 지켜낼 수 있는 은총과 힘 주시도록E: 진행 중인 신규/기존 사업 및 프로젝트가 선한 사업이 되고 잦은 출장 중 영육 강건하게 지켜주시고 / 어머니의 영육 회복도 허락해 주시도록F: 과거 있었던 아픔들 주께서 알고 계시고 보응하실 것과 손해 나지 않게 하심을 믿고 준비하는 취업 준비들과 지친 영육이 말씀의 날개 아래 참 평강 충전되도록G: 일본 선교 및 연기 활동에서 잘하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두고 일상을 회복하여 약을 비타민처럼 먹을 수 있도록H: 가족은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인생의 일부분임을 알고 아팠던 부분들이 말씀에 해석되어 사람 살리는 도구가 되고, 받은 은혜 목장과 직장에서 잘 나누며 갈 수 있도록I: 겪은 환란이 모세의 막대기가 되게 하시고 돈/직장/결혼/인생의 주인이 예수인 것을 알게 하셔서 사람을 분별하여 나눌 것만 있는 인생 되게 하소서J: 속히 목장에 돌아오고 예배가 회복되도록
박소영 목자님과 함께 나눔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