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2026.08.09.(주일) 열왕기하 23:21-27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김양재 목사님오늘 봉독할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하 23장 21절에서 27절까지입니다. 제가 봉독합니다. 21. 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22.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23.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24.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2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아멘.) 하나님 아버지, 산당을 제거하고, 유월절을 지키고, 이제 회개해도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주여, 이 뜻을 알기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살면서 기가 막힌 일은요, 그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일이 최고점을 받고도 떨어지는 일이죠. 그죠? 그때는 분해서 못 살죠. 그거는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할 만큼 다 했는데 너무너무 억울하다’는 거죠.그런데 오늘 본문에 요시야가 그래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고. 전무후무한 회개를 했어요. 그런데 그 최고의 평가가 바로 다음 구절(26절)에 ‘그러나’로 이어지는 말씀이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게 오늘 제목이에요.요시야는 이렇게까지 돌이켰는데 하나님은 왜 진노를 돌이키지 않으셨을까요? 오늘 우리의 질문인데요. 자, 오픈도 했고, 큐티도 했고, 끊는 적용도 했고, 예배의 자리도 지켰고, 봉사도 하고, T.T.도 갔어요. 그런데 남편이 그대로예요. 아내도 그대로예요. 자녀도 그대로고, 병도 사업도 다 그대로예요. 내가 이렇게 돌이켰는데도 그대로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오늘 요시야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 ‘그대로’를 견디게 하는 세 가지, ‘그래도’를 알려주십니다. 예, 함께 보겠어요. 돌이켰는데도 그대로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1. 그래도 예배합니다(21-23절)(그~래도 예배합니다! 그~래~~도 예배합니다!) 21절에, 21. 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_왕하 23:21바로 앞에서 요시야는 계속 부수고 태우고 빻고 했잖아요. 그런데 요시야가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은 “더 부수라”가 아니고 “유월절을 지키라!”였어요. 그 질긴 산당들을 다 제거한 왕이 온 백성을 모아놓고 어린 양을 잡는 거예요. 이 명령을 누구에게 내립니까? ‘뭇 백성’이에요. 우상을 내다 불사르라는 명령은 대제사장과 제사장에게 내렸는데요. 그런데 유월절 지키는 일에는 온 백성을 지금 부르는 거예요. 유월절이 어떤 절기죠? 한자리에 모여서 어린 양을 같이 먹는 절기잖아요. 이것은 ‘혼밥’하는 게 아니에요. 구원은 혼자 받아서 혼자 간직하는 게 아니라 같이 모여서 같이 먹고 나누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산당 예배는 기복 신앙인데 이 산당을 제거해야 공동체에서 누릴 수가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산당이 가득하기 때문에 목장을 싫어하는 거예요. ‘나 혼자서 잘되면 되는데 무슨, 왜 같이 누려’ 이렇게 되는 거죠.유월절 어떻게 지키라고 합니까?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고 해요. 아주 중요해요. 율법이 아니고 ‘언약책’이라는 소리를 요시야가 많이 해요. 전능의 하나님에서 이제 ‘여호와 하나님’, 율법의 하나님에서 ‘언약의 하나님’, 기복의 하나님에서 ‘팔복의 하나님’. 그런데 이게 완전히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 예배를 바꾼 산당 제사와 정반대인 거예요. ‘내 마음대로’가 아니고 ‘기록된 대로’! 말씀을 내 형편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나를 말씀에 맞추는 거죠!그러면 유월절이 뭡니까? 그렇게 유월절을 지키며 심판이 넘어간 날이잖아요. 하나님이 애굽에 마지막 재앙을 내리시던 밤에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더니 이스라엘 백성의 집을 다 넘어가셨어요. 패스 오버(Pass over) 하셨어요, ‘유월(逾越)’하셨어요. 그들의 행위를 보신 게 아니에요. 문설주에 발린 피를 보셨어요. 그리고 그 집을 넘어가셨습니다.그런데 그 집이라고 죽음이 없었던 게 아니에요. 그 집에도 죽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린 양이 대신 죽은 거예요. 그러니까 유월절은 ‘우리가 잘해서 살았다’가 아니라 ‘어린 양의 피로 살았다’는 ‘구원의 기억’인 거예요. ‘어린 양의 피로 살았다.’ 내가 잘한 게 없는 거예요.그런데 이 유월절을 그동안 어떻게 했나요? 22절, 23절이에요.22.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23.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_왕하 23:22-23요시야가 산당을 부수러 저 북이스라엘의 벧엘까지 갔었잖아요. 그리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그 돌아온 길의 종점이 바로 여기예요.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산당을 다 제거하러 나갔던 길이 이제 예배 앞에서 끝난 거예요.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사사 시대부터 요시야 때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어요. 모세 오경에서 그렇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였어도 여호수아 5장 10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킨 이후로는 유월절을 지켰다는 기록이 없어요. 사사 시대는 물론이고 다윗과 솔로몬 때도 유월절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없어요.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진 이후에 수백 년 동안 남유다나 북이스라엘이나, 또 왕이나 백성이나 죄다 유월절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죠. 언제 이거(유월절을) 지키기 시작했나요? 북이스라엘이 드디어 앗수르에 망한 후에 히스기야가 잠시 후에 지켰어요, 역대하 30장에 보면. 그러나 그때 유월절 지키려고 그러니까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조롱하고, 참여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 남은 몇 사람이 참여했어요. 조금 시간이 걸렸어요, 참여하는데. 그러다 보니까 북이스라엘에는 성결하게 한 제사장들이 부족하고, 백성도 예루살렘에 모이는 것이 힘들어서 정한 때에 지킬 수 없어서 1월 14일이 아니고 2월 14일에 날짜를 바꿔서 불완전한 유월절을 지켰어요(대하 30:1~3). 그래도 처음으로 이렇게 지켰어요.그런데 드디어 요시야가 제대로, 남북 왕국 역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월절을 아주 성대하게, 거대하게, 구체적으로 막 지키는 거예요. 역대하를 보면은 (이 이야기가 아주 자세히 나와 있어요.) 여러분, 역대하 34, 35장을 좀 쫙 좀 읽어보세요. 아주 그냥 열왕기는 그냥 한 절로 지나가는데. 이걸로 봐서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정말 지역감정을 타파한 왕이에요. 복음 전하는 자들은 지역감정, 개인감정, 나라 감정을 모두 타파해서 전해야 되는 거예요.선지자들이 남유다보고 “바벨론에게 잡혀가라”고 그러잖아요. “너희들이 너무 악을 행해가지고” (반면에) 거짓 선지자들은 “절대로 안 잡혀간다” 이러잖아요. 하나냐 같은 거짓 선지자들은. 그런데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인데 너무 좋아하잖아요. 우리가 전쟁 안 나려고 지금 예수 믿고 이러는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참선지자들은) “바벨론에 영원히 살 것처럼 가서 순종해라, 복종해라” (외쳤어요.) “바벨론, 그 망할 놈의 바벨론에 대항해라” “앗수르에게 대항해라” 그렇게 외치지 않았어요. 그들도 우리의 훈련을 위해 붙이신 이방이라는 말이죠.이렇게까지 했는데 하물며 같은 민족인 우리의 형제 민족을 그렇게 망했다고 무시하면 되겠어요? 지금 근데 망했다고 같은 민족으로 살면서 지역감정으로 진영 논리로 그렇게 “상대방을 타도하자”를 외치면 되겠습니까? 내 속의 악을 직면하면서 수고하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지는 것이 응답이기 때문에 믿는 우리는 늘 구원을 위해서 생각하고 적용하고 기도해야 하는 거예요.누가 옳고 그름이 아닌 거예요. 성경에는 가장 악한 므낫세도 구원을 받았다고 해요. 이 악한 왕도 구원을 받았어요. 성전인 나를 이렇게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나를 수리해 가면 조금씩, 조금씩 치료가 되어 가는 거예요.백성들도 요시야가 사는 날에는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해요(대하 34:33). (요시야가) 죽자마자 이제 딴 길로 가는 거예요. 성경은 요시야처럼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해요. 전무후무한 유월절이에요. 예배를 드리는 것과 이렇게 ‘기록된 대로’ 여호와 앞에 드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거예요. 내가 선한 일을 하는 것이 내가 하는 게 아니고, ‘기록된 대로’ 해야죠. 나의 공로가 하나도 없는. 그래서 역대하 35장에 유월절에 대해서 쫙 나오는데 그렇게 구체적으로 드렸어요.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남북이 하나가 되어 절기를 지키게 되었어요. 이제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인생의 목적이 거룩인데… 예배를 드리는 목적이 거룩이라고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5). 거룩한 것의 끝에는 또 돈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요시야가 (역대하 35장) 7절에 보면은 유월절을 지키면서 “그 모인 모든 이를 위하여 백성들에게 자기의 소유 양 떼 중에서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삼만 마리와 수소 삼천 마리를 내어 유월절 제물로” 준 거예요. 이렇게 요시야가 먼저 본을 딱 보였어요. 제물을 딱 드렸어요. 그러니까 (역대하 35장) 8절에 방백들도 즐거이 희생을 드렸어요. 저 맨 위에 지도자가 본을 보이니까 다 즐거이 드려 서로 주고받고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주었고”(라고 해요.) 헌금은 신앙고백이 맞아요. 그러니까 요시야가 먼저 드리니까 다들 즐거워하여 희생을 드리며 따라 합니다.여러분, 지도자가 본을 보여야 다들 즐거이 따라 해요. 요시야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보이기 때문에. 위정자가, 목사가, 부모가 전부 돈이 나의 목자가 되면 밑에 백성 자녀도 다 돈이 나의 목자가 되는 거잖아요. 그죠? 본을 보여야 따라 하는 거예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 예배 안 드리시는 거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이렇게 드리고 계세요?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이렇게 드리고 계세요?그냥 여기 와도 “남편이 아직 안 바뀌어요! 내가 T.T. 갔다 왔는데도 안 바뀌어요!” “우리 애 좀 붙게 해줘요” “사역 좀 풀리게 해줘요” 이런 제목만 들고 나오는 예배 말고 나를 구원하신 어린 양의 피 때문에 예배한 적이 있으세요? 있으시겠죠?그러니까 내 자녀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내 자녀 때문에 힘들면 남의 자녀 위해서 가다 보니까 오늘날 이 ‘T.T.’라는 선교 전도 여행이 자리를 잡았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먼저 자기 제물로 모든 이를 위하여 내어놓으시니까 모두가 자발적으로 이렇게 동참하게 된 거예요. 이게 많고 적음이 아닌 거예요. 특별히 유월절이 뭐예요?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도록 주신 절기이기도 한 거예요. 다 같이 모여서. 그러니까 진짜 우리의 T.T.는 유월절이에요.자녀가 물으면 들려주라는 거예요. 우리가 죄만 물려주는 게 아니고 구원의 이야기도 물려줄 수 있어요. 어린 양의 피로 우리 집을 구원하셨다는 이야기를 T.T. 가서 간증하는 것보다 더 잘 들려줄 데가 어디 있겠어요? 그죠? 이것은 완전히 가장 중요한 유산인 거예요. 간증 바이블 맞아요. 구원의 이야기를 날마다 자녀들에게 들려줘야지, 이게 다음 세대를 향한 신앙 교육이라는 거예요.그런데 여러분, 요시야의 유월절 예배가 어떤 상황에서 드려졌는지 생각해 봐야 돼요. 요시야는 나라에 재앙이 임한다는 말씀을 이미 들었어요.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왕하 22:17)는 기가 막히는 약속을 받았어요. 이 약속 같지 않은 약속. 그래도 유월절을 지켜요. 그래도 예배한 거예요. 나라가 망하고, 안 망하고는 상관이 없어요.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내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옳으시기 때문에. 이걸 오해하시면 안 돼요. ‘으응~ 그래도 예배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뭐 바뀌겠지…….’ 여기서는 그런 말은 아니에요. 나의 방향이 반대인 거예요. 내가 원하는 때와 방식대로 바뀌지 않아도 나는 예배를 하겠다 이거예요.왜죠? 여러분, 그대로 (내 모습 이대로가 아니고) ‘내 상황이 그대로’라는 말이 제일 아프시잖아요. 그죠? 기도했는데 남편이 그대로고, 자녀가 그대로예요. 다 그대로예요. ‘내가 왜 예수 믿는지 몰라’ 이게 (여러분의) 주제가잖아요. 그런데 그대로인 게 하나 더 있어요.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어요. 어린 양의 피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그대로예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치 않고 그대로이셔요. 언제나 동일하세요. 그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서 요시야에게 가장 힘든 역할을 맡기신 거예요. 청소년 큐페에 역대로 1,800명 이상이 와서 제 손녀딸도 고3인데 갔다 왔어요. “너무 은혜받았다”고 오는 길로 막 보고를 하러 왔더라고요. 대부분은 그래요. 그렇지만 다 또 은혜를 받지 않아요. 그중에서 왕따도 당하고, 또 이제 피해자, 가해자가 되어서 싸운 아이도 있어요. 그런데 가해자 부모도, 피해자 부모도 그 아이들을 감당을 하지를 못해요. 부모님들은 모두 이 리더십을 가지셨는데요. 그런데 ‘그대로’인 거예요. 그 가해자 부모 하나는 ‘그 아이 때문에 -가해자 아이 때문에- 죽고 싶었다’는 얘기도 나눔에서 들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학교에서 친구가 없어서 지금 자퇴하겠다는 아이도 있는데 교회까지 와서 친구가 없으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이제... 큰일 났네. 그럼 어떡합니까? 선생님 한 분이 또 나눠줬어요. 제가 중등부 큐페를 다녀왔는데 아이 중에는 큐페 일정은 참여도 안 하고, 찬양도 안 하고, 말씀 들을 때는 자고, 기도할 때는 떠드는 학생들. 너무 이제 화가 났다는 거예요. 그렇게 생기 없던 녀석들이 방에 들어와서는 핸드폰하고 떠들면서 잠도 안 자더니 기어코 나가서 폭행 사건을 일으켜 경찰이 와서 새벽 3시까지 시달리는 일이 있었다는 거예요. 현재 고등학교 교사이고 학교에서는 내 말 한마디면 애들이 다 무서워하고 잘 따르는데, 도대체가 먹히지가 않는 이 녀석들을 다 때려주고 싶었고 자기 방 학생이 돌아다니다가 사건이 생겨 경찰까지 왔는데 평안히 자는 청년 선생님. 또 거기까지 가 수고하는데, 큐페에 안 온 다른 선생님들까지도 정죄가 막 되었어요. 그런데 오늘 중등부 교사 회의에서 딸아이 담임 쌤의 나눔을 들었는데, 그분도 큐페 기간 동안에 저와 똑같이 아이들에게 시달리며 이 중등부 교사를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 딸도 자기 담임 쌤을 저렇게 괴롭히고 있었고, ‘저 선생님의 헌신과 희생으로 제 딸이 큐페를 잘 다녀왔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회개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고 교회에서도 그러고 있는 저의 모습이 바로 산당이고, 이 산당의 뿌리까지 뽑아내기 위해 이제 말씀 듣고 예배드리는 것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청소년 집회에 2천 명 가깝게 온 것은 중2병 아이들의 기적 아니겠어요? 아니겠어요? 그러면 어떻게 아이들이 그런가? 지금 여러분들 가운데는 ‘어머머머! 여기 보내면 안 되겠네~’ 이렇게 … 정말 제가 (우리들교회에서) 다 잘하는데, 안 되는 그거 하나도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제가. 그러니까 요시야가 아무리 회개해도 “돌이키지 않겠다”고 그러잖아요. 애들만 안 들리는 게 아니고, 어른들도 우리들교회 오시면 말씀이 안 들리시면 화를 내고요. 여전히 목장에 안 들어가요. 안 들어가요. 예. 어른들은요, 철이 들었는데도 안 들어가요. 중2병 아이들은 철이 안 나서 수련회를 가요. 거기 가서 안 들어. 그게 어디예요? 가서 안 듣는 거.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자녀들이 속 썩이는 부모들이 교사를 해야 교사들이 말이 없어요. 그러니까 내 자녀들이 속 썩이면 가서 교사를 하셔야 돼요. 속 썩이지도 않는데 교사한다면 200점! 하나님이 축복하실 거예요. 다음 세대를 위해서 이렇게 헌신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고 어른이 구속사가 이해가 안 돼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는 다른 세대가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해요. 6·25 이후에 못 살던 시대에는 그냥 불일듯이 기독교가 일어났어요. 그리고 이제 그 5천 년 동안에 우리가 문맹 국가였잖아요. 진짜 90 몇 프로 문맹 국가였는데, 이제 기독교 선교사들이 와서 학교 세우고, 병원 세우고, 기독교 명문이 많았어요. 저도 이 기독교 명문 중에 하나를 나왔잖아요. 이거 어렸을 때부터 성경 배우고 찬송하고 이건 대단한 일 같아요. 이제 그러다가 강의석이라는 사람이 한경직 목사님이 세우신 대광고등학교 3학년 때, 학생회장이 되어 가지고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고 그래서 퇴학을 당했죠. 그런데도 이제 봉사 특별 전형으로 서울법대를 들어간 거예요. 그리고는 이제 거기서 다시 소송을 해서 승소했어요. 그러므로 종교의 자유가 아주 그냥 ‘강의석 법’이라고 할 만큼 이제 모든 사립학교에서 마음대로 이제 그 채플 하는 게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제가 20년 동안에 강의석이라는 분이 무엇을 했나? 그러니 그때부터 이제 반전 운동에, 군복무 반대에, 국군의 날 알몸 시위를 하고, 더불어 병역 거부를 해가지고 구속이 됐더라고요. 그래서 출소 후에 택시 기사를 하고, 호스트바 등을 거쳐서 지금은 이제 그런 활동을 뒤로 하고, 학원 과외 강사로 살고 있다고 했어요. 할 수만 있다면 강의석 씨가 과거 일을 회개하면 너무 좋겠어요. 우리나라의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해서 이렇게 살게 되었는데, 지금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어 이렇게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고 있는데, 제가 이 나무위키 같은 걸 읽어보면, 그냥 “이 학교가 독재를 하면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게 했다”는 둥 그래서 ‘강의석이가 아주 옳다’는 둥 그냥 뭐. 그렇게 그걸 보니까 이제 편집 방향이 이게 얼마나 무서운지를 제가 이제 알게 됐어요. 근데 그때 강의석이를 반대했던 그 학교 선생님들이 그리울 지경이예요. 강의석이를 찬성했던 교목 선생님은 같이 이렇게 나가셨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요새는 선생님이 그 학생 같은 얘기를 하는 거예요, 선생님들이. 옛날엔 학생이 지금 그랬다면 선생님들이. 지금 중학교 2학년 아이가 또 저기 목사님한테 편지를 보낸 거예요. 학교에서 가정 시간에 선생님이 “앞으로 결혼은 없어질 거다. 요즘은 이제 태어나는 아이들의 평균 수명이 120살 정도 되는데 너희는 한 사람이랑 100년 넘게 살 수 있니? 그러니까 끊임없이 이혼 재혼이 반복될 게 분명하니까 너희들은 결혼하지 말아라.” 이렇게 이제 하니까 그것도 이제 이 말에 수긍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이 있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교회에서 결혼 꼭 하고 자녀까지 낳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게 뭐가 맞는 거예요? 목장에 나눠 봐도 다 혼란 가운데 있어요. 왜냐하면 학교 선생님이 말을 하니까. 예. 아휴 그러니까 진짜 인권의 사각지대에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사실 이제 없는 이야기죠. “알맞은 가난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는 거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유월절 밤에 이스라엘이 왜 살았다고요? 그들이 착해서 산 게 아니고 ‘어린 양 피’ 때문에 심판이 그 집을 넘어간 거예요. 내 나라가 그대로여도, 배우자가 그대로여도, 자녀가 그대로여도, 내 사건이 그대로여도! 그리스도의 보혈은 변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고! 그래서 우리도 그래도 예배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도 그대로여도 그래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적용 질문Q. “오늘은 예배 좀 쉬자”할 때는 없습니까?Q. 내가 드리는 예배는 ‘기록된 대로’입니까, ‘편한 대로’입니까?Q. 자녀가 “교회는 왜 가야 해?”하고 물으면 나는 무엇을 말해 줄 수 있습니까?여러분은 늘 헷갈리는 거예요. “내가 교회 가서 애들한테 이렇게 왕따를 당하잖아 그 교회는 왜 가야 돼? 난 그 교회 안 가!” 그럼 여러분이 해줄 말이 없는 거예요. 아이가 더 우상이니까. 그죠? 아이가 원하는 대로 “가지 말자”고 그러니까 또 안 가야 되고, “왜 가야 돼?” 하면 “나도 몰라” 이러면 되겠어요?! “그냥 좋으니까 가는 거지” 그러니까 대답할 말을 준비하기 위해서. 다음 세대에게 구원의 얘기를 끊임없이 지혜롭게 준비해서 알려 줘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모든 것이 ‘그대로’예요. 그대로여도 그래도 예배드려야 되고, 두 번째는 2. 그래도 말씀대로 삽니다(24-25절)그래도 말씀대로 살아야 되요. 말씀을 붙잡아야 되는 거예요. 24절이에요. 24.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_왕하 23:24요시야가 또 유월절로 끝나지 않았어요. 예배를 회복한 왕이 이제 삶의 구석구석을 마저 정리합니다. 신접한 자, 점쟁이, 드라빔, 우상, 모든 가증한 것. 그런데 이 목록 어디서 본 목록이잖아요. 할아버지 므낫세가 했던 똑같은 일이에요.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왕하 21:6). 그걸 지금 할아버지가 했던 일을 백성들이 똑같이 하고 있어요. 인간은 눈앞에서 당장 금송아지가 번쩍번쩍한 것을 너무나 보고자 해요. 교회에 와도 금송아지 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우상 보고 절하지 우상 듣고 절하지는 않아요. 우상 보고 절하지. “그 여자 내가 보고 놀랐어” 그러지. “내가 그 여자 듣고 놀랐어” 그러는 사람 있어요? 듣고 놀랐어요, 보고 놀랐어요? 신명기에도 그래서 “들으라” 하시잖아요. 하나님께 듣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의 대화도 못 들어요. 대화가 안 돼요. 그러니 할아버지 므낫세가 세운 것을 손자 요시야가 하나씩 지금 지우고 있는 거예요. 왜 제거합니까? 본문에 이유를 딱 하나만 대요.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요시야가 언약을 세우며 백성 앞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왕하 23:3) 어떻게 이루게 해요? 입으로 세운 그 언약이, 그 결심이 오늘 몸이 된 거예요. 삶이 된 거예요. 큐티 적용이 나의 삶이 된 거예요. 그것이 몸이 된 거예요. 그래서 날마다 어렸을 때부터 말씀 묵상하고 적용해서 그런 것들이 하나의 열매가 있으면 그게 자꾸자꾸 쌓여서 온몸에서 조직이 되는 거예요. 새로운 조직으로 바뀌는 거예요. 성경은 한꺼번에 한 장, 두 장, 세 장 못 읽어요. 조금씩 먹어서 생각해서 씹어서 소화해서 들어가야 새로운 조직이 돼서 몸이 되고 이제 삶이 되는 줄 믿습니다.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요시야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정리했어요. 개혁을 완수했어요. 성경은 이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25절이에요. 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_왕하 23:25성경이 왕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평가죠.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고 전무후무한 회개를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놀라운 게 하나 숨어 있어요. 열왕기하 23장 3절에 언약을 세울 때는 요시야가 어떻게 지키겠다고 했어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여호와께 순종하고” 마음과 뜻, 둘이에요. 3.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_왕하 23:3그런데 오늘 훗날의 요시야에 대한 평가는 25절처럼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다 같이) 힘을 다하며” 하나가 더 늘었어요. 언약을 세울 때는 없던 “힘”이라는 말이 요시야에 대한 마지막 평가에 들어간 거예요. 이 말은 어디서 왔을까요? 바로 신명기 6장 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사랑의 계명’이에요. 그러니까 성경이 요시야에게 준 최고의 평가는 “요시야는 일을 많이 했다가 아니고! 힘을 다해 사랑했다!!”는 거예요. 우리 이번 8월달 큐티인 8월호 표지에 “One LOAD, All Heart!” [원 로드, 올 하트!] 읽은 분 계시나요? 기억나시는 분 계세요? (영어를 몰라서… ^^) 이 말이 지금 그 말이에요. 역대하는 그 ‘힘’이 어떻게 나갔는지도 지금 보여주잖아요. 유월절에 요시야가 자기 소유를 3만 마리, 3천 마리 다 내놨다고 그랬잖아요. 사랑은 이렇게 흔적이 남아요. 돈이 나가고 시간이 나가고 손과 발이 나가는 거예요. 우리는 마음과 뜻까지는 나가요. 은혜도 받고 결심도 하고 눈물도 흘려요. (그런데) 힘은 잘 안 나가요. 시간이 안 나가고 돈이 안 나가고 손과 발이 안 나가요. 여러분 힘은 거짓말을 못 해요! 그죠?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내 힘이 나가게 되어 있어요. 내 물질이 어디로 나가는지, 내 일주일이 어디로 나가는지 보세요. 거기에 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게 있어요. 내 일주일의 시간에 여러분의 돌이킴은 지금 어디서 멈춰 있습니까? 근데 오늘 요시야가 이 순종을 어떤 자리에서 했는지 잊으면 안 됩니다. 나라의 결론이 ‘재앙’이라는 확정판결을 받은 뒤예요. 요시야는 그대로 힘을 다해 순종한 거예요. 내가 원하는 결과가 보여야 힘을 내는 건 순종이 아니라 ‘거래’예요. ‘내가 했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해주셨더라’ 그거는 ‘거래’고요. “그냥 내가 열심히 해도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더라” 요시야는 그래도 말씀대로 살았어요. 그래도 말씀대로 살았어요. 요시야를 여기까지 데려온 게 뭐였습니까? 성전에서 발견된 책이었잖아요. 그 말씀이 부수게 했고 예배하게 했고 삶으로 순종하게 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결심’에서 멈추게 두지 않아요. 삶으로 데려갑니다. 우리도 사건이 ‘그대로’여도 ‘그래도’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예배하고 그래도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 적용 질문Q. 내 신앙이 ‘마음과 뜻’에서 멈추고 ‘힘’까지 가지 못한 자리는 어디입니까? 시간입니까, 돈입니까, 손과 발입니까?Q. 말씀 앞에서 결단해 놓고 아직 순종하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Q. 보이는 것은 정리했는데,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 남겨둔 것은 무엇입니까?이 남자 목자님. (보통) 여자들이 쇼핑 중독인데, 이분은 또 이제 남자 목자가 쇼핑 중독이네요. 그래서 아내랑 한참 싸울 때 “신발, 옷 다 버려!” 그래서 다 버렸는데 어느 순간 요즘에 보니까 또 신발장에 저의 신발들이 절반 이상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이분의 변은 뭔가 하면 저는 항상 중고를 사거나 엄청 할인된 것을 사기 때문에 –1+1 이런 거 사기 때문에- 원 플러스 원 사 놓고 다 쟁여두죠. 그죠? 낭비는 아니라고 합리화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여자 중독, 쇼핑 중독 다 똑같은 건데 이분이 목자님이니까 이렇게 자기를 이렇게 이제 직면하는 거예요.)내가 이렇게 옷과 신발을 사고 꾸미는 것은 단순히 쇼핑 욕구 때문이 아니고 내가 주변에 여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쇼핑 욕구는 여자들도 남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이게 끊임없이 사는 거예요. 거기에 무슨 열등감이 숨어 있어서 그러니까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 아무리 정리해도 정리해도 정리 안 되는 힘이 이렇게 남아 있는 거예요. 근데 그거 “그냥 나는 싼 거 사는데 뭐~”가 아니라 항상 think 해서 깊은 그 근본을 파헤쳐내야 되는 거예요. 근데 내가 ‘여자 좋아서 이렇게 사는구나!’ 이거 깨달은 것만 해도 대단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공동체에서 목장에서 이렇게 말씀으로! 기록된 대로! 말씀대로 사는 거예요!그대로예요. 상황이 다 그대로예요. 우리 어떻게 한다고요? 그래도 예배! 그래도 말씀대로 살아요! 그리고 가치관이 그래도 하나님이 옳으세요. 그래도 하나님이 100% 옳으세요. 이 사건은 그래도 하나님이 옳으세요! “그래도 옳으세요!” 다 한번 해봐요. 시작~! “그래도 옳으세요!” 할렐루야!! 3. 그래도 하나님이 옳으십니다(26-27절)26절이에요. 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_왕하 23:26방금 25절에서 “전에도 없었고 후회도 없었다. 전무후무한 회개다.” 그런데 26절 첫마디가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어요. 여러분, 요시야는 “슈브”했어요. 돌이켰어요. 근데 하나님은 돌이키지 않았어요. 슈브하지 않았어요. 같은 ‘돌이키다’라는 말 ‘슈브’인데 이 정반대로 쓰일 수가 있어요. 이거 하나님이 오늘 갑자기 정하신 게 아니고요. 요시야는 이미 열왕기하 22장에서 이 유다의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왕하 22:17) 이 말 들었어요. 그죠? 그래서 옷을 찢고 통곡했잖아요(왕하 22:19). 말씀대로 이루리라는 것은 위로의 말씀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에요. 경고의 말씀도 똑같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럼, 왜입니까? 본문이 이유를 알려줍니다.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므낫세 때문이래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우리 마음은 또 어디로 갑니까? “거봐! 나 때문이 아니잖아. 므낫세 때문이잖아” 그죠? “아버지 때문이잖아. 어머니 때문이잖아. 시어머니, 시아버지 때문이잖아. 남편 때문이잖아. 아내 때문이잖아. 그 녀석 때문이잖아. 그 사람 때문이잖아.” 우리가 살면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내가 너만 아니었으면~” 맨날 그 얘기를 이제 여러분들은 접으셔야 돼요. “너만 아니었으면, 저 집사만 아니었으면” 본문은 분명히 “므낫세 때문”이라고 해요. 그건 뭐예요? 성경은 우리가 그 말 뒤에 숨는 길을 딱 그냥 막아요. 므낫세 혼자였습니까? 성경 21장에서 뭐라고 합니까? “이 백성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했다”(왕하 21:9)고 해요. 혼자 한 게 아니에요. 므낫세를 따라간 백성들의 마음이 있었던 거예요. 요시야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 정리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도 왕이 우상을 치울 수는 있었어도 사람의 마음까지 돌이킬 수는 없는 거예요. 근데 므낫세가 55년 왕 노릇하는데 따라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냥 꾀임을 받아요. 너무 보기만 해도 위대해 보여요. 압살롬이 마음을 다 훔쳐 갔듯이 백성들이 그리로 따라갔듯이 우리가 그냥 겉으로 보고 멋있고 이러면 다 따라가는 거예요. 므낫세 따라가고 압살롬 따라가고. 그러니까 그 우상을 치울 수는 있어도 사람의 마음까지 돌이킬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신접한 자를 없애도 신접한 자를 찾아가던 그 마음은 남는 거예요. 그 마음이 지금 어디 있어요? 바로 내 안에 이렇게 남아 있어요. 여러분들이 남편의 외도나 또 아내의 외도나 외도했는데 그다음에 이제 돌아왔어요. 그럼, 여러분들은 맨날 그러는 거예요. “지금 마음은 거기 가 있지? 내가 안 그런 거 빤히 알아. 아휴, 그렇게 위선 떨지 마. 내가 마음 다 거기 있는 거 아는데 왜 그래? 좀 진정성 있게 해봐. 싫으면 싫다고 해봐.” 그러면 싫다고 하면 여러분들이 “왜 왔어?!!” 또 이러죠?^;; 마음이 하루아침에 … 인간이 악한데 믿음도 없는 사람들이 외도했다가 무슨 자기 힘으로 돌아올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조강지처의 면류관이 큰 거고 몸이라도 와 있는 게 어디예요? 그러니까 이제 마음은 차차 정리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아니면 그 마음을 정리할 사람이 없어요. 여러분이 반찬 잘해주고 옷 잘 입는다고 돌아오는 게 아니에요! 우리 그 차 장로님이 그랬잖아요. “내가 조강지처 불쌍해서 돌아왔으면 그건 얼마 못 간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니까 내가 이렇게 돌아왔지.” 이게 큰! 아주 중요한 본질적인 진리예요. 그러니까 외도했다고 맨날 그냥 손가락질하고 안 보고 각방 쓰고 ‘난 용서 안 해. 죽을 때까지 용서 안 할 거야.’ 이러면서도 나가나? 안 나가나? 이것만 보고 있고.^^ 그렇게 앞뒤가 다른 건 바로 여러분이야!! “용서 안 해!” 그러면서도 나가나? 안 나가나? 들어오나? 안 들어오나? 그따위 짓 좀 하지 말고. 그러니까 집에 돌아왔으면 감사하고 교회에 오면 감사하고 기다려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본을 보여야 되는 거예요.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나중에 이렇게 기도해요. 처음에는 “우리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이게 예레미야애가 5장 7절이에요. 그러니까 조상 탓을 해요. 우리도 똑같아요. 그런데 이제 그 기도를 하다가 여기까지 와요.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 16절에 보면 조상 이야기로 시작한 기도가 내 죄까지 도착하는 거예요.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내 죄, 아내가 바람을 피워도 내 죄까지 도착을 해야 되는 거예요. 이게 회개인 거예요. 뭘 옳고 그름으로 인간이 선한 게 하나도 없는데 예수 없으면 당연히 돈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쇼핑 좋아하고. 그건 인간의 본능인 거예요. 그거 가지고 손가락질하면서 “산다 안 산다, 죽는다 산다” 그게 유치한 짓을 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은 유치해요. 그죠? 우리가 하나님을 이제 만나야 되는 거예요.오늘 큐티 본문에서 하나님이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신 5:3) 그러잖아요. 내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가 세운 게 아니다. 나랑 세운 거다! 언약을 옛 조상들의 옛 이야기로 밀어놓을 수 없다는 거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도 이 언약 앞에 서 있는 거예요. ★“므낫세 때문”이라는 말이 오늘 여기 살아있는 내 책임을 없애주지 않아요. ‘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냐?’만 물으면 안 돼요. “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냐?” 이딴 얘기는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이제 거꾸로 물어야 돼요. “나는 지금 내 가족에게 내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므낫세인가?”를 돌아봐야 돼요. “나 때문에 누가 꼬임을 받고 있는가?” 이거는 100명 중에 1명도 예외가 없어요. 성인군자라도 예외가 없어요. 나 때문인 거예요. 나 때문인 거! 나로 이제 그 결과가 나까지 와야 되는 거예요. 내 책임까지 이렇게 와야 되는 거예요. 한 목자님이 이런 나눔을 했어요. 목원들이 고난이 없다 보니까 3대지까지 나눔을 했지만 10시 전에 일찍 끝나고 가니까 아내가 … (너무 고난이 하나도 없고 3 대지까지 다 했는데도. “예 아니요. 산당이 있습니다 없습니다.” 뭐 이렇게만 이제 하니까.^^;) 그냥 아내가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너무도 흔한 세상 모임을 한 것 같다.” 모임을 하죠. 그 말을 듣고 많이 회개가 되었다. 사람을 살리려는 이 마음이 있어야 되는데 교양 있는 얘기만 하고 자기 얘기는 하나도 안 하니까 그래도 목장은 가야 복을 받는다고 그러니까 오는 게 또 어디예요? 그래서 그분들을 향하여서 제가 지금 메시지를 발표한 거예요. 이 구속사가 안 들리면 모든 것이 걸려요. 그래서 이 중2병 아이들 뭐라고 욕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제 그리고 하나님이 판결문을 보여주는 거예요. 아니! 그러니까 왜 그러냐 하면 그럴듯한 멋있는 므낫세를 우리는 너무 동경하니까. 므낫세가 판치는 나라잖아요. 그죠? 문벌, 학벌, 그냥 성공, 돈 모든 거 다 갖췄잖아요. 그래서 내가 목장에서도 그 멋있는 므낫세가 되어서 세상으로 꼬이는 목장이 되면 안 된다는 거죠. 므낫세가 왕 노릇하는 목장이 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요시야가 왕 노릇을 해야지 그죠? 그래서 하나님이 27절에 판결문을 보여줘요. 2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_왕하 23:27아무리 해도 요시야의 결론은 “버리리라”. “내가 택한 이 성,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 하나님이 친히 택하시고 이름을 두신 곳이에요. 그 성전을 버리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북이스라엘이 이미 그렇게 망했잖아요. 근데 그 말을 이제 유다에게 똑같이 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성전이 있다고 사는 게 아니에요. 직분이 있다고 사는 것도 아니에요. 하나님을 버리면 성전도 직분도 나를 지켜주지 못해요!! 지난주에 “요시야가 산당을 다 제거하되” 했잖아요. 근데 오늘 하나님은 유다를 “물리치며” 하시는데 ‘제거하되’와 ‘물리치며’가 똑같은 말이에요. 그러니까 ★★내 산당을 제거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제거하신다는 거예요. 내가 내 산당을 제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를 제거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건이 ‘그대로’라고 해서 하나님이 틀리신 게 아니에요. 사실 이게 “제일 어려운 회개”예요. 내가 돌이켰는데도 그 사건이 그대로예요. “그래도 하나님이 옳으십니다” 하는 이 회개. 이것처럼 어려운 게 어디 있어요? “제가 이만큼 했잖아요. 이제 바꿔주셔야죠!” 하고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 회개예요. 우리는 100% 죄인이고 하나님 100% 옳으시기 때문에 요시야는 최종 심판이 철회된다는 약속이 없는데도 순종을 멈추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이 옳으시기 때문이에요! 그럼 여기서 물어야 돼요. 하나님이 옳으시고 내가 100% 죄인이면 우리는 어떻게 삽니까? 우리가 흘린 눈물, 우리가 한 순종을 공로로 내밀어서 살 수 있습니까? 아니 왕들 가운데 요시야만큼 돌이킨 왕이 없다는데 우리는 그럼 뭘 내밀겠습니까?요시야의 회개는 참된 회개였어요. 전무후무한 회개였어요. 그래도 그 회개의 눈물이 죄의 값을 치르는 피가 될 수는 없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잘해서 누굴 구원하는 건 아니에요. 유월절 밤에 그 집에도 죽음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근데 어린 양이 대신 죽었다고 성경이 분명히 밝히는데요. “우리의 유월절 양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거예요. 우리의 죄의 형벌과 저주를 대신 담당하신 거예요. 그러면 므낫세처럼 물려받은 것들은 어떻게 합니까? 우린 여전히 아버지에게서 보고 배운 성질, 습관, 우상이 내 안에서 반복되고 있는데요. 베드로전서 1장 18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어린 양의 피가 조상에게서 물려받아 반복하던 헛된 행실에서 우리를 대속하는 거예요. 죄가 대물림되던 집에서 구원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우리가 구원의 이야기가 시작돼야 되는 거예요. 맨날 “학교 잘 가라, 공부 잘해라, 돈 잘 벌어라, 결혼 잘해라, 아이 많이 낳아라” 이딴 얘기만 하지 말고 ‘구원의 이야기’가 시작돼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요시야는 돌이켰어요.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어요.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돌이켜야 합니까? 내 회개를 공로로 내미는 자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피 아래로 돌이켜야 되는 거예요. 회개가 소용없다는 말이 아니에요. 참된 회개는 자기 눈물과 수고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어린 양의 피’를 의지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를 아는 사람은 잘난 척할 수가 없어요. 한마디로 “네가 예수 믿는데 왜 그 모양 그 꼴밖에 안돼냐?” 이딴 얘기를 감히 못하는 거예요! ★사건이 끝내 그대로여도 우리는 보혈 아래에서 다 같이 “주님만이 옳으세요!” 이 고백을 할 수가 있어요. 내 공로가 하나도 없는데 왜 딴 사람들을 정죄하고 그러냐고요. 내 아들 딸 식구들. “아휴, 난 저 사람하고 도저히 같이 못 가겠어!” 그렇게 정죄하는 여러분이야말로 지금 있잖아요. 그 회개가 진정한 회개가 못 되는 거예요. 내 사건이 그대로여도 하나님이 옳으시다 고백을 해야 되는데…. ▪ 적용 질문Q. 회개했는데도 바뀌지 않는 그 상황을, 나는 지금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Q. ‘저 사람 때문’이라고 말해 온 사건에서 ‘나 때문’으로 옮겨야 할 내 죄는 무엇입니까?(날마다 저 사람 때문에 때문에 그러니까 그게 나 때문이라고)Q. 내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있는 것은 ‘므낫세의 헛된 행실’입니까, ‘어린 양의 구원 이야기’입니까?그러니까 똑똑하고 서울대학까지 갔어도 종교의 자유를 위해서 막 ~~~ 그냥 했어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우리 청소년 아이들(키즈) 속 썩이고 힘들고 왕따 이런 아이들을 무시하시면 이제 안 되는 것이. 우리가 20년 동안 우리 아이들이 결혼도 잘하고 이혼도 안 했잖아요. 이거보다 훌륭한 애들이 어디 있어요?! 여러분 므낫세예요? 그러니까 우리들교회 초원님 딸 키즈로 어렸을 때부터 왔어요. 그런데 얘는 정말 너무 학창 시절에 속을 썩여서 우리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얘가 이제 이번에 (울림 웬즈데이 워십에서) 간증을 했어요. 학창시절 심한 왕따와 괴롭힘을 당하며 받은 상처로 이제 사람에게 미움받는 것에 두려움이 많았고, 이제 그러다 보니까 왕따를 벗어나고 사귄 친구들이 너무 소중해 가지고 걔네들 말을 안 들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술 담배 외박을 걔네들이 권유할 때 거절을 못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왕따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잖아요. 걔네들 하라는 대로 다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미 망가져 버렸고 그냥 부모님께 반항하고 학교도 가지 않고 ‘비행 청소년기’를 지냈다는 거예요. 성인이 되어서도 그 학창 시절에 있던 왕따의 두려움이 이어져 가지고 항상 눈치를 보면서 싫은 소리 하나 못하는 삶을 살았어요. )집에서는 이렇게 반항을 하는데 친구들한테 가면 뭐가 절절절절 매는 … 너무 가슴이 아픈 거잖아요. 그죠? 우리는 이해를 해야 되는데 …) 꿈도 없고 미래에 대한 소망도 없고 그러다가 갑자기 학교생활이 하고 싶어 가지고 이제 전공과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아무런 저기 뭐야 그냥 아무 데나 전국의 대학교를 다 지원했는데 그냥 모조리 다 떨어지고 한 곳에 전문학교 하나 딱 붙었는데 거기에 모델과가 있었다는 거예요. (얘가 들어간 다음에 없어졌대요. 전문학교 모델과. 아우~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그래서 갑자기 모델이 되니까 세상이 즐거워서 주일 성수도 안 되었고, 공동체에 대한 소중함도 없으니까 그렇게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러다가 세상 우상만 쫓다가 3년 전에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 공동체에서 만난 친구! (그 친구 한 명이 또 있었네요.) 걔가 청년부 큐페 초대를 해줬고 우상, 강박, 상처로 저는 … 모델을 해서 채우고 채워도 난 가진 게 없다며 난 자기 연민으로 제 자신을 갉아먹으며 마음이 피폐했던 저를 기도 시간에 눈만 감고 있었는데 주님이 찾아와서 위로하고 만나주셨다는 거예요. “이제는 안심하라” 그래서 이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그 큐페에서 하게 되었다고.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신 4:9)고 하셨는데 (얘가 진짜 주님 만나서) 중등부에서 날마다 저의 상처를 약재료로 나누며 저와 같은 시기를 보내며 방황하는 10대들을 섬기고 공동체와 예배의 자리를 떠나지 않도록 지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저는 이제 중등 2부 간사로 섬기고 있어요. 이번 여름 사역으로도 이제 안동 T.T.도 가고 그랬는데 그곳에서 더 많은 은혜를 받았고 청소년부 여름 큐페에도 섬기러 간 자리였지만은 그 아이들보다도 자기가 더 큰 은혜를 받고 가는 것 같다고. 그 섬겨주시는 교사, 사역자님들, 스텝이 있었기 때문에 저도 갈피를 못 잡던 청소년기 시절에 (그렇게 비행 청소년이 돼도 얘가 하여튼 교회는 붙어 있었어요. 나중에 모델 되고 약간 떠났지만..) 그랬는데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교회에 붙어만 있었더니만 다시 공동체에 돌아올 수 있는 힘이 있었다고 생각을 하면서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의 전 가족 T.T.가 아들 손자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최고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이 돼요. 이거는 ‘구원의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온 세대가 알려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년에도 이제 갈 건데 지금부터 정말 여름휴가를 생각하셔서 평생의 자녀들이 가서 이렇게 구원의 이야기를 알려 주는. 그래서 경상도 지역에 T.T.에 갔던 여러분들의 눈물의 열매로 목회 세미나에 목사님들이 거의 오신다고 했어요. 올해 8월 24일부터 3일간 열리니까 많이들 가지 않으신 많은 목사님도 담임목사님을 동반한 이런 여러 사역자님들이 대구성명교회 목세에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말씀을 맺어요. 돌이켰는데도 그대로일 때, 우리는 예배합니다. 그래도 예배합니다. 그래도 말씀대로 삽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옳으십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주님이 신실하시고! 정말 나의 삶을 주님이 인도하셨기 때문에 내가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찬양하고 기도할게요. 사랑해요.♬주님의 선하심♬사랑해요 신실하신 나의 주님나의 삶 주님 안에 있네눈을 뜨는 아침부터 나 잠들기까지오 선하신 주를 노래하리신실하신 나의 주님나의 삶을 인도하셨네나의 모든 호흡 다해오 선하신 주를 노래하리사랑해요 나를 인도하신 주님고난 중에도 나와 함께 하셨네내 아버지 되시며 내 친구 되신 주나의 삶 주님 안에 있네신실하신 나의 주님나의 삶을 인도하셨네나의 모든 호흡 다해오 선하신 주를 노래하리주님의 선하심이 날 인도하시네주님의 선하심이 날 지켜주시네주께 엎드려 나의 모든 삶주님께 드리네주님의 선하심이 날 인도하시네신실하신 나의 주님나의 삶을 인도하셨네나의 모든 호흡 다해오 선하신 주를 노래하리기도 제목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우리의 상황이 그대로일지라도 그래도 예배하게 하시고 그래도 말씀대로 또 그래도 하나님이 옳으시다고 고백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경상도에 구속사가 잘 흘러가도록. 이 더운 여름에 우리의 가정, 직장 나라가 그대로일지라도 “하나님이 옳으시다”는 고백을 하도록! 인권이 왕 노릇 하는 이때 “하나님 이 나라의 다음 세대를 위하여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다 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가 므낫세의 꼬임을 받았습니다. 또 꼬이는 므낫세가 되어 주님을 격노케 했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노엽게 하고 부모를 노엽게 했습니다. 마음이 녹습니다. 기도하고 말씀 보아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대로입니다. 그래도… 그래도 어찌합니까? 유언하는 부모들이 되어 그래도 예배하고 그래도 말씀대로 살고 그래도 하나님이 옳으시다고 고백하고 이 땅을 떠나기를 원합니다. 주여, 우리의 자녀들을 붙잡아 주시옵시고, 주님이 버리시겠다는 말씀을 붙잡고 그래도 회개하기 원합니다. 주여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그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여 주여 우리의 예배가 아버지 하나님 다음 세대를 살릴 수 있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는 지도자가 부모가 되어서 본을 보여 자녀들도 백성들도 즐거이 희생을 드리도록 주여 역사해 주시옵소서! 오늘 “돌이키지 아니하리라”의 말씀을 깨달아 신앙고백으로 드린 저희들의 이 봉헌을 받아 주시옵시고, 이 땅에서 드릴 것만 있고 줄 것만 있도록 저희들의 산업과 공부와 회사와 프로젝트와 아이디어와 건강과 물질과 관계에 주님! 기름을 철철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그래도 하나님은 옳으십니다!”
기도제목A: 직장과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인 것을 알고 남겨두신것들에 집중하여 감사한 것들 적어보기
B: 여전히 남아 있는 산당이 보이지만 그래도 예배와 말씀의 자리 사수하기
C: 꾀부리지 않고 말씀에 더 집중하며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일에 임할수 있도록.
D: 내 몸을 하나님의 성전이라 생각하며 소중히 여기고 관리하기
E: 모든 인생은 먼지라는 것을 기억하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루를 말씀에 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