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설교: 김양재 목사님 설교제목: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성경말씀: 열왕기하 23장 21~27절
1. 그래도 예배합니다.
요시야는 바로 부수고 빻았다. 요시야가 마지막으로 한 것은 유월절을 지켜라 라고 명령하였다. 유월절 지키는데는 온 백성을 부른다.
유월절은 한 양을 잡아서 같이 먹는 절기이다. 이것은 예수 믿는자로서 혼자 받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같이 먹고 나누는 것이다.
산당예배는 기복신앙인데 이 산당을 제거해야 공동체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유월절을 지키라고 한다. 자기 마음대로 예배드리는 산당예배와 정반대로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기록된대로 말씀을 나에게 맞추는 것이다. 유월절은 심판이 넘어간 것이다. 문설절에 바른 피를 보고 넘어가신 하나님이시다. 어린양이 대신 죽었다는 것이다. 구원의 기억이다. 우리가 잘해서 산 것이 아니다.
모세5경에 유월절을 지키라고 했지만 여호수아때 이스라엘 백성이 이후로 유월절을 지킨 기록이 없다. 사사 시대, 솔론몬때 유월절 지킨 적이 없었다. 북이스라엘이 망한 후에 히스기야가 유월절을 처음으로 지켰다. 성결하게 한 제사장이 부족하고 백성도 예루살렘에 모이기 힘들어서 불완전한 유월절을 지켰다. 그러나 요시야가 남북왕국 역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유월절을 지키고 유다가 망했다. 복음 전하는 자는 지역감정,진영논리 등을 타파해야 한다. 구속사로 해석해야 한다. 상대방을 타도하자 이러면 안된다. 내 속의 악을 직면하고 상대방을 불쌍하게 여기고 구원을 위해 생각하고 적용해야 한다.
옳고 그름이 아니다. 우리는 다 피해자이고 동시에 가해자들이다. 가장 악한 왕 므낫세도 구원을 받았다. 내가 성전이기 때문에 구원으로 수리해나가면 치료가 되어간다. 백성들은 요시야가 살아간 날들에는 복종하고 떠나지 않았다. 요시야가 떠나자 백성들은 또 악을 행한다. 성경은 요시야처럼 유월절을 지킨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전무후무한 유월절이다.
기록된 대로 드리는 것은 다른 것이다. 역대하 말씀을 보면 공동체가 성대하게 절기를 지키는 데..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라고 하였는데 성결하게 하고 예배를 드리는 태도는 구별되게 살아야한다. 성결한 끝에는 돈이 있는데 요시야는 자기 양떼등 3천마리를 드리는 본을 보이자 방백들도 즐거이 희생들 드렸다. 헌금이 신앙고백이 맞다. 지도자가 본을 보여야 즐거이 따라한다.
요시야가 하나님을 사랑한다. 돈이 나의 목자 이러니..이것이 산당예배의 특징이다.
우리는 본을 보여야 따라한다. 우리 모두 예배드리고 있는데 말씀하신대로 기록된 대로 예배드리고 있는가? 나를 구원한 어린양의 피 때문에 예배한 적이 있는가?
특별히 유월절은 다음세대에게 가르치기 위한 절기이다. 자녀가 물으면 들려줘라. 구원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우리들교회가 간증바이블이라고 하는데 어린양의 피로 우리집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자녀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다.
티티가 다음세대에게 전해주기 위한 유산이다. 요시야는 재앙이 임한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진노가 꺼지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받았다.그런데도 주님을 사랑한다는 유월절 예배를 드렸다. 내가 원하는 때와 방식이 바뀌지 않아도 예배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좋고 나쁨을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로 라는 말이 너무 아프다. 기도했는데도 그대로 라는 것이 너무 아프다. 어린양의 피로 구원하신 하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그대로이다. 선하시고 신실하신 주님이시다. 내가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야 하는 근거가 된다. 다음세대가 너무나 중요하다. 철없는 아이들 중2 학생들이 큐페에 2천명 가까이 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많은 분이 구속사가 이해가 안된다. 청소년이 이렇게 모였다는 것이 감사하다.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는 학생들이 되고 있는 다음세대들이 많아지고 있다. 인권이 왕노릇하고 있는 것이다.
내 사건이 그대로려도 그리스도의 보혈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예배해야한다.
2.그래도 말씀대로 삽니다.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요시야는 구석구석을 점검한다. 할아버지 므낫세가 한 일을 백성들이 똑같이 점치고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인간은 눈 앞에서 금송아지가 번쩍번쩍 한 것을 보고자 한다. 우상보고 절한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절한다. 신명기에도 하이나님의 말씀을 들으라~하나님께 듣지 못하는 자는 사람의 대화도 듣지 못한다.
대화가 안된다. 므낫세 할아버지가 세운 것을 요시야가 하나씩 지우고 제거하고 있다. 왜 제거하는 가? 율법을 말씀을 이루려하기 때문이다. 요시야는 이 책에 기록된 대로 이루게 하리라 하였다. 입으로 세운 언약이 결실한 삶이 되었다. 큐티하면서 날마다 결단하고 적용하는 것이 몸이 되고 삶이 되는 것이다. 큐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적용하면 삶이 되는 것이다.
요시야는 개혁을 완성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였다고 전에도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하고 성경은 요시야에게 최고의 평가를 하였다. 전무후무한 회개를 했다는 것이다.
마음과 뜻,,훗날의 요시야는 힘을 다하여,,언약을 세울 때는 없던 힘을 다하여 라고 하였다. 신명기6장에 사랑의 계명에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평가한다. 역대하는 힘을 다하여 ..유월절의 요시야는 자기 소유에서 3천마리의 소유를 내놓는다. 사랑은 이렇게 흔적이 남는다. 마음과 뜻을 다하면 시간과 돈과 힘이 나간다. 우리는 어떤가? 은혜도 받고 결심도 하지만 힘은 잘 안나간다.
힘은 거짓말을 못한다. 손과 발이 나가는 것이 어렵다. 내가 사랑하는대로 나가게 되어있다. 일주일이 어떻게 나가는지 살펴보면 내 마음이 어떻게 나가는지 알 수 있다.여러분의 돌이킴은 어디서 멈춰있습니까? 요시야는 어떤 자리에서 순종을 했는지 잊으면 안된다.
나라의 결론이 재앙이라는 확정판결을 받아도 힘을 다해 순종한 것이다.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된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결과로 순종하는 것은 거래이다. 요시야는 말씀대로 살았다. 우리는 예수 믿어도 이 땅에서 잘 살려고 기도한다.
이 땅이 짧고 구원이 최고라는 것을 알기에 나를 쓰시는 것 같다. 요시야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성전에서 발견된 책 때문이다.
그 말씀이 부수고 예배하게 했고 순종하게 했으며 살게 하였다. 말씀은 우리를 결심에서 멈추지 않고 삶으로 데려간다. 사람도 사건도 그대로여도 ..그래도 말씀대로 살 수 있어야 이것이 하나님 자체가 상급인 인생인 것이다.
3.그래도 하나님이 100프로 옳으십니다.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했다. 요시야는 돌이켰지만 여호와가 진노를 돌이키지 않으셨다. 이것은 갑자기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 아니다. 요시야는 이미 들었다. 진노가 꺼지지 않으리라. 성경은 위로의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고의 말씀도 똑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므낫세 때문이다. 문자적으로 보면 원인제공자가 있다. 남탓 때문이라고 ....했지만 성경은 우리가 ~ 누구 때문에 라는 말 뒤에 숨는 것을 막는다. 므낫세 혼자가 아니라 이 백성이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 요시야가 눈에 보이는 것을 다 정리했다고 했는데 왕이 우상을 치울 수는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다. 신접한 자를 찾아가는 그 마음은 남는다.
그 마음은 내 마음에 있다. 하루 아침에 없어지지 않는다. 인간이 선한게 하나도 없다. 우상보고 절하는데 돈보고 절하는데 내가 어떻게 끊는가? 마음을 변하게 할 수 없기에 예배로 데려와야 한다.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한다.
사람은 안변한다. 행위로 잘하는 것만 보려고 하면 안된다. 우상을 내 힘으로 정리할 수 없다.
차 장로님이 간증을 이야기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니 정리가 되었다고 말했다.
조상탓이라고 예레미야애가에서 우리는 탓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예수 믿는 요시야 같은 사람은 천번 억울한 일을 당해도 요시야 탓인것이다. 요시야 노래를 불러야 한다. 오호라 우리 범죄 때문이니라.조상탓이라고 기도했던 것이 내 죄라고 고백하는 기도에 도착하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이다. 항상 내 죄로 도착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짧기 때문이다. 한뼘이기 때문이다. 큐티 말씀에 오늘 여기 살아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말씀하신다.
살아있는 우리도 언약 앞에 서 있다. 므낫세 때문이라는 말씀이 오늘 살아있는 내 책임을 없애주지 않는다. 누구 때문이라는 피해의식 가해자 라는 생각이 다 죽는다. 여호와 자체가 상급이 못되기 때문이다. 거꾸로 물어야 한다. 나는 내 가족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므낫세인가? 물어야 한다. 직분이 좋을 수록 되는 일이 없기에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럴듯한 멋있는 므낫세가 너무 좋다. 부러워서 세상에서 꾀이는 목장이 되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판결문으로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버리리라 하셨다. 이 성전을 버리겠다고 하셨다. 성전이 있다고 사는게 아니다.하나님을 버리면 직분도 성전도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
요시야가 산당을 다 제거하되 ...물리치되..내 산당을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제거된다고 하신다. 사건이 그대로라고 해서 하나님이 틀리신 것이 아니다. 제일 어려운 회개이다. 내가 돌이켰는데 사건이 그대로이고 하나님이 옳으시다는 것이 제일 어려운 회개이다. 결과를 바꾸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100프로 죄인이고 하나님은 100프로 옳으시다.
요시야는 최종 심판이 철회된다는 약속이 없는데도 순종을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옳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보다 머리가 좋으시다. 그러니까 이 사건을 주시는 이유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흘린 눈물,내가 한 공로로 살아날 수 는 없다. 왕들 중에서 요시야만큼 돌이킨 왕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가 요시야 만큼 회개하는가? 요시야가 한 회개가 참된 회개이다. 회개의 눈물이 죄의 값을 치르는 눈물이 될 수 는 없다. 우리의 행위는 1프로도 선한 것이 없다. 잘난 척을 하면 안된다. 유월절 밤에도 죽음이 있었다. 어린양이 대신 죽었다. 어린양이신 예수님 의 피가 내가 받아야 할 죄와 형벌과 언약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이다. 나는 공로 없이 구원을 받았는데 므낫세처럼 물려받은 그 아버지에게 받은 성질,습관,우상이 내 안에서 반복되고 있다. 베드로전서에서 헛되 생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된 것이다. 죄가 대물림 되는 곳에서 구원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유월절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아래로 돌이켜야 한다. 참된 회개는 자기 눈물과 수고를 의지 하지 않는다. 오직 어린양의 피를 의지한다. 잘난척 하지 않는다. 행위로 정죄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우리 사건이 변하지 않아도 주님은 옳으시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도제목
A:동생이 세 아이 양육으로 힘든 상태에서 양약 알러지 증상으로 어제 새벽에도 또 쓰러져 큰 병원에서 진료받고 왔는데 영육이 회복되길
구원위해 기도하며 가족을 잘 섬기는 내가 되길
나와 내 사람에게만 관대하고 기도하는데 구원의 관점으로 지체를 바라보길, 목장에서 세상가치관으로 나누지 않도록
B:열심히 살아가는 이웃들을 보며 나의 게으름을 이겨내고 죄 지었을 때 회개 기도하길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히 여기며 하루를 살 수 있도록
C:군 생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할 수 있도록
D:갖고 있는 중독 끊어냈으니 그 중독이 멈춤이 앞으로 지속될 수 있길
한주간 목표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E:매일 말씀 묵상과 기도로 내 안의 산당이 은혜로 무너지길..나의 거룩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분노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이 되어 생각의 변화가 생기고 100프로 옳으신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 되길
수술 후 조직 검사 결과 무탈하길,,건강을 위해 한 주간 적당히 일하고 운동 꾸준히 하고 ,건강식 잘 챙겨 먹기 적용
부모님,남동생, 언니네 가족 구원 이루어 주시길
겸손히 신교제,신결혼 위해 은혜를 구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