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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9.(주일) 열왕기하 23:21-27「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김양재 목사님
21. 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22.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23.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24.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2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돌이켰는데도 그대로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1. 그래도 예배합니다(21-23절)
21. 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_왕하 23:21
바로 앞에서 요시야는 계속 부수고 태우고 빻고 했잖아요. 그런데 요시야가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은 “더 부수라”가 아니고 “유월절을 지키라!”였어요. 그 질긴 산당들을 다 제거한 왕이 온 백성을 모아놓고 어린 양을 잡는 거예요. 이 명령을 누구에게 내립니까? ‘뭇 백성’이에요. 우상을 내다 불사르라는 명령은 대제사장과 제사장에게 내렸는데요. 그런데 유월절 지키는 일에는 온 백성을 지금 부르는 거예요. 유월절이 어떤 절기죠? 한자리에 모여서 어린 양을 같이 먹는 절기잖아요. 이것은 ‘혼밥’하는 게 아니에요. 구원은 혼자 받아서 혼자 간직하는 게 아니라 같이 모여서 같이 먹고 나누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산당 예배는 기복 신앙인데 이 산당을 제거해야 공동체에서 누릴 수가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산당이 가득하기 때문에 목장을 싫어하는 거예요.‘나 혼자서 잘되면 되는데 무슨, 왜 같이 누려’ 이렇게 되는 거죠. 유월절 어떻게 지키라고 합니까?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고 해요. 아주 중요해요. 율법이 아니고 ‘언약책’이라는 소리를 요시야가 많이 해요. 전능의 하나님에서 이제 ‘여호와 하나님’, 율법의 하나님에서 ‘언약의 하나님’, 기복의 하나님에서 ‘팔복의 하나님’. 그런데 이게 완전히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
로 예배를 바꾼 산당 제사와 정반대인 거예요. ‘내 마음대로’가 아니고 ‘기록된 대로’! 말씀을 내 형편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나를 말씀에 맞추는 거죠! 그러면 유월절이 뭡니까? 그렇게 유월절을 지키며 심판이 넘어간 날이잖아요. 하나님이 애굽에 마지막 재앙을 내리시던 밤에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더니 이스라엘 백성의 집을 다 넘어가셨어요. 패스 오버(Pass over) 하셨어요, ‘유월(逾越)’하셨어요. 그들의 행위를 보신 게 아니에요. 문설주에 발린 피를 보셨어요. 그리고 그 집을 넘어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라고 죽음이 없었던 게 아니에요. 그 집에도 죽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린 양이 대신 죽은 거예요. 그러니까 유월절은 ‘우리가 잘해서 살았다’가 아니라 ‘어린 양의 피로 살았다’는 ‘구원의 기억’인 거예요. ‘어린 양의 피로 살았다.’ 내가 잘한 게 없는 거예요.그런데 이 유월절을 그동안 어떻게 했나요?
23.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_왕하 23:22-23
요시야가 산당을 부수러 저 북이스라엘의 벧엘까지 갔었잖아요. 그리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그 돌아온 길의 종점이 바로 여기예요.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산당을 다 제거하러 나갔던 길이 이제 예배 앞에서 끝난 거예요.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사사 시대부터 요시야 때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어요. 모세 오경에서 그렇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였어도 여호수아 5장 10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킨 이후로는 유월절을 지켰다는 기록이 없어요. 사사 시대는 물론이고 다윗과 솔로몬 때도 유월절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없어요.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진 이후에 수백 년 동안 남유다나 북이스라엘이나, 또 왕이나 백성이나 죄다 유월절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죠. 언제 이거(유월절을) 지키기 시작했나요? 북이스라엘이 드디어 앗수르에 망한 후에 히스기야가 잠시 후에 지켰어요, 역대하 30장에 보면. 그러나 그때 유월절 지키려고 그러니까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조롱하고, 참여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 남은 몇 사람이 참여했어요. 조금 시간이 걸렸어요, 참여하는데. 그러다 보니까 북이스라엘에는 성결하게 한 제사장들이 부족하고, 백성도 예루살렘에 모이는 것이 힘들어서 정한 때에 지킬 수 없어서 1월 14일이 아니고 2월 14일에 날짜를 바꿔서 불완전한 유월절을 지켰어요(대하 30:1~3). 그래도 처음으로 이렇게 지켰어요. 그런데 드디어 요시야가 제대로, 남북 왕국 역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월절을 아주 성대하게, 거대하게, 구체적으로 막 지키는 거예요. 역대하를 보면은 역대하 34, 35장을 좀 쫙 좀 읽어보세요. 아주 그냥 열왕기는 그냥 한 절로 지나가는데. 이걸로 봐서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정말 지역감정을 타파한 왕이에요. 복음 전하는 자들은 지역감정, 개인감정, 나라 감정을 모두 타파해서 전해야 되는 거예요. 선지자들이 남유다보고 “바벨론에게 잡혀가라”고 그러잖아요. “너희들이 너무 악을 행해가지고” (반면에) 거짓 선지자들은 “절대로 안 잡혀간다” 이러잖아요. 하나냐 같은 거짓 선지자들은. 그런데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인데 너무 좋아하잖아요. 우리가 전쟁 안 나려고 지금 예수 믿고 이러는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참선지자들은) “바벨론에 영원히 살 것처럼 가서 순종해라, 복종해라” (외쳤어요.) “바벨론, 그 망할 놈의 바벨론에 대항해라” “앗수르에게 대항해라” 그렇게 외치지 않았어요. 그들도 우리의 훈련을 위해 붙이신 이방이라는 말이죠. 이렇게까지 했는데 하물며 같은 민족인 우리의 형제 민족을 그렇게 망했다고 무시하면 되겠어요? 지금 근데 망했다고 같은 민족으로 살면서 지역감정으로 진영 논리로 그렇게 “상대방을 타도하자”를 외치면 되겠습니까? 내 속의 악을 직면하면서 수고하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지는 것이 응답이기 때문에 믿는 우리는 늘 구원을 위해서 생각하고 적용하고 기도해야 하는 거예요. 누가 옳고 그름이 아닌 거예요. 성경에는 가장 악한 므낫세도 구원을 받았다고 해요. 이 악한 왕도 구원을 받았어요. 성전인 나를 이렇게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나를 수리해 가면 조금씩, 조금씩 치료가 되어 가는 거예요. 백성들도 요시야가 사는 날에는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해요(대하 34:33). (요시야가) 죽자마자 이제 딴 길로 가는 거예요. 성경은 요시야처럼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해요. 전무후무한 유월절이에요. 예배를 드리는 것과 이렇게 ‘기록된 대로’ 여호와 앞에 드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거예요. 내가 선한 일을 하는 것이 내가 하는 게 아니고, ‘기록된 대로’ 해야죠. 나의 공로가 하나도 없는. 그래서 역대하 35장에 유월절에 대해서 쫙 나오는데 그렇게 구체적으로 드렸어요.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남북이 하나가 되어 절기를 지키게 되었어요. 이제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인생의 목적이 거룩인데… 예배를 드리는 목적이 거룩이라고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5). 거룩한 것의 끝에는 또 돈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요시야가 (역대하 35장) 7절에 보면은 유월절을 지키면서 “그 모인 모든 이를 위하여 백성들에게 자기의 소유 양 떼 중에서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삼만 마리와 수소 삼천 마리를 내어 유월절 제물로” 준 거예요. 이렇게 요시야가 먼저 본을 딱 보였어요. 제물을 딱 드렸어요. 그러니까 (역대하 35장) 8절에 방백들도 즐거이 희생을 드렸어요. 저 맨 위에 지도자가 본을 보이니까 다 즐거이 드려 서로 주고받고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주었고”(라고 해요.) 헌금은 신앙고백이 맞아요. 그러니까 요시야가 먼저 드리니까 다들 즐거워하여 희생을 드리며 따라 합니다. 여러분, 지도자가 본을 보여야 다들 즐거이 따라 해요. 요시야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보이기 때문에. 위정자가, 목사가, 부모가 전부 돈이 나의 목자가 되면 밑에 백성 자녀도 다 돈이 나의 목자가 되는 거잖아요. 그죠? 본을 보여야 따라 하는 거예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 예배 안 드리시는 거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이렇게 드리고 계세요?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이렇게 드리고 계세요? 그냥 여기 와도 “남편이 아직 안 바뀌어요! 내가 T.T. 갔다 왔는데도 안 바뀌어요!” “우리 애 좀 붙게 해줘요” “사역 좀 풀리게 해줘요” 이런 제목만 들고 나오는 예배 말고 나를 구원하신 어린 양의 피 때문에 예배한 적이 있으세요? 있으시겠죠? 그러니까 내 자녀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내 자녀 때문에 힘들면 남의 자녀 위해서 가다 보니까 오늘날 이 ‘T.T.’라는 선교 전도 여행이 자리를 잡았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먼저 자기 제물로 모든 이를 위하여 내어놓으시니까 모두가 자발적으로 이렇게 동참하게 된 거예요. 이게 많고 적음이 아닌 거예요. 특별히 유월절이 뭐예요?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도록 주신 절기이기도 한 거예요. 다 같이 모여서. 그러니까 진짜 우리의 T.T.는 유월절이에요. 자녀가 물으면 들려주라는 거예요. 우리가 죄만 물려주는 게 아니고 구원의 이야기도 물려줄 수 있어요. 어린 양의 피로 우리 집을 구원하셨다는 이야기를 T.T. 가서 간증하는 것보다 더 잘 들려줄 데가 어디 있겠어요? 그죠? 이것은 완전히 가장 중요한 유산인 거예요. 간증 바이블 맞아요. 구원의 이야기를 날마다 자녀들에게 들려줘야지, 이게 다음 세대를 향한 신앙 교육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요시야의 유월절 예배가 어떤 상황에서 드려졌는지생각해 봐야 돼요. 요시야는 나라에 재앙이 임한다는 말씀을 이미 들었어요.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왕하 22:17)는 기가 막히는 약속을 받았어요. 이 약속 같지 않은 약속. 그래̇ ̇도̇ 유월절을 지켜요. 그래도̇ ̇ ̇ 예배한 거예요. 나라가 망하고, 안 망하고는 상관이 없어요.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내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옳으시기 때문에. 이걸 오해하시면 안 돼요. ‘으응~ 그래도 예배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뭐 바뀌겠지 여기서는 그런 말은 아니에요. 나의 방향이 반대인 거예요. 내가 원하는 때와 방식대로 바뀌지 않아도 나는 예배를 하겠다 이거예요. 왜죠? 여러분, 그대로̇ ̇ ̇ (내 모습 이대로가 아니고) ‘내 상황이 그대로’라는 말이 제일 아프시잖아요. 그죠? 기도했는데 남편이 그대로고, 자녀가 그대로예요. 다 그대로예요. ‘내가 왜 예수 믿는지 몰라’ 이게 (여러분의) 주제가잖아요. 그런데 그대로̇ 인 게 하나 더 있어요.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어요. 어린 양의 피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그대로̇̇예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치 않고 그대로이셔요. 언제나 동일하세요. 그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서 요시야에게 가장 힘든 역할을 맡기신 거예요. 그러니까 요시야가 아무리 회개해도 “돌이키지 않겠다”고 그러잖아요. 애들만 안 들리는 게 아니고, 어른들도 우리들교회 오시면 말씀이 안 들리시면 화를 내고요. 여전히 목장에 안 들어가요. 안 들어가요. 예. 어른들은요, 철이 들었는데도 안 들어가요. 중2병 아이들은 철이 안 나서 수련회를 가요. 거기 가서 안 들어. 그게 어디예요? 가서 안 듣는 거.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자녀들이 속 썩이는 부모들이 교사를 해야 교사들이 말이 없어요. 그러니까 내 자녀들이 속 썩이면 가서 교사를 하셔야 돼요. 속 썩이지도 않는데 교사한다면 200점! 하나님이 축복하실 거예요. 다음 세대를 위해서 이렇게 헌신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고 어른이 구속사가 이해가 안 돼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는 다른 세대가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해요. 6·25 이후에 못 살던 시대에는 그냥 불일듯이 기독교가 일어났어요. 그리고 이제 그 5천 년 동안에 우리가 문맹 국가였잖아요. 진짜 90 몇 프로 문맹 국가였는데, 이제 기독교 선교사들이 와서 학교 세우고, 병원 세우고, 기독교 명문이 많았어요. 저도 이 기독교 명문 중에 하나를 나왔잖아요. 이거 어렸을 때부터 성경 배우고 찬송하고 이건 대단한 일 같아요. 이제 그러다가 강의석이라는 사람이 한경직 목사님이 세우신 대광고등학교 3학년 때, 학생회장이 되어 가지고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고 그래서 퇴학을 당했죠. 그런데도 이제 봉사 특별 전형으로 서울법대를 들어간 거예요. 그리고는 이제 거기서 다시 소송을 해서 승소했어요. 그러므로 종교의 자유가 아주 그냥 ‘강의석 법’이라고 할 만큼 이제 모든 사립학교에서 마음대로 이제 그 채플 하는 게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제가 20년 동안에 강의석이라는 분이 무엇을 했나? 그러니 그때부터 이제반전 운동에, 군복무 반대에, 국군의 날 알몸 시위를 하고, 더불어 병역 거부를 해가지고 구속이 됐더라고요. 그래서 출소 후에 택시 기사를 하고, 호스트바 등을 거쳐서 지금은 이제 그런 활동을 뒤로 하고, 학원 과외 강사로 살고 있다고 했어요. 할 수만 있다면 강의석 씨가 과거 일을 회개하면 너무 좋겠어요. 우리나라의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해서 이렇게 살게 되었는데, 지금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어 이렇게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고 있는데, 제가 이 나무위키 같은 걸 읽어보면, 그냥 “이 학교가 독재를 하면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게 했다”는 둥 그래서 ‘강의석이가 아주 옳다’는 둥 그냥 뭐. 그렇게 그걸 보니까 이제 편집 방향이 이게 얼마나 무서운지를 제가 이제 알게 됐어요. 근데 그때 강의석이를 반대했던 그 학교 선생님들이 그리울 지경이예요. 강의석이를 찬성했던 교목 선생님은 같이 이렇게 나가셨잖아요. 그러니까 요새는 선생님이 그 학생 같은 얘기를 하는 거예요, 선생님들이. 옛날엔 학생이 지금 그랬다면 선생님들이. 지금 중학교 2학년 아이가 또 저기 목사님한테 편지를 보낸 거예요. 요즘은 사실 이제 없는 이야기죠. “알맞은 가난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는 거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유월절 밤에 이스라엘이 왜 살았다고요? 그들이 착해서 산 게 아니고 ‘어린 양 피’때문에 심판이 그 집을 넘어간 거예요. 내 나라가 그대로여도, 배우자가 그대로여도, 자녀가 그대로여도, 내 사건이 그대로여도! 그리스도의 보혈은 변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고! 그래서 우리도 그래도 예배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 적용 질문
Q. “오늘은 예배 좀 쉬자”할 때는 없습니까?
Q. 내가 드리는 예배는 ‘기록된 대로’입니까, ‘편한 대로’입니까?
Q. 자녀가 “교회는 왜 가야 해?”하고 물으면 나는 무엇을 말해 줄 수 있습니까?
그렇게 모든 것이 ‘그대로’예요. 그대로여도 그래도 예배드려야 되고, 두 번째는
2. 그래도 말씀대로 삽니다(24-25절)
24.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_왕하 23:24
요시야가 또 유월절로 끝나지 않았어요. 예배를 회복한 왕이 이제 삶의 구석구석을 마저 정리합니다. 신접한 자, 점쟁이, 드라빔, 우상, 모든 가증한 것. 그런데 이 목록 어디서 본 목록이잖아요. 할아버지 므낫세가 했던 똑같은 일이에요.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왕하 21:6). 그걸 지금 할아버지가 했던 일을 백성들이 똑같이 하고 있어요. 인간은 눈앞에서 당장 금송아지가 번쩍번쩍한 것을 너무나 보고자 해요. 교회에 와도 금송아지 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우상 보고̇ ̇ 절하지 우상 듣고̇ ̇ 절하지는 않아요. 우상 보고 절하지. “그 여자 내가 보고̇ ̇ 놀랐어” 그러지. “내가 그 여자 듣고̇ ̇ 놀랐어” 그러는 사람 있어요? 듣고 놀랐어요, 보고 놀랐어요? 신명기에도 그래서 “들으라” 하시잖아요. 하나님께 듣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의 대화도 못 들어요. 대화가 안 돼요. 그러니 할아버지 므낫세가 세운 것을 손자 요시야가 하나씩 지금 지우고 있는 거예요. 왜 제거합니까? 본문에 이유를 딱 하나만 대요.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요시야가 언약을 세우며 백성 앞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왕하 23:3) 어떻게 이루게 해요? 입으로 세운 그 언약이, 그 결심이 오늘 몸이 된 거예요. 삶이 된 거예요. 큐티 적용이 나의 삶이 된 거예요. 그것이 몸이 된 거예요. 그래서 날마다 어렸을 때부터 말씀 묵상하고 적용해서 그런 것들이 하나의 열매가 있으면 그게 자꾸자꾸 쌓여서 온몸에서 조직이 되는 거예요. 새로운 조직으로 바뀌는 거예요. 성경은 한꺼번에 한 장, 두 장, 세 장 못 읽어요. 조금씩 먹어서 생각해서 씹어서 소화해서 들어가야 새로운 조직이 돼서 몸이 되고 이제 삶이 되는 줄 믿습니다.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요시야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정리했어요. 개혁을 완수했어요. 성경은 이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25. 요시야와 같이 마음̇ ̇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 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_왕하 23:25
성경이 왕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평가죠.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고 전무후무한 회개를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놀라운 게 하나 숨어 있어요. 열왕기하 23장 3절에 언약을 세울 때는 요시야가 어떻게 지키겠다고 했어요? “마음̇ ̇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여호와께 순종하고” 마음과 뜻, 둘이에요.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_왕하 23:3 그런데 오늘 훗날의 요시야에 대한 평가는 25절처럼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하나가 더 늘었어요. 언약을 세울 때는 없던 “힘”이라는 말이 요시야에 대한 마지막 평가에 들어간 거예요. 이 말은 어디서 왔을까요? 바로 신명기 6장 5절에 “너는 마음̇ ̇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 ̇하라” ‘사랑의 계명’이에요. 그러니까 성경이 요시야에게 준 최고의 평가는 “요시야는 일을 많이 했다가 아니고! 힘을 다해 사랑̇했다!!”는 거예요. 우리 이번 8월달 큐티인 8월호 표지에 “One LOAD, All Heart!” 읽은 분 계시나요? 기억나시는 분 계세요? 이 말이 지금 그 말이에요. 역대하는 그 ‘힘’이 어떻게 나갔는지도 지금 보여주잖아요. 유월절에 요시야가 자기 소유를 3만 마리, 3천 마리 다 내놨다고 그랬잖아요. 사랑은 이렇게 흔적이 남아요. 돈이 나가고 시간이 나가고 손과 발이 나가는 거예요. 우리는 마음과 뜻까지는 나가요. 은혜도 받고 결심도 하고 눈물도 흘려요. (그런데) 힘은 잘 안 나가요. 시간이 안 나가고 돈이 안 나가고 손과 발이 안 나가요. 여러분 힘은 거짓말을 못 해요! 그죠?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내 힘이 나가게 되어 있어요. 내 물질이 어디로 나가는지, 내 일주일이 어디로 나가는지 보세요. 거기에 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게 있어요. 내 일주일의 시간에 여러분의 돌이킴은 지금 어디서 멈춰 있습니까? 근데 오늘 요시야가 이 순종을 어떤 자리에서 했는지 잊으면 안 됩니다. 나라의 결론이 ‘재앙’이라는 확정판결을 받은 뒤예요. 요시야는 그대로 힘̇을 다해 순종한 거예요. 내가 원하는 결과가 보여야 힘을 내는 건 순종이 아니라 ‘거래’예요. ‘내가 했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해주셨더라’ 그거는 ‘거래’고요. “그냥 내가 열심히 해도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더라” 요시야는 그래도 말씀대로 살았어요. 그래도 말씀대로 살았어요. 요시야를 여기까지 데려온 게 뭐였습니까? 성전에서 발견된 책̇이었잖아요. 그 말씀이 부수게 했고 예배하게 했고 삶으로 순종하게 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결심’에서 멈추게 두지 않아요. 삶으로 데려갑니다. 우리도 사건이 ‘그대로’여도 ‘그래도’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도̇ ̇ ̇ 예배하고 그래도̇ ̇ ̇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Q. 내 신앙이 ‘마음과 뜻’에서 멈추고 ‘힘’까지 가지 못한 자리는 어디입니까? 시간입니까, 돈입니까, 손과 발입니까?
Q. 말씀 앞에서 결단해 놓고 아직 순종하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Q. 보이는 것은 정리했는데,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 남겨둔 것은 무엇입니까?
쇼핑 욕구는 여자들도 남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이게 끊임없이 사는 거예요. 거기에 무슨 열등감이 숨어 있어서 그러니까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 아무리 정리해도 정리해도 정리 안 되는 힘이 이렇게 남아 있는 거예요. 근데 그거 “그냥 나는 싼 거 사는데 뭐~”가 아니라 항상 think 해서 깊은 그 근본을 파헤쳐내야 되는 거예요. 근데 내가 ‘여자 좋아서 이렇게 사는구나!’ 이거 깨달은 것만 해도 대단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공동체에서 목장에서 이렇게 말씀으로! 기록된 대로! 말씀대로 사는 거예요! 그대로예요. 상황이 다 그대로예요. 우리 어떻게 한다고요? 그래도 예배! 그래도 말씀대로 살아요! 그리고 가치관이 그래도 하나님이 옳으세요. 그래도 하나님이 100% 옳으세요. 이 사건은 그래도 하나님이 옳으세요! “그래도 옳으세요!” 다 한번 해봐요. 시작~! “그래도 옳으세요!” 할렐루야!!
3. 그래도 하나님이 옳으십니다(26-27절)
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_왕하 23:26
방금 25절에서 “전에도 없었고 후회도 없었다. 전무후무한 회개다.” 그런데 26절 첫마디가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어요. 여러분, 요시야는 “슈브”했어요. 돌이켰어요. 근데 하나님은 돌이키지 않았어요. 슈브하지 않았어요. 같은 ‘돌이키다’라는 말 ‘슈브’인데 이 정반대로 쓰일 수가 있어요. 이거 하나님이 오늘 갑자기 정하신 게 아니고요. 요시야는 이미 열왕기하 22장에서 이 유다의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왕하 22:17) 이 말 들었어요. 그죠? 그래서 옷을 찢고 통곡했잖아요(왕하 22:19). 말씀대로 이루리라는 것은 위로의 말씀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에요. 경고의 말씀도 똑같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럼, 왜입니까? 본문이 이유를 알려줍니다.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므낫세 때문이래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우리 마음은 또 어디로 갑니까? “거봐! 나 때문이 아니잖아. 므낫세 때문이잖아” 그죠? “아버지 때문이잖아. 어머니 때문이잖아. 시어머니, 시아버지 때문이잖아. 남편 때문이잖아. 아내 때문이잖아. 그 녀석 때문이잖아. 그 사람 때문이잖아.” 우리가 살면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내가 너만 아니었으면~” 맨날 그 얘기를 이제 여러분들은 접으셔야 돼요. “너만 아니었으면, 저 집사만 아니었으면” 본문은 분명히 “므낫세 때문”이라고 해요. 그건 뭐예요? 성경은 우리가 그 말 뒤에 숨는 길을 딱 그냥 막아요. 므낫세 혼자였습니까? 성경 21장에서 뭐라고 합니까? “이 백성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했다”(왕하 21:9)고 해요. 혼자 한 게 아니에요. 므낫세를 따라간 백성들의 마음이 있었던 거예요. 요시야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 정리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도 왕이 우상을 치울 수는 있었어도 사람의 마음까지 돌이킬 수는 없는 거예요. 근데 므낫세가 55년 왕노릇하는데 따라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냥 꾀임을 받아요. 너무 보기만 해도 위대해 보여요. 압살롬이 마음을 다 훔쳐 갔듯이 백성들이 그리로 따라갔듯이 우리가 그냥 겉으로 보고 멋있고 이러면 다 따라가는 거예요. 므낫세 따라가고 압살롬 따라가고. 그러니까 그 우상을 치울 수는 있어도 사람의 마음까지 돌이킬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신접한 자를 없애도 신접한 자를 찾아가던 그 마음은 남는 거예요. 그 마음이 지금 어디 있어요? 바로 내 안에 이렇게 남아 있어요. 여러분들이 남편의 외도나 또 아내의 외도나 외도했는데 그다음에 이제 돌아왔어요. 그럼, 여러분들은 맨날 그러는 거예요. “지금 마음은 거기 가 있지? 내가 안 그런 거 빤히 알아. 아휴, 그렇게 위선 떨지 마. 내가 마음 다 거기 있는 거 아는데 왜 그래? 좀 진정성 있게 해봐. 싫으면 싫다고 해봐.” 그러면 싫다고 하면 여러분들이 “왜 왔어?!!” 또 이러죠?^;; 마음이 하루아침에 … 인간이 악한데 믿음도 없는 사람들이 외도했다가 무슨 자기 힘으로 돌아올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조강지처의 면류관이 큰 거고 몸이라도 와 있는 게 어디예요? 그러니까 이제 마음은 차차 정리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아니면 그 마음을 정리할 사람이 없어요. 여러분이 반찬 잘해주고 옷 잘 입는다고 돌아오는 게 아니에요! 우리 그 차 장로님이 그랬잖아요. “내가 조강지처 불쌍해서 돌아왔으면 그건 얼마 못 간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니까 내가 이렇게 돌아왔지.” 이게 큰! 아주 중요한 본질적인 진리예요. 그러니까 외도했다고 맨날 그냥 손가락질하고 안 보고 각방 쓰고 ‘난 용서 안 해. 죽을 때까지 용서 안 할 거야.’ 이러면서도 나가나? 안 나가나? 이것만 보고 있고.^^ 그렇게 앞뒤가 다른 건 바로 여러분이야!! “용서 안 해!” 그러면서도 나가나? 안 나가나? 들어오나? 안 들어오나? 그따위 짓 좀 하지 말고. 그러니까 집에 돌아왔으면 감사하고 교회에 오면 감사하고 기다려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본을 보여야 되는 거예요.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나중에 이렇게 기도해요. 처음에는 “우리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이게 예레미야애가 5장 7절이에요. 그러니까 조상 탓을 해요. 우리도 똑같아요. 그런데 이제 그 기도를 하다가 여기까지 와요.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 16절에 보면 조상 이야기로 시작한 기도가 내 죄까지 도착하는 거예요.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내 죄, 아내가 바람을 피워도 내 죄까지 도착을 해야 되는 거예요. 이게 회개인 거예요. 뭘 옳고 그름으로 인간이 선한 게 하나도 없는데 예수 없으면 당연히 돈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쇼핑 좋아하고. 그건 인간의 본능인 거예요. 그거 가지고 손가락질하면서 “산다 안 산다, 죽는다 산다” 그게 유치한 짓을 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은 유치해요. 그죠? 우리가 하나님을 이제 만나야 되는 거예요. 오늘 큐티 본문에서 하나님이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신 5:3) 그러잖아요. 내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가 세운 게 아니다. 나랑 세운 거다! 언약을 옛 조상들의 옛 이야기로 밀어놓을 수 없다는 거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도 이 언약 앞에 서 있는 거예요. ★“므낫세 때문”이라는 말이 오늘 여기 살아있는 내 책임을 없애주지 않아요. ‘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냐?’만 물으면 안 돼요. “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냐?” 이딴 얘기는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이제 거꾸로 물어야 돼요. “나는 지금 내 가족에게 내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므낫세인가?”를 돌아봐야 돼요. “나 때문에 누가 꼬임을 받고 있는가?”이거는 100명 중에 1명도 예외가 없어요. 성인군자라도 예외가 없어요. 나 때문인 거예요. 나 때문인 거! 나로 이제 그 결과가 나까지 와야 되는 거예요. 내 책임까지 이렇게 와야 되는 거예요. 사람을 살리려는 이 마음이 있어야 되는데 교양 있는 얘기만 하고 자기 얘기는 하나도 안 하니까 그래도 목장은 가야 복을 받는다고 그러니까 오는 게 또 어디예요? 그래서 그분들을 향하여서 제가 지금 메시지를 발표한 거예요. 이 구속사가 안 들리면 모든 것이 걸려요. 그래서 이 중2병 아이들 뭐라고 욕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제 그리고 하나님이 판결문을 보여주는 거예요. 아니! 그러니까 왜 그러냐 하면 그럴듯한 멋있는 므낫세를 우리는 너무 동경하니까. 므낫세가 판치는 나라잖아요. 그죠? 문벌, 학벌, 그냥 성공, 돈 모든 거 다 갖췄잖아요. 그래서 내가 목장에서도 그 멋있는 므낫세가 되어서 세상으로 꼬이는 목장이 되면 안 된다는 거죠. 므낫세가 왕 노릇하는 목장이 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요시야가 왕 노릇을 해야지 그죠? 그래서 하나님이 27절에 판결문을 보여줘요.
2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_왕하 23:27
아무리 해도 요시야의 결론은 “버리리라”. “내가 택한 이 성,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 하나님이 친히 택하시고 이름을 두신 곳이에요. 그 성전을 버리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북이스라엘이 이미 그렇게 망했잖아요. 근데 그 말을 이제 유다에게 똑같이 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성전이 있다고 사는 게 아니에요. 직분이 있다고 사는 것도 아니에요. 하나님을 버리면 성전도 직분도 나를 지켜주지 못해요!!지난주에 “요시야가 산당을 다 제거하되” 했잖아요. 근데 오늘 하나님은 유다를 “물리치며” 하시는데 ‘제거하되’와 ‘물리치며’가 똑같은 말이에요. 그러니까 ★★내 산당을 제거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제거하신다는 거예요. 내가 내 산당을 제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를 제거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건이 ‘그대로’라고 해서 하나님이 틀리신 게 아니에요. 사실 이게 “제일 어려운 회개”예요. 내가 돌이켰는데도 그 사건이 그대로예요. “그래도 하나님이 옳으십니다”
하는 이 회개. 이것처럼 어려운 게 어디 있어요? “제가 이만큼 했잖아요. 이제 바꿔주셔야죠!” 하고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 회개예요. 우리는 100% 죄인이고 하나님 100% 옳으시기 때문에 요시야는 최종 심판이 철회된다는 약속이 없는데도 순종을 멈추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이 옳으시기 때문이에요! 그럼 여기서 물어야 돼요. 하나님이 옳으시고 내가 100% 죄인이면 우리는 어떻게 삽니까? 우리가 흘린 눈물, 우리가 한 순종을 공로로 내밀어서 살 수 있습니까? 아니 왕들 가운데 요시야만큼 돌이킨 왕이 없다는데 우리는 그럼 뭘 내밀겠습니까? 요시야의 회개는 참된 회개였어요. 전무후무한 회개였어요. 그래도 그 회개의 눈물이 죄의 값을 치르는 피가 될 수는 없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잘해서 누굴 구원하 는 건 아니에요. 유월절 밤에 그 집에도 죽음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근데 어린 양이 대신 죽었다고 성경이 분명히 밝히는데요. “우리의 유월절 양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 느니라”(고전 5:7).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거예요. 우리의 죄의 형벌과 저주를 대신 담당하신 거예요. 그러면 므낫세처럼 물려받은 것들은 어떻게 합니까? 우린 여전히 아버지에게서 보고 배운 성질, 습관, 우상이 내 안에서 반복되고 있는데요. 베드로전서 1장 18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어린 양의 피가 조상에게서 물려받아 반복하던 헛된 행실에서 우리를 대속하는 거예요. 죄가 대물림되던 집에서 구원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우리가 구원의 이야기가 시작돼야 되는 거예요. 맨날 “학교 잘 가라, 공부 잘해라, 돈 잘 벌어라, 결혼 잘해라, 아이 많이 낳아라” 이딴 얘기만 하지 말고 ‘구원의 이야기’가 시작돼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요시야는 돌이켰어요.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어요.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돌이켜야 합니까? 내 회개를 공로로 내미는 자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피 아래로 돌이켜야 되는 거예요. 회개가 소용없다는 말이 아니에요. 참된 회개는 자기 눈물과 수고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어린 양의 피’를 의지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를 아는 사람은 잘난 척할 수가 없어요. 한마디로 “네가 예수 믿는데 왜 그 모양 그 꼴밖에 안돼냐?” 이딴 얘기를 감히 못하는 거예요! ★사건이 끝내 그대로여도 우리는 보혈 아래에서 다 같이 “주님만이 옳으세요!” 이 고백을 할 수가 있어요. 내 공로가 하나도 없는데 왜 딴 사람들을 정죄하고 그러냐고요. 내 아들 딸 식구들. “아휴, 난 저 사람하고 도저히 같이 못 가겠어!” 그렇게 정죄하는 여러분 이야말로 지금 있잖아요. 그 회개가 진정한 회개가 못 되는 거예요. 내 사건이 그대로여도 하나님이 옳으시다 고백을 해야 되는데….
Q. 회개했는데도 바뀌지 않는 그 상황을, 나는 지금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
Q. ‘저 사람 때문’이라고 말해 온 사건에서 ‘나 때문’으로 옮겨야 할 내 죄는 무엇입니까?
Q. 내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있는 것은 ‘므낫세의 헛된 행실’입니까, ‘어린 양의 구원 이야기’입니까?
목장 중보기도입니다.
같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1.저희 어머니 자궁내막암 대장암 잘 유지되기를
2.제 동생 가족 구원
3.제수씨 조카 제수씨 언니 8월12~16일 한국 관광 오는데 오고가는 길 지켜주시고 즐거운 관광되길
4.신교제 중인데 건강한 신교제 되기를
5.교회와 목장 사랑부 그리고 십일조 생활 잘 유지 되기를
B
1. 상황과 환경이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낙담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예배 하고 말씀 보고 여전한 방식으로 살아나갈 수 있도록
2. 집 누수 관련해 여러가지 공사들이 진행되는데, 순적하게 진행 될 수 있도록
3. 회사 프로젝트가 새로 생기고, 회사에 기름부어 주시길
4. 더운 여름날 엄마 아빠 건강 지켜 주시길
C
1. 성령충만..예배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 열어주시고 예배가 회복 될 수 있도록
2. 가족들의 영혼 구원과 건강
(아버지의 치매로 인하여 아버지, 어머니 모두 힘들어하시는데 두 분 모두 잘 이겨내시고 구원 받으실 수 있도록, 여동생 부신에 붙은 혹 제거 수술이 8월11일 화요일 오전에 예정되어있는데, 수술 진행 잘 되어 건강회복 할 수 있도록. 예수님 믿을 수 있도록)
3. 신교제, 신결혼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마지막으로 조금 더 노력해볼 수 있도록
4. 직장과 가정에서 빛과 소금 감당할 수 있게
5. 퇴근 이후 아무것도 하기 싫을만큼 무기력해지는데, 자격증 시험 준비를 잘 할 수 있도록 체력과 지혜 부어주시기를.
6. 다음 진로를 위한 준비 잘 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그 길을 열어주시도록.
7. 청년부 마지막 목장 유종의 미를 잘 거둘 수 있기를
D
1.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 갖기, 많이 어려움
2. 묵묵히 일상을 살아내기, 쉽지 않음
3.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불만, 자제하려고 노력
E
1. 악인 므낫세도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아빠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시고 내 속의 악을 먼저 직면하고 아빠를 불쌍히 여길수 있는 마음 주시기를
2. 지금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져 주실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기도할 수 있도록
3. 우리 목장을 지켜 보호해 주시고 한 주 살아갈 힘 주시기를 세상짐을 함께 나눠지고 함께 울어주는 목장이 되기를!
4. 유제품, 단음료, 밀가루 줄이기 12시 전에 취침하는 적용할 수 있도록!이번주 운동 2번 이상 꼭 적용하기!!
5. 직장지체와 적당한 거리 유지하면서 지혜로 대하고 정죄의 마음 사라지도록
6. 알맞은 때와 방법으로 부모님과 분리되는 길을 꼭 열어 주시기를! (허그임대오늘결과나오는데 되든 안되든 주님뜻으로 여기고 분리의 때를 계속 준비할 수 있도록)
7. 신교제에 소망을 갖고 간절함이 회복되기를
8. 엄마 간검사 결과가 안좋은데 구원의 사건으로 잘 해석하고 회복의 은혜 허락해 주시기를!!
9. 첫째조카 외롭고 힘들 때 주님찾고 만나기를 건강과 학업 가운데 지혜 허락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