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2026-08-16 목장보고서 (김지용 00)
[그의 무덤에 장사하니]
(열왕기하 23장 28~30절)요즘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유명하다. 10년간 귀향하는 내용인데, 오늘 요시야는 너무나도 빨리 돌아온다. 애굽왕 만나자마자 죽고 돌아와 참 허망해보인다. 돌이키지 않으신다 하더니 불세출의 개혁자인 요시야가 너무나도 간단히 죽었다. 그 한 줄의 결론은 그의 무덤에 장사된다이다. 성경은 이 죽음만을 보게 하지 않는다. 이 무덤은 덮기보단 드러낸 것이 더 많다. 무덤 앞에서 무엇이, 뭐가 드러나냐 하면1. 말씀과 맞선 나입니다. (28) 본문은 요시야의 죽음을 말하기 전에 기록에 먼저 주목하게 한다. 역대지략은 사라진 왕실기록인데, 하나님은 다른 기록은 역대하를 남겨주셨다. 역대하가 요시야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했는지 보고자 한다. 요시야의 모든 일을 생명책에 기록하시고 남은 사적과 행한 일을 기록하신다. (29) 애굽의 왕이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간다. 성경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함이라고 하는데 당시 상황은 애굽의 왕이 무너져가는 앗수르를 도우러가는 길이었다. 번역이 이상한가 싶다. 성경 저자의 관심은 사실 전달에만 있는게 아닌, 역대하 저자가 기록한 것 또한 요시야가 구속사의 주인공이고 왜 갑자기 죽었느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야 예수님으로 해석을 할 수 있고, 이게 구속사적인 것이고 의미를 주는 것이다. 항상 사건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니 성경에 감동된 저자로 인해 이것이 유월절로 해석된다. 해석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사건이 예수님과 연결이 되니 중요한 사건이 된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성령께서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주는 것인지를 듣는 것이 우리를 살린다. 오늘 내게 주시는 음성으로 듣는 것이 큐티이다. 요시야는 왜 그랬을지 우리는 생각해봐야한다. 구속사는 항상 상대방이 왜 그랬을지 생각하는 것이다. 당시 앗수르는 끝나가고 바벨론은 무섭게 일어나고 있었다. 앗수르의 니느웨가 무너졌어도 망명정부가 버티고 있었다. 애굽왕은 바벨론을 견제하기 위해 북쪽으로 지나가려 한 것이다. 이 삼파전에서 앗수르가 무너지니 애굽은 앗수르 휘하에 있던 가나안 민족을 바벨론이 먹을까봐 간 것이다. 그 길을 요시야가 막았다. 아마도 앗수르가 다시 일어서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북이스라엘을 한 나라로 품은 그이고, 유월절 신앙을 회복한 장본인으로서 출애굽을 누구보다 복음화 한 사람으로서 막을 명분이 차고 넘친 것이다. 역대하에서는 그들의 대화가 나오는데 놀랍게도 바로가 하나님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유다와 싸우려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을 적대하지 말라고한다. 요시야는 인정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요시야는 그의 말에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려고 한다. 훌다 여선지자가 전해도 차별하지 않고 잘 들은 왕이다. 가장 잘들었던 왕도 자기가 인정할 수 없는 통로로 오자 받아들일 수 없다. 목자가 하면 듣는데 아내가 하면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요시야도 그랬을 것이다. 성경은 정확히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이라고 한다. 그만큼 바로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확실히 명시하신 것이다. 문자적으로만 명령을 들으면 안되고, 명령은 이스라엘 밖에서도 있는 것과 하나님 자체에 대해서도 알아야한다. 요시야는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한다. 여선지자 훌다는 받들더라도 전세계가 떠받드는 느고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하나님을 빙자한 유대인의 편협성이 요시야에게도 있는 것이다. 부정해서 맞서 싸웠으나 하나님 입에서 나왔다고 하니 요시야도 찔려서 변장도 한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았다면 왜 변장을 했을까? 요시야가 느고를 무시한다. 이 무시를 모두가 우러러본다. 저 애굽왕에게 굴하지 않는 모습은 좋지만 변장은 왜 할까? 앞뒤가 안맞는다. 물어라도 봤으면 좋겠지만 애굽왕에 대해서는 명분이 너무나도 확실해서 물을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마지막은 듣지 아니하고란 말로 끝났다. 므깃도 골짜기에서 화살에서 맞아서 죽었다고 열왕기하는 끝낸다. 이 언급이 역대하와는 또 다르다. 얼마나 사람에 대한 판단도 내 믿음의 분량만큼 판단한다. 똑똑하고 착한 사람이 더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이미 많은 일들을 물으며 통과해왔기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확신이 생긴 것이다. 이 확신이 주님의 말씀과 한순간에 맞서게 된다. 요시야는 불순종을 하러 나간 것이 아니다. 누가 봐도 느고는 원수인 애굽이기에, 또 호전적인 왕으로 소문이 났다. 어제의 순종을 오늘의 정답으로 여기면 순종이 자기 의가 되고 만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말씀이 왔는데도 통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듣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우리가 원하는 통로로만 전달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어제의 순종이 오늘의 의가 되면 안되는데, 그냥 저놈은 나쁜 놈,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을 지어버린다. 지금 내가 어떤 말씀과 맞서고 있는지 생가갷야한다.적용: 하나님이 지금 내게 듣기싫은 통로를 통해 하시는 말씀은? 사람을 골라가며 듣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에 찔렸을 때 내가 하는 변장은? 바꾸는 시늉만 하면서 끝까지 고집하는 내 길은 무엇입니까? 2.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말씀과 맞서는 내가 드러나고 그럼에도 나를 놓지 않으신다. (30) 역대하는 마지막 장면을 상세하게 열왕기와는 다르게 명시한다. 요시야가 활에 맞아 중상을 입고 병거에 타고 가다 예루살렘에 이르러 죽고 장사하게 된다. 요시야가 변장을 했고 궁수들의 화살에 맞았다.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란 말이 마지막 말이었다. 39살에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았다. 가장 악한 왕 55년을 다스리고도 죽었는데 이 선한 왕이 39살에 급사하는 것이 참 부당해보인다. 그러나 수준높게 보시는 것은 요시야 같은 사람이다.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만큼 가까우 두고 다루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너희만을 알았기에 너희 죄를 하나도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신다. 아는 만큼 엄하게 다루는 것이다. 내 죄와 변장이 걸리는 것은 저주가 아닌 나를 잘 아시고 내게 더 맡기는 것이다. 요시야는 성경이 그 까닭을 직접 보여준 케이스이다. 징계는 물론 징계대로 임했지만 징계가 마지막 말씀은 아니었다. (30) 그의 무덤에 장사했다고 한다. 이 조용한 말씀이 사실 약속의 성취였다. 훌다를 통해 주신 약속이 내가 너로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고, 이곳에 내리는 재앙을 눈에 보지 못하게 하신다고 한다. 조상들의 묘실로 들어갔고, 이후 왕들은 애굽과 바벨론으로 눈이 뽑혀 끌려갔다. 전쟁터에서 화살 맞아 죽은게 평안히가 맞을까? 그의 죽음은 약속의 취소나 버림이 아니었다. 백성들이 이 후 어떻게 하는 지 보면 요시야는 온 나라와 예루살렘이 울었다. 이 만든 애가가 오늘날까지 전해온다고 한다. 복받쳐서 주체할 수 없이 나온 울음이 이 애가이다. 캄캄한 암흑기를 지나온 그들에게 요시야는 오아시스같은 왕이었을 것이다. 역대기에는 요시야의 일생을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한 모든 선한 일을 행했다고 썼다. 신실한 일, 충성된 일, 헌신될 일이라고 기록한다. 요시아의 마지막 실수가 이 업적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죽음조차 약속 밖으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요시야가 마지막 말씀을 놓쳤어도 하나님은 요시야를 놓지 않으셨다. 므깃도에서도, 가는 길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실족한 자의 장례식에서도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 계신다. 알 수 없는 일 가운데 큰 슬픔에 계신 분들이 있다. 왜 그런 모습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함부로 이유를 붙일 수도 없다. 성경이 그 일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슬픔이 그 죽음의 마지막 해석이 아니다. 주님의 사람이었다면 사람의 눈에 아무리 억울해보여도 성도는 살아도 주의 것, 죽어도 주의 것이다. 요시야의 죽음 하나님이 내리신 축복이다. 이 죽음은 주님 손 밖에 떠나지 않았다. 안 믿는 사람은 재앙이 올까봐 산당 예배를 드리고 재앙이 오면 슬퍼 눈물을 흘린다. 평소에 이 구속사적으로 큐티를 안했던 사람은 갑자기 부도가 나서 보면 해석이 될까? 갑자기 산당예배를 드리다가 하면 당연히 되지 않는다. 그 한 번의 사건을 위해 평소 큐티를 하는 것이다. 이 사건이 내 인생이 죽냐 사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적용: 내 인생에서 왜? 가 풀리지 않은 그 사건을 무엇으로 해석하고 있습니까? 내 감정입니까, 기억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입니까? 내 죄와 변장이 드러난 것을 저주로만 여깁니까? 나를 놓지 않고 다루시는 은혜로 받습니까?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겪는 지체 곁에서 나는 이유를 붙이고 있습니까, 함께 울고 있습니까? 3. 대신 죽으신 참 왕입니다. (30) 백성들이 급하다. 백성들이라고 변역된 이 용어는 나름대로 소위 괜찮은 이들(학력 좋고 좀 잘난 사람들)이 왕위 계승 서열조차 무시하고 여호아스를 왕으로 추대한다. 자질이 뛰어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기름 부음 받았다고 하는데 솔로몬과 여호아스를 포함한 3명의 왕만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성군인 요시야의 아들이지만 석달만에 눈이 뽑히고 끌려간다. 기름 부음이 이 왕을 책임져 줄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와잉 생긴 것은 보이는 왕을 달라고 떼부리는 기도를 드려서 생긴 것이다. 이것의 문제는 보이는 왕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달라고 했기에 문제인 것이다. 끊임없이 보이는 왕을 원한다. 이 왕정의 끝은 가장 좋은 왕인 요시야조차 백성들의 마음을 제대로 돌리지 못했다. 뒤를 이은 아들들조차 므낫세의 길을 따라갔다. 악의 평범성이 55년 동안 나라를 강타하니 요시야의 개혁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백성들이 세워달라던 왕이 결국 백성을 죄로 이끈 것이다. 우상은 나에게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성공이 신이니 성공을 위해서는 못할 것이 없다. 신이기에 가책이 없다. 그 자리에 하나님이 들어가기 전에는 성공을 섬기기에 자녀를 불 가운데 지나게 해도 가책이 없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 자리에 금송아지, 성전에 금송아지가 있는 것이다. 다 된다고만 부르짖으니 망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아닌 금송아지에게 빈다. 목자가, 지도자가, 부모가, 보이는 이들이 나를 구해주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무너지면 하나님이 무너졌다고 절망하고 외친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면 안믿겠다고 하고, 들어주면 필요없다고 떠난다.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이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지 신앙을, 죄인을 대신할 왕은 없었던 것이다. 요시야가 성군이었던 것은 권력과 권세를 자신을 위해서 쓰지 않았던 왕이 요시야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오르면 다 달라진다. 이 권력으로 왕 놀이를 하지 않은 유일한 왕이 요시야이다. 다윗은 요시야처럼 흠 없는 왕이 아니다. 많이 꺠지고 회개한 죄인이다. 죄인을 향해서 세우신 자기 언약으로 참 왕을 보낸 것이다. 아합과 므낫세같은 죄인도 회개하면 묘실로 받아주셨다. 요시아같은, 요나단같은 흠 없는 사람은 빨리 가야한다. 하나님은 무덤 안에 쌓여간 왕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무덤을 이길 왕을 준비하셨다. 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왕좌가 아닌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 우리의 죽음을 끝내셨다. 참왕이신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다. 성도에겐 무덤이야말로 천국의 문이었다. 적용: 나는 누구를 내 인생의 왕으로 세우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흔들리면 내 믿음까지 흔들리는 그 이름은? 나는 기름 부음과 직분, 신앙 경력이 나를 책임져 줄 것처럼 살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유일한 왕으로 모습니까?요시야가 죽었는데 무덤 앞에서 드러난 것은 말씀 앞에서 대항하는 내가 드러나고, 그럼에도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참 왕이신 예수님이 드러난다. 날 뒤쫓으며 보호하시는 것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요시야를 이끌고 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뒤쫓으며 추격하셔서 나를 끝까지 인도해나가신다.
- 참석자ABCDEFG- 한주간 어떻게 살았는지A: 수강신청 했는데 잘 한 것 같음.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를 다녀야할 것 같음. B: 실습이 끝남. 곧 대전에 내려가서 시험 열심히 준비해야함. C: 아버지 항암치료가 성공적임. 별 다를 바 없이 지냄. D: 화요일에 누가 뒤에서 차 박음. 학교 자주 감. E: 토익 스피킹 시험 보고 옴. 드디어 등록금을 다 모음. F: 건강했음. 책 읽음. 수강신청 잘 함. G: 수능이 얼마 안남았는데, 불안이 올라옴. - 기도제목A: 수강신청 정정기간에 드랍하는 거 잘 잡을 수 있도록. 회사 프로젝트 잘 마무리 될 수 있도록. B: 앞으로 많이 바빠질 것 같은데, 공부랑 취업에 관련해서 축복 있기를. C: 아버지 수술 전까지 최대한 좋은 상황만 있도록. 양육 잘 받을 수 있도록. D: 약속이 많은데 별 일 없을 수 있도록. 일정 잘 감당할 수 있도록. E: 현질 줄일 수 있도록. 양육 잘 받을 수 있도록.F: 건강하게 살 수 있게, 양육 잘 받을 수 있도록. G: 수험생활 하루라도 빠르게 탈출할 수 있도록. 수능 끝나고 후회가 남지 않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