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니
신종플루가 또다시
발병하고 있네요
연평도 사건도
구제역도 그렇고
정말 흉년의 때가
찾아 오는 것일까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마가복음 1:2~3>
우리의 미래를 충분히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말씀 해 주십니다.
흉흉한 이때야말로 말씀과 기도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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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창성하게 하셨다
<창세기 41:46~52>
1815년부터 근 100여년 동안 영국은 세계 최강국의 자리에 군림했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론의 영화도 몇십년에 그쳤던 것에 비추어 보면 대단한 전성기였다. 작은 땅떵어리의 섬나라가 어떻게 그토록 부흥할 수 있었는가? 특별한 강점이 없던
영국의 부흥은 인류사의 수수께끼이지만 교회사적으로 해석하면 그 답이 있다. 당시 영국은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견하던
나라였고, 그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창성케 되는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 오늘 말씀 52절에서 요셉이 차남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했는데, 이는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고백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창성을 고백하기까지 요셉이 어떻게 인도받았는지 살펴보자.
1. 성공 이후에 성공을 지키게 하신다(46절)
요셉이 30세에 총리의 자리에 오른다. 총리에 오르기에는 지나치게 젊다고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이 성공의 뒤켠에는 13년
이라는 모진 시련의 시기가 있었다. 송나라의 어떤 학자는 남자의 3가지 불행으로 어린 나이에 관직에 오르는 것과 부모의 후광을 업고 벼슬에 오르는 것, 그리고 문장이 지나치게 뛰어난 것을 꼽았다. 무턱대고 어렸을 때 부터 성공을 하면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성공의 시기가 얼마나 이르냐가 아니라 준비가 충분히 되어진 성공인지, 그 성공이 유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지가 중요하다.
조급함과 게으름 모두 일을 그르치기 쉽다는 것을 안 요셉은 일을 신중하게 결정할 줄 알았다. 요셉이 총리가 되자마자 처음 한 것이 온 애굽 땅을 순찰한 일이다. 성공을 하고 이렇게 처신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대학에 합격했다고 신입사원이 되었다고 장로가 되었다고 다 이루었도다 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세상의 성공가도에 조금만 올라서게 되면 그 성공이 독약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성공 이후에 그렇게 무너지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성공을 잘 지키고 싶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그럴 수 없다. 혹 지킨다해도 그런 사람은 예수 믿기가 어렵다.
요셉의 성공 곧 창성은 하나님 만이 주실 수 있다. 과거 영국이 지혜롭게 정세를 파악하는 덕분에 세계 최강국의 자리에 있었지만 단 한번의 실수로 그 자리를 미국에 내주었다. 그렇게 미국을 무시하다가 수에즈 사건에서 선택 한번 잘못하여 단번에 내리막을 걸었다. 성공 이후의 성공에 필요한 것은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겸손이다. 그 후 영국은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동성애가 판을 치는 등 영적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성공 이후의 성공은 하나님만이 하신다.
2. 적용 해야 한다.(47~49절)
꿈대로 풍년이 왔고 요셉의 해몽대로 그 산출물을 저축하는 적용을 했다. 칠년동안 풍년일수록 이런 적용이 쉽지 않은 법이다. 사람은 자신이 풍년이라고 여길 때 흉년대비는 커녕 딴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다가 막상 실전이 오면 무너진다. 하지만 그렇게 환란을 겪으면 다음에는 적용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환란이 비결인 것도 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으면 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가치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세상 가치관으로 마음대로 먹다가 죽어보겠다로 해석하면 정말 죽게 된다. 흉년이 없는 인생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적용하고 하나님께 맡긴다는 가치관이 필요하다. 당뇨가 자각증상이 없어서 대비하기 어려운 것 마냥 풍년일 때 흉년을 대비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내 꺼 지키기 위해서 주님을 떠났던 부자 청년...그 역시 흉년은 생각하기도 싫었을 것이라. 내가 벌어서 남 주리? 라는 기복신앙으로는 요셉이 아니라 부자 청년이 되는 길이다. 자기 신앙만 의식하느라 피상적 갈등 조차도 없는 사람들은 쉽게 무너진다. 7년 풍년에 겸손과 절제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요셉을 적용하게 하실 수 있다.
목사님도 한 때, 겉으로는 럭셔리한 환경에 있어 보였지만 매일 새벽기도 다니고 교회 화장실 청소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라다보니 저절로 흉년의 때를 사는 법을 배웠다고 하신다. 그래서 집이 망하게 되었어도 그게 무엇인지도 몰랐고 상처도 안되었다고 고백하셨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최선의 예비책을 가르치는 방법은 바로 각계각층의 사람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몸빼바지를 입고 다니고 교회에 그렇게 헌신하는 어머니라서 정작 사랑받은 것 느끼지 못했지만 그 모습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잔소리도 듣지 않았었고 피아노도 칠 수 있었고 받은게 많았다고....
가정있는 집사님이 자매를 사랑해서 우리들교회에 같이 나왔는데 얼마전에 이별통보를 받았다. 이혼하고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데 헤어지자니 지옥을 살고 있다고 도와달라는 것이다. 오히려 목자님이 더 이상 그 자매 힘들게 않게 도와주라고 부탁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은가?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한번 죄를 지으면 강팍해지고 너도 나도 지옥을 살게 된다. 순간적인 감정이 사랑인듯 싶겠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의 풍년이 앞으로 올 흉년을 못 보게 하는 것이다.
흉년을 잘 준비하는 적용에 잘 붙어 있으려면 어떤 고난에도 창성해진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샘표 주식회사는 간장업계에서 50년 넘게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매출이 70프로를 간장이 차지하는 만큼 한우물을 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믿는 우리도 하나님안에서 천천히 깊고도 넓게 한우물을 파며 살아야 한다.
내가 먹고 잘살라고 풍년이 온 게 아니라 적용하라고 온 거다. 그럼 왜 풍년을 주시지 않냐고 주셔야 적용할 것 아니냐고 묻고 있는가? 아직 내가 문제가 있어 안주시는 것이다. 요셉도 13년 동안 훈련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자.
3. 고난을 잊어버리는 은혜가 있다.(50~51절)
요셉이 첫째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은 므낫세라고 하였다. 므낫세는 잊어버린다는 뜻이 있고 요셉은 므낫세로 하여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고백을 한다. 형들에게 미움받고 팔려가고, 종살이 하면서 보디발아내에게 유혹당하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고, 술관원장은 자신을 잊는 등 원망되는 사건이 요셉에게는 많았다. 누구라도 잊기힘든 사건일 것이다.
요즘 세상은 쿨하게 잊어버리라 하지만 이 세상에 쿨한 것은 없다. 사람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다. 오히려 희로애락을 못느끼는 사람이 훨씬 아픈 사람이다. 여기저기서 쿨하다고 하는 것은 악다구니 쓰며 상처입기 두렵워서 스스로를 외롭게 만드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니다. 신음하기 마련인 삶 그게 우리 인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아픔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한 때 미국에서 조지 바울이 발견한 화 분출 방법이 유행했었다. 많은 청중앞에서 화를 내면서 서로를 고무 막대기로 사정없이 때리며 욕하며 화를 다스린다는 요지였다. 그런데 분석을 해보니 그 방법은 분노를 더 표출하게 만들었고 어떻게 상대를 욕하며 괴롭힐까 고민하게 하고 과거의 상처를 기억해서 공격하게 만들어서 스트레스 호르몬을 더욱 분출하게 만들었다고 판명되었다. 이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쿨하게 살 수 없다.
고난과 상처를 잊어야만 창성케 될 수 있고 그것은 ONLY 하나님만 하신다. 총리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게 되자 요셉이 잊었다고 고백했다. 난생 처음 가정의 따스함을 맛보았을 때 요셉이 고난을 잊게 되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가정이 그래서 중요하다. 한평생 억울했던 요셉인데 한 몸인 가족을 얻자 고난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아이를 낳아보면 인생이 달라진다. 본능적인 사랑이 생기고 책임감이 생긴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닮은 사랑이 모성애라 하지 않는가. 성경을 보면
불임이 주제인 부분이 있다. 아브라함도 불임의 고통 중에 이삭을 얻었다. 하지만 단순한 아이가 아니라 영적 후손을 낳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은 분명 따스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상처투성인 가정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고난을 잊게 되면서 가족의 진한 사랑이 회복되면 그 때부터 영적 후손을 낳는 인생이 되고 내 쓴뿌리가 케지게 된다.
창성하고 싶다면 전도해야 한다. 전도가 영원한 창성을 낳고 나를 온전케 하는 비결이다. 그렇게 공동체가 따스한 가정이 되고 너도 나도 쓴뿌리 케어지면 저절로 전도가 되는 교회가 되는 것도 있다. 요셉이 총리가 되어서 뭔가 되는 일이 하나 오자 상처가 치유받았듯이 우리도 치유받을 수 있다. 고난 자체가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니까 축복임을 요셉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를 창성케 하심을 매일 말씀묵상으로 믿으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살고 있다고 신뢰하자. 결국 피해의식에서 해방되고 나눠줄 것 있는 인생이 창성한 인생이다.
한 집사님이 아이를 어렵게 낳았는데 자폐기질이 있어서 두려웠다.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와중에 자신이 고난의 피해자로서 하나님을 대했다는 것을 깨닫고 죄인임을 고백하게 되었다. 자신이 피해자라고 느껴서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죄를 봐야 한다. 아프든 건강하든 피할 수 없는 외나무 다리에서 오로지 하나님만을 보는 것이 창성이다. 다들 이 가치관이 없어서 지옥을 산다.
여론조사를 해보니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답한 나라가 9개국 밖에 없었고,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빌게이츠라고 대답했고 다른 나라로 이민가고 싶다는 대답 1위가 우리나라 사람이더라. 결국 돈문제가 끝에 있다. 부자들이 부모덕이라는 대답이 66.3%, 부정부패로 돈벌었을 거라는 대답이 57%를 차지할 만큼 돈은 좋은데 부자는 아니꼬와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이중적 잣대를 보여준다. 북한과 통일만 되면 육로가 열려 중국 러시아와 최단 무역통로가 열리고
같이 잘 살 수 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몸뚱이를 움직여도 굶는 북한도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상대적 빈곤에 사로잡혀 물질에 집착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사회는 강팍해져 가고 선교 2위였던 우리나라도 점점 교회도 선교도 줄고 있는 형세다. 진정한 창성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을 놓고 기도하자.
<목장나눔>
가정에서 내 역할을 잘 맡고 있을 때 창성이 온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역기능을 맡아 수고하는 연약한 모습이 있다.
가정에서 각자 맡고 있는 역기능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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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님: 7남매 장남이셨던 아버지는 13살 때부터 노가다로 형제들을 키우셨다. 의와 혈기가 강하셨고 친구를 가족보다 더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아무 것도 모르시고 그저 가난을 피해서 시집을 오셨는데 그런 아버지 때문에 상처받아서 성품이 억쎄게 변하실 정도로 고생하셨다. 이혼하시고 아버지는 현재 성수동에 자취를 하고 계신다. 나는 아버지에게 고마운 기억이 없다. 그런 아버지를 존경한 적은 더더욱 없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상처가 있었을텐데 알아주지 못했다. 그저 아버지가 돈으로 보였고 불쌍히 여기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는 적용을 했는데 그 이상 힘듬을 느낀다.
어머니에게 아버지 역할을 대신 해 드리는 것이 어렵다. 그 역할은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감당이 안되다보니 지금은 아예 단번에 컷트하고 어머니를 밀어낸다.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지만 받아들이는 것이 안된다. 어머니는 내가 자신을 싫어서 피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안타깝다. 이렇게 피할 수 밖에 없는 모습에 회개가 된다. 편지를 쓰는 적용을 많이 해서 인지 어머니가 이제는 별 반응이 없으시다 ㅋ 안아드리고 미안하다고 고백하는 자리를 만들어야 겠다.
형은 가정 불화에도 늘 십자가를 졌다. 공부 잘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형이 존경스럽고 부러웠지만 닮고 싶다는 생각은 안했다. 형이 잘해주는 건 당연한 거였고... 형제간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모든 사건에서 난 늘 등을 돌리고 있었다. 얼마 전에 조카 돌잔치가 있었는데 못갔다. 마침 차사고로 돈이 없었는데 형집에 가는 길에 기름이 없어서
되돌아 왔다. 내가 불쌍했다. 사랑하는 조카에게 돌반지도 못해주고 택배하느라 옷은 더럽고...쪽팔려도 가야지 했지만 용기가 안나더라. 삼촌 역할도 못하는 나를 보았다. 요셉처럼 가족에서 내 역할이 회복되고 싶다. 사명놓고 기도해야겠다.
범희: 20살 때 어머니가 재혼을 하셨다. 친아버지는 8살 때 돌아가셔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술과 친구 좋아하셨고 가족에게 폭력을 자주 행하셨다. 그러다가 음주하고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셨다. 어려서부터 눌리다보니 소심했고 자존감이 낮았다. 소심을 남자다움으로 극복하려고 했지만 서로 부딪치는 사건이 오면 힘들 때가 있다.
어머니는 엄격하게 우리를 키우셨다. 홀몸으로 3남매 키우시느라 힘들게 사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엄격하게 우리를 키우셨고 나는 늘 안돼 라는 말을 들으며 선택권이 없이 살았다. 아버지처럼 잘못살까봐 엄격하셨던 것 같은데 장남인 나에게 유독 기대가 크셨다. 그런 와중에 알게 모르게 상처받으며 살았고 눌려 지냈다. 소심한 성격을 이기려고 운동으로 덩치도 키우고 ROTC 장교도 했다. 지금은 어머니께서 미안하다고 하시더라. 지금은 어머니와 대화도 하고 회복중이지만 여전히 표현하는 게 어렵다.
양아버지는 돈에 엄격하시다. 돈이 풍족한데도 어머니와 따로 돈관리 하신다. 어머니께서 61세이신데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강의를 하시고 돈을 벌어서 빚을 갚고 계시는 데도 양아버지는 선을 확실히 긋는다. 아버지이기는 한데 그런 느낌보다는 미울 때가 종종 있다.
누나는 예배에 안나오고 있고 또 연락이 안된다. 사업한다고 시집도 안가고 있는데 돈문제가 복잡하다. 그동안 도와줬지만
더이상은 내 능력이 안된다. 구원받았으면 좋겠는데 나부터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보니 답답하다.
남동생은 말레이시아에 있다. 어렸을 때 부터 가족보다는 친구를 좋아했다. 그런 동생에게 잔소리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상처가 많았을 것 같다. 필요할 때 동생 옆에 있었던 건 친구였고 가족이 아니었다. 양아버지와 어머니와 같이 살았고 형과 누나는 떨어져 살다보니 혼자서 외로웠을 것 같다. 목장 나눔을 통해서 동생이 불쌍하다는 것을 깨닫고 전화로 고백을 했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고....(ㅠㅅ ㅠ) 동생이 결혼 먼저하는 거 반대 했었는데 이제는 반대 안 하겠다고 형이 기도로 밀어 주겠다고 말해 주었다. 어머니 자주 찾아뵈라는 동생의 말에 순간 욱했지만!! 감사하게도 적용을 무사히 했다ㅋ 잠깐 생각해보니 자신이 가족에게 미안해서 한말이라는 생각에 동생의 마음이 체휼이 되더라. 가족을 위해 기도는 하고 있지만 내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렵다.
목자님: 가족 안에서 기능 찾아가는 게 이런 것이다. 적용은 할 수 있는 작은 것을 찾아가는 일인데 쉽지 않지만 중요하다.
적용은 꾸준히 해야 신뢰를 쌓을 수 있다. 무너진 신뢰를 쌓으려면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범희가 제 기능을 찾아서
가족 안에서 창성케 되는 모습으로 회복하는 때를 못 기다리고 먼저 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안타깝다. 일단 자주 보는 어머니에게 아들 역할 하는게 우선인 듯 싶다. 한사람 한사람 회복에 동참시키자. 요셉이 어떻게 형들을 용서할 수 있겠나.
사람 간의 신뢰는 정일 뿐이고 무너지면 사람힘으로 회복 불가능하다. 총리가 되어서 생색이 엄청 날듯도 싶은데... 그런데도 나중에 요셉은 무릎꿇고 가족을 껴안으며 신뢰를 몸소 끼쳤다. 하나님과의 신뢰가 생겨야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걸 체험할 수 있다. 난 일종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신뢰를 흘려보내는 것만 할 수 있다. 소통의 통로로 회복 시키실 줄 믿고 기도하자.
경오: 아버지에게 질서 순종이 안되는 역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식사 하셨어요? 라고 말해야 하는데 말끝을 흐리다보니 식사 하셨슈우? (ㅠㅅㅜ) 라고 나온다. 예전에는 반항하고 아버지와 K-1 격투기 경기를 했을 정도로 불순종했었는데 적용으로 사과하고 용서빌고 사랑한다고 한번하고는 그 이상 적용이 안된다. 지금은 그저 입닫는 적용만 하고 있다. 술을 드시고는 잔소리를 해도 아프셔서 그렇지 뭐 하고 자는 척 하거나 피하거나... 소극적인 적용은 하는데 적극적인 표현이 죽을 정도로 힘들다. 여전히 불만가득한 표정과 말투를 접할 때면 병적인 화가 올라오고 뭐라 쏴 붙이고 싶고...여전히 아버지를 대하는 것이 불편하고 두렵다. 예전 상처와 고난은 거진 다 잊게 하신 은혜가 있는데 현재 진행형은 여전히 어렵다.
어머니와는 한 말씀이 들리다보니 소통이 된다. 매일 가정예배 드리고 말씀으로 삶을 나누고 있음에 감사하다. 예전에는 정말 다투기도 많이 했는데 어머니가 먼저 섬겨 주시는 것이 있어 나도 자연스레 따라가지는 게 있다. 우리 가족 중에 너가 형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매일 격려 해 주셔서 내 자존감이 많이 살아 났다. 송구영신 끝나고 집에 와서 예배드리며 1년 동안 받은 복을 세어 보았는데 어머니와의 관계 회복에 참 감사했다. 이제는 엄마보다는 동반자라는 고백이 나오게 되었다.
서로를 객관화해야 하는 부분이 필요하기는 한데 아직 내가 그 수준이 안되어서 도와드리는 것이 쉽지 않다.
목자님: 요셉처럼 우리 신앙에도 단계가 있다. 사울이 자신을 종 중에서도 가장 천한 종임을 고백했는데, 그는 유능한 로마 시민이었다. 우리가 삶에서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하기에 종의 고백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싸워 나가는 게 우리 사명이다.
그래야 내 역할에 순종하고 가족을 섬길 수 있다. 내가 그나마 부유한 월급받는 종인지 가장 천한 발가벗은 종인지는 때때마다 내가 기도하며 인정하는 것이다. 나도 그게 안된다. 종이 되어 섬김의 싸움에 치열하게 참여하고 싶은데 발가벗은 종보다는 월급도 받고 잘 먹고 사는 종이 되고 싶다. 사람이 낮아지는 게 참 어려운 것 같다. 여전히 아버지의 아들로 역기능 을 하긴 하지만 어머니가 같이 종으로 싸워주시고 섬기는 환경에 감사가 될 것 같다.
태원: 어머니와 단순히 친해지면 되는 줄 알았다. 같은 편이 되어서 아버지 욕하고 싸워주면 장남 역할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와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급기야 스트레스성 실어증에 걸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늘 가해자였다. 아버지가 미웠고 심지어 내 나쁜 점은 모두 아버지의 것을 닮아 있음에 분노했다. 아버지는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사람이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표현을 못한게 지금은 미안할 때가 있다. 임종 때에도 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어떤 말도 못했다.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다.
목자님: 이제는 형 안에서 아버지를 용서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겠다. 아버지로부터 얻은 상처나 감정을 잊어야 한다. 하나님께 육적 아버지를 내어드리지 못하면 에브라임이 올 수 없다. 태원이 형이 창성케 되고 가정에서 제 기능을 찾으려면 어머니도 동생도 아닌 아버지에 대한 고난을 잊어야 한다. 므낫세 다음에 에브라임의 고백이 있듯이 일단 상처를 잊어야 창성이 온다. 애증의 관계가 클수록 가장 사랑하는 관계이다. 형은 누구보다 아버지 사랑했지만 표현방식이 서로 달라서 어긋낫던 것 같다. 그래도 아버지는 형의 마음 아셨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형도 아버지를 편하게 하나님께 맡길 때 형도 바로서게 되고 사명 찾아 감당하게 된다. 그게 안되고 아버지를 용서 못하면 하나님이 나 이렇게 만드셔서 이렇게 살고 있다는 원망이 나오게 된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지만 말씀이라는 거울로 계속 내가 이것밖에 안된다고 고백하며 예배에 붙어 있으면 가정에서 제 역할을 감당하는 창성을 주실 것이다.
<기도제목>
목자님: 영육간 건강
가족 관계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능 최선 다 할 수 있도록
범희: 내 자신의 죄를 용서로 구하도록
직장기능의 회복
나부터 온전히 서도록
태원: 말씀에 붙어 있도록
포트폴리오 준비와 취업준비
원희: 알바 구하도록
육적 건강 위해서
공부 계획적으로 하기
경오: 두려움을 므낫세의 고백으로 잊도록
아버지 구원을 위해서
생활예배(큐티+공부)를 위해서
사람 두고 뒷말 말고 입닫는 적용하도록
정동이형 진욱이형 주연이형을 위해서도 기도 해 주세요!
< Holy New Year!! >
PS: 말씀으로 원호에게 한마디씩 나눠주세요
원호가 목장보고서를 받아 보고 있습니다.
(우리 목장 식구들은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