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말씀>
창 42:25~38 [어찌하여]
요셉과 형제들의 관계 회복을 위한 작전에 빨간 불이 들어오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근심이다. 우리는 왜 예수를 구주로 삼았지만 근심 가운에 매번 “어찌하여”를 남발하고 있는가.
1. 돈에 대해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셉은 형들을 시험하기 위해 형들의 짐에 돈을 몰래 넣어 놓았고 형들은 돌아갈 때 그 안에 들어 있는 돈을 보고 깜짝 놀라 두려워한다. 우리는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조그만 일에도 화들짝 놀라게 된다. 이 두려움은 그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구체적으로 치밀하게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두려움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를 회복할 때를 미루셨다.
형들은 자기 스스로 독실한 자라고 외치지만 정작 돈 문제에는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그 돈을 봤을 때 다시 돌아가 돌려주지 않고 가나안으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사람은 검증할 필요가 있다.
형들은 그 열 자루 중 겨우 한 자루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합리화 한다. 하지만 우리는 큰 사건 전에 작은 사건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순종하는 자를 큰 일에 쓰신다. 사소한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늘 두려워하고 눈치를 보게 되며 두려움에는 원망의 대상이 있으므로 그것을 하나님에게 "어찌하여"라며 원망하며 감사함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다행인 점은 그 전까지는 그들의 입에서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하나님이라는 대답이 나오는 역사를 보여주셨다는 점이다.
2. 아직도 구구한 변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야곱에게 돌아가 자신이 정탐꾼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거기에 형제 하나를 두고 말째 아우 베냐민을 데리고 와야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 할 때 자신이 감옥에 갇혀있던 사실은 빼고 마치 애굽 가서 대접 받고 무역할 기회를 제안 받은 것처럼 그리고 돈 주머니가 나왔다는 사실을 싹 빼버린 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왜곡해서 말했다. 자신들은 독실한 자고 정탐꾼이 아니라는 사실만 알리고 싶은 것이다. 이 땅에는 애매모호하게 잡혀간 자들이 많다. 이 때 자기 입으로 자신이 독실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변명처럼 들리고 납득시키기 어렵다. 자신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남이 하는 것이다. 형들이 이렇게 진실을 고백하지 못하는 것은 야곱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들이 야곱을 해친 것을 아직 고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 어리석은 충성을 하게 된다.
야곱은 요셉으로 모자라 시몬과 베냐민까지 잃게 된 상황에 분노하자 르우벤은 자신들에게 맡겨 달라고 자기 아들의 목숨을 담보로 장담한다. 르우벤은 애초에 서모 빌하와 통간한 죄가 있으므로 이미 신뢰를 상실한 상태다. 이렇게 신뢰를 잃어버린 사람은 진정한 리더십을 얻을 수 없다. 르우벤은 지혜도 없고 의지도 없이 물 끓는 냄비와 같다.
믿음은 초월적이지만 상식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르우벤은 결정적인 순간에 주제 넘는 죄를 짓고 먹혀 들어 가지 않는 장담만 남발한다. 하지만 이렇게 안 되는 르우벤도 믿음의 조상12지파로 서게 되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부족한 우리도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연약한 우리지만 하나님께서 쓰신다.
4.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이다.
야곱은 자기 자식을 또 빼앗아가려고 하느냐고 분노한다. 내 자식이 나를 해롭게 한다며 괴로워하지만 그것의 문제의 중심은 다름아닌 나 자신임을 깨닫지 못하고 원망한다. 잃어버린 자식이 돌아오기 직전인 상황에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자기 자식들을 탓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야곱 자신의 마음의 문제다. 인간의 정욕이 얼마나 슬프고 무너지기 힘든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회복시켜 주시려는 때이지만 우리는 주안에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외모로만 편애하는 야곱처럼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 받아들이지 못한다.
5. 신앙 고백이 후퇴했기 때문이다.
요셉과 베냐민만 내 아들이라고 표현하고 다른 아들들은 너희라고 칭하며 편을 가르며 지옥을 사는 야곱이다. 이렇게 정욕의 죄에서 자기 마음을 통제하기 힘이 드는 우리 인간이기에 불쌍히 여기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해서는 안 된다. 점점 더 야곱의 신앙 고백은 후퇴하고 있다. 야곱의 신앙 고백이 왜 이럴까. 갖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듯 했지만 다시 등 따시고 배부른 상황이 되니 신앙 고백은 후퇴하고 내 주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베냐민이 그리스도가 된 상황이다. 우리는 이 때 베냐민을 보내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 사건에서 베냐민을 보호하심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베냐민이 죽을 상황이지만 다른 모든 이를 살리는 길은 선택해야 하기에 베냐민을 보내야 한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약속의 땅에 거할 것을 언약하셨지만 정작 내 자식 문제로 닥치자 적용하고 순종하기 힘들다. 하나님은 이토록 안 되는 야곱을 만지심으로써 내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나오게 하신다.
곤고한 날에는 나의 허물과 죄를 생각해야 한다. 인생도 흔들어야 건강하다. 험산준령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반드시 올라가서 나의 현재 위치를 확인해야 살 수 있다. 하지만 목적과 방향성을 잃은 우리들은 고난이 닥칠 때마다 "어찌하여"를 외친다.
진정한 자유함은 일시적인 심리적인 치료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에게 순종할 때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 나의 죄보다 지금의 내 고난이 가볍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진정한 자유함과 헌신이 가능하다. 하나님께 올라가는 길은 지겹고 힘들지만 세상에 떠내려가는 삶보다 더 건강하고 자유하다.
산으로 가는 길은 힘들지만 그 길이 사는 길이다. 예배를 회복하는 삶이 자유한 삶이다.

우리들 교회 장년부에 있는 친구와 전화 통화로 나눔을 하면서 매 상황마다 “어찌하여”를 남발하는 우리의 인생을 돌아봤습니다. 천국 가는 길목에 늘어트린 잔가지에 긁히고 상처 나는 것이 두렵고 원망스러워 “어찌하여”를 아무리 외쳐봤자 할 수 있는 대답은 “우짜겠노”입니다. 맞습니다. 우짜겠습니까. 이미 이 길에 발을 들인 이상 머무를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저 계속 갈 수 밖에 없으니 우짜겠습니까.
<기도 제목>
수련회 조모임 관계로 목장 예배를 살짝 일찍 마쳤습니다. 기도 제목은 별도 전달 받는 대로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ㅁ 흥식
1. 동생이 하나님과 관계 회복하고 예배 회복되길
2. 설 연휴 때 집에 내려가 부모님께 순종하고 관계 회복 적용하길 (편지 쓰는 적용을 생각 중)
3. 진로의 문 열어주시길
4. 항상 교만하지 않고 겸손히 침묵하도록
ㅁ 진우형
1. 집이 팔렸습니다. 응답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ㅁ 백기형
1.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2. 가족, 지체와의 관계 회복
3. 열공할 수 있는 집중력과 체력 주시길
4. 할 일 미루지 않도록
ㅁ 찬호
1. 지난 주에 갑작스런 사고로 운명을 달리 한 친구의 명복을 빕니다.
2. 텝스 시험 잘 준비할 수 있도록
3. 교회 예배 빠지지 않도록
4. 분당 성전 고연수 누님 컨디션 회복되길
ㅁ 계철이형
1.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고 십자가 진 인생으로 생명의 길 뒤따르는 한 주 되길
2. 동료들과 나눔에 있어 높고 낮음의 잣대를 대지 않도록
설 연휴 잘 보내세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