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요약
제목: 어찌하여(창세기 42장 25절~38절)
지난주 말씀에서 요셉이 형들과 관계회복을 하기 위해 생각한 것은 작전입니다. 작전에 빨간 불이 켜졌는데 바로 ‘근심’입니다. 근심이 관계 회복에서 치명적입니다. 우리는 안 해도 되는 근심을 평생하면서 삽니다. 우리는 형들처럼 “왜? 어찌하여” 를 남발하는지 다음을 통하여 알아봅니다.
1. 돈에 대해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25절~28절)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 곳을 떠났더니 한 사람이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귀에 있는지라.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형들은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니까 자기들의 돈이 자루 아귀에 도로 있는 것을 보고는 혼이 나갑니다. 죄 문제 해결되지 않으면 조그마한 일로도 놀랍니다. 이사야 57장 21절에서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라고 하셨는데 본문에서 형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형들이 두려움 가운데 사로잡혀 있습니다. 형들이 진정한 회개가 있었다면 하나님과 관계가 올바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돈이 자루에 도로 있었지만 돌아가서 돈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형들이 회개 했지만 진정성이 없습니다, 아마 형들은 열 자루가 아니라 한 자루에 돈이 있는 줄 알고 l가볍게 생각해서 그럴 수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작은 사건에 정직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순종하는 자, 큰일”에 쓰십니다. 형들은 무엇이 해결이 되지 않았을까요? 동생인 요셉에게 진정성 있는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치밀하게 구체적으로 회개하기를 요셉은 원했지만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큰 사건이 터지기 전에 작은 사건에 순종하며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일인 집안일에서부터 순종해야 합니다. 요셉의 형들은 기근 속에 양식을 얻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름을 거론하는 것을 보면 예전보다 나아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들로 하여금 서서히 작전 속에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2. 아직도 형들은 구구하게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29절~35절)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그들이 당한 일을 자세히 알리어 아뢰되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엄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우리를 그 땅에 대한 정탐꾼으로 여기기로 우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독실한 자요 정탐이 아니니이다. 우리는 한 아비의 아들 십 이 형제로서 하나는 없어지고 말째는 오늘 우리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있나이다 하였더니 그 땅의 주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르되 내가 이같이 하여 너희가 독실한 자임을 알리니 너희 형제중 하나를 내게 두고 양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들의 주림을 구하고 너희 말째 아우를 내게로 데려 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탐이 아니요 독실한 자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인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 아비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형들은 자신들이 정탐꾼이 아니기를 증명하기 위해 아우 베냐민을 애굽으로 데리고 가야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럼에도 형들은 아버지에게 사실을 왜곡하여 보고합니다. 아우 베냐민을 데리고 오지 않으면 시몬은 처형된다는 사실과, 자루에서 돈이 나온 사실을 빼고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라고 하여 없는 말을 넣습니다. 마치 시몬을 영광스러운 자로 얘기합니다. 그리고 자기에 대한 평가는 남이 해 주어야 하는데 자기 입으로 자기가 독실하다고 합니다. 이는 독실하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형들이 야곱에게 지루하게 말했지만 야곱이 침묵하는 것으로 보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형들은 야곱에게 아직까지 요셉 죽인 것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3. 어리석은 충성을 하게 됩니다.(36~37절)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르우벤은 지혜도 없고 의지도 없어 신뢰를 잃어버리니 진정한 리더십이 없게 됩니다. 먹혀들어가지 않은 제안만 합니다.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이겠다”라고 장담함으로 결정적일 때 주제넘게 앞장섭니다. 르우벤은 서모 빌하와 통간한 자로 야곱에게 신뢰를 잃어버린 자입니다. 형제들도 요셉을 팔 때 르우벤 말은 듣지 않고 유다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르우벤도 12지파에 들어갔습니다. 르우벤이 라헬의 아들 베냐민을 위하여 자기 아들 둘을 죽이겠다고 했기에 관계 회복이 가까워졌습니다.
4.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36절)
야곱은 요셉의 형들에게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라고 하여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식 사건에 부모처럼 괴로운 자는 없습니다. 야곱은 아들이 자꾸 없어진다 생각하는데 그 때가 돌아 올 때입니다. 피해 의식 있는 자는 자기가 넘어졌는데도 네가 밀었지? 언제나 “00때문에”를 연발합니다. 야곱이 자기가 정리가 안 되어서 힘듭니다. 자식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시므온도 잡혀 있는데 베냐민만 끼고 돕니다. 돈이, 아들이 없을 때 하나님이 오는 사건인데 야곱은 하나님 뜻 모르고 자기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인간의 정욕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너지기 쉬운지요. 야곱은 주 안에서 보는 것이 아닌 자기 보이는 대로 라헬의 자녀인 요셉과 베냐민을 끼고 돌아. 이러한 편애가 가족을 붕괴시킵니다.
5. 신앙 고백이 후퇴했기 때문입니다.(37절)
“야곱이 가로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 행하는 길에서 재난이 그 몸에 미치면 너희가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야곱은 좋아하는 아들인 요셉과 베냐민을 ‘내 아들’이라 하고, 그렇지 않은 레아의 아들들에게는 ‘너희들’이라고 합니다 .내 아들, 너희들 편을 갈라서 야곱이 지옥을 삽니다. 야곱이 알면서도 안 되는 게 있습니다. 내 아들 네 아들 구분 하는 게 있습니다.. 야곱이 주님이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베냐민이 주님이라 생각합니다. 베냐민을 보내는 것이 자식들이 구원 되는 길인데 아직 야곱이 적용이 안 됩니다. 믿음은 상식이고 언제나 자연스런 것인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데 내 안의 욕심으로 인하여 그러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뺑뺑이를 돌리면서 하나님이 구원자라고 알게 해주고 있는데 야곱은 아직 멀었습니다. 고난이 오는 것은 ‘자기 허물과 자기 죄 깨달으라’고 오는 것입니다. 험산 지경에 있을 때는 위로 올라가야 사는 길인데 우리는 내려갑니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잠시 힘들지만 그 길이 진정 사는 길입니다. (기도의 산. 말씀의 산 공동체의 산)
우리는 목적이 없어, 방향성이 없어 ‘어찌하여’를 부르짖습니다. 진정한 자유함은 심리치료로는 잠시 쉼은 누릴 수 있지만 진정 자유함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만 진정한 자유함을 누립니다. 진정한 자유함이란, 자유함을 누리려면 ‘온전한 헌신, 십자가의 삶’입니다. 자기 죄보다 고난이 더 가볍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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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하나를 살리자고 다 죽여야 합니까? 베냐민을 보내는 것이 자식들이 구원되는 길입니다. 아직도 야곱의 회개가 온전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약도 흔들어서 복용해야 하듯 인생도 흔들어야 합니다. 자유함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는 결국 믿음의 문제입니다. 예배가 회복되지 않으면 “어찌하여”를 외치며 내 삶의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작전이 필요한데, 형들은 하지 않아도 될 너무 많은 근심이 있습니다. 돈에 대해 정직하지 못하고, 변명하며, 어리석은 충성으로 넘어갑니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00때문에”를 연발합니다. 신앙 고백이 후퇴함으로 신앙 고백은 아득한 먼 옛날이야기입니다. 요셉은 이 형들을 검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의 모습만 보고 걸어가고,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에게 책임 전가를 하지 말며 설날에 예배 드리시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뼈가 마르는 근심과 염려가 많습니다. 돈에 대해 부정직하고, 구구하게 변명하며 어리석은 충성을 하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신앙 고백이 후퇴합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회개의 영을 부어 달라고 기도합시다. “어찌하여”를 남발하지 말고 십자가 밑에 순종하며 주님 안에 안식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일을 행하셨는지 부르짖는 인생입니까?
돈에 대하여 정직하지 못하고, 변명하며 이를 어리석은 충성으로 모면하고자 합니까? 피해의식에 똘똘 뭉쳐 신앙 고백이 후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앞을 봐도 뒤를 봐도 길이 없습니다.
무엇하나 주시는 것이 없어 “왜, 어찌하여”를 연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오는 사건이 야곱처럼 머리는 오지만 가슴까지 내려오지 않습니다. 자식이, 돈이 그리스도입니다. 주님 우리는 이것 밖에 안 됩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예배가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공동체의 산에 올라가기 원합니다.
다가오는 설을 맞이하여 식구들을 만날텐데 피해의식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잠잠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막말을 삼가고 예수님의 어린양의 본을 보일 수 있도록 주님 저희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붙들어주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목장모임
<기도제목>
1. 진유현 형제님
-사소한 것에서부터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아버지께서 교회에 정착시킬 수 있게.
-명절때 지혜롭게 가족들앞에 충성을 다할 수 있게.
2. 김철주 형제님
-나의 죄에 민감할 수 있도록.
-가족의 평안과 구원을 위해.
-믿음의 배우자.
3. 장현성 형제님
-내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4. 박기연 형제님
-공부에 치이지 말고 신앙의 중심을 잃지 않도록.
-지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5. 이수호 형제님
-연휴때 부모님과 평안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6. 이존일 형제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도록.
-목장 보고서 올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