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가실 때가 되셔서 이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셔야 했지만, 그 신앙고백이 베드로에게 또 내게 실제가 되는 믿음이 되기까지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모된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니 십자가 지고 좇겠다는 고백이 아니라 다들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까지~하고만 있지는 않은가...qt나 목장예배나 다 여기까지 하며 그냥 적당히, 알맞게만 하고 끝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 믿었더니 너무나 잘되었더라로 끝하고 싶은 우리.
산위에 올라가서 보고 안보고 그거 별거 아닌데 시기하고 질투하며 병고치는 능력을 주셨어도 고치지도 못하고 있는 제자들...우리 가운데도 일어나는 끊임없는 자리다툼과 비교.
십일조도 남보다 적어서 차라리 안하겠다느니 하며 하나님앞에서도 끊임없는 비교와 질투를 하는 우리...
능히 못하더이다 가 아니라 우리가 고칠 수 있고 또 능히 할 수 있는데도 비교와 질투때문에 평강을 깍아먹고 있는건 아닌가?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는 예수님...
내가 가도 되고 안가도 되는 길이 아니라 굳게 결심하고서라도 꼭 가야 하는 길.
죽으러 가기로 굳게 결심하신 주님처럼, 이생의 자랑을 내려놓기로 굳게 결심해야 하는데 그게 힘들다.
예수님도 공생애 6개월을 남겨두시고 무시받고 경멸받는 그 곳으로 다니셨다. 성경대로 우리도 그런 곳으로 가면 천국이 확장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맡겨주신다.
우리는 참 열심히 산다. 다들 열심히 산다. 제각각 흙위에 집을 짓든 반석위에 집을 짓든 열심히, 열심히만...너무 열심히 산다. 그런데 강도만난 자의 이웃은 누구인가?
보고 피하여 지나가는 제사장, 레위인...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고,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고, 돌보아 주고, 부비를 주고...
이 사마리아인에게는 동사가 많이 사용되어졌다. 사랑은 동사다.
손이가고 발이 가고, 똑같은 열심이지만, 세상 잣대로 보면 바보같은 거지만 사마리아인은 그렇게 살리는 열심, 살리는 행동을 했다.
율법사는 이웃을 자기 기준으로 정하기만 하고, 예수는 그 이웃 속으로 들어가길 원하셨다.
율법사는 사마리아인이 좋은 이웃이라고 말하기조차 싫어서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물으시는 예수의 질문에 그저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하고 만다.
사마리아인의 선행을 끝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교만과 차별...
답을 옳게 해도 달라지지 않는 율법사 또 우리...
피하지 말고 보고 불쌍히 여겨 싸매고 돌보아 주는 것, 그것이 이웃이다.
자비라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자인 것을 인정할 때만 가능한 거다.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존재를 #44704;달을 때 상황이, 문제가 빨리 인식이 되고 할 일이 보이는 거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대단하다고 생각되면 그게 문제다.
불쌍한 사람에게 꼭 돈주고 그런 적용을 말하는게 아니다. 오히려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적용. 하나님 앞에서 내게 먹보다도 더 검은 죄가 있다는 죄인이라는 인식...
잘난 제사장과 , 레위인은 직시하지 못해 보자마자 피하나,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되면 이웃이 되고 또 답을 줄 수 있게 된다.
겸손한 대답. 무조건 남을 올려주고 나를 낮추는 대답이 아니라 성경적인 대답이 가장 겸손한 대답이다. 성경을 알아야 성경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거다. 치우치지 않고, 정상적으로, 열심히 읽어가야 지혜가 생긴다.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읽어라 읽어라 하면 읽겠느냐...예배가 회복되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가서, 이웃이 되어주고 부비가 들더라도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마리아인의 행위를 강조하면 또 치우칠까봐 이제는 마리아의 말씀듣는 것을 칭찬하며 말씀을 강조하시며 양육해가시는 주님.
마르다는 그 집안의 호주고 실력자다. 봉사하는 일이 많다.
마르다, 마리아의 일이 각각 다 필요하다.
예수님이 잡수셔야 하기에 마르다의 음식 준비는 꼭 필요하다. 그러나 원어로 보면 마리아가 말씀도 듣더니 라고 되어 있어서 함께 음식준비나 손님 맞을 준비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이라는건 대접만으로 되는게 아니다. 사랑엔 주는 것도 너무 필요하지만 받는 것도 필요하다. 신앙이 없으면 받을 수도 없다.
마음이 분주해진게 마르다의 잘못이다. 표면적이고 소소한 일은 초월할 수 있게 되어야 평강이 온다. 급하고 중요한 일 중에 중요한 일을 딱 잡아야 한다.
그 사랑에 대한 자신이 없기에 여러 일을 만들고 평강을 잃어 분주하게 되는거다. 자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렇다.
인류 최대의, 최고의 손님이 지금 오셨고 또 가실 터인데 동생 욕하면서 손님으로 오신 예수를 난처하게 하는 마르다.내게는 이런 면이 없는가.
음식을 마련하긴 했지만 자기 본위로 대접했기에 동생과 예수님을 난처하게 만든 마르다.
자기 혼자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마르다...
일을 많이 해서 나쁜게 아니라 평강을 잃은게 나쁜거다.
세상사람들은 한가지만 택하고 갈 수가 없다. 평강이 없고 자족이 없기에, 인생의 목적이 바로 서있지 않으니까 이 좋은 편을 택하지 못하고 마음만 분주한건 아닌가?
돈이 없어서 정말 한가하고 단순한 삶, 절제할 수 밖에 없는 삶으로 분주하지 않고 이 좋은 편을 택해서, 하나님 나라 택해서 가는 삶이 행복하다.
학벌, 미모, 재물을 가져서, 다 #48820;앗기게 될 나쁜 편을 택하면 진짜 불쌍한 사람이다. 예수로 참소망을 가져야 한다.
베드로에게 세 번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시던 예수님. 원어로 보면 첫번째 양은 갓 태어난 양이고, 두번째 양은 자라고 있는 양, 세번째 양은 다 성숙한 양이다. 이들을 다 먹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갓 태어나서 잘 모르면 무시하고, 같이 자라고 있는 사람이라면 경쟁하고, 다 자라 성숙한 사람에겐 시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사람은 진짜 인생 낭비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무시하고 있는 것도, 경쟁하고 있는 것도, 시기하고 있는 것도 감추고만 있으면 그게 더 큰 문제다. 목장에서 드러나는게 해결의 시작이다.
하나님 안에서 자존감이 회복되어야 이런 감정을 이길 수 있다.
주 안에서 말씀듣고 예배에 기쁨이 회복되어야 이길 수 있다.
같이 계시면서 기도에 모범을 보이시는 예수님.
사마리아인의 선행, 마리아의 말씀사모, 그 뒤에 기도를 말씀하시는 주님...
예수님의 기도와 요한의 기도가 다름을 깨달은 제자들.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
영성은 믿는데서 출발하고 지성은 물어보는데서 시작된다.
기도회도 많고 기도방법, 상황에 따른 결혼기도, 장례기도, 심방기도 지침서들이 있지만,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모든 본문이 다 기도가 될 수 있다.
그 날 본문으로 내게 말씀하시고 또 그 본문으로 기도할 수 있다.
외워서 배워서 안되고...말씀으로 기도하려면 묵상이 있어야 한다.
주기도문에는 QT의 본질이 다 살아 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러기 위해서는 내가 구별된 가치관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죄지은 건 생각도 않고 세상사람들과 똑같이 슬퍼하고 똑같이 낙심하는 우리...그러므로 더 기도해야 한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나라는 다스림.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나라를 말한다.
시공의 제한속으로 친히 들어오신 주님. 성자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관계와 질서속으로 들어오셔서 순종하셨다. 내 분야에서 순종하며 다스림을 잘 받는 것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거다.
나는 어떻게 다스림을 받고 있는가? 사단의 , 세상의 다스림을 받고 있지는 않는가?
내 욕심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못하는게 그게 내 눈물 흘릴 이유가 되는거다.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일용할 영육간의 양식이 없이는 우리는 회개조차 할 수 없다. 영적으로 태어났기에 집도, 아내도, 남편도, 날씨조차도 다 의미가 있고 필요하며 기도해야 하는거다.
일용할 양식도 아니고 월용할 또 연용할 양깃 걱정에 시도 때도 없이 염려하고 분주하지는 않은가?
qt도 한꺼번에 많이 하는게 아니다. 날마다 그 날 말씀보고 내 죄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내 죄가 보이기 시작해야 남을 용서할 수 있다. 죄사함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진정 남을 용서할 수가 없다. 진정으로 가장 건강한 사람은 회개하는 사람이다. 가장 멋있는 사람도 회개하는 사람이다.
내가 남을 용서하지 않는건 내가 회개가 안되기 때문에 그런거다. 어떤 경우에도 내 죄를 보는 사람이 가장 건강하다. 용서하는 사람은 이긴 자이고 가장 강한 사람이다.
우리 죄...거룩은 협력하여 같이 가는거다. 혼자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처럼 불쌍하고 교만한 사람은 없다. 교회라는 공동체가 있어야 내 악이 드러날 수 있는거다.
김집사 죄가 김집사 죄가 아니라 우리의 죄 가 될 수 있는 그런 공동체...이 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진정한 교회 공동체이다.
기도의 가장 하일라이트는 회개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여기서 주님의 가르쳐 주시는 기도는 이미 하나님을 아는 제자들에게 양육하며 가르쳐 주신 기도다.
시험은 깨어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오는 것이다.
사단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세상에 있다 속삭이기에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친구를 위한 기도. 먹일게 없다고 대접할 걸 달라고 구하는 기도...이 기도는 정욕적으로 먹을 걸 구한 기도가 아니였다. 어떤 맘으로 기도하는지 하나님은 아신다.
기도의 시작이 강청하는 친구가 있어서 대접하겠다고 다시 구하는 기도.
대접받고 싶은대로 대접하고자 구하는 기도. 기도의 시작은 떡이였지만 마지막은 가장 좋은 것 성령으로 맺으셨다. 성령으로 주셨다.
성령 받기 위해, 가장 좋은 구할 것은 성령이기에, 끈질기게 구해야 한다.
기도의 하일라이트는 회개고 최고의 기도 응답은 성령이다.
가장 역동적으로 살게 하는 건 성령의 역사다.
<정리>
행위, 말씀, 기도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 남을 불쌍히 여기고 행해야 한다.
모든 것 갖추고 도망가고 피하는 나는 아닌가?
준비하는 일이 많아서 늘 분주한 나는 아닌가?
아무리 주님을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많은 일을 하며 평강을 잃어버리면 다 빼앗겨 버린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처방을 내려주시는 주님...
마리아를 고자질하고 시기질투하는 마르다. 봉사를 많이해도 늘 허하고 처방을 해주어도 못 깨닫고...나는 그러고 있지 않은가?
기도의 대상은 남편도 돈도 아니고 하나님이시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이시다.
성령이 함께 하는 회개. 내 죄를 보지 않으면 남을 용서할 수가 없다.
사죄의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죄인이기에 진정한 사죄와 또 용서가 되는거다.
형편없는 자들만 모인 우리지만 하나님의 역사가, 성령의 역사가 있길 기도하자.
내 가족, 내 목장에 성령이 임하시도록 우리가 강청하는 친구가 되어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