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 보고 (11월 16일, 생명의 족보)
경목이형
: 수능 시험 잘 못 본 것 같아요. 작년보다도 더 점수 안 나올 듯..
목자 => 셈의 자손이 400여년 동안 별 인생이 없이 ‘낳고, 낳았으며, 낳았으니’의 인생으로 살았잖아. 그리고 그 후에 예수님이 오셨어. 지금 드러낼 거 없고 자랑할 거 없어 보이지만 그냥 있음으로 인해서 감사한다. 그걸 하나님은 크게 보신다고 하셔. 너무 낙심하지 않기를 바래.
- 제 생각에는 올해 너무 무리한 계획을 세워놓았던 것 같애요. 그리고는 계획대로 못하면 낙심하고 다시 공부할 힘을 잃고.. 수능 끝나고 나서는 QT를 좀 쓰면서 해 봤어요. 학개서 말씀 보니깐 내가 내 성전만 짓고 있더라구요. 저는 이번에 공부해서 대가를 바라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욕심을 보게 되었어요. 보란 듯이 잘 돼서 당당하고 싶은 제 욕심이요. 올해는 인간관계도 잘 안됐어요.. 이제 말씀이 보이면서 죄가 보이는 듯하기도 하구요, 아직 잘은 모르겠지많요.
=> 아 그래? 반가운 소식이다^^ 어떤 죄가 보이는 것 같아?
- 엄마 미움, 아버지에 대해 거의 무관심한 제 모습 같은 거요.. 그리고 시험 성적이 못 나와서 군대 가야할지, 공부 계속해야할지 고민돼요. 여기까지가 내 한계라는 생각도 들고..
=> 그래 불안하고 초조하지. 고난이 오고. 그렇지만 말씀하고 가까워지고 말씀이 힘이 되고, 말씀없인 살 수 없게 되고 그러면 그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야.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건 한의대 가는 것보다 먼저 말씀보고 주님 만나서 생활하는 모습일거야. 그리고 나서 우리 육적인 복도 허락하실거고. 이건 하나님이 그걸 위해 주신 사건이 분명한 거 같으니까 함께 기도하자-!
형우형
가정예배를 드렸는데, 오픈의 물결이.. 너무 좋았어요.
하나님은 주실려면 주시고, 뺏어가려면 뺏어가시는 분인 것 같아요. 저는 그걸 너무 많이 느껴요. 제가 심심하면 밖에 나가서 노는 거 아주 좋아하는 데 그런 걸 점차 막아가시기도 하고..
이번에 근무지 이동이 있어요. 근무 시스템 변경으로 인해서 내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들만 다 모아놓은 듯한 그곳으로 근무지가 변경됐는데, 이걸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분명 거기로 가면 지금 아픈 무릎이 더 아파질 것도 같은데, 이게 변명같고 도피 같기도 해서 잘 모르겠어요. 괜히 적용한다고 하다가 다쳐서 오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고요. 분별을 잘 했으면 좋겠어요.
문기
저는 이번 한 주 진짜 말씀으로 해석되는 삶을 살았어요. 말씀이 저를 찔렀고, 도망치려다 도망치려다 돌아왔어요. 역시 수요예배 나오니깐 말씀이 들리더라구요. 사실 예전부터 세영이 형이 중등부에 너 필요하다고 불러서 결국 지난주에 중등부 예배를 갔는데, 하기 싫어서 예배만 드리고 그냥 도망쳐 나왔어요.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시험공부해야 되는데 ‘아, 이러면 차라리 한동안 예배만 드리고 숨어지내는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하고있었는데 이번주에 말씀의 빛이 계속해서 이어졌어요..
학개서 1장 2절에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 ‘아직 때가 안 됐어. 지금은 공부해야 될 때고, 섬기려면 한 50세는 넘어서 안정적일 때 교회봉사하고 섬겨야지-’ 하던 게 제 오랜 가치관인데 말씀의 창이 제 마음을 파고들었어요. 8절에서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하시는데, 이것이 전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거죠. 2장 3절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가 딱 제 말씀이었어요. 솔직히 주일학교 보조교사, 문서팀, 가장 기본적으로는 주일마다 교회 가는 것.. 이런 것들이 인간의 눈에는 보잘것없어 보이잖아요. 제 눈에는 아직도 그렇게 보이나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 보면서 우리는 지금 안보여도 나중 영광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존재라는 것이 깨달아져 양심에 가책을 느끼던 중이었습니다. 성전 쌓기를 뒤로 미루는 이 움직임에 대해 하나님은 부정하다 하셨는데, 그러던 중 지난 토요일 책상 위에 놓인 추수감사헌금봉투에서 신명기 구절을 보았어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신11:13-14)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이란 구절에서 마음이 뭉클함을 느꼈어요. 정말 전 그렇게 살고 싶어요. 교회 나오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전심다해 섬기지 않으니깐 최근에 즐거움이 없었던 거였어요. 그리고 목사님 책 ‘절대복음’을 읽는데 복음에 대하여 빚진 자라는 구절이 또 나오더라구요. 아, 저는 그 복음의 빚 때문에 예수를 주로 영접했고 교회 나오며 믿음 생활하는건데.. 제가 진 그 빚을 갚는 적용은 ‘가서 애들을 섬기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결단하고 얼마나 오래할지는 모르겠지만 보조교사라도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오늘 예배 드리고 왔어요.
=> 문기가 갈수록 적용을 잘하는 구나. 불신교제부터 잘 적용하더니 말야.
- 형 저 진짜 이번 학기는 그런 것 같아요. 2학기 시작과 함께 불신교제-> 목자에게 혼나고 -> 적용하고 수요예배 나오기로 결단 -> 중등부 부름에 ‘앞으로 조용히 숨어지내야겠다’ -> 중등부 보조 교사, 백향목 궁전대신 뒷산나무성전 적용.
적용한다고 하면서도 신명기의 뒷구절 말씀가지고 적당한 때에 비를 내려주셔야 된다고, 나 시험 합격시켜주어야 된다고 하나님께 거래하자는 듯한 이 오만불손함이 제 안에는 살아있지만, 갈수록 제 계획대로 못하고 변경되어 가는 걸 보면서, ‘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하나님이라도 마음을 다하여 섬기자. 그럼 감당할 수 있는 결과를 주시겠지.’하는 마음이 들더라구요. 그래요. 형 말대로 전 그동안 백향목 궁전만 바라고 있었어요. 내가 돈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있는 위치에 올라서 하나님께 백향목 궁전 지어바치겠다고, 사실 그게 제 인생의 목적이기도 해요. 그래서 뒷산나무로 짓는 성전은 다른 사람 지으면 되지 않냐고 그랬는데, 오늘 하나님이 제가 지금 이 위치에서 뒷산의 나무로 짓는 성전을 기뻐하신다고 해요.
장원이 형
: 가족회의가 있었어. 흩어버리시는 사건에 대해서 나눔이 있었지. 주식으로 인해 우리 집에 흩어지는 사건이 왔잖아. 근데 아버지가 선물(future)로 그걸 만회하신다는 거야. 정말 아직도 저렇게 못 깨달으시나 또 속으로 정죄했어..
근데 아빠가 진심으로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 너희 뒷바라지 하려고 돈 버는 게 사실 힘든 일이라고. 치과는 이 치료할 때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신경 건드리고 그러면 의료사고나서 소송 걸리기 때문에 진짜 스트레스 많이 받는대.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죄에 대해서 생각이 났어. 난 그냥 아버진 치과의사니깐 그래도 ‘편하게 돈버는가 보다’ 라고만 생각하고 그동안 아빠 힘든 줄은 모르고 편하게 돈을 쓰고 살았어. 내가 돈 벌어온 적도 없으면서 말이야.
그래서, 적용하기로 마음 먹은 게 취업을 알아봐야겠다. 내가 돈 벌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편입, 대학원 모두 내 욕심이었구나. 보통이나 좀 낮은 데는 가기 싫고, 그래도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위해 공부하려는 게 내 욕심이었던 거지. 그래서 이젠 한 푼이라도 벌어서 가족 구성원으로써 한 몫을 감당하며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이번 주 QT말씀이 나 역시 매우 좋았어. 11일자 말씀에 영적 성전을 지으라 고 하셨는데, 내 육선인 성전을 번듯하게 지을 것에만 정신 팔려 나는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던 거야. 산에 올라가서 나무베는 것이 나는 취업준비구나 생각이 들었어.
대기업 그것도 명망 있는 대기업만 들어가려던 욕심을 내려놓고, ‘중소기업이라도 하나님 뜻이라면 들어가자. 내실력을 인정하고 그에 맞추어 가자.’ 이렇게 결심하게 됐어. 얘들아 기도 많이 해주라.
기도제목 
유경목 : 군대랑 학교. 하나님 뜻대로 잘 해석되도록-
아버지의 건강에 대해서 기도해 주세요.
누나가 창원 내려가서 적응 잘 하시도록
김형우 : 중등부 잘 섬기기
근무지 이동 문제 잘 분별할 수 있도록(말씀따라 인도받을 수 있게)
받기만 하는 자보다 주는 자가 되고 싶어요
한문기 : QT와 수요예배로 말씀 잘 듣기
부모님과 대화.
이장원 : 무역 아카데미
아버지 위한 기도, 목원들 위한 기도 -> 중보하는 한 주가 되도록!
미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