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va City에서 첫모임을 가졌습니다.
인정에 목말라 하며 잘난 척하고 싶지만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 잠잠한 우리들이지만
약속의 말씀을 받았기에 육적인 회복이 더뎌지는 것에 슬퍼하지 않고
영혼구원을 목적으로 사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목장 수칙
1. 주일설교 말씀 "열심히" 필기하는 목장
2. "매일 QT"하는 목장
3. 수요예배 "꼭" 참석하는 목장
김재동(79)목자님: 2006년 겨울 어머니의 소개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다. 아버지 고난(도박, 부재, 술, 어머니와의 불화 등)으로 우울한 초중고시절을 보냈다. 대학 시절 긴 방황으로 인해 사회적응이 쉽지 않았는데 우리들교회에 와서 말씀으로 고난이 해석되었고 지금은 영적후사가 되기 위한 과정 중에 있다. 현재 과외로 생업을 책임지고 있고 취업 준비 중이다.
적용이후 직장을 가라는 목사님의 처방을 받은 후 순종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보며 실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구직을 위해 많이 노력하지 않으면서 알바 수준의 "행정인턴"을 신청하여 직장을 다니는 척 눈가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공동체에서 적용을 잘한다는 소리도 듣고 싶고 편하게 돈 벌 수 있는 과외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행정인턴 신청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하였지만 아직도 내 시간 공간, 노력을 손해 보면서 순종하고 싶지 않은 것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에게 조직에서 훈련받는 것이 필요한데도 순종이 너무 힘들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창피하지만 그래도 영적공동체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강경오(81): 최근까지 지역교회를 섬기다가 우리들교회에 온 지는 한달 여 정도 되었다. 3년 전부터 어머니의 권유로 우리들교회 수요큐티예배는 참석하고 있었다. 외할머니때부터 신앙생활을 해 온 어머니 집안과는 달리 아버지 집안은 믿는 분이 전무하셨는데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아버지께 매를 맞기도 하였다. 아버지를 증오하였지만 술과 이성 중독으로 아버지를 똑같이 따라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지방대 콤플렉스 때문에 수능을 준비하였지만 여친과의 결별사건이 터지면서 자살을 결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 생각에 마음을 거두었고 어머니의 원대로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다가 예배를 사모하게 되었다.
이후 세례도 받고 교회 임원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익생활과 편입 준비로 3년간의 생활을 보낸 후 갑자기 예배가 무너지고 끊어졌던 중독(이성, 술 등)이 되살아나면서 이른바 "폭발"을 경험하였다.
죄의식도 없이 죄를 짓다가 수요큐티모임에 나오면 용돈을 주겠다는 어머니의 권유로 참석하게 되었다. 최근 진로고민으로 허무함을 느끼며 정죄감에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래서는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우리들 교회로 옮기면서 목장에 대한 거창한 기대를 하였으나 삶의 구체적인 사건을 나누고 적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이 솔직해지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와 말씀으로 대화가 가능한 것이 너무 좋고 요즘 말씀과 연애하는 기분이다. 지금은 이성중독과 학벌로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끊기 위해 적용하려고 노력중이다.
이진원(80): 현재 취업준비 중인데 정확하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도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친가와 외가가 모두 기독교 집안인 관계로 4세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지만 고3때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그러나 형식과 체면, 목사님과의 의리를 중요시하는 등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부모님의 신앙생활을 보면서 20대에는 부모님을 탈피하고 인생을 즐기고픈 마음에 썬데이 크리스천으로 세상과 친하게 살았다. 술과 담배에 관한 정죄감은 없지만 아직까지 음란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너무 힘들다. 그러나 어학연수를 통해 하나님이 다시 만나주셨고 선교단체에서 1년간 양육도 받게 하셨다. 부모님이 교회 옮기는 것을 반대하고 계셔서 지금도 몰래 나오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말씀이 백퍼센트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기도하실 때 목사님의 진심이 느껴지고, 목자님을 통해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아 함께하고 싶다. 아버지께서 7년 전 뇌출혈로 장애를 갖게 되셨는데 어머니께서는 오랜 간병으로 지친 상황이시다.
장원우(83): 9년째 미국에서 유학중인데 2006년 여름부터 방학 때마다 우리들교회에 나오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 잘하는 형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한국에서는 형을 넘을 수 없다는 생각에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6세 때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영어로 인한 열등감 때문에 힘들었고 한국인 2세들에게 무시와 배반을 당하는 사건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이모네 집에 기거하면서 고등학생이면 대부분 차를 몰고 다니는 상황에서 중학생들과 함께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적응을 힘들어하다가 결국 검정고시를 보게 되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무시당하는 것이 싫어서 감정없는 기계처럼 미친듯이 공부하고 운동하는 등 극단적인 생활을 하였다. 힘들어도 자원해서 온 것이기에 부모님께 말도 못하고 감정을 무시하면서 살았다.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군대문제가 걸리면서 허무함이 밀려왔고 그동안 무엇이 문제인지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을 깨달았다. 오랜 외국생활로 부모님과 형을 만나도 남처럼 느껴지고 어색하다. 문제를 보는데 익숙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문제를 말할 사람이 없다. 이틀 밤을 새우면서 오락에 집중하고 운전을 미친듯이 하는 것을 보면서 정상은 아니라고 판단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야 되는지, 미국에 남아야 되는지 고민중에 있다.
김윤현(80): 우리들교회에 온지는 1년 정도 되었다. 모태신앙이지만 예수믿는 못된 할머니와 예수없이 착한 아빠 사이에서 구원의 관점이 애매하여 늘 혼란스러웠다. 어린시절부터 끊임없이 할머니를 정죄하면서 내가 믿는 하나님과 할머니가 믿는 하나님이 제발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 실직상황으로 인해 편찮으신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정죄감은 극에 달했고 옳고 그름을 따지며 지옥을 살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사건을 통해서 할머니를 미워하였던 죄를 깨닫게 되었고 할머니가 나 때문에 수고하신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썬데이 크리스천인 부모님과 불신결혼 위기에 있는 동생, 중학교 이후로 교회를 떠난 오빠가 있다. 작년에 부목자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으나 교만이 충만하여 귀한 직분을 거절하였다. 당시 공무원 공부가 우상이었다는 나는 주님께 드리는 시간을 아까워했고 전에 섬기던 교회를 나오는 과정에서 들은 "삯군"이라는 소리에 연연하며 '나는 더 이상 직분을 맡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악을 합리화하였다. 이런 교만한 나를 기다려주시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셔서 부끄럽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부목자로 섬기게 되었다.
기도제목은 리플로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