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창세기32:1-12)
1. 공동체 예배로 준비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군대와 함께해야 한다. 이 시험의 주인공은 야곱이다. 야곱이 베델에서 하나님께 보장받아 평강도 누리고 라반의 불같은 추격을 잘 해결하지만 또 다시 큰 고난을 맞게 된다. 28장12절에 만난 사자를 또 32장에 만나게 된다. 야곱은 하란으로 떠날 때 만났던 사자의 역할을 깨닫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사자들이 믿는 사람을 위해 싸워주는 군대임을 깨닫는다.
이제는 야곱이 하나님의 군대를 볼 수 있는 영안을 갖추게 됐다. 하나님의 군대를 보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의 야곱이 그의 무리들, 다른 사람들을 데려가는 것처럼 그러한 사명을 지금 여러분에게 주신다. 점점 날이 갈수록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목장과 교회공동체는 야곱이 데려가는 무리와 그 형국이 흡사하다.
야곱에게 영의 눈이 열렸기에 야곱은 그 땅이름을 마하나임이라 명명한다. 마하나임은 ‘움직이는 진영’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같이 움직이면서 인도할 것을 믿었다. 힘든 길을 경험한 사람들이지만 수많은 천사들, 내 편이 보호받는다는 것을 느끼기에 큰 힘이 된다.
20년 고생 후에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야곱이다. 우리는 목장, 일대일양육에서 두 갈래로 돕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라는 공동체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은혜 받은 자의 특성은 주안에서 공동체를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기쁨을 가지는 것이다. 공동체 없이 말씀만 듣고 홀로신앙을 하는 사람은 자기만족에 그치는 경향이 다분하다.
우리교회에서 ‘새가족 환영’과 같은 환영이 천국에서도 일어난다. 공동체는 아픈 우리를 살리게 될 것이다. 목사님이 젊은 시절 홀로신앙을 경험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홀로신앙을 하는 사람은 공동체에서 대화하며 나눔을 할 지체를 가지지 못하기에 스스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 여전히 불안하다.
야곱은 에서 증후군, 죄의식 때문에 걱정과 두려움이 있다. 이전에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게 외삼촌 라반한테 가있는 동안 형에서의 화가 잠잠해져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야곱을 부르겠다고 약속했지만 부르지 않았다. 야곱은 이러한 부름이 없는 상황이 에서의 복수에 대한 일념이 여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야곱에게 소와 무리가 있으므로 형의 재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사자를 보내 알리고자 했다. 에서가 400명의 무리와 함께 야곱을 치러 온다하니 심히 두려워하는 야곱이다.
야곱은 도덕적으로 낮은 수준의 사람이었다. 야곱은 늘 변명거리가 있다. 늘 그렇게 선택의 기로에서 세상가치관 못 버리니 오늘도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늘 세상 적으로 택하니까 어려운 문제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헤어지자마자 다가온 시험에서 두려움, 불안을 어떻게 이기겠는가?
이렇게 문제가 와도 있어야 되는 문제가 왔다고 인식하면 요동을 안할텐데 늘 죄 때문에 두려움이 앞선다. 아곱이 한 일이 7절에 보니 소와 양떼를 두 떼로 나눠 치러오면 한 떼는 피하게 하리라고 계획한다. 남은 한떼 가지고 도망가야지 하는 인간적인 방법을 구상한다. 야곱에게는 때만 되면 에서 증후군이 나타난다.
최고로 중요한것은 자신감과 용기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앨버트 밴두라는 위험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공포라고 한다.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벗어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운동력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우리 스스로 가난, 가족별거, 질병 등 변하지 않을 고난과 환경가운데 언제 이 환경이 해결되어 질까 생각하면 스트레스로 더 힘들게 다가오게된다.
성경적인 처방에서 더 나아가서, ‘옳소이다.’ 하면 자신감, 믿음, 매력이 함축된 최고의 핵심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내가 힘든 환경가운데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라면 그 힘든 상황을 즐겨야 하는 수준이 필요하다. ‘옳소이다.’가 최고의 교육임을 알 수 있는 소아암 앓고 있는 초등부 아이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암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져 대머리가 된 자신의 머리를 놀리는 같은 반 학우에게 “나 대머리 맞다.” 라고 인정하고 일명 ‘마빡이춤’까지 췄다는 일화는 환경을 인정하는 높은 수준의 영적상태가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우리에게 얘기한다.
젊은 시절 목사님은 스스로도 ‘옳소이다.’가 안돼서 인생이 슬펐었던 경험이 있으셨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특별히 칭찬을 받은 경험이 없어 자존감이 낮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으셨다. 그래서 성장하여 젊은 시절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목숨을 걸었던 목사님이셨다. 그러나 시집가서 총채질, 걸레질, 밤까는 것 등 못하는 일을 시키고 모르는 것만 물어보는 시어머니한테 멸시와 능욕을 당하며 생활했다. 그 가운데 제일 문제였던 것은 자기의 상황을 인정 하지 못하고 자신의 얘기를 할 공동체가 없었던 것이 가장 힘든 현실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랬던 목사님이 예수 믿고 스스로 ‘옳소이다.’가 되서 세계 곳곳에 수치를 드러내고 그 수치를 약재료로 삼아 자신감을 가지고 생활하고 계신다고 한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그 환경가운데서 누리고 즐겨야 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의지하는 만큼 힘든 사람과 힘든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3.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한다.
야곱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하며 하나님께 약속하셨는것을 상기하고 기도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가축 및 여러 재산을 두 떼로 나눈 다음에 기도하는, 순서가 바뀐 행동을 했지만 말씀을 근거로 기도했다. ‘내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는 말씀을 근거로 기도하였던 것이다.
‘하나님 나를 도와주셔야지 돼요.’ 하는 일방적인 내 마음대로의 기도는 중언부언이 되지만 약속의 말씀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과녁기도, 양궁의 10점 맞을 수 있는 기도이기에 우리는 그런 기도를 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알 수 있겠는가? 기도하는 것 이상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교회행사가 많지 않은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말씀가지고 기도하는 성도들이기에 어디에서든지 대표기도를 잘 하는 것이다. 말씀을 봄으로써 과녁, 화살기도가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날 말씀가지고 나누고 기도하는 대표기도를 배우고 싶다는 말들이 있어서 동영상으로 올리고 있다. 기도를 잘하려면 양육, 일대일, 목장, 예목에 참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수요예배, 주일예배인 공예배에 가고 목장에서 그 말씀을 가지고 나누는 훈련을 계속하다 보면 말씀이 입에 있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좋은 기도가 나오게 된다. 이런 말씀가지고 기도하는 삶을 살다보면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며 결국 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된다. 가난한 환경, 힘든 환경에서도 누리는 삶이 되며 스스로 확신을 얻는 기도가 되며 입으로만 하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 죄를 보고 기도하는 덕에 주위사람들까지 변하게 되는 것이다. 말씀하나로 인하여 불신자 전도와 양육까지 다 할 수 있게 된다. 말씀이 길이요 진리요 곧 생명이다.
모든 우리의 활동과 말씀을 다른 것, 즉 이원론적 사고관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말씀이 기도요, 간증이자, 선교며 상담이고 사역인 대등한 관계로 생각하는 일원론적 사고가 필요하다.
야곱이 기도하면서 자신이 무능한 존재임을 고백하게 된다. 11절에 자신의 현실 문제를 털어놓는데 형 에서의 손에서 건져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기복적인 기도를 하지 말라고 주문하지만 힘들고 무서우니 살려달라고 기도한다.
이루어지지 않는 기도는 우리 자신의 무지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 수요설교에 간증하신 선교사님이 힘든 상황과 힘든 남편으로 인하여 해결해 달라는, 늘어놓는 기도를 하지만 주님은 이런 응답을 하셨다 한다. ‘내가 실수하는것 봤냐?’ ‘연약하고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되는 내 자식이자 네 남편 되는 그 사람을 네가 보살펴주면 안되겠냐?’는 것은 우리의 욕심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기도에 대한 선입관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 하여 준다.
우리 스스로가 말씀을 많이 알고 있다면 그 만큼 말씀으로 응답받게 된다. 말씀이 들리는 구조가 응답구조인 것이다. 야곱도 말씀전하기 위해서 그의 인생에서 이런 갈길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400명 데리고 온다는 에서와 그 무리 때문에 야곱은 간절히 기도한다.
힘든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 하나님이 나한테 허락한 게 있겠구나 라고 ‘옳소이다.’하고 있으면 병도 낫고 회복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를 스트레스로 여기는 상황가운데 남아 있으면 우리 자신의 매력을 누군가에게 풍길 수 도 없을 뿐더러 회복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우리 중에 어떤 이는 때로 말씀이 안 들리면 목사, 교회, 목장 등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게 되고 그것을 표출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렇게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공동체는 품고가야 한다. 그 사람 하나 때문에 그 목장이 살아나는 것이다.
우리의 죄를 그때마다 토설하며 고백하고 갈 때에 그 모든 건전하고 건강한 나눔이 될 것이다. 영적, 육적으로 수렁에 빠져있지만 이렇게 고백하고 기도하며 나아감으로써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게 되길 바란다. 우리는 전적으로 영적 공동체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옳소이다.’로 우리의 불안과 현실을 누리고 즐기면서 가야한다.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은 내 죄를 보고 가는 기도인 것이다. 정말 말씀으로 간증하는 것, 말씀으로 기도하고 상담하고 부부생활, 목장나눔하는 것이 위력적인 것이다. 우리의 부족을 누리고 즐거워하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은 어떤 인생의 수렁가운데 빠져있는가? 정신, 영육이 곤곤한 상태인가? 말씀이 안 들리는가? 나의 죄의식, 열등감에서 건져내달라고 기도해야한다. 야곱이 유종의 미를 거두고 잘 떠날 줄 알았으나 또 최대의 위기가 닥쳐온다.
우리는 무덤까지 가지고갈 죄 때문에 불안하고 여러 증후군에 시달려 ‘옳소이다.’가 잘되지 않는다. 간절한 기도보다 떼를 둘로 나누는, 다른 것을 먼저 하는 야곱과 같이, 우리 또한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그 거꾸로 된 순서를 깨닫고 수렁 가운데서 ‘건져내시옵소서.’ 하며 기도해야 한다.
야곱이 야곱 앞에 닥친 수렁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수렁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모를 때 우리 자신이 힘이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힘든 인생 고난 길에 우리를 택하시고 수렁가운데에서 건져내주시는 자는 주님밖에 없음을 믿고 ‘참으로 살려주시고 건져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인생이 되길 바란다.
기도제목
이창엽
딸 시열이가 모유를 잘 끊을 수 있도록
라용균
정해진 기간까지 사업장 정비 및 청소를 잘할 수 있도록
다른 지체를 위해 체휼하는 심령이 될 수 있도록
성광모
양육교사 과제 성실히 하고 훈련 잘 받을 수 있도록
시간관리 잘하여 나태해지지 않는 생활 할 수 있도록
아버지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도록
문보호
일대일양육과제를 성실히 하고 양육 잘 받을 수 있도록
유시윤
일대일양육 동반자 잘 섬기고 기도로 준비할 수 있도록
최성남
말씀이 잘 깨달아질 수 있도록
ps : 우리 목장 양육풍년이네요. 잘 섬기고 잘 섬김 받는 한 주간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