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한지라(창32:26~32) 2010-04-11
과거엔 귀한 아이일수록 이름을 ‘개똥이’라고 천하게 지었다. 그래서 예전엔 이름이 촌스럽고 어감이 나쁘다고 개명을 신청했는데, 지금은 이 땅에서 장수하고 축복을 받기 위해 개명을 신청한다. 야곱이 축복을 간절히 구했는데, 주님께서 새로 주시는 축복의 이름은 어떤 것일까? 그 축복의 내용을 살펴보자.
1. 새 이름(새 가치관)으로 축복
(27절)야곱이 축복해달라고 하니까 그 사람이 야곱의 이름을 물어봤다. 그 사람이 몰라서 물었겠는가? 여기서 이름을 밝힌다는 것은 무덤까지 가지고 갈 과거의 인정, 죄의 고백을 말한다. 야곱이 형을 속였다는 것, 자신이 속이는 자, 남을 끌어내리는 자, 여자를 좋아하는 자였음을 고백한 것이다. 고백에는 자기 믿음이 있어야 한다. (28절)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셨다. 히브리 문화에서 이것은 이름을 부르는 자가 불리는 자에게 주권을 행사하는 것임을 뜻한다. 즉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야곱의 인생의 주인이시며, 그의 삶에 개입하시겠다는 뜻이다. 너의 환도뼈가 위골이 되었지만 네가 죄를 고백했기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아무도 너를 건드릴 수 없게 하겠다는 뜻이다. 야곱의 죄의 고백을 너무 귀히 여기셔서 그를 이스라엘이라 불러주셨다. 자기 죄를 보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고 하나님의 일이기에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신다. 반면에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수치심을 느낀다.
하나님과 겨뤄서 이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렇게 자아가 깨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가치관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험하셔도 피할 길을 주시며, 싸움을 걸으셔도 지켜주시며, 환도뼈를 부러뜨려도 품어주신다. 그것을 원망하지 않고 축복해달라고 하니까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이기는 것이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 죄를 부르짖으므로 때마다 새 이름으로 축복하시고 새로운 가치관과 축복을 허락하신다. 거기서 내가 이스라엘이 되었다. 사람을 의식하면 죄의 고백을 할 수 없다. 이것은 나와의 싸움에서도 이긴 것이다.
2. 생명이 보존되는 축복
(29절)야곱에게 축복한지라. 상상할 수 없는 존재이신 하나님의 속성은 이름을 물어본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해가면서 알아가는 것이다. 내가 이스라엘이라 불리어도 하나님의 속성을 금세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알아가야 한다. (30절)긴 밤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하고도 생명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하나님과 겨뤘기 때문에 “죽여주십쇼”할 것인데, 그 대단한 분이 나를 살려주셨기 때문에 어떤 자격이나 공로가 없음에도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인간은 자기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세상에 남기고 싶어한다. 그래서 평범한 보통의 상태를 존재의 밑바닥으로부터 항거한다. 할 수만 있다면 한 동안만이라도 타인의 기억에 남고 싶어한다. 우리는 분명 중요한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자기 중심적인 존재는 아니다. 중요성의 갈망은 내가 누구이며, 여기 왜 있는가에서 출발한다. 자기 중심성(egoism)과 중요한 존재(significance)는 아주 다르다. 전자는 매사를 자기 시야로 보는, 언제나 자기가 중심인물이어야 하는 “일류병”인데, 이것은 안 알아주면 못 견디므로 불안하고 더 나아가 병적인 자기 집착으로 발전한다. 반면에 후자는 내가 왕 같은 제사장이고 거룩한 나라라는 것과 하나님의 창조섭리의 연장선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기 중심적인 나에게 하나님의 속성이 덧입혀졌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누구에게 줄 것만 있는 인생을 천국 갈 때까지 살려고 한다. 역시 자기 중심적인 야곱도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주심을 깨달으니 그 지경이 넓어졌다. 그의 환도뼈가 위골된 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까 깨달아졌다.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깊고 넓은지 아무리 퍼다 날라도 부족함이 없다. 내가 야곱이요, 사기꾼이라는 고백이 있을 때 비로소 새 가치관으로 이어진다. 내가 하나님 모르고 겨루었음을 알게 되니, 원망을 버리고 아직도 생존해있다며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3. 해가 돋는 축복
(31절) 환도뼈가 위골되어 우스꽝스럽게 절뚝거려도 하나님은 그 부분을 거룩하게 하셨다. 그 때부터 해가 돋는다. 야곱은 에서를 심히 두려워했는데, 다리를 절은 이때에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했기 때문이다. 환도뼈가 부러져 절뚝거림이 그를 평생에 겸손케 했다. 죄를 질 바에야 흔적이 남는 게 좋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죄의 흔적이 우리를 겸손케 하기 때문이다. 벧엘에서는 어린 기도와 서원을 했지만 얍복강에서는 성숙한 체험을 바탕으로 기도한 야곱을 보라. 하지만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해서 다 된 것은 아니다. (32절)‘환도뼈의 힘줄’은 새 이름을 받은 야곱과 그의 후손들은 이제 세상의 방법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환도뼈가 위골되어서 예수님의 첫사랑을 경험했는데, 이제는 환도뼈의 ‘ㅎ’조차도 멀리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라”는 말씀을 경험한 야곱이 다리를 절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나님, 제가 불구자 되니 행복하십니까? 내 돈, 내 자식들 다 데려가시니 좋으십니까? 나를 깨뜨리시니 퍽도 좋으시겠습니다. 그러나 깨뜨리지 않으셨다면 끝까지 속이고 남의 발 뒤꿈치를 잡는 인생이었을 것인데, 하나님이 환도뼈를 치신 것은 제일 잘 하신 일입니다’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해가 돋는 가운데 절뚝거리는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십자가 외엔 자랑할 것이 없음을 기억하라. 우리가 회개만 하면 칠흑 같은 어둠에서도 해는 돋는다. 똑같이 해를 보아도 내가 커튼을 치니까 해를 보지 못하고 자살을 한다. 자격이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공짜와 같은 해를 쪼이기만 하면 되는데 여전히 주고 받는 데서 생색을 내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오늘도 내일도 해는 반드시 떠오른다. 절망의 땅에서 벗어나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비추시는 빛의 사제가 되라. 그러기 위해서는 예배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내 항해의 끝이 하나님이 되시면 그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야곱과 같은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양성훈(77)
나는 인정받고자 하는 교활한 야곱이다. 헤어진지 1년된 여친(84)이 있는데 그 여친을 우상처럼 여기며 인정받고 싶어했던 죄를 오픈하려고 한다. 교회를 허수아비처럼 다녔지만 어리고 예쁜 여친과 다니면서, 이 친구가 나를 만나주는 게 고마웠고 우상을 떠받들듯이 3년 정도 교체를 했다. 명절 때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언니들 결혼을 핑계로 거절을 하더라. 나중에 친언니를 만난 자리에서 엄마는 나를 집에 데려와 보라고 했는데, 그 친구가 중간에서 막은 것을 알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 친구는 나를 좋아하면서도 내 외모나 옷차림을 부끄러워하는 점도 있는 것 같다. ‘내 외모 때문인가?’ 하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분했을 때 헤어지려는 생각보다는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외모와 관련된 치료도 받았다. 아직 어려서 결혼을 생각하지 않던 그 친구는 그 사실을 알고 부담을 갖은 것 같았다. 우리들교회를 다니면서 바뀌는 가치관들과 맞지 않아서 헤어졌지만 이런 내용을 그 동안은 오픈하기 어려웠다. 여자에 눈이 멀어서 병원에서 고액의 치료를 받은 것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결국 효과도 거의 보지 못하고 돈만 날림 ㅠㅠ)야곱이 남의 눈을 의식하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서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나도 야곱처럼 살고 싶다.
권욱진(80)
마태복음의 달란트 본문을 묵상하면서 남과 비교하였다. 나는 몇 달란트 받은 사람인지 생각해봤다. 야곱은 여자와 돈을 좋아했고 얻었는데, 하나님께서 내게도 좀 주신 다음에 환도뼈를 부서뜨려주시길 바랐다. 다른 친구들이 음란의 문제도 나는 경험하지 않아서 스스로 의인처럼 생각도 하지만, 해보고 싶은 호기심과 그들에 대한 부러움도 있음을 고백한다. 친구가 룸살롱으로 유혹을 할 때 거절은 하지만 가보고 싶은 복잡한 마음이 남에게 들킬까봐 야동을 보며 혼자서 해결하는 스스로를 정당하게 여기며 하나님께 토로한다. 나에겐 돈과 여자 그리고 집도 있어보고 깨져보고 싶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 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죄인인 것을 알겠는데 이러다가 목이 곧은 백성처럼 의롭게 생각하다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엄마에 대한 애통함인지 연민인지 분별되지 않는 감정이 있다.
(목자님 한마디) 지금 말씀을 보면서 시작하는 단계인데 갑자기 모든 것이 한번에 이루어진다면 넌 정말 무서운 사람이 될 것이다. 네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과 의로운 척하는 것 같다는 인식은 네가 건강하니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행위로는 의인인지 죄인인지 구분할 수 없다. 그리고 네가 먼저 구원에 대한 기쁨을 누려야 엄마에 대한 애통함도 시작이 된다. 한번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지금은 기도하면서 눈물이 나지 않아도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말씀을 따라 한 걸음씩 나가면 된다. 잘 붙어 있자.
박병배(78)
노는 것을 좋아하고 십일조를 내는 것은 싫어하는 게 야곱과 같은 나의 모습이다. 그리고 착한 친구들 괴롭히지만 나보다 센 사람에겐 약한 이중성이 있다. 사실 회사가 바빠도 놀러 가고자 맘 먹으면 먹고 가고 즐긴다. 나이를 먹으면서 예전보다 많이 줄긴 했지만 끊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보단 돈이 아까워서 그리고 허무하기 때문에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목자님 한마디) 중독은 쉽게 끊어지는 게 아니다. 만나면 유혹하는 친구를 피하고, 프로그램도 지우고, 회원도 탈퇴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용을 하자. 하다가 안 된다고 정죄하지 말자. (“음…그럼 성경책도 보고, 기도도 하고, 청년부 홈피도 가야겠다”) 성경책 읽고, 기도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대신 매일성경을 제 날짜에 보고 한 줄 긋는 적용을 하고 다음주에 검사를 받자.
김수연(78)
예배시간에 주님을 영접하겠다는 기도를 했습니다. 나머지 나눔은 비밀입니다.
이형배(80)
수요일에 일터에서 힘든 일이 있었다. 혼자 외근을 다녀오면서 겪은 상황이 창피하고 싫었고 한번 더 태클을 걸면 그만두려고 했는데 수고했다는 말을 들으며 상황이 종료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의 분노는 이제 시작이었다. 수요예배에 휘문 말고 동생네 교회를 가려고 귀가를 했다. 현재 일하면서 공부하는 환경이 맘에 들지 않았고, 최근 영어시험점수가 놀다가 본 시험보다 낮은 결과에 때문에 마음이 더욱 초조해졌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로, 내가 경제적인 짐을 메고 가는 상황에서 지금은 적은 돈으로 생활하는 것이 원망스러웠고 쌓여가는 분노에 이성적인 사고는 점점 멈추고 있었다. “에잇! 교회 가지 말아야지!”와 동시에 컴퓨터를 켜고 새로운 에이스를 보며 야동을 탐닉하는 내게 선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자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 엄마는 원망하지 말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리자고 하셨지만, 나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기에 말로 엄마에게 상처를 주었다. 정신을 차린 후, 나 때문에 엄마가 금식을 하시는 것 같아 계속 죄송했고 용서를 구했다. 내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야 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는데, 오늘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내 말씀으로 받아들였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이름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나도 욱진이처럼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쾌락에 대한 호기심과 갈증을 혼자서 해결하는 모습이 있다. 그리고 엄마에게 상처를 준 이번 사건 역시 그 동안 엄마는 내 투정을 받아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잘못을 회개했다.
기도제목
성훈
1. 음악작업 할 수 있도록
2. 목원들과 동반자를 잘 섬길 수 있도록
3. 죄의 고백의 습관화를 위해서
병배
1. 믿음 생활 충실하게
2. 이직을 위한 회사 정리를 잘 하도록
수연
1.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치유가 일어날 수 있도록
2. 외롭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끼도록
형배
1. 바벨론 포로 생활을 잘하고
2. 악하고 음란한 행위를 끊어낼 수 있도록
3. 이번 주 영어 시험 잘 보도록
욱진
1. 말씀이 잘 들리도록
2. 내가 야곱임을 매일 알아갈 수 있도록
자기 죄를 보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을 믿습니다/쿨럭/
재영이형, 병욱아 담주에 꼭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