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을 베풀리라. 사무엘하 9: 1~8
1, 다윗은 왕이된 후 사울의 집에 찾아와
요나단과의 약속을 왜 이행하려했을까?
2.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다윗은
므비보셋을 찾았다. 그 이유는?
3. 사울이 죽기전에 종 으로 있던, 시바는
주인이 부재로 비어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다윗이 찾고있는 므비보셋에 대해 다리를
저는 자라며 딴 곳에 있음을 말했는가?
4, 사울의 종 시바와 같이 우리는 사람들의
물질 이나 눈에 보이는 권력을 보고. 상대를
생각하고 있지않은가?
5. 사울의 집에서 쫒겨난 므비보셋을, 마길은
역적의 자손임을 알았음에도 20년 가까히 그를 돌보았다 .마갈은 시바처럼 므비보셋을
홀대하지 않았다. 이유는?
9장1절 ~ 8절 말씀과 같이 왕이 됀 다윗은 친구
요나단이 다윗을 위해 왕좌에서 물러나며
요나단의 가족을 부탁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자로서 , 다윗은 이제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갚으려했고,
혼자 간직하지않았다.
보통 우리는 다윗과 같이 주님께 이런 큰사랑과
물질의 축복을 받으면 내 힘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하며 자기교만에 빠지게되는데, 다윗은
자신이 받은 권세와 물질을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나눠주었다.
시바란 사람은 사울의 종으로 주인이 몰락해진
틈을 노리고 시바자신이 주인 행세를 하며 살았다. 아마도 나였더라도, 충직한 종으로
역적의 아들 므비보셋을 알뜰이 살펴주지는
않았을거 같다. 그이유는 ? 내의가 욕심이되어
시바와 같이 주인으로 살았을거 같다.
반대로 시바에게 젊음발이가 되었다는 므비보셋의 소식을 듣고 찾아간 마길처럼
아무런 조건없이 므비보셋을 20년 가까이
살펴주었다는 건, 마길은 내의와 욕심을 버리고
계산없는 충성된 종으로 구속사적 가치관을
삶으로 보여준거 같다.
(아직도 나는 구속사적 가치관으로 나가는게
쉽지않다. 만약 내가 다윗이었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부와 권세를 다른 가족이나, 형제자매와 나누려 하지 않았을거다.
내 안의 교만과 허세 그리고 자격지심으로
혼자서만 주의 은총을 간직하려들거 같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혼후 유산도 다 없어지고
오갈곳없는 나와 딸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여동생과 제부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와 딸아이는 없었지 않을까싶다.
마길과 같이 내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때
우리 모녀를 받아준 동생부부는 계산없이
함께 살자고 했는데,,,,
그 헤어짐이 내 옹졸함과 치졸함으로 아름답게
끝나지 않았고 지금은 동생과 소식을 단절하고있다.
다윗은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다른 어려운 이에게도 함께 주려했는데 난
동생부부에게 큰 도움을 받았음에도 내가
더어렵고 힘들다는 마음과 생각으로 물질우상
내우상과 교만으로 충직하지 못한 종 시바와
같이 지금까지 내 잘못을 인정하지않았다.
오늘 큐티본문 말씀을 묵상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이라도 동생의 얼어붙은 마음을 풀어주도록 노력하겠다.
사무엘하 9장 1~8절 묵상“은총을 베풀리라”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왕이 된 후에도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 찾았다. 그 이유는 요나단과 맺었던 약속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요나단은 다윗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다윗 역시 요나단과의 언약을 잊지 않았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되었다고 해서 과거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군가에게 흘려보내고자 했다.다윗이 찾은 사람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었다. 므비보셋은 다리를 저는 사람이었고, 왕족이었지만 사울 집안이 몰락한 뒤에는 두려움과 소외 가운데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그는 다윗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고, 정치적으로 위험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므비보셋을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은총을 베풀었다. 이것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본문을 묵상하면서 시바와 마길의 모습도 생각하게 되었다. 시바는 사울의 종이었지만, 주인이 몰락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유익을 먼저 생각했던 사람처럼 보인다. 반면 마길은 므비보셋이 힘없고 소외된 사람임을 알면서도 그를 오랫동안 돌보았다. 마길은 눈에 보이는 권력이나 이익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향한 책임과 긍휼을 선택한 사람처럼 느껴졌다.나 자신을 돌아보면, 나는 다윗이나 마길보다 시바의 모습에 더 가까울 때가 많았던 것 같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도움을 받았음에도,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보다 내 어려움만 크게 생각하고, 내 상처와 자존심을 앞세울 때가 많았다. 만약 내가 다윗의 자리에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부와 권세를 다른 사람과 나누기보다 혼자 붙잡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내 안에는 아직도 교만과 허세, 자격지심, 물질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특히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와 딸이 가장 힘들었을 때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혼 후 유산도 사라지고 오갈 곳이 없었을 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사람은 여동생과 제부였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와 딸은 훨씬 더 어려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들은 마길처럼 계산 없이 우리 모녀를 받아주었고, 함께 살자고 말해주었다.하지만 그 관계의 끝이 아름답지는 못했다. 내 옹졸함과 치졸함, 그리고 내가 더 힘들다는 생각 때문에 감사보다 서운함이 앞섰고, 결국 지금은 동생과 소식이 끊어진 상태가 되었다. 나는 그동안 내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내 상처와 억울함을 더 붙잡고 있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받은 은혜를 잊고 시바처럼 내 유익과 자존심을 먼저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다윗은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혼자 간직하지 않았다. 그는 그 은혜를 므비보셋에게 흘려보냈다. 오늘 나도 그 말씀 앞에서 내 마음을 돌아본다. 아직 구속사적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제는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지금이라도 동생의 얼어붙은 마음이 조금씩 풀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당장 모든 관계가 회복되지 않더라도, 먼저 내 잘못을 인정하고 감사했던 마음을 전하는 것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내 안의 교만과 자격지심을 낮추시고,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사람으로 나를 빚어주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