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까지 우리 부모님들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7강 과제도 성실하게 하신 분들이 많아 강사로서 큰 보람을 느껬습니다. 먼저 질문들을 너무 잘 뽑이내신 것 같아 너무 놀맀습니다. 앞으로도 내가 뽑아낸 질문으로 묵상해 보시면 너무 좋을 거 같습니다.
내 묵상과 AI의 답변의 차이가 뭘까요? 느끼셨겠지만 AI는 자세한 정보 전달에는 너무 훌륭한 답을 내지만 내 대답에는 나만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구속사적 큐티의 가장 차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날 주시는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맗씀이 되어 내가 성경을 읽고 성경이 나를 읽는 그래서 가장 창조적인 적용을 하시는 우리 부모님이 되시길 응원하고 가도합니다~
아래는 참고로 제 강의 중 "폭력새끼" 3D 큐티에 대한 ChatGPT의 평가 내용입니다.^^
정말 AI가 구속사를 알까요?
[ChatGPT 평가]
정말 좋았습니다. 단순히 "큐티를 했다"가 아니라, 사건 → 말씀 → 해석 → 적용 → 사명의 확장까지 구속사적 흐름이 매우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몇 가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1. 사건을 미화하지 않은 점
보통 간증은 자신을 조금이라도 좋게 보이도록 편집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간증은 딸을 때린 것,목장을 취소한 것, 초원을 취소한 것, 공동체를 피한 것까지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래서 진정성이 있습니다. 사실 폭력 사건보다도 더 무서운 죄는 말씀과 공동체를 피한 것이었는데, 그 부분까지 정직하게 드러난 것이 좋았습니다.
2. "폭력새끼"를 죄패로 해석한 통찰
이 부분은 상당히 강력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그래도 딸이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잘못이다" 라고 결론 내리는데, 은형님은 딸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붙여주신 죄패로 해석했습니다. 이게 바로 구속사적 해석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건을 사람과 사람의 갈등으로 끝내지 않고 하나님과 나의 관계로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야동박사라는 죄패는 달 수 있었지만 폭력새끼라는 죄패는 달고 싶지 않았다" 이 문장은 굉장히 날카롭습니다. 사람은 자기 죄를 선택해서 인정하려고 하거든요. 음란은 인정하겠는데 폭력은 인정하기 싫고, 교만은 인정하겠는데 비겁함은 인정하기 싫고, 탐욕은 인정하겠는데 무능은 인정하기 싫습니다. 그 지점을 정확히 건드렸습니다.
3. 십자가 적용이 감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갔음
많은 간증은 "제가 너무 잘못했습니다."에서 끝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딸의 뺨에 난 상처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로 갑니다. 이건 죄책감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를 회개시키시는 방법도 이와 비슷합니다.
"너 나쁜 놈이야" 가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왜 그렇게 살았니"를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딸과 함께 울게 된 장면이 자연스럽습니다.
4. Keeping이 가장 좋았습니다
사실 저는 마지막 부분이 제일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사건이 단순히 화해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폭력을 행한 부모들을 정죄하던 내가 이제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게 구속사의 열매입니다. 만약 사건이 없었다면
은형님은 계속 "저런 부모가 문제다"라고 설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저도 폭력새끼였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사역의 폭이 넓어진 것이죠. 이건 단순한 회개가 아니라 공감 능력의 확장입니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Nursing과 Keeping 사이에 한 문장이 더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현재는 딸과 화해했다에서 사역의 지경이 넓어졌다
로 갑자기 점프합니다. 중간에 이런 연결이 있으면 더 자연스럽겠습니다. "하나님은 딸의 뺨에 난 상처를 통해 제 안에 숨어 있던 폭력성을 보게 하셨고, 그동안 정죄하던 부모들의 마음도 비로소 이해하게 하셨습니다." 이 문장이 들어가면
화해 → 깨달음 → 사명의 흐름이 더 매끄러워집니다. 구속사적으로 보면 이 간증의 핵심은 사실 "폭력 사건"이 아닙니다.
핵심은 "야동박사로 살던 사람이 폭력새끼라는 새로운 죄패를 받게 된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죄패를 숨기지 않고 공동체 앞에 내어놓을 때, 수치가 사명이 되고 사건이 간증이 되었다는 것이 이 큐티의 가장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요한복음 19장의 죄패 말씀이 이렇게 현재의 사건과 연결된 것은 매우 인상적인 큐티였습니다. 오히려 사건 자체보다도 "공동체를 피하다가 말씀 때문에 다시 돌아오게 된 과정"이 이 간증의 백미라고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