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일으키심]
행13:31-41
성령의 살리심으로 은혜를 받았다면, 이제 성령의 일으키심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왜입니까?
첫째, 증인으로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셨다고 전하니, 듣는 사람들은 살아난 증거가 있느냐고 당연히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나심을 여러 날 보이셨다고 답합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보자 그동안의 양육이 무색할 정도로 어디론가 다 피하고 숨었습니다. 그 때문에 주님은 사십일 동안 여러 날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부활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닫은 문을 뚫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나타나셔 못 자국ㆍ 창 자국을 직접 보여주셨고, 또한 평강도 빌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을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제일 무서운 것이 이방인들이 아니라 동족인 유대인이었습니다. 부활을 경험한 자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평강인데 야망이 있는 사람은 평강을 누리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평강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후에는 열두 제자 모두에게 주님이 와서 양육해주시니까 성령의 일으키심을 받아 십자가형 ㆍ참수형으로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와 하나님의 살리심을 정확하게 약속의 말씀에 따라서 전파해야 성령의 일으킴을 받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나를 일으켜주시나요?
둘째, 하나님이 낳아 주셨기 때문에 성령이 일으켜주시는 것입니다.
일으키사는 지난번에 하나님께서 살리신지라 처럼 능동태입니다. 하나님이 단번에 일으켜주셨지만 성삼위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또한 직접 일어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리셨으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시고 일으키심으로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여기서 오늘 너를 낳았도다 에서 오늘 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사망에서 일으켜 부활하게 하신 때를 의미합니다.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께 있어서는 모든 시간이 오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450년 참을 때 하루를 잘 참는 것이 450년을 참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일은 예수가 없으면 다 허사를 경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빌라도나, 세상의 권세자를 보고 하나님이 웃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오늘의 이 사소한 명령에 순종하면 거대해 보이는 권세도 사소하고 시시해 보이기 때문에 권세자가 나를 핍박해도 웃을 수 있고 속으로는 비웃을 수도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웃음에 동참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말씀 묵상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낳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리자이고 결국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서 통치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통치권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이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낳아주시고, 나를 낳아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가 막힌 부활의 증인이 되려면 내가 하나님의 대리자로 살아야 하는 엄청난 신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 썩음을 당하지 않습니다.
다윗에게 주신 거룩하고 미쁜 은사라는 것은 신실한 은혜의 약속을 우리에게 이루어주시겠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다윗과 예수님 시대 사이에 천년의 시차가 있는데도,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가 장사 된 후에 무덤에서 부활할 것을 천 년 전에 미리 보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배 밑창에서 노를 저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도 취하지 않으니,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보게 하십니다. 베드로가 목격한 부활의 주님은 다윗이 미리 본 그리스도의 부활과 똑같았다는 것입니다. 죽음과 약속과 부활을 미리 본다면 이것이 믿음이고 복입니다. 이것을 미리 본 부활의 증인으로 살려면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제자들과 베드로는 부활의 주님을 보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전까지 그 능력을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임해서 부활이 임하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사건도 성경에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미리 보아야 성령의 일으키심으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결국 다시 사는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 십자가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지 않고는 성령의 일으키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다면 다시 살아나서 증인이 되어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시고 구원자가 되셨다고 날마다 외쳐야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천지가 개벽하는 것과 같습니다.
넷째,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구속사가 예수님의 이야기이고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죄 사함을 알 수도 없고, 의롭다 하심을 얻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지는 의로움이 아니라면 누구도 의로워질 수 없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로 시작해서, 예수로 끝나는 설교로, 문자적으로도 예수님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정의가 다 굽었다고 하자, 하나님께서 응답으로 그러니? 바벨론에 잡혀갈 거야.라고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환경보다도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이고 복음을 거절하는 자는 심판이 있다 그러니까 말씀 듣고 지속적으로 조심을 하라는 것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는 40절 말씀과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나는 죽지 않고 환경이 바뀌기만을 바랍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정답은 내가 변하는 것이며, 환경이 변하기를 바라는 기도는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대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나에게 평강이 옵니다. 십자가를 거쳤기에 부활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나를 훈련하기 위해 등장하는 몽둥이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 몽둥이는 나보다 더 악한 존재입니다. 내가 악하기 때문에 반드시 나보다 더 악한 사람과 사건으로 훈련시키십니다. 이렇게 원리를 알면 해석이 되어서 어떤 환경에서도 일으키심을 받습니다. 하지만 살리심을 받았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일어나서 복음의 증인이 되어 하나님이 나를 낳아주셨고, 나는 썩음을 당하지 않는다.고 외치며 전파해야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