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정명은입니다. 저는 쌍둥이로 태어나 자랐습니다. 쌍둥이 언니와 저는 특급 호텔 바에서 생일잔치를 열고, 비싼 돈을 내고 사립초등학교에 다녔을 만큼 돈도 있고, 사람들의 인정도 받는 세상적으로 보면 잘난 집이었습니다. 주일에는 컨디션 좋을 때 한 번씩 교회를 갈 정도로 교만하고 나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억울하게 오랫동안 다니시던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사건이 찾아왔습니다. 소송을 준비하시느라 피폐해진 부모님의 싸움도 잦아졌습니다. 곁에서 그걸 지켜보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불안에 떨었습니다. 저희 가족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소송에서 패소하는 결과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의 교도소 입소 안내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청주에서 회사를 다니시던 아빠는 토요일 저녁마다 엄마 면회를 갔다가 수원으로 와서 저희를 본 뒤, 다시 서울에서 우리들교회를 갔다가 다시 청주로 내려가시곤 하셨습니다. 소송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엄마가 교도소에 들어가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서 저에게는 불안과 우울이 반복되었습니다. 몇 해가 지나 엄마가 다시 돌아오시고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모이게 되자 다 같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들교회에서 가족의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누고 말씀으로 해석 받아서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데 쓸 수 있었습니다. 주일 예배와 목장을 통해 부모님도 변하기 시작했지만, 제 마음속에 있는 상처는 여전히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께 받지 못한 사랑을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으로 채우고자 했습니다. 그렇지만 외모 자존감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데다가 아빠와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하면서 표현하지 못한 분노를 풀기 위해 저 혼자 머리를 벽에 부딪치고, 때리는 등 자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목장에서 나누면 목장 선생님께서 진심으로 걱정해 주셨고, 그럴 땐 말로 표현하는 게 더 건강한 방법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자연스레 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부모님이 말다툼을 하실 때면 어릴 적 생각에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울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변화되기 시작하신 부모님도 때마다 말씀으로 해석 받고 목장 선생님을 통해 제 상태를 알게 하시는 등 저를 회복시키셨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입시가 막연히 두려워 울며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수학시험에서 8점을 맞을 만큼 공부를 안 했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도 있었고, 3년이라는 고등학교 생활 끝에서 저를 이 힘든 시간에 순종하게 하신 이유를 알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었습니다. 그 뒤로 주일 아침마다 예배에 참석하면서 입시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걸 알게 하셨고, 하나님 없이 내 노력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일에 쓰시기 위해서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허락하신다는 것도 알려주셨습니다. 엄마의 소송과, 부모님의 부재는 제게 견디기 힘든 큰 고난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 때문에 모든 걸 잃고 나서야 하나님한테 엎드려 도와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아직도 저희 집은 소송에서 얻은 빚을 갚아야 하고, 제 마음 속에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처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와 사건이 와도 해석 받을 수 있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사람이나 돈에 기대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 속에서 행복을 찾고 누리려 했던 저희 가족을 완전히 무너뜨리시고 말씀 속에서 다시 회복하신 것에 감사합니다. 수능은 끝났지만, 피폐한 광야와 같은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회복할 수 있게 붙들어주시고 인도해 주시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