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지원경입니다. 술과 노름중독이신 아빠는 항상 술에 취한 상태셨고 술에 취하면 폭력적으로 변해 가구들을 부수시곤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초등학생 때 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나서였습니다. 아빠를 제외한 우리 세 가족은 고모네로 피해 있다가 다시 집에 들어갔는데 다음날 아빠는 자고 있던 언니와 저를 깨워 아빠 죽으러가니까 잘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은 아빠의 생신이었습니다. 다행히 아빠는 별 탈 없이 잘 들어오셨지만 끊임없는 아빠의 중독들 때문에 엄마는 항상 무기력하셨습니다. 이러한 환경 탓인지 어려서부터 저는 ‘엄마가 많이 힘드니까 나라도 신경 안 쓰이게 해야지’ 하면서 항상 죽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내가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당시에는 그게 답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세상의 재미를 좇기 시작한 언니는 몇 년이 지나도록 끝이 보이지 않는 방황을 하였고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학교와 경찰서, 법원을 들락날락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항상 아빠와 언니가 차라리 죽기를 바랐고 아빠 언니 없이 엄마와 둘이 살아가는 상상도 자주 하곤 했습니다. 그 생활이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지라도 그게 지금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언니에게는 여기서 다 언급할 수도 없을 만큼의 많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 속에서 저는 엄마, 아빠에게 모범생의 이미지를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의 공부 잘 하고 착한 딸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밖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잘한 폭력사건에 항상 껴있었고, 가족들은 아직까지 모르는 사건들도 있습니다. 직접적인 가해자로서 다른 가해자 친구들처럼 강제 전학을 가거나 최소 정학을 먹었어야 하는데도 정말 신기하게 저 혼자 잘 빠져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학교를 다니다가 원하는 고등학교까지 잘 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션스쿨이었던 고등학교를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한 달도 안돼서 또 같은 반 친구와의 몸싸움이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별다른 사고 없이 잘 지냈습니다.
우리들 교회에는 초등학교 5학년, 엄마, 아빠의 이혼직전에 친한 이모의 소개로 오게 되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들었던 우리들 교회에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이 엄마에게 하는 최고의 반항이었고 남의 교회로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7년을 억지로 다니다 올해 초 겨울수련회에서 드디어 하나님을 만나고 돌아오고 나서는 제훈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시작한 제훈을 통해 제가 알지 못했던 저의 죄도 깨달았습니다. 언니가 맨 처음 손목을 그었던 날 피 흘리는 언니를 보면서 괜찮냐는 말 한마디 못 하고 미친년이라 욕했던 것이 저의 큰 잘못이었고, 그 때 제가 언니얘기를 들어줬더라면 그 뒤로 언니가 해왔던 수많은 자해와 자살시도는 조금이라도 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너무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약을 먹고 응급실에 실려 갔던 언니지만 올해에는 그러지 않은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비록 청년부에 가서 교회도 자꾸 빠지고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살고 있지만 어떤 고난이든 하나님께서 끊어주실 때가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아빠역시 목장예배도 잘 나가시고 제 곁엔 항상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잊지 말라고 하실 정도로 많이 변하셨습니다.
요즘은 모든 일들이 잘 풀리다보니 간절함이 사라져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일하느라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큐티도 안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지 않도록, 그리고 남보다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함에 있어 많이 힘들고 지칠 텐데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찾고 우리 가족, 특히 언니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제가 되도록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