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박예찬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형과 엄마, 아빠 이렇게 네 명이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올해 겨울 청소년부 수련회 때 교회에 온지 4년만에 처음으로 간증을 했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고, 수련회에서 돌아온 날 저는 엄마로부터 경찰서에서 신고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작년에 폭력사건으로 봉사 시간만 받고 무사히 재판을 넘어간 저는 이번에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난 다음 재판을 본다고 할 때까지 심각성을 몰랐습니다. 학교에서는 겨울방학 도중에 퇴학 판결을 받았고 이번사건 재판을 보기 전 부모님과 교육청에 가서 항심을 넣어 퇴학 판결을 전학 판결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친형이 다니고 있는 곳으로 고등학교로 옮겼습니다. 적응하는 것이 힘들어도 학교를 안 다니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 감사하게 다니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간지 4일 만에 특별 교육을 받으러 가야했습니다. 그 교육은 5일 동안 받는 것이었는데, 5일 동안 열심히 교육을 받고 마지막 날인 금요일에 재판 날짜가 잡혀 저의 생각에는 ‘하나님이 새 학교로도 옮겨주셨고, 교육을 받는 마지막 날에 재판을 잡으신 것 보니 새 출발을 하라는 기회를 주신 것이구나!’ 했습니다. 하지만 재판을 보고 저는 엄마와 서로 갈리어 다른 문으로 나가게 되었고 처음으로 수갑과 포승줄에 묶여 서울 소년 분류 심사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 그곳에 갔을 때 ‘내가 이 정도로 큰 잘못을 했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죄명은 제가 생각한 단순 폭행과 달랐습니다. 폭행, 상해,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아 금품 갈취, 감금 등등 제가 하지 않은 것 같은 일들이 엮이고 엮여 악질 범죄자로 적혀있었습니다. 이곳에서 1달간 감옥처럼 갇혀 살다가 딱 한 달이 되는 날 재판을 봤습니다. 재판을 보기 2~3일전에 재판에서 나올 예상 처분을 알려주는데 저는 1~10호 처분 중에 9호인 소년원 6개월 형을 받을 것 같다고 그 안에 있는 교관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재판받는 날 당연히 9호를 예상했지만 교회 목사님, 그 외 많은 선생님들의 탄원서로 봉사 80시간 교육 40시간으로 사회에 나갈 수 있는 처분을 받았습니다.
나오고 나서는 부모님을 보고 울고 1달 만에 밖에 나온 것이 너무 기분이 좋아 눈물이 났습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에 감사하며 부모님께 잘할 것을 맹세했는데 생각이 바뀐 저와는 다르게 전혀 바뀌지 않는 가족들을 보며 화가 났습니다. 그때마다 항상 하나님을 믿게 해 준 부모님이 가장 최고의 부모님이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항상 질서에 순종하려는 생각은 하지만 몸은 이미 부모님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아빠가 술 먹고 화를 내거나 집안에 무슨 일을 할 때만 화가 났지만, 요즘은 그저 술만 먹고 와도 정말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납니다. 항상 ‘화, 화, 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화로인해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싸움 만했던 제가 미웠습니다. 남들보다 잘하는 것도, 잘난 것 하나 없는 제가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싸움이었고,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해도 남들보다 잘하지 못할 거야…’ 라는 생각에 아무것도 쉽게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변화하겠다고 말은 많이 했지만 머릿속으로만 바뀌는 제가 싫었습니다. 이렇게 저를 깎아내리다보니 하나님은 이미 저와 멀어져있었고 큐티는 커녕 교회 나오는 것조차 싫어지고 있습니다. 꿈이 없다보니 인생에 목표가 없고 목표가 없다보니 오늘 할 일 조차 생각이 나지 않아 하루하루를 허무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다간 제일 싫어하는 아빠처럼 될까 무서워 그냥 죽어버릴까 라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부터 상담 선생님 외에는 저의 힘든 것을 말한 적이 없었기에 가족들에게는 그냥 멀쩡한 척 웃고, 힘들 때는 이유 없이 화만 내고 있습니다. 힘들 때면 늘 친구가 있었는데 친구우상을 떨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들으셨는지 친구들과의 연락이 많이 뜸해졌습니다. 친구가 없으니 담배에 의존하게 되어 많이 피게 되었긴 하지만, 담배보다, 사람보다는 하나님에게 의지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요즘 믿음이 많이 없어졌는데 하나님에게 다시 다가갈 수 있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