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아빠, 엄마, 나 셋이다.
라고 말한다면 이건 그냥 서류상, 학교나 친구들? 에게 지금까지 말해왔던 방식이다.
사실 우리 가족은 아빠, 엄마, 큰 오빠, 작은오빠, 나 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교회에서 처음하게 되는데
모두 다 아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기 때문에 나도 드러내는 것이다. 솔직히 좀 다른 측면의 상황?이라 드러냄에도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오빠들를 알던 사실이라 크게 충격받거나 그런건 없었다. 오빠들도 나한테 잘 해주고 큰엄마와 엄마와의 관계가 조금 눈치보이긴 하지만 특별히 문제되는 것을 없었다. 연락을 잘 안하므로...
아무튼 배다른 오빠들과 나이차도 내나이정도다. 벌써 결혼까지 해서 나와 띠동갑인 큰조카와 작년에 태어난 조카, 둘이나 둔 큰오빠는 34세, 재작년에 아들을 둔 작은오빠 32세.. 만만치 않은 나이차라 어색함과 명절때마다 만났을 때 그 기분은 정말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나만이 왕따같은 이 느낌...
아무튼 여기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몇년전부터 아빠와 큰 오빠의 관계가 이상해 지기 시작했다. IMF가 올 무렵 아빠의 회사는 어려워 졌고 부도가 났다. 아빠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오빠는 그 당시 스포츠카, 음주, 돈에 빠져 있었고 큰엄마는 아빠가 부도가 나 버리자 당장 이혼을 요구했다. 그 때 비로서 엄만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었고 우리집은 훨씬 작은 집으로 이사 가야만 했다. 아빠 회사가 인천이라 자주 서울로 올라올 수 없어 우리집은 이때부터 주말마다 만나는 집으로 되어버렸고, 나는 토요일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하지만 오빠는 점점 아빠를 힘들게 했고, 더군다나 부도가 나서 다시 회사를 차릴 때 오빠의 이름으로 차려야만 했다. 이를 핑계로 오빤 아빠에게 계속 협박만 했고, 돈을 주지 않으면 아빠가 계신 회사에 불을 질러 같이 죽자는 둥 ... 힘들게 했다. 저번엔 엄마와 내가 사는 집까지 술먹고 찾아와 온 가구, TV, 창문 등을 깨부수고 아빠와 이혼하라며 협박까지 했다. 이때부터 난 오빠가 정말 싫었다. 이웃들 보는 것도 창피했고, 오빠가 또 오니까 피하라는 아빠의 전화가 올때마다 엄마는 교회에서, 나는 독서실에서 밤을 새기 일쑤였다. 나한테 투자하지 말라는... 서울 강남에 부자동네에 산다며 당장 시골로 내려가 돈을 쓰지 말라고 협박하는... 오빠의 모습을 볼때마다 오빠가 정말 자식을 둔 아버지인가 ? 의심하게 된다. 아니, 오빠가 정말 싫다. 나랑 만날 땐 날 위한 척 하면서 미안하다고 그러지만 오빠의 본 마음도 모르겠고, 술에 빠져 허덕이는 오빠가 내 오빠인게 싫고 창피스러웠다.
오빠가 아빠한테 자주 하는 말.. 아버진 저희보다 정인이만 이뻐해요. 란 말을 듣고 당황해 하는 아빠의 모습과 함께 오빠의 마음이 궁핍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전적으로 오빠의 행동이 그 이유라고 생각한다.
둘째오빠는 그야말로 노력파다. 오빤 아빠한테 의지하지 않고 성공한 직장인이다. 아르바이트로 호주 유학까지 갔다와서 대기업에 취업한 오빠는 아빠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도 늘 둘째오빠 자랑만 하시는 것 같다. 내가 때론 말을 안 들을땐 내가 큰오빠를 닮아간다고... 둘째오빠를 닮으라고 당부하신다. 오빤 아직교회는 나가진 않지만, 아빠가 나가라고 하니깐 언니와 함께 조금씩 교회에 나가는 듯 한다.
아빠는 당뇨병을 앓고 계신다. 현제 62세의 나이로 나는 늦둥이지만 이런 아빠께 죄송하다. 처음엔 아빠가 늙어서 시선이 창피하고 그랬는데 오빠들 문제로 힘들어하는 아빠를 보고 그런 마음은 별로 안 드는 것 같다. 아빠 친구들은 다 직장을 그만 두고 여가 생활을 즐기시는 반면에 아빤 나의 학비 때문에 지금도 힘들게 회사에 다니는 것을 보면 너무 감사하다. 아빤 서울에 있는 집에 토요일, 일요일에만 계신다. 그 나머지는 큰오빠와 함께 시골집에서 산다. 회사가 가까우므로... 아무튼 나는 아빠를 좋아한다.
엄마는 희귀병을 가지고 계신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힘든 일을 하시면 피가 소변으로 나와 나중엔 피가 없어 죽게 된다는 병이었다. 아빠보고 장례식을 준비하라던 의사도 놀라듯 엄마는 나를 임신하면서부터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2년 전에 같이 중국여행을 갔다오다가 엄마가 만리장성에서 쓰러지셨는데 그 병이 다시 생긴 것이다. 한국에 오자마자 병원에 입원해서 힘든 나날을 보냈는데 그때만큼 힘든 때가 없었다. 지금도 피가 모자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시는 엄마... 외동이라 그런지 그럴 땐 내가 누구에게 기대야 하고 살아가야 하고 이런걸 깊게 고뇌하곤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족의 이야기였다. 꽤 길고 복잡한 집안이여서 싫다. 우리집도 깨끗하고 화목했으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