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처럼 왕따 당하신분은 없다. “내가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나요?”라는 것이 우리의 주제가이다.
예수 믿어도 야곱처럼 곤고할수 있다.
-예수님은 어떤분으로 알아야 하는가?
*멀찍이 따라가는 분으로 생각해서는 않된다.
멀찍이라는 말은 베드로와 같이 도망갈 거리를 확보하고 끊어지지 않을 부정적인 관계이자
그래도 예수님을 따라갔다는 긍정적인 관계이다.
몸이 멀어지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주님과의 사랑은 거리와 비례하다.
나는 예수님과 미행하고 있는가? 동행하고 있는가?
모두 순식간에 멀찍이가 될수 있다.
*거짓 증거 하는 분이 아니다.
거짓증거를 찾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모임에 가지 못해서 안달이다.
예수님 죽이는 모임은 나 살고 남을 죽이는 것이다.
“너희가 날 죽여도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하신다.
내가 약점이 많아서 거짓증거 할려고 할 때면 완전 무결한 예수님께 넘기자.
예수님의 죄는 찾을수 없지만 나의 죄는 찾을려고 하면 찾을수있는 사람이란것을 알아야한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님께 넘기면 하나님은 다 처리해주신다.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이시다.
큐티하지 않으면 어디서 잠잠해야하는지 모른다.
예수님을 죽인 사람은 당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께서는 죽기 위한 증거를 찾으신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는 쪽으로 태도를 결정해라
사람들은 결정하고 큐티한다.
인생은 목적의 거룩이다.
적용
나도 사소한 일에도 예수님께 멀찍이 다가가려고 했다.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변호하지 않은 열두제자들과 같이 나도 예수님이 나 때문에 십자가 지시는데 그런것도 모르고 하나님과 끊을수는 없지만 바로 다가갈수도 없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나한테 유리하게만 받아들일 것 같다.
하지만 이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예전에는 아예그런 생각도 없었는데 이젠 그러면 않된다는 것도 깨닫고 하나님께 의지하게 된 것 같다.
또 나는 내 의견을 그렇게 잘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의 의견이 내가 하기싫거나 나쁜쪽으로 기울어도 그것대로 하게 된다.
하지만 설교를 듣고 그런점이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란것을 알게되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럼 내가 여태 예수님을 몇 번이나 죽인거야?’ 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예수님을 죽였는데도 하나님은 날 사랑하고 내가 뭐해달라 뭐해달라 기도하면 거의 들어주신점이 너무 감사하기도 하면서 죄책감이 너무 심하게 든다.
이제 예수님을 정말 나의 그리스도 라고 생각하며 행동해야겠고,
예수님을 죽이는 행동같은 것은 않해야겠다.
“하나님 제가 여태 하나님을 여러번 죽였는데 그것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 저를 용서하여주세요~ 그리고 이제 저의 의견을 확실하게 말할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다시는 예수님을 죽이는 행동을 않하게 도와주세요 정말 죄송하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