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번째 부인: 예수님을 부인해서 통곡했다.
베드로는 지금 바깥뜰에 있다. 멀찍이 따르기에 계집종에게까지 수치를 당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계집종을 마음으로 무시하는 것은 아직 세상적인 성공믿음을 가졌음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각자의 환경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으면서 그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다. 욕을 하던, 교양 있게 가만있는 것 까지도 우리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2) 두 번째 부인: 맹세하며 부인
계집종을 피해 베드로는 가야바 집안 뜰로 피하였으나, 주님께 피해야 하는데 세상으로 피하니 더 비천하게 무시를 당하게 되었다. 베드로는 나사렛을 천하게 여기지만 새싹이요 나시린, 이란 뜻이 있는데도 가만있었다는 것은 전혀 사랑이 없었음을 알아야 한다.
3) 세 번째 부인: 저주하고 맹세하며 부인
저주하고 맹세하며 부인하는 베드로의 모습이다. 말고의 귀까지 베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으며, 말고의 귀를 베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는데도 저주하고 맹세하는 모습이다. 베드로처럼 두 주인을 섬기면 양쪽 모두에게 무시를 당한다. 내가 살아 있으면 툭 건드리면 베드로처럼 무조건 예수님을 부인하는 나의 모습이 다 있기에 우리는 모두다 100% 죄인임을 알아야 한다. 세 번째 부인하니 곧 닭이 울매 베드로가 예수님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였다. 닭이 우니 결국 사람들을 떠나 홀로 밖에 나가 예수님을 생각하고 심히 통곡하는 사랑이 보여 진다. 자신의 비참함 속에서 자신이 통곡하는 사람은 정말 복 있는 사람이다. 이 부인으로 인해 아무리 3000명의 사람이 주님께 돌아오는 사건에도 교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베드로의 겸손을 훈련시키신 예수님은 이미 베드로를 알고 계셨기에 슬픈 눈으로 바라보셨다. 고난당하고 욕먹는 것을 예수님처럼 잘 하려고 하는 것이 교만이다. 내가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또한 하나님 앞에 인정해야 하며 베드로가 실패한 이유는 기도하지 않았고, 졸았으며, 장담한 것이 베드로를 실패하게 한 것이나, 베드로는 말씀이 생각나니까 살아나는 것이다. 나는 내가 통곡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부인하기에 통곡하며 사는 것이다. 나는 베드로처럼 통곡하는가? 예수님처럼 통곡하는가? 우리는 내 죄를 보고 통곡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느낀 점>
난 인생 자체가 부인하는 베드로와 같은 삶이었다. 솔직히 밖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나서고싶지 않았다. 예수쟁이 예수쟁이 라는 말이 싫었고, 내 말에 반박하려드는 세상 사람들이 싫었다. 그래서 내 종교를 숨기고 싶을 때가 더 많았던것 같다. 그러면서도 나는 통곡하지 않았다. 내 삶속엔 말씀이 없었다. 이제라도 통곡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말씀으로 살아나는 삶이 되길 원한다.
요약은 해놨는데.. 느낀점을 안써서 못올리고 있었어요; 인정..되나여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