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예수님은 말을 할 때와 안 할 때를 가려서 하신다. 무리의 소원이 다 옳은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은 예수를 죽이자 이었다. 예수바나바를 선택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할 것인가 해서 사람들은 보인 바나바를 선택했다. 그 시대 대제사장을 우상시 여겼다. 그래서 대 제사장은 자기를 따르는 백성들을 이용해서 예수를 죽이는 일을 완성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이 축복권이 있다는 것과 같다. 민주주의가 다 옳은 것이 아니다. 무리의 다수가 옳은 것이 아니다. 교회 다닌다고 옳은 것이 아니다. 교회는 복음주의다. 빌라도의 아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빌라도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빌라도는 예수가 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내가 말했을 때 듣지도 않아서 결국 2000년 동안 예수님을 죽인 사람이라고 기억 되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다 버려도 의외의 사람이 목숨을 걸고 말린다.
끊을 건 빨리 끊어야 한다.
암말기 할머니가 80살 할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하고 죽기 전에 할아버지와 헤어지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1억7천만 원을 신용불량자 아들에게 줘서 신고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잘한 게 하나도 없지만 할머니가 나쁘다. 할아버지가 1억7천만 원을 주었어도 신용불량자로 살 것이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해야 유다이다. 요셉을 너무 하나님과 함께 살아서 자기의 죄를 볼 줄 모른다. 지기 죄를 볼 줄 아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계보에 오를 수 있다.
세상도 좁은 길이다. 그래서 주식을 하지 말아야 한다.(? 졸았나보다)
한 초등학생이 심청이가 빠진 것이 나쁘냐. 착하냐를 토론했는데 이렇게 말했다.
심청이가 빠져서 아버지가 눈을 떴더라도 무슨 낙으로 살겠냐.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목숨인데 그렇게 심하게 다루니까 나쁘다.
예수그리스도를 신임하기를 축복 한다.
느낀 점
먼저 너무 길고 말이 어렵게 느껴진다. 보너스로 졸리다. 내가 아직 영이 자라지 못해서 그런가. 같다. 오늘 내용은 예수님이 죽으신 이야기 얻는데 설교요약에서 빠뜨린 부분이 있다. 생각은 나는데 적어놓지를 않아서 설교말씀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찾아가서 회개 했어야 하는데 조금의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 뉘우치고 목매달아 자살했다 --------
오늘 말씀에 다수가 옳은 것은 아니다 라고 했는데 나는 지금까지 다수가 하는 대로만 했다. 물론 친구끼리 놀 때는 내 의견대로 하였지만 반별로 무엇을 하거나 할 때는 다수의 의견이 무조건 좋은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소수든 다수든 옳은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내가 머리를 깎으면 다른 사람들이 웃기다고 할까봐 깎지 않았는데 그날 바로 가서 벌점카드를 받았다.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가롯유다처럼 자살하지 말고 머리를 이제 단정하게 하고 다녀야 걷다.
나도 지금까지 가롯유다같은 삶을 산 것 같다. 일단 분위기 타서 신나게 논 다음에 생각해 보니 너무 놀은 것 같아서 집에 와서 하나님은 구하지는 않고 엄마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만 굴뚝같았다. 엄마가 계시면 나는 목매달아 죽곤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목메다는게 아니라 축복 이였다. 그때 엄마가 안 계셨더라면 나는 엄마에게 빨리 왔다고 거짓말을 했을 것이고 그건 놀은 것보다 더 큰 죄이니 말이다. 어제 내가 벌점 카드를 받고 그냥 넘기려고 하다가 교복 바지 주머니에 넣고 바로 빨아서 엄마가 그것을 발견하시고 무엇이냐고 해서 나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여서 결국 사실대로 말했다. 내 머리가 조금만 상황대처능력이 좋았다면 나는 그때 학교에서 시험 본 것이라고 하고 바로 찢어서 필요 없는 것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때 많이 혼났기 때문에 이제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 하나님은 나를 너무 사랑하시는가 보다. 고난이 축복 이였다. 거짓말이 들통 난 것이 고난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나에겐 고난 비슷했다. 이제 진짜 맘 잡고 정직하게 살아서 내가 놀 고와도 가롯유다처럼 엄마가 없기를 바라지 않고 예수님을 찾아가는 적용으로 엄마가 안 계셔도 엄마에게 전화해서 말씀을 드려야 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