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받는 자부심 이론. 다른사람보다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할 때 생기는 폭력성.
이런 모욕과 조롱을 무서워하고, 모욕을 받으면 싸우고 난리 피우는 우리의 모습과 이 세상에서 수치와 모욕을 받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자. 내가 사랑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주는 수치와 모욕을 잘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악한 세상에서 당연히 우리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수치와 조롱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십자가를 지는 과정>
재판에서 진 예수님. 채찍질 당하시고, 온 군대가 보는곳에서 조롱 당하시는 온갖 수난 중에도 포기하지 않으신 예수님. 우리는 어느과정까지 견딜 수 있는가? 아무런 죄없이 당하신 주님이신데, 죄만은 우리는 더하면 더해야지 덜할게 어디 있느냐. 예수님의 매맞은 오픈으로 우리가 치유되는 것 처럼 우리의 상처를 힘들지만 오픈할 때, 나의 수치가 주님의 수치가 되어 많은 사람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십자가를 억지로 지는 것도 축복이다>
구레네사람 시몬이 억지로 지게되는 십자가. 별 믿음 없이 유월절 지키러 가서 괜히 따라다니다가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 왜 나야? 라고 하는 마음이었겠지만, 억지로라도 그 십자가를 지었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감화하셔서 그의 가정이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하필 나야? 라고 하는 내 모습이 있지는 않은가? 나의 부끄러운자리, 하기 싫은 자리에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남들에게 가증히 여겨지는 것 때문에 나는 신앙의 순수성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
<완전히 죽어지는 것이 십자가의 완결판이다>
쓸개탄 포도주를 찾지 말라. 그 곳에 안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온정신으로 고난의잔을 끝까지 잘 마실 때 안식이 오는 것이다.
[느낀 점]
말씀을 듣다가 얼마전 학교 대강당에서 받은 수치스러운 일이 생각났다.
강당에 뛰어 오다가 교복안에 받쳐입는 나시티가 조금 튀어나왔는데, 그게 꼬투리가 잡혀서 전교생이 있는 앞에서 심하게 맞았다. 그때는 지금 이선생을 엎을까 아님 더 처절하게 법적으로 밟을까 별별 생각이 들었었는데... 죄없이 조롱당하신 예수님을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강당 들어가기 전 복장을 다시 체크하고 들어갔으면 별 문제 없었을 텐데, 나의 부주의였다. 그리고 맞으면서 다른애들은 더심한데 왜 하필 나야?!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도 사실이다. 제자훈련때도 기도하라고.. 그러시면 나도모르게 아 왜 하필 나야?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제는 내인생이 말씀으로 왜 나야 라는 인생에서 순종하겠습니다 로 바로바로 바뀌는 인생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T^T어려울꺼야....) 그리고 나를 때린 학교 선생님을 더욱더욱 사랑하면서 교복도 잘.. 인사도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