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우리나라에서는 12000명이 자살을 하고 60만명이 자살시도를 하려고 한다.
자살로 이끄는 지도자들이 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대제사장들이 밤에도 회의를 연다
그 당시에는 해가 지면 회의를 열수 없었는데 말이다.
그 대제사장들이 무조건 나쁘다고는 말할수없는것이다.
그 가해자의 입장에서도 적용을 해보아야 한다.
죄지은 사람을 통해 구원을 받을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내쫓으려하면 안된다.
내가족의 죄를 내가 용서할수 없다면 과연 누가
그사람을 용서할수 있을까?
스스로 뉘우쳐도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
유다는 예수님이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진짜 끌려가니까 양심에 가책이 느껴졌다.
그래서 유다는 결국 돈으로 다시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잘못된것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회개한것이 아니고 단순히 후회를 한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체적인 적용을 해야한다.
우리는 잘되던 일이 잘되지 않으면 처음 같이 하자고 말했던 사람에게 너죽고 나죽자 라는 식으로 그사람을 미워한다.
자살을 해도 상관하지 않는 지도자가 있다.
유다는 재제사장들에게 가서 후회를 하고 했지만
대제사장들은 예수님 죽이기에 급급하여 유다를 무시했다.
그리하여 유다는 죽었다.
이런 대제사장들의 행동은
정말 힘든사람이 와서 도움을 청해서 무시하는 행동과 같다,
이런 행동은 예수님을 죽이는 행동이다.
내 행동에따라 사람을 죽일수도 있고 살릴수도 있다.
끝까지 그사람을회개할수 있도록 이끌어야한다.
어떠한 나쁜 사람도 나쁜 죄를 지어도 그 사건을 회개하면
그것이 구원이 될수 있는것이다.
나는 힘든사람이 와도 무관심 하지 않는가?
나는 내가 할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나에게 와서 도움을 청하면
내 일에 정신이 팔려 신경을 안쓰고 있지는 않는가?
예전에 내가 수학을 공부하고 있을때 공부 못하는 아이가 와서 이문제를 어떻게 푸나고 물어봤었다. 그런데 나는 얜 공부도 못하는 앤데 나한테 무슨 이익이 있겠어? 라는 생각으로 그친구에게 대충대충 대답을 해주었다. 그랬더니 그친구는 기분이 상한것 같아보였다. 하지만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후에 내가 수학 영재라는 친구에게 수학문제를 들고가서 질문을 했다. 그때 수학영재는 그때 내가 생각한것과 똑같이 생각을 했나보다. 그러고서 나에게 그냥 혼자 풀어 라고 말을 했다. 나는 정말 기분이 상했다.
그러면 그때 내가 대충알려줬던 그친구도 정말 기분이 상했을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일은 사소한 일이었지만 실제로 더 큰일에 적용해보면 정말 내가 못된짓을 했을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누가 나에게 와서 도움을 청하면 친절하게 대해주고 자살?로 가지 않게 인도해주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