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심을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 보이셨다.
일곱귀신들고, 비천한 삶을 살아오다가 예수님을 만났던 마리아이고, 그런 예수님이 삶의 의미였는데 돌아가셨으니 보이는게 뭐가 있었겠는가. 그렇게 주님만 바라보다가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보게되는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비천한 여인이 무덤앞에 찾아올때 주님을 만났듯이 우리도 하나님께서 품으실 것이다. 우리도 막달라 마리아가 되어서 주님만 쳐다볼 수 있는 환경이 되길 원한다.
-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두려워 하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항상 안전하게 지키려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 번개같은 현상으로 갑자기 거룩하게 하는 사건을 보는데도 이 사건을 해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워 하는 것이다. 내가 완벽하게 지키려 할 때, 그 완벽속에서 답답해 하며 나의 완벽을 무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이기에 자신의 힘드로만은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우리의 모든 사건은 예수님이 살아나는 사건인데, 이 사람들은 해석치 못하면서 기뻐하지 못하고 두려워 떠는 것이다.
- 주님의 부활은 무서워 할 일이 아니다.
말씀하시던 데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파수꾼은 무서워 할 지라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서워 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살아나신 것이다. 말씀의 권세를 보이신 것이다. 죽음을 정복하신 것이다. 그것을 미리 믿었던 사람들은 주님의 부활을 볼 때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을 위해 예수님 처럼 암흑속에 누워 있어야 할 때가 있다.
사명을 주셔야 하기 때문에 살아나시는 주님이시다.
조금만 내가 높은 지위에 오를 때 교만치 말고 주님의 겸손해 지심을 배워야 한다.(제자들에게 내 형제들 이라고 칭하시는 것처럼) 물질을 뛰어넘는 것이 평강이다. 시공을 뛰어넘는 평강이 없으면 사명을 다할 수 없다.
[느낀 점]
나도 항상 내 삶 가운데서 내 힘으로만 안전하게 지키려 하는것이 너무 많다.
너무 완벽주의라서 내 가족들이 내 성격에 지치고 있던것을 몰랐다.
내 자체가 주위사람들에게 무덤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나를 옭아 맨다는 내 가족들을 사실은 내가 더 힘들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얼마나 지금까지 교만하였는가.. 얼마나 내 자신만 믿고 내 힘으로만 하려다가 주님의 부활을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이진 않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원을 위해 그 어둠속에 누워 계셔야 했던 예수님처럼
나도 지금 내 상황이 어둠고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아니면
이 어둠이 좀더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내 사명이라면 기꺼이 누워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