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하여 성별하자>
1.양문을 건축해야 한다.(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내 죄를 위해서 죽어주신 예수님께서 내 인생의 시작이고 끝이 되어야 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님께서 내 인생의 시작이고 끝이 되면 성별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배가 회복되면 우리 인생이 저절로 회복되도록 해주신다.
예배가 우선이 되는 가정, 교회가 되어야 하고 가정의 우두머리가 시작해야 한다.
모든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공동체의 지도자가 가장 중요하다.
성별되는 것 = 봉헌하는 것(하나님께 드리는 것)
내 인생이 거룩해지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항상 섬기는 인생을 말한다.
넘어지는 백성들을 중보하고 살피고 성별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예배(QT)이다.
다른 사람들이 넘어지는 것은 내 잘못이고 내가 대제사장 역할을 하지 못하고
양문을 건축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어주셨다는 것들을
집안에 선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힘으로 살아도 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한 걸음씩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신다.
내가 비록 부족하지만 예배가 회복되었을 때 내 아들을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신다.
2.어문을 건축해야 한다.(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
내가 물고기가 되어서 주님께 잡혔으면 나도 다른 사람들을 낚아야 한다.
아무리 물고기가 많아도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지 않으면
다 빠져나가게 된다.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자물쇠와 빗장을 채워야 한다.
쓸데없이 예민하지도 말아야 하고 마무리를 못하면 실속없는 인생이 된다.
빗장 안채우고 자물쇠 안채우는 사람은 책망밖에 받을 것이 없다.
문을 잠글 때는 잘 잠그고 열 때는 잘 열어야 한다.
사소한 것을 잘 해야 한다.
성벽을 건축하는 사람들은 말 많은 사람들, 먼 데 사람들, 가시가 많은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와서 예배가 정착되게 되면 그 자손들이 문짝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게 된다.
제사장같은 사람들은 사소한 일(자물쇠, 빗장 다는 일) 하는 것을 우습게 여긴다.
귀족들은 날마다 예루살렘 공동체에 속해있었지만 38명의 공로자들 명단에서
빠지고 수치스러운 이름으로 기억된다.
3.옛 문을 건축해야 한다.
신앙생활하면서 옛 것을 버려야 할 것도, 인정해야 할 것도 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종이 되었던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무시받았지만
실력으로 미스바 사람들과 힘을 모았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금장색, 향품장사를 보내주신다.
내가 무너져가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사귀고 싶은 사람들(금장색, 향품장사)과
사귀게 해 주신다.
기도만 하고 가면 어떤(좋은) 사람이 동참할지 모른다.
지도자를 할 수록 자녀를 고생시켜야 한다.
자녀 문제에서는 성별되어지는 것과 거리가 멀어진다.
우리의 옛 문(고정관념) 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 자녀 문제이다.
너무 적용이 안되는 사람에게는 집 앞을 중수하게 시킨다.
아무 일도 안한 것 같아 보이고 조용히 예배 참석만 해도 느헤미야와 같이
생명책에 올라간다.
성벽 건축하는 과정에 한 부분 이 있는데 오픈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잘 분별해서 오픈하지 않는 것이다.
말도 못하고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할 때 도가니 속에 들어가서 망대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통찰력 있게 쳐다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내가 불 가운데 들어가 있으면 하나님만 쳐다보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통찰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내 옛 문들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수고하게 하신다.
내가 버렸다고 말해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예수 믿고 나서도 내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을 항상 잘
해야 한다.
하나님 뜻대로 적용하고 가면 성별되어서 풀무망대에 들어갈 수 있다.
풀무망대에 들어갈수록 다른사람을 섬길 수 있는 통찰력을 주신다.
풀무망대까지 들어가게 되어야만 철폐되는 것이 남녀차별이다.
말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풀무망대에 들어가서 인정받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인간관계에서 서로 섬기고 겸손하지 않으면 통과가 안된다.
상대방을 통해서 서로 내 모습을 보게 하시고 왜 그럴까 생각하게 하신다.
풀무망대를 지나서 골짜기로 가게 된다.
풀무망대를 지나서 내가 옛 것을 다 내려놨다고 생각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골짜기에 있는 분문으로 보내셔서 있는대로 바닥까지 낮아지게 하신다.
사노아 거민같은 역겨운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 은혜스러운 하눈이 되는 것이다.
내가 너무 낮아지지 않고 내려놓지 않아서 분문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남이 나를 똥이라고 여겨주는 것이 성별이다.
나무십자가,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이 제일 좋은 것이다.
분문에서도 하나님을 느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