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장
1절~2절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 주님이 우리들 가운데 역사하신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변화된 삶을 공동체에서 나누고 간증한다. 이것이 말씀의 목격자가 되는 것이고 일군이 되는 것이다.
3절 모든 일을 근원서 부터
누가처럼 모든일을 체험만이 아니라 근원을 따져봐야 남을 양육할 수 있다. 내가 어떻게 성경대로 왔고 어떻게 성경대로 고난을 받으며 어떻게 부활했는 지 성경에 비추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공부를 하나도 안해도 성경실력이 뛰어난 것은 차례대로 근원부터 살피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사님 말씀을 들을때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은 맨날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5절~6절 세례요한 탄생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수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고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했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의 가문은 대단했다. 아비야 반열의 사가랴와 아론의 자손 엘리사벳, 구약에 약속된 자, 예수님을 예비하는 자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초라하게 오셨다.
7절 나이 많은 엘리사벳이 수태를~
나이 많은 엘리사벳은 수태를 오래 했으니 그만큼 수치당한 기간이 길다. 이런 수치도 혼자 해결 할 수 없다.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의인(엘리사벳,사가랴)에게 하나님이 방문해 주실 때 영예로운 회복이 일어난다.
ex)내가 예수님을 이렇게 잘 믿는 데 왜 돈을 잘 못벌어?왜 애기 없어? 라고 생각할 적에...
돈 잘벌고 애기 있어서 기쁜 것은 잠시! 돈없고 애기 없어서 수치당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뻐하는 모델을 보여주기시 위해서
8절 사가랴가 제사장의 직무를 그 반열의 차례대로 행한다.
사가랴는 수태를 못해도 차례대로 반열대로 제사장 역할을 잘 수행했다. 한결같이 감정의 기복이 없는 사람에게 리더쉽이 주어진다.
ex) 기분나쁘면 목장에 안나오고, 사람 말 한마디한마디에 일희일비
9절 전례를 따라 제비 뽑기
ex)목사님 큰집
학벌 좋고, 자식 잘 된 사람들 vs 사가랴 자식 없지만 직무를 행하는 것
자식이 없지만 직무를 행하는 사가랴 (나) 하던데로 큐티하고 모임하고, 사단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방해하지만, 날마다 전례를 따라 예배에 빠지지 #50518;고 기리면 하나님은 한번도 빠지지 않는 그 평범함속에서 반드시 역사하는 날이 온다.
질문: 나는 사가랴처럼 하나님께서 주진 직무가 무엇이고, 차례대로 잘 행하는 가?
18절 주의 사자가 나타났다.
하나님이 사가랴에게 자식을 주었으나 막상 주시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하나님께 드리게 된다. 우리도 처음에는 너무 육적인 것에 한이 맺히면 이루어지더라도 도리어 무섭고 놀란다. 드릴 것만 있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23절 규례대로 직무의 날이 다 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감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한 결같이 감정의 요동함 없이 차례대로 전례대로 큐티하고 예배드리면 언제가 좋은 것만 주시고 가장 좋은 응답을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차례대로 근원부터 미루어 살필 때 어디서부터 문제가 있는 지 알게 된다.
2장 8절
언제나 한결같이 자신의 목장을 지키고 있는 사람만이 주님의 영광을 두루 비치게 된다.
16절,22절, 예수님께서 구유에서 태어나심
예수님이 정결의식을 받았고 주의 율법의 말씀하신대로 결례를 행하고 세례를 받으셨다. 또 구유에서 태어나신 것도 다 세상의 법을 따르시기 위해서이다.
25절
목자, 시므온, 안나가 예수님을 보게 된다.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구원)를 기다리는 자다. 복음을 전파하는 길은 좁은 길이다. 그길을 가게위해서 또한 위로가 필요한 것이다. 시므온이 이렇게 경건하고 의로운 이유는 성령님이 그 위에 계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롭고 경건하여 세상에서 핍박당하고 친구없어도 나중에는 반드시 보상(훌륭한 인격)이 있기 때문에 그 인격은 세상을 좌지우지 하게 되고 진정한 복음 전파를 하게 된다.
26절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한다! 라는 말을 시므온이 갖고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하나님을 너무 사모했다. 우리는 세상에서 잘먹고 잘 살려고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 영혼이 위로가 되는 것을 바라는 시므온이야 말로 성령의 지시를 받고 예수님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또한 생긴것!
34절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됨
예수님이 오시면서 흥함과 패함으로 나뉘는데, 하나님의 속성(8복)데로 하면 흥하고 시기와 질투면 패한다. 하나님을 모시면 흥, 거부하면 패
35절
칼이 내 마음을 찌르듯 하면 믿음이 분량이 보인다. 아~정말 찔린다 찔려 이렇게 생각되면 그만큼 축복인 것이다.
36절
나는 어떻게 늙고 싶은가? 시므온과 안나같이.. 나이가 매우 많은 것과 같이 오래 기다렸다.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의 감동으로 축복을 주는 그런 노후가 되어야 한다.
41절
마리아가 유월절마다 예루살렘에 가는 것처럼 모든 것을 전례대로.
전례대로 하나님의 직무를 행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42절,43절
마리아가 12살까지 키웠지만 영적 양육까지 가능하지 않다. 지금까지 너무나 착한 예수님이여서 하룻길로 셌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예수님이 하룻길로 센것에 대해서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녀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 근심하고 걱정해야 한다.
51절 말씀보고 기도하는 것이 공부보다 우선 순위가 되야 하는 것이고, 강요해서는 안된다. 강요하면 삐뚤게 나간다. 부모가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하나님 뜻대로 키우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믿음의 부모라도 자식의 모든 면을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연약한 마리아를 순종하는 예수님처럼 부모님이 연약해도 그것을 받아 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적용
<1>근원부터 살피자!
나는 항상 엄마와 근원을 살피는 일을 많이 했던 것같다. 왜 이렇게 #46124;지?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한번은 내가 자꾸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나의 생각을 이야기 하지 않고, 빙빙돌려 이야기하고, 그사람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자꾸 내가 이렇게 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 데- 엄마와 아빠는 항상 어색하게 지냈고, 아빠는 2년동안 엄마와 말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잘 이야기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어색한 삶을 살아 왔고,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다. 그리고 나와 언니는 엄마와 아빠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면서 남의 눈치까지 보게 되었고,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도 어색해 지기만 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렇게 근원서 부터 왜 이렇게 되었는지 살펴보니, 엄마,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나의 사회생활을 망친것 같아서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고난이 나에게 성숙하게 되는 길이 되었고, 엄마와 아빠가 수고해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그렇게 생각은 못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변화 시켜달라고 또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해 달라고 기도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