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받는 행함
야 1:19-27
1) 성내기를 더디하라.
성내는 것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다.
사건이 오고, 시험이 오면 책임지지 않으려고 내 주장만 펴고 성낸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다.
C.S루이스 7가지 악과 선- 화낼 필요 없이 똑같이 값으면 된다는 생각은 가장 화난 사람이 하는 생각이다.
늘 안에 돈이 있는데, 또 교양있어보이고 싶어서 명분 쌓는다.
선지자 요나처럼 복음을 전해도 자기 욕심대로 안되면 성낸다.
엘리야도, 모세도...
특징- 열심이 한 자들이다. 나의 열심이 하나님 열심보다 앞서면 성을 낸다.
듣기만 해서 그 수준인 줄 착각하지 말라.
행함이 없는 자는 모래 위에 지은 집으로써 탁류에 무너진다.
→난 항상 인정받기 위해서 뭐든지 열심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안에 화를 품고 살았다. 부모님한테도, 친구들...?은 모르겠고..
가장 화를 크게 품은 상대는 나였다.
난 완벽하고 싶었지만... 인간은 완벽할수 없기 때문에..
내가 꿈꾸는 나와 현재의 나는 항상 닿을 수 없는 거리였고, 그래서 난 내가 수준미달인 애라고 생각했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았고, 사람을 무서워했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다.
신의 존재는 아예 머릿속에도 없었던 듯.. (왜냐하면 인간세상의 일로 바빴기 때문에 신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지금은.. 많이 마음의 여유를 찾은 것 같다.
왠만한 일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2) 말씀을 실천하는 자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화를 내신 하나님.
듣고 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율법 거울로 흐릿하게 1번보니까 잊어버린다.
자신의 죄밖에 보지 않는 자는 성을 내지 않는다.
말씀보는 구조속에 살고있는자는 행하고 있는 자라고 하신다.
성을 내는 것은 내가 교만해서이다.
십자가로 처리된 온유. 어차피 숨겨진 것이지 없이진 것이 아니다.
진정한 형제애는 말씀 속에 생긴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흐릿하게 있는데, 이황이 책을 읽다가 모르는 구절이 나왔는데, 그 구절이... 오직 어진 자만이 용서할 수 있으며 어진자만이 화를 낼 수 있다.. 이런 내용이었나?
그랬는데, 어진자만이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이황이 풀이로 예를 든 것이 자애로운 어머니가 자식을 나무랄 때의 마음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 마음을 모르고 살았었다.
엄마가 혹은 아빠가 뭐라고 얘기하면 또 잔소리냐.. 하면서 한귀로 듣는 척 하면서 흘려버리고, 혼났을 땐 아빠한테... 저주를 퍼부었다.(그래서 집밖으로 쫓겨난 적도 있음)
내 죄를 못보니까 서로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
동생한테는 또 화풀이 하고... 그래도 부족한 언니를 많이 도와준 동생이 이쁘다.
3) 참 경건의 행함
헛경건-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고 자신을 속인다.
돈을 좋아하는 지식인들이 높임을 받으려고 하니까 결국 가는 것이 간음이다.
남들보다도 자신을 속이기 위해 너무나 공허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참경건은 값을 길이 없는 즉, 자신에게 이득을 줄 수 없는 자들 고아와 과부를 환란중에 돌보는 것이다.
자신을 세상에 물들지 않게 주의하는 부자들이 모인 교회.
가난하지만, 왜 고난을 당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도우셨다면 성낼일도 없다.
시험이 없으면 한 부자처럼 살다 지옥갈 수 있다.
서로에게 기회를 주신것이다.
내안에 있는 예수님의 형상을 사랑하기 시작할 때 시작된다.
복음은 차별이 없어야 한다.
서로 죄인된 입장에서 나눌때 기적은 시작된다.
요나 왈- 저 나쁜 사람들이 왜 회개하고 돌아왔어요?
감정기복 심함. 회개했다는 소리 없음. 큐티없음.
→ 음.. 요나 선지자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요나 선지자는 나하고 닮은 면이 참 많은 것 같다.
내가 저 사람들보다 더 낫다는 생각에 빠져서 저것들은 지옥가도 마땅하다고 생각했었다. 진짜...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교만해...
내 자신의 죄를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얜 나쁘니까 욕해도 돼..라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이런 말을 되뇌었다.
마음한구석 양심은 계속 찔리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