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23:1-12
요약
무리가 일어나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가서 고소했지만,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명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무리가 더욱 크게 주장하자 예수님이 갈릴리 인임을 들먹이며 헤롯에게 보냈으나,
헤롯역시 딱히 죄를 찾지 못하고 희롱만 하고 다시 빌라도에게 보냈다.
이 일로 원수사이였던 빌라도와 헤롯은 친구처럼 친해졌다.
1)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기를...
성경에서 예수님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몰려든 무리들 이다. 이들은 항상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곳에 우르르~ 몰려들지만, 아마 절박해서 온 사람들보다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궁금해서, 사람들이 몰려가니까 거기에 휩쓸려서 간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에게 휩쓸려서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체 예수님을 고소한다.
이 사회는 다수결의 의견을 존중한다. 하지만, 항상 다수결이 옳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
요새 내가 보는 드라마인 이산에서도 왕은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제대로 실시하기 위해서 홀로 외로운 길을 걸어간다.
적들의 커다란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인과 서얼들을 등용하는 모습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모으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떨 땐 올바른 길을 걸어간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지지해주는 것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올바른 길을 걸어가는 건 외로운 일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말씀을 보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살자, 좋은게 좋은거다 하면서 살아가다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예수님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2) 침묵할 땐 침묵하고 얘기할 땐 얘기하고..
예수님께선 그동안 바리새인들의 마음속 얘기까지 다 아시고 그 말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시면서 그릇된 것을 바로 잡아주셨는데, 여기서는 아무 얘기도 안하신다.
그저 묵묵히 계실 뿐이었다.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라고 물었을 때 네 말이 옳도다. 라고 얘기하신게 다였다.
헤롯에게 갔을 때도 헤롯이 이적을 보고 싶어 했으나, 이건 예수님을 거의 서커스의 묘기부리는 짐승정도로 본 것 밖에 안된다는 생각...
이런 자에게 이적을 보여줘봤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는 커녕 매날 묘기부리라고 할 것 같다.
헤롯은 뭔가가 어린애 같다. 신기한 거 보여주면 좋아하는....
난 내가 얘기를 하지 않으면 손해 본다고 생각했다.
항상 뭔가 얘기를 해야했고,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를 만날때면 내가 더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얘기를 많이 하니까 문제점이 바로 말실수가 많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아차!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두 귀를 주시고 한 입을 주신것은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뜻이셨는데...
이제까지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앞으론 상대방의 얘기를 경청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