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믿음
약2:21-26
1. 온전케 되는 믿음
22.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했다 한다.
이삭을 하나님께 받치는 것까지 오게 된 아브라함
아브라함을 약속에 땅으로 불러내셔서 책임져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지만
바로 순종하지 않고 아비가 죽자 가나안에 갔고 기근이 오자 아내를
팔아먹는 실수를 해서 예수님이 못 올 뻔했지만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은금과 육축을 풍부히 주셨다.
아브라함에 믿음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실수했어도 실수를 깨닫고
눈물로 회개하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다.
아무도 데리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롯을 데리고 가서 힘들었고 발목을 잡혀 왔다. 롯이 사로잡혔을 때 집에서 기른 사람 318명을 데리고 가서 롯을 구해내고
멜기세덱에게 십일조하고 롯의 재물은 하나도 안가지고 나오는
큰 믿음을 보였다.
아브라함이 돈은 내려놓지만 자식을 포기 하지 못해서 자식 없다고
불평하자 별같이 번성케 하신다고 약속해 주셨는데 하갈를 얻어서
이스마엘을 낳는데 이스마엘이 빈라덴의 조상이 되어
전 세계를 힘들게 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실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양육시키시기 위해서
13년 동안 하나님은 침묵을 하셨다.
도덕적인 행함은 믿음과 분리 된다.
23. 창세기 15:6절 말씀이 응한 것이다.
믿음이 온전케 되기 위해 시험이 온 것이고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것은
우리의 믿음이 온전케 되기를 바라시고 주신 것이다.
의지 할 하나님이 있는 것이 축복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주님은 의롭다고 하신다.
다른 사람을 살리는 믿음은 죽을 때까지 나의 공로가 없지만
주님 말씀만 드리면 회개가 되고 최고로 의롭게 되는 행함이라고 한다.
2. 생명을 내놓는 믿음으로 다른 사람을 살린다.
예수 없는 세상은 망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망한다고 얘기한
라합집만 구원됐다.
가나안은 진멸되어야 할 첫 여리고 성이다.
라합은 상천하지에 한분밖에 계시지 않는 하나님을 믿었다.
날마다 여리고 식구들이 두렵고 떨리면 그 여리고 식구들보다
믿음이 적은 것이다.
믿음은 온몸으로 구원되어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
히브리서에 평안이 영접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했고 야고보서는
사자를 다른 길로 나가게 하는 것을 행함이라고 했는데
야고보가 행함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는 것이 사람 살리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라합 처럼 붉은 줄 드리우고 나를 기억해 달라고 하고
십자가 피가 보여 지는 생명 내어 놓는 적용을 해야 한다.
라합 처럼 목숨 걸고 생명을 내놓는 적용하는 것이 생명을 내놓는 믿음이다.
여리고 남편 때문에 쳐지고 힘들면 믿음 없는 것이다.
상대방과 상관없이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 살리는 믿음이요
온전케 되는 믿음이며 생명을 내놓는 믿음이다.
3. 차별이 없다.
아브라함은 유대인, 경건한 사람이고 별 볼 일 없는 라합과는 대조적이다.
타락에 탄 라합을 찾아 가신 것도 하나님이고 유대인들이 개만도 여기지 않았던
기생 이였다.
라합은 히브리서 11장에 찬란히 그 이름이 올라가고 믿음의 조상으로
기록 되었다.
사건과 위기가 예수님이 우리 가정에 오시는 기회가 된다.
우리가 차별하는 것이 문제인데 주눅이 들어도 안 되고 교만해도 안 된다.
차별 없는 믿음이 나를 살리고 다른 사람도 살린다.
어떤 환경에서도 믿음이 이기고 환경이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이 행함이다.
사건을 통해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온전케 되는 행함이다.
마지막 좌편 강도는 눈에 보이는 것만 바랬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시는 데도 알지 못했다.
우편 강도는 자기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은 무조건 옳으시다고
당신 나라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달라고 회개 한다. 분별하지 못해서 좌변강도같이 끝까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믿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약속 해 주신다.
하나님이 형편없는 나를 주셨다는 것을 깨달아 알면 행함이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