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3장13절~18절
제목=위로 난 지혜
사람들은 다 지혜를 원하지만 그 지혜는 모두 다르다. 유대인은 헬라사상 위에 자신들의 율법적인 지혜를 덮었다. 그래서 기독교는 도덕적 종교가 되어, 도덕성과 종교성을 모두 상실하였다. 이 땅의 지혜는 위의 지혜와 다르다.
1.아래 지혜
아래 지혜는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인데 독한 시기와 다툼과 자랑과 거짓으로 되어있다. 우리는 시기하는 사람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시기 받는 사람과 시기하는 사람은 같다.
독한 시기심은 열등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깎아가면서 남을 시기하게 되고 또한 고통을 받는다. 자랑하는 것이 속에 독한 시기가 있는 것이다. 자랑은 시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시기심은 공격하고 부정하며 파괴를 한다. 이 지혜는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내가 왕 노릇을 하고 싶어서 세상의 지혜를 받아들이고, 능력을 중시하고, 질서를 유지하지 않기 때문에 시기와 다툼이 생기고, 요란과 악이 있게 된다. 이런 지혜로는 하나님을 배척할 뿐이다.
2.위로부터 난 지혜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다. 이 세상의 지혜는 목적이 없지만 위에서 난 지혜는 목적이 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우리가 화평케 하려면 죽어지고 밟혀져야 한다.
3.온유함의 지혜
온유하게 행하기 위해서 주님의 멍에를 지고 배워야한다. 내 힘으로 열심히 하여 온유함을 얻으면 자랑하기 바쁘다. 그 과정 속에서 말씀으로 하지 않으면 모두 지겹고, 지루하다. 세상의 지혜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행동으로 온유함을 보여줘야 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배워야한다. 윌버포스처럼 어릴 적부터 신앙을 가지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일을 하게 된다. 우리가 부자로 사는 것은 축복이고, 부자로 죽는 것은 저주라는 말처럼 윌버포스는 그 많은 재산으로 많은 사람을 구제하였다. 윌버포스는 온유함의 지혜를 가지고 행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국회의원의 1/3을 복음주의자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