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요약>
창세기 32:26 ~ 32 “축복한지라”
주님이 주시는 ‘축복’받는 이름은 무엇이가?
1. 새로운 이름을 주셨다. (= 새로운 가치관)
2. 생명을 보존하는 ‘축복’을 주셨다.
3. 해가 돋는 ‘축복’을 주셨다.
<나눔>
1. 대준(뉴페이스)
<목자>내가 하나님 앞에서 ‘너가 누구냐’고 했을 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준>
오늘은 설교말씀이 잘들렸다. 저의 욕심을 보았고, 내 스스로의 잘못된 결과를 생각하였다. 나에겐 근본적인 ‘욕심’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
<목자>
야곱이 누근지 모르고 씨름을 한 것이 하나님이셨고, 야곱이 ‘축복’받아 이름이 바뀐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대준에게 자신의 (영적)이름을 바꿔주신다고 한다면 (그에 따르는) 결단과 고백은 있는가?
답은 이미 나왔다고 생각된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길은 다른데 있었고, 나의 ‘욕심’으로 그 길을 못본것이다. 그래서 나를 믿고 돈을 빌려주신 지인들에게 빚갚는 적용을 하기로 하였다.
오늘 말씀 중에 탕감받은 집사들의 간증을 본았다. 우리의 죄중에는 알고서도 불순종하는 것이 더 나쁘다. 나의 ‘욕심’을 보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고 생각된다. 적용하면 좋겠다.
야곱이 해가 돋는 축복을 받았는데 야곱이 ‘환도뼈’가 위골 되는 불구자가 되었다. 예전에는 야곱이 돈, 자식도 보냈지만 그래도 두려웠다. 결국 형 에서의 포옹으로 일시적이긴 하지만 화해가 되었다. 이 상황이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주님밖에 붙잡을 상황이 되었지만 대준이가 절뚝거리는 상황에 결국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대준이도 절뚝발이가 되었지만 그것이 죄의 흔적이 되어 연약함 가운데 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보았을 때 ‘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환도뼈’를 더 이상 먹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의 환경이 ) 대준이에게 이름이 바꿔지는 사건이고 ‘환도뼈’가 된 사건이다.
야곱이 20년동안 모은 재산을 내려 놓고, 하나님께 내가 야곱임을 고백했을 때 야곱이 절뚝거리지만 해가 돋는 축복의 사건이 왔다.
2. 재웅 형제
<목자> 오늘 말씀 듣고 느낌점은 ?
<재웅> 오늘 말씀을 듣고서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축복’을 누릴 수 있을 때까지 붙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자> ‘나는 누구인가’라고 하셨을 때, 나의 존재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재웅> 바라는것 많고 ‘욕심’많고, 내가 편한 것만 좋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야곱입니다’ 라는 말에 전부 들어 있는 것이다. 형을 속였고, 아버지를 속였고, 내가 원하는 여자를 얻고자 수고를 했고, 20년동안 돈을 모았는데, 형이 온다니 두려웠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하나님을 붙잡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라는 야곱의 고백이 있었다.
하나님이 떠나려 하자 야곱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못가도록 한 것처럼 재웅이에게도 혼자 있을 때 ‘내가 누구 인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재웅이가 이렇게 말하는 모습 속에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는 모습과 마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야곱이 ‘야곱입니다’라는 말은 야곱:속이는자, 간사한 놈입니다’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야곱의 고백에서 하나님께서 너는 더 이상 ‘야곱이라 하지말’ 라는 말 처럼 재웅이에게 이제 (영적인) 일을 시작하는 것이라 본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고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는 말처럼 나의 죄, 과거, 연약하고, 현재의 찌질한 모습을 고백하는 모습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생각된다.
혼자있을 때 무릎끓고 하나님께 ‘제가 ~~~ 이렇습니다.’라고 고백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제가 야곱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보는 것이다. 우리들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는 전부 고백이고, 공동체 전부 서로 고백이라고 보면 된다. 재웅이가 지금 나눈 것을 고백이라고 본다.
>>> 죄를 보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내 자아를 깨뜨리시고 새롭게 창조 하시는 것이다. 이름을 바꾸시겠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시겠다는 의미이다. <<<
3. 한주형제
<목자>오늘 말씀 들으면서 느낀것은?
<한주>
나에게는 ‘병?’ 있다. 회개를 하고 나면 나는 마치 의인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있다.(의인착각증??) 내가 야곱이라는 고백이 나왔으면 좋겠다.
현대인들이 고독에 처할 때 컨트롤이 잘않된다. 돈과 결부되지 않으면 인생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제서야 깨닫는다. 내가 하나님을 잘 보는 것 같은데 정작 나는 잘 못본다. 회개하고 나면 의인이 된 것 같고 또 죄를 짓는 모습이 우리들에게 있다.홀로있을 때의 음란함은 평생 싸워야하는 영적인 싸움이다. 홀로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전략이 필요하다.
<구욱>
매장을 시작하면서 문득 생각나는 말씀이 생각이 떠오른적이 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죄’라는 것이다. 성령충만할 수도 있지만 홀로 있는 것 자체가 정말 외로운 것이다. 음란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도했는데 무언가 해결된 것 같은 느낌을 갖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너가 누구냐’ 라고 했을 때 그냥 통성명이 아니다. 하나님을 계시다는 존재는 느낌 외에는 느낄 수 없는데 하나님 앞에 홀로 대면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성경속에 )‘욤’은 24시간 또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의미 할 수 있다.
야곱이 하나님께 ‘야곱입니다’라고 곧 바로 대답한 것이 아닌 지난 세월 동안 하나님이 만나주신 사건부터 시작하여 여러 사건속에 결국 ‘야곱(속이는 자)’라고 고백한 것이다. 나의 이름을 고백하는 시간, 나의 자아가 깨어 지는 시간이 되야 한다.
하나님께 고하는 심령은 ‘상한 심령’이다. 한주형제의 고백가운데 정말 ‘새롭게 해달’라는 고백가운데 새이름을 받는 경험을 해보도록 한다. 하나님과의 (깊은)교재를 했으면 좋겠다.
>>> 홀로 있는 상황에서 교재를 누리는 법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회개하고 죄짓지 않으면 내가 회개할 것이 없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제가 죄를 지어야 죄를 회개하는 줄알았고, 홀로있는 시간에 어떻게 하나님깨 교재하는지 몰랐다는 것도 하나님께 고백하면 좋겠다. 부모님의 관계도 저절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하나님의 관계도 저절로 되어 지지않는다. 정말 씨름을 해야한다. 하나님의 관계에서 한주형제가 좀더 깊게 나아가면 좋겠다.
4. 구욱형제
<목자>’나는 ~~ 누구이다’라고 말한다면 구욱형제는 누구라고 생각되는가?
나에게도 ‘음란함’과 ‘돈에 욕심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또한가지는 ‘이기심’이라고 본다.
<목자>하나님 앞에서 내가 야곱임을 나의 나됨을 고백해 본적이 있는가?
지난 2~ 3년동안 말씀이 들리지 않은적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이 정말 말씀이 잘들린적이 있었다. 그 동안 죄라고 생각되지않은 부분들이 정말 죄라고 느껴진 적이 있었다.
<목자> 하나님이 구욱형제의 이름을 바꿔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구욱> (영적인 사람으로) 바꿔주셨다고 생각됩니다..
아버님의 구원을 위해서 애통함을 갖고 가족간에 사랑과 관심을 갖고,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죄됨를 보면서 아버님와 가족을 애통하게 여기고 겸손해져야 한다. 강건한 믿음을 가지고 대처해야한다. 감정적으로 순종하면 안되고 아버님께는 (자주)연락을 해야한다.
야곱도 본인이 야곱이란 것을 고백하고 변화됨을 보고 자신도 자신의 죄와 본인 모습을 보고 본인의 이름을 바뀌기를 회개를 통해야한다. 야곱의 고백이 나왔으면 좋겠다.
5. 성혁형제
<목자> 오늘 너는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
<성혁>
예전에 타지에서 홀로 있는 기간에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한 경우가 있었다. ‘음란한 마음’ 등의 생각등이 많이 생길 때가 있었다. 제일 감사했던 것은 여러 사건속에 혼자있는 시간이 길었는데,(전에 목사님 설교중에)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말씀에서 나에게 그 시기는 ‘환도뼈’가 부러지는 사건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타지에서 홀로 하나님께 독대하는 시간이 정말 소중했던 것 같다. 그시기에 새벽기도에서 정말 간절히 기도 했으나 하나님께서 어디가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지는 않지만 현재로써는 아직은 마지막에 막혔던 일들이 풀리지 않고 있다.
<목자> ‘야곱입니다’라는 의미가 인생의 모든 의미가 다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성혁형제는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하는 빚진자로 본다. 야곱이 해가 돋아서 간 것처럼 나아가면 좋겠다.
6. 도윤 형제
<목자>오늘 말씀 듣고 느낌점은?
<도윤>한 주간은 잘 지내다가 TV에서 스포츠를 시청을 한적이 있었다. 그러나 일대일 양육교사의 숙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에게 말씀을 ‘순종’하지 못한 것을 살펴보니 TV의 스포츠를 너무 많이 본다는 것이다.
나의 ‘환도뼈’가 부러지는 경우는 교회 나오기전에 보드 타다가 허리를 크게 다칠뻔한 사건이 있었다. 더 이상 동호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운동도 못하고, 시간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요즘 말씀을 듣고다 ‘유선TV’를 끊기로 하였다.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장대하리라’는 말씀처럼 내 인생도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 ~~ ^^ 박수 짝짝 ~~~ ㅋㅋ )
7. 대연 형제
<목자> 오늘 말씀 듣고 느낀점은 ?
<대연>
회사에 #51922;겨 날 때까지 적용하기로 한 이후 특별하게 요즘 별다른 일은 없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힘들었으니 쉬고? 있으라는 뜻이라고 생각 되기도 하였다.
<목자> 그렇다면 홀로 있는 시간은 어떻게 지내는가?
<대연> 혼자 있는 시간은 QT를 하면서 주로 책을 읽고 있다. 그동안 부족했던 부분들이 있어서 OO 서적등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