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종률오빠네 목장과 조인했던 보고서는 아직 안올라왔나봐용~
이번 주는 지난주에 목장나눔 덜 한 거까지 해서 엄청 풍성한 나눔이었답니다..^^
먼저 주일설교 부터..ㅋㅋ
<주일설교>
4월 25일 주일예배
아름다운 화해[창세기 33:1-11]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사건만큼 기억에 남는 10대 명사과를 발표했습니다. 미국의 팝스타 존메이어는 공연중에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섹스차별성’을 고개숙여 했습니다. 또 시간당 천달러를 받는 콜걸이 ‘부인의 고통에 사과한다’고 했습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지만은 ‘나는 결점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완벽과도 거리가 멀다’고 했는데 이런 것을 기억에 남는 명사과로 뽑았습니다. 얼마나 사과하기가 힘들고 화해하기는 더 힘든지 알겠습니다. 사과 중에서 가장 하기 힘든 것은 가족 간의 사과와 화해입니다. 우리가 야곱과 에서의 불화의 20년을 생각할 때 가족은 헤어질 수도 없고 기억에서 지울 수도 없고 안볼 수도 없고 가족은 존재의 근원이기 때문에 너무나 가족에게 집착하다가 배반당하면 우리는 화해하는게 남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왜들 이혼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사과하기가 힘이 듭니다. 드디어 오늘 아름다운 화해를 하는 야곱을 보며 화해의 열쇄는 야곱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봅니다. 이 화해를 위해 20년의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아름다운 화해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본문을 가지고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믿음의 시선이 두려움에서 믿음의 시선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야곱이 환도뼈가 부러져 그 눈을 들고 보았습니다. 20년이 헛된 세월이 되었습니다. ‘제발 형의 마음의 돌려달라고’ 하나님을 어리석게 이겨보겠다고 시름을 밤새도록 했지만 하나님은 ‘너가 변하라’고 하십니다. 야곱같은 부자가 환도뼈 치시니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지식적인 신앙에서 체험신앙이 되었습니다. 원색적이지만 고꾸라져야 주님을 만난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맞습니다. 시선이 믿음의 눈으로 담담한 눈으로 보게 됩니다. 이상한 사람도 사랑의 눈으로 봐야는데 본인을 위해 기도해주는 담임 목사인 저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면 말이 안됩니다. 나와 겨루어 이기겠다고 합니다. 야곱이 하루아침에 기질이 달라지고 성품이 달리지는 게 아닙니다. 천국가는 그 날까지 나의 약점이 있습니다. 야곱에게 약점이 가족입니다. ‘(1절)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절)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전자동으로 형이 무서워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여종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웁니다. 아무리 야곱이 끼고 돌아도 예수님의 후손은 레아입니다. 예수님은 레아의 후손에서 옵니다. 라헬을 아끼지만 이것이 야곱의 벌받을 소행입니다. 초등부 선생님이 심방을 했는데 우울증 엄마, 부재중 아빠, 때리는 형, 가난한 가정, 비좁은 방.. 그 아이는 선생님에게 대접을 하려하고 여전한 방식으로 생활 예배도 잘 드려서 언어관련 시험도 다 백점을 맞습니다. 논술이나 과외도 안시키는데 언어영역이 뛰어나며 아빠를 원망하지 아니하고, 아빠를 사랑하고 아빠를 위해 기도한다고 합니다. 가정들이 한걸음씩 자기 수준에서 믿음으로 수준으로 가고 있습니다. 야곱이 가족을 끼고 돌지만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부러져서 믿음의 시선이 달라집니다. 그동안의 보고 들은 게 있어서 환도뼈가 무너져서 나에게 힘으로 확신이 됩니다. ‘(3절전)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화해를 하려면 결국 사랑하는 가족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날 잡아잡수 죽여주수’로 나아가야 합니다. 죽을 것 같아도 이 세상에 사랑하는 것을 내려놔야 아름다운 화해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겸손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3절후)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믿음이 없으면 야곱은 억울함만 하소연할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여기서 왜 사과를 해야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맨날 나에게 손해를 끼쳤는지 안끼쳤는지만 생각합니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 20년의 험악한 인생이 야곱에게 지나갔습니다. 7번의 완전수가 어떤 수모를 당해도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로 머리를 굽혀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죄가 말소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책을 씻어주는 것은 회개와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시간이 현재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아마도 구원이란 내가 숨기고 싶었던 것을 시간이 지나서 말소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그 일을 알게 된 것을 기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천사와 축복을 받고 죄를 고백했지만 형에게 와서 사과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온 세상이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을 기뻐하는데 구원이 있습니다. 천국의 기쁨은 사람들이 아는 것과 다릅니다. 옥스퍼드 박사인 CS루이스는 구원이란 시간이 지난다고 말소시키는게 아니라 이고 지고 그 일이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쓰일 때 기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은 딸들의 결혼이 달려있다고 하면서 안드러냅니다. 야곱이 ‘야곱이니이다’ 고백했지만 사람에게 와서 사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온세상이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기뻐하는데 구원이 있습니다. 루이스처럼 이런 얘기를 해주니 맞다고 합니다. 오픈이면 다입니다. 지혜와 순결이 만나는 지점이 십자가입니다. 화해를 하려면 결국 사랑하는 가족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죽을 것 같아도 이 세상에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아름다운 화해를 할 수 있습니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오픈을 해야합니다. 상대방이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 몸을 굽혀야 합니다. ‘(4절)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야곱이 회개해서 에서가 변했습니다. 이것으로 에서의 증오의 감정이 씻겨졌습니다. 인간에게 선한 것이 없지만 사과로 피차 눈물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의 사과는 명사과라도 빈약하기 그지 없는데 피차 눈물을 흘렸습니다. 수치심은 그 감정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얻게 되는 통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가치있는 슬픔이란 구체적인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데서 나오는 슬픔이고 구체적으로 자기 잘못을 바로 잡고나 남에게 끼친 잘못을 보상하는데서 오는 슬픔, 남을 못도와서 울고 남의 고통에 아파서 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울어야 합니다. 남자들이 울지 않는 것을 미덕이라고 하는데 눈물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나쁜 눈물은 에서가 축복 뺏기고 방성대곡하는 나쁜 눈물을 에서가 흘린 적이 있습니다.
셋째, 은혜를 느낄 때 아름다운 화해를 하게 됩니다. ‘(5절)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야곱과 에서의 화해에 은혜라는 단어가 창세기 전체에 17번 쓰였는데 1/3이상인 7번 쓰였습니다. 형제간의 화해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못합니다. 특별히 아버지가 부자인 사람들의 화해는 하기가 힘듭니다. 이해타산이 없어서 화목합니다. 이해타산이 가득 차있어서 ‘니꺼,내꺼’합니다. ‘(6-7절)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은혜를 받고 있는 야곱인데도 불구하고 총알받이로 여종부터 내세웠지만 진짜 만나는 장면에서는 하나님이 여종부터 만나주십니다. 차별해서 키운 여종은 제일 먼저 주님을 만납니다. 알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야곱이 가족을 앞으로 세웠다 뒤로 세웠다 합니다. 가장 두려운 것도 가족 때문이고, 겸손한 것도 가족 때문입니다. 영원한 주제는 가족입니다. 가족 관계에서 가족신화를 버려야하는데 사회복지사 마코C Kell은 가족관계에 단절이 일어날 때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과 비유맞추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이 어떤 사람을 상처주기로 마음먹으면 그 휘두르는 독설에 아주 힘이 듭니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은 잘못이 없고 사과를 못하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진심으로 믿으며 규칙을 강요하고 그 규칙에 안따르면 독소가 되어 쏩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무관심하며 자기를 합리화하고 문제는 항상 자기자신이 아니라 남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들이 그 사람의 눈치를 보게합니다. 비유맞추는 사람은 남의 인정을 받고자 하지만 기쁘지 않고 만족감이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랑을 받아도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느낌을 갖지 못합니다. 자존감에 상처를 받고 버림받을까봐 비정상적으로 두려워하고 주위사람의 모든 문제를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는 마술적인 생각을 하며 일이 잘못되면 자기 때문이라고 하는 자책감, 수치심, 굴욕감에 자기비하와 학대를 받으며 내 감정보다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동정심과 사랑을 혼돈합니다. 나는 피해의식인지? 비유맞춤인지? 목장에서 나누시기 바랍니다.
가족신화가 부모에 의해 형성이 됩니다. 가족이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신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가족신화가 문제가 되는 것은 비현실성 때문입니다. 내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을 실제로는 원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온유하고 배려깊은 사람이어서 결혼을 했지만 그 사람이 비유맞추는 사람이어서 빚이 싸여가고 인정받기 위해 빚을 내서하고 교회에서 밥도 비싼 거를 사지만 집은 빚더미에 있습니다. 하지만 밥도 잘 사지만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기가 막힌 부부입니다. 아내는 피해의식이고, 남편은 비유맞추는 사람입니다. 이혼하자고 하니 이혼을 전혀 반대하지 않고 돕겠다고 합니다. 막상 살아보니 파괴적인 결과를 갖습니다. 성품 좋고 집안 좋아봤자 예수 믿어야 합니다. 내가 믿음을 가졌어도 가족이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 신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붙잡고 있는 가족신화를 빨리 버리는 사람입니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가족신화가 자기의 자존심입니다. 심리적인 생존이 신화의 중심에 있습니다. 가족신화가 깨어지는지 아닌지 다 속고 삽니다. 예수를 믿어도 다 그럽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단 결혼하면 따스하게 보듬어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끌어않아야 합니다. 무조건 ‘옳다 옳다’ 하는 게 아닙니다. 가족신화는 없습니다. 내가 공동체를 귀히 여기고, 이타적인 사랑을 하는 게 결국 자녀들에게도 존경받고 모든 부부간에도 존경받습니다. 가족 생일만 생각하니까 가족이 내가 원하는 만큼 안해주기에 맨날 배반당합니다. 은혜가 아니면 못합니다. 야곱도 20년 걸렸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진심으로 사과를 통해서 화해를 하기 바랍니다. ‘옳소이다’가 7번씩 됩니다. ‘내가 무조건 틀렸다.’ ‘내 동생아’ 이러면서 피차 울게 됩니다.
넷째, 같이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화해에는 반드시 물질이 따라야 합니다. 물질없이 화해를 한다는 게 말이 안됩니다. ‘(8-10절)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절)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아름다운 화해는 반드시 물질이 따라가야 합니다. 기름을 쳐야합니다. 뇌물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언약에는 ‘여호와’라고 하지만 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언약과 상관없어도 우리는 화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라반과 유종의 미를 거두었고 너무나 있어야 되는 일입니다. 나와 같이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닐지라도 유다에게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유다에게 말씀하시고 유다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화해가 되도 구원까지 안되는 식구가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서 ‘예물을 받으소서’ 반드시 받으소서 합니다. 에서에게 두 번 다시 자기에게 그러지 않도록 이제 예물을 주고 반드시 화해를 받아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이런 화해도 있습니다. 이제 정말 오늘 이 에서하고도 화해를 하는데 세상에 그 누구하고도 화해를 할 수 없는 사람과도 화해를 하게 하실 것입니다. 내가 내 죄를 볼 때 화해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화해의 샘플로 고든 맥도날드의 책에 나온 예화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아픈 리자에게 남편 데이빗은 동성연애와 에이즈를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위로와 치유를 받기는커녕 가슴 아픈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제일 무서운 죄가 동성연애여서 인간의 힘으로 끊을 수 없습니다. 치유와 화해를 교회에 오픈했더니 도와주며 자기 죄를 보며 화해를 했습니다. 모든 가능성이 바닥나고 리자가 죽기전에 ‘데이빗을 참으로 사랑했다. 누구라도 자기의 죽음을 데이빗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내가 당신 때문에 죽게 된다. 웬수다’라고 책임을 돌릴 수 있었는데, 진정한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족 때문에 끓지 말고 다른 사람 구원하는데 시간을 쓰십시오. 결혼하면 왜 그러냐고 하는데 결혼하면 다 왜 그런겁니다. 화해할 수 없는 부부가 은혜로 화해하고 헌신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기를 바랍니다. 자식들을 다 순번을 매기고 인생이 정말 치졸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모습을 야곱이 보여주기에 위로가 됩니다. 야곱이 사랑해야 할 사람은 라헬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문제를 계속 다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내려놓게 하십니다. 끊지 못하는 모든 것 때문에 하나님이 수고합니다. 라반이 수고하고 에서가 수고해서 택한 사람은 돌아오게 되길 믿습니다. 길이 안보이는 문제도 야곱보다 힘들었을까요? 어떤 어려운 문제도 하나님의 관계 믿음의 시선으로 보면 다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므로 원수라도 화해하게 합니다. 은혜가 아니면 그 누구도 화해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화해를 원하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전쟁의 소식이 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겸손이 같이 눈물을 흘리게 하십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물질을 나누고 좋은 것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 화해하게 됩니다. 전쟁의 현장에서 아름다운 화해를 하기 바랍니다.
기도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서 앉아있는 것만도 감사해야합니다. 내가 오늘 그 한사람이 되게 주여 나를 써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집집마다 화해를 해야될 수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 참으로 야곱이 가족을 못내려 놓고 화해를 못했던 것은 이 두려움의 근간에 가족신화와 가족사랑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내 자신과 하나님과 화해가 되지 않으면 어떤것도 치유가 시작되지 않습니다. 집집마다 철철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이 비유맞춤을 어찌해야 합니다. 나부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치유받을 수 있고 힘든 식구들을 무조건 품는 것이 오늘 내 가정을 사랑하는 비결임을 배워서 나 한 사람이 중심잡고 있을 때 각자 집안의 화해의 열쇄를 주셨습니다. 가족신화에서 벗어나겠습니다.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겠습니다. 내려놓겠습니다. 주여 우리 가족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가족을 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느낀점
아름다운 화해 설교 말씀을 듣고 누구와 화해를 해야하나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언니가 생각났습니다. 내 이름으로 대출을 받고 나중에 갚는다는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언니가 저보고 남보다 못하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언니에게 돈 한 푼 안 줄려고 생각했던 제 모습이 있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언니에게 전혀 도와주지 않고 귀찮게만 여겼던 죄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언니에게 제 이름으로 대출은 해 줄 수는 없지만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돈은 주는 적용을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일설교 저녁에 예전 첫사랑과 서로 미워하며 원망하며 헤어졌는데 갑자기 연락이 와서 아름다운 화해를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서로가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을 떠나 살았는데 그 분이 먼저 저에게 사과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도 키가 작다고 무시하고 나이가 많다고 무시하며 아쉬울 때 이용만 하며 만나다가 가족우상으로 가족이 반대를 하니 헤어지자고 했다는 제 죄는 고백하지 않고 그냥 화해하자고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화해는 했지만 남녀간에 연락은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앞으로 연락은 안하기로 하였습니다. 10년간 마음이 답답했다고 했는데 이 화해를 위해 10년간의 저의 훈련이 필요했나봅니다. 서로간의 화해를 이뤄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너무 완악하게 살았던 저는 사과할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 모든 사람을 찾아가서 다 사과를 청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을 무시했던 저의 악함을 보고 통찰하며 다른 사람을 인격체로 존중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학교 원어민 선생님이 토요일에 홍대 클럽에서 춤추면서 논다고 가볍다고 경건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서로간의 수업방식이 맞지 않는다며 욕하고 종교가 달라서 가치관이 달라서 대화가 안통한다고 불평했는데 제가 그 사람보다 나을 게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남아프리카에서 온 원어민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아름다운 화해를 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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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나눔>
내가 꿈꾸는 가정, 나의 이상향은을 나눈 후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나눴답니다. 풍성한 나눔을 해 준 우리 목장 식구들 고맙고, 공동체에 속하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은샘: 짐승이 아닌 남편과 사는 것, 왜 그렇게까지 짐승이랑 살아야 하는지 싶다. 부모님을 볼 때 이렇게까지 왜 살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진실한 대화를 나누고 쉼이 되는 남편을 만나고 싶다. 결혼이 하기 싫은데 왜 해야하나 생각이 든다. 짐승은 집에 와서 퍼질러 잘거고, 내 몸하나 거두기도 피곤한데..사람들이 말하고 결혼은 '생명을 낳는 것''늙어서 결혼안하면 고생한다'는 이런 말들이 짜증이 난다.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엄마는 오빠때문에 미칠려고 하고 나는 아빠를 좋게 생각하고 싶은데 '너땜에 오빠가 저런거다', '지방대 애를 상대해주겠냐?'는 소리가 반응성 애착장애를 가진 오빠를 아빠가 '멍청한 새끼 갖다버려'라고 얘기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비유맞추고 조용히 있다가 나한테 직접 폭언안하고 '나는 안때리니까'라며 생각했다. 드라마에서나 사랑이 있겠지 싶고 사랑을 모르겠다. 오빠가 집사님 소개로 롯데리아에서 일하게 됐는데 짤릴 위기에 있다. 집에 오면 맨날 싸우는 게 지겹고 아빠가 날 피곤하게 하니까 믿으면 좋겠다. 길에서 죽던지 말든지 내 팽개치고 싶고 지긋지긋하다. 여전히 똑같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 유진: 상처까지 감싸주는 만남이 없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남자로부터 보호받을 수도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서로 채워서 간다. 말씀을 아는 짐승과 말씀을 모르는 짐승은 천지 차이다>
< 목자: 짐승에게 위로를 받는 게 아니기에 신결혼을 해야 한다. 둘 다 죄인이다. 불행한 나와 너가 말씀을 바라보고 말씀으로 해석되어진다. 사람에겐 안식이 없다. 우리가 바라고 소망할 것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소망해야 한다. 고난이 없어서 말씀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내가 부정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서 야곱의 환도뼈가 부러지는 더 내려갈 데 없는 고난 가운데 비로소 나누게 된다. 내가 부인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기에 말씀이 짜증난다. 하지만 택한 자이기에 말씀으로 예비하고 준비된다. 모르겠는 것은 솔직하게 얘기하며 나누자. 내가 원하는대로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낙심하고 뭔가 화가나서 운다. 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뭘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옳소이다'가 되어야 한다. 자기 중심적인 사랑으로는 낙담하는 상황밖에 안나온다. 신결혼의 사랑은 내가 아는 사랑이 죽어없어지면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사랑이다. 일단 적용으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눈을 마주보고 듣는 것부터 하자. 은샘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해서 소진을 했지만 이제 하나님 힘으로 잘 수용해서 잘 나눠주자. 일단 잘 받고 충족하고 만족해졌을 때 그 때 나눌 수 있다. 자기를 포함한 다른 사람의 영역까지 확장하고 지경이 넓어지기위해 의지가 필요하고 용기가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아는 게 다가 아니다고 받아들이는 노력과 방어적인 것에서 받아들임이 필요하다. 내 영역이 확장되고 확대되기를 기도하고 내가 버릴 수 있는 것부터 버리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잘 듣자>
< 부목자 생각: 요즘 은샘이는 매일 매일 눈물을 흘려요. 자기 죄를 보는 좋은 눈물인지? 자신의 처지에 원통한 나쁜 눈물인지 모르겠지만 은샘이가 마음이 무뎌져서 눈물도 안흘리는 저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아요^^ 은샘아~ 매일 매일 울자>
* 정민: 성숙된 서로 사랑하는 행복해 보이고 토끼같은 자식에 남들 보기에 괜찮은 부러움을 사는 가정을 꿈꿨었다. 목자모임에서 전도사님께서 명분이 없는 생각을 하면 너무 화가난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왜 이런 상황인지 이유없이 애매하게 주어지는 고통에 화가난다. 분노가 해결이 안된다. 나는 소극적인 화를 무기력과 우울함으로 표현한다. 지난주에 야곱의 떼부리는 기도에서 목사님께서 아빠말씀을 하였다. 그 떼부리는 기도가 후대를 벌하시는 기도라고 하신다. 여전히 달라진 게 없고 자기죄를 보지 못하는 모습에 심판하시는 것도 너무 사랑하셔서 하는 것인데, 여전히 딴 소리만 하신다. 내가 여기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일까? 벗어나고 싶었고 환경이 너무 지긋지긋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화가 났다. 해결되지 않는 분노가 있었다. 말씀을 들으며 '내가 죄인인 게 맞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중심적인 나때문에 아빠가 수고하고, 아빠 때문에 말씀이 들리는 것도 맞다. 누구보다 지옥을 사는 것은 아빠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면 사울을 대신해서 회개하는 여인이 나오는데 아빠가 스스로 죄를 볼 때까지 대신 회개하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 억울하고 분하기 보다 죄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니 화가 없어지고 내 몫의 십자가라고 받아들여졌다. 아빠가 회개할 때까지 대신 회개하는 확실한 것을 붙들고 포로생활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즐기고 생육, 번성, 충만하며 멍에를 잘 지고 그 자체로 감사할 수 있게 됐다. 아빠가 수고하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었는데 말씀으로 해석되는 자체가 감사했다. '안돼요'라고 원망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 주어진 것을 잘 나누고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어서 감사했다. 자족함이 없는 라헬병 환자였는데 자족함이 있는 감사한 한 주였다. 비유맞추는 사람이어서 건강하지 못한 게 있는데 말씀이 있어서 감사했다.
* 유진: 별로 꿈꾸지 않는다. 서로 피해 안주고 각자 알아서 쿨하게 살 수 있는 가정을 꿈꿨다. 저저번주에 아프고 나니 멍했다. 혼이 빠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플 때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쉬라고 주신 사건'이라고는 하지만 내 의로 공부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주일성수를 게을리하고 싶을 때 꼭 아프게 하셨다. 일대일 양육자 미나언니가 '농부가 아무리 가뭄이고 배가 고파도 씨앗을 먹지 않는다'고 예배는 빠지면 안된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전에는 예수쟁이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속으로만 믿고 사람들이 나 교회다닌 것을 몰랐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샘물교회 사건 때도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끼치는 게 싫었다. 하지만 요즘은 전에 불신교제였던 남자친구에게 신교제하고 싶다는 선전포고도 하게 되고, 20년간 용서하지 못했던 아빠를 용서할 수 있게 됐다. 전에는 아빠가 퇴직하고 나에게 이것저것 요구하고 사소한 것 챙겨주길 바라는 게 싫었는데 지금은 아빠의 여러얘기를 들어줄려는 노력하는 마음이 생겨서 감사하다.
<목자처방: 인생은 힘든거여서 힘든게 실고 불편한 게 싫고 벗어나고 싶고 그런 걸 해야하나 싶지만 내 앞에 있는 환경과 상황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기는 게 평강이다. >
<목자처방: 내 자신과 화해가 먼저 일어나야 한다. 내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무엇때문에 흘리든 흘리는 눈물은 좋다. 과정을 거쳐가야한다. 야곱의 욕먹어 마땅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내가 먼저 해결을 받아야 한다. 나도 나에게 너무 무리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에게 너무 화가났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씻을 수 없는 죄인인게 깨달아지면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때까지 인내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영적진실성의 key point는 인내이다. 우울한 나를 이해서 쳐박혀 있지 않고 나누고 얘기하자.>
* 지현: 동화속의 왕자님만 꿈꿔왔던 것 같다. 능력있는 남편과 찌질하지 않는 삶을 꿈꿨다. 언니가 내 이름으로 대출을 받고 곧 갚겠다고 연락이 왔다. 아직 엄마가 내 이름으로 대출받은 2천만원과 끊이지 않는 돈문제에 머리가 아팠지만 적용으로 '내 이름으로 대출받는 건 안된다'고 딱잘라 말했다. 언니는 '남보다 못하다'고 나한테 얘기했다. 솔직히 여기서 제대로된 적용을 하자면 내가 줄 수 있는 작은 돈이라도 주는 게 적용인데 '돈은 한 푼도 줄 수 없어'라고 욕심이 삐질삐질 올라온다. 미래에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부풀려서 걱정하는 모습이 있다.
<목자처방: 막연한 두려움의 제공자가 있다. 말씀과 공동체를 떠나지 않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말씀 가운데 해석이 되어져야 한다. 은혜받고 안받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인생이 말씀으로 읽혀야만 한다. 자기 중심적으로 말씀을 듣기 때문에 예레미야 말은 듣지 않으면서 거짓선지자 하나냐 말만 듣고 싶어한다. 살려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큐티한다. 구원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 온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다. 자기 부끄러움 수치를 영원히 이고 지고 가는 것이다.>
* 주은: 서로 피해 안주고 기본적으로 역할에 충실한 성숙된 가정, 겉과 속이 같은 가정이다.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이다. 계속 쌓여왔는데 팀장이 회사 동료에게 화를 내고 '사귀냐'고 하고 질투하는지 보게 회사동료에게 '손잡으라'고 하는 게 너무 짜증이났다. 멍청하고 일도안하고 일을 자기가 한 것처럼 올리고, 성격도 찐따에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그 사람과 계속 일하면 비관적인 것만 배울까봐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 회사도 기도응답받고 확신으로 들어간 게 아니고 인센티브를 포기하고 그만두고 싶다.
<목자처방: 우선 하고싶은대로 하고 어떤 사건에도 그것을 통햇 얻어지는 자기 성찰이 있다. 지금은 어떤 객관성도 가질 ㅅ 없다. 그리고 나서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일을 안하면서 해석이 되고 정리가 되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를 질문해보고 말씀에 비추어 깨닫는 바가 있으면 좋겠다. 똑같은 시행착으로 하지 않게 밑거름이 되면 좋겠다. 일단 잘 보면 좋겠다. 자기 모습을 잘 보고 '유종의 미'를 잘 거둘 수 있기를.. >
<기도제목>
* 지현: 기도가 크리스쳔의 특권임을 잊고 산 것 같다. 창조주 하나님께 은밀한 중에 우리 목장과 언니와의 화해, 돈욕심을 버리는 기도를 하고싶다.
* 기혜: 아빠문제에 얽매어 있는 것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 주은: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을 하나님과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기를, 2주간 부모님이 교회에 오셨는데 부모님이 말씀이 잘 들려서 목장에 속할 수 있도록
* 은샘: 은샘이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사랑에 대한 거부감을 안느끼기를.. 은샘이를 위해 생각나는 대로 기도해주세요.
* 정민: 미술스터디가 지속력을 가지고 쭉 기도하면서 잘 진행되기를, 포로생활 불평않고 받아들이고 전시 공모 준비 잘하고 시간 허비하지 않고 규모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아빠가 죄를 볼 수 있도록
* 유진: 시간관리와 컨디션 관리 잘해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 은이: 하나님을 최우선시하는 삶을 살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