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 나눔을 너무 늦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
<말씀요약>
창세기 34:13 ~ 14 “냄새”
1. 신자의 사망의 냄새가 있다.
2. 불신자의 생명의 냄새 같은 사망의 냄새를 분별해야 한다.
3. 생명의 냄새를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나눔>
야곱의 아들들에게 근원의 화를 다스리지 못해 거짓조차 하는 이 방식을 통해서 야곱이 나를 악취를 나게 했다고 했다. 신자의 사망의 냄새라고 했을 때 내육신 때문에 내가 신자인데도 불구하고 사망의 냄새를 난다고 하였다.
디나의 행동하나가 촉발된 엄청난 결과를 통해서 약속의 후사들인데도 불구하고 잔인한 행동을 하게 했는데 신자
로써 할례라는 거룩한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의 표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의 분노를 다스린것
이다. 이 냄새가 신자들이 풍겨내는 냄새가 사망의 냄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서 나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잘못된 공동체를 앞세워서 악을 행하는 것이다. 야곱의
12아들들은 결국 요셉도 팔아넘기는 잔인함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이다화도 나의 삶을 일부라는 것이 화를 정당화 시키는 것이다. 건강한 관계라는 것은 나의 화를 인정하고 그것을 말로 공격을 반응 보다는 덥어두었다가 속으로도 타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직면화되 온유함으로 직면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나라는 존재가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온유함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화를 다스리는 것이다.
할례는 하나님의 약속의 표징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1. 도윤
<목자> 나에게 있는 내가 풍겼던 사망의 냄새는 무엇인가?
<도윤> 작은 아버지와 관계라고 생각하는데 17년동안 일해 왔는데 물품을 납품하는 업체가 사정 철수하고 대신 자신이 언제쯤 그 일을 맡을 까요 말씀드렸는데 17년동안 자신을 보아 오신 작은 아버지께서 “너가 맡겨 놓은 할 수 있겠어“라고 표현을 하셨는데, 차라리 “ 너가 가서 해주면 좋겠어”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직은 작은아버지께 사업을 도와 드리면서 물질적인 부분에 정산하는 부분에 대해 아직은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마치 라반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17년동안 일하면서 설교말씀으로는 바벨론 포로 생활하라고 내가 포로생활을 해야 되는 건지 애굽을 바라봐야 되는건지 헷갈린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
<목자> 실제로 그것은 포로생활을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형님이 직면해야 된다. 형님이 공격적으로 거칠게 나오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없을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해야 한다.
화가 나지만 그 분노에 대해 하나님을 믿고 양육을 받고 양육을 잘받고 있는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지만 내가 결국은 야곱의 아들들 처럼 수동적인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 거짓말하는 것도 일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온유함으로 건강하게 직면해서 화가 나오는 것에 대해 말씀을 들을 필요도 있다.
<도윤> 또 두려움이 있다. 작은아버지로부터 사업상 내가 받아야할 부분이 있는데 현재 이분야에서 경기가 계절상 바뀌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사업이 잘 진행 되지 못할까 두려움이 있다.
<목자> 17년동안 일했지 않은가! 이제는 이 구조로 일할 순 없다. 직면해야 한다. 자꾸 피하려는 것이 보인다. 말만 잘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정직하게 직면 해야 된다. 내안에 있는 것을 말하면 된다. 내가 말하기 두렵게 생각했던 그것을 말해야 된다. 말해서 틀어진다 해도 그 환경을 감수해야 된다. 그것도 두려워하고 저것도 두려워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 상황에서 바벨론이다라고 생각하면 않된다. 형님이 계신 곳은 작 은아버지 일 터이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 이쪽,저쪽 선택하려 해도 백번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 그리고 어떤 느낌등을 사소한 것으로 의미를 부여 하고 이것이 응답이라고 생각하면 않된다. 내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는 결정하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내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다.
내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내가 예배 합당한 자리에 있는가? 있다면 내가 부족하지만 내가 하나님 사랑하고 내가 예배에 올인하며 살 때 그 다음 A, B중의 일들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등 이 쪽일이 괜찮겠다는 이를 하면된다. 뭐 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은 아니다. 하는 일의 동기를 살펴 볼 수 있다.
작은 아버지와의 일의 관계에 있어서 자꾸 만나서 말씀 드려야 되는데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이미 기회를 왔는데 하나님의 관계를 묻기보다는 예배잘드리시고 양육 잘받고 있고 생각하는데 늘 묻자와 가로되 가면된다.
누가 봐도 17년동안 일해 왔는데 작은아버지와의 심각하게 대화가 되야 된다.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계산되어져야할 부분은 작은 아버지이시다. 대화를 하다보면 언성이 높아 질수도 있고, 화를 삭이기도 하고 나의 혈기도 죄송하다고 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이 믿음으로 했더니 술술 풀어졌다가 아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해야된다. 온유함과 정직하게 말하는 것은 다르다. 때가 될 때, 할 말은 해야 한다. 말씀을 않드리면 계속 않하게 되고 나중에 속상하고 의가 상할 수 있다. 겪게 될 스트레스를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2. 방준
<목자>내가 풍기는 사망의 냄새는 어떤 것이 있고 , 내가 욕심 때문에 비롯된 세겜과 같이 욕심때문에 할례를 받고 ,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한 것은 없는지? 내욕심 때문에 할례를 받은 세겜처럼 방준이에게 나의 때문에 비롯된 사건은 없는가?
<방준>나의 유익 때문에 사람을 볼 때 행위로 본다. 교회다니는 자매가 착할 같고 만나고 싶고 하나님의 신앙있는 자매를 배우자로 삼는 것이 있고, 나에게 세상적인 것이 있는데 말을 하지 않지만 영적으로 사망의 냄새를 풍기는 것 같다. 나보다 힘든 사람들도 결혼하여 잘사는 것을 보면 내 형편 때문에 결혼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신앙으로 가정을 이루는데 있어서 진정한 신앙이 아니라 행위로 하는 신앙이 아닌가 생각된다. 저도 생명의 냄새를 나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
<목자>방준이게 있어서 지난 10개월동안 본인에게 결혼 문제가 가장 큰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문제가 사람을 얻는 문제가 아니라 다르게 표현하면 내가 나를 보게하는 시선의 전환이 필요한 문제라고 본다.
오히려 그 문제가 안풀리면 그 문제를 떠나서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야 한다. 안 되는 상황을 생각하면 분노, 화도 있을 것이다. 나도 의지할 친적,가족 없이 아는 동생에게 비용을 빌려 결혼 후 돈을 갚고 남은 금액으로 신혼 때를 살았지만 결혼은 어떤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준비에 관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개인적인 부분이 해결되어 져야 한다.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행복이 담보 되지 않는다. 더 지긋지긋 할 수 있다. 듣고 있지 않은가!
냄새나는 것이 상대방이 맡는 것이 아니라 방준이 너가 하나님 앞에 다시 시작한다고 했으니 하나님과의 친밀한 예배의 장소에 다가 와야 한다.
>>> 나의 애씀을 그치고 움켜지는 것을 열어 놓고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마음이 필요하다. 결혼이라는 것, 만남이라는 것이 내가 조바심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해도 후회, 않해도 후회 한다. 목사님 말씀처럼 결혼이라는 것은 때가 오고 않해도 후회할 때가 온다. 지금 중요한 것, 이 상황에서 하나님과의 거룩의 관계를 잘 매고 가는가가 중요하고 이것이 회복이 되면 단순히 이 사람이 예수믿는냐, 않믿는냐 그게 신결혼이 아니라 어떻게 믿는냐가 신결혼이다. 나의 믿음의 시각이 어떻게 바뀌는가에 따라 사람 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
>>>세겜이 여자를 위해 할례를 받았지만 우리는 결혼을 위해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은 우리가 때가 되면 가정은 하나님의 ‘아이디어’이고 하나님이 아담에게 돕는 베필을 주신것이지 아담이 원해서 주신 것이 아니다. 가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 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돕는 베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중요한것은 내가 하나님의 관계 안에서의 자유이다. 그랬을 때 가정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부합하는 것이다. 교회다닌다는 자체만으로 그랬다가는 세겜과 다를바 없다. 그 사람만 되면 이라는 것이 택함을 받지 않은 세겜이 디나를 얻기위해 할
례를 받은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택한자도 아닌데 억지로 받는다. 그것이 욕심 때문에 비롯된 어리석은 적용이
다. 내가 이렇게 하면 결혼 할 수 있을거야 이동기가 좋은 동기가 아니다. 결혼을 생각하고 기도해야지만 그러나
내가 열심히 때문에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인 버려야 한다. <<<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예배가 회복되지않아 나는 냄새가 사망의 냄새라고 했습니다. 사망의 냄새 자체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세겜이 얼마나 악하고 이기적입니까? 교회다닌다고 저절로 변화 되진 않습니다. 그러나 예배
가 회복되면 문제가 달라지고 관점이 변화되어지고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예배는 능력이고 예배는 교회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러오는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들려지고 깨닫게 되고 내죄를 보고 애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나는 예배를 잘드리는데 이런 일이 않생기나 생각하면 본인의 예배를 잘 점검하고 내 욕심 때
문에 할례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신자이지만 내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해 사망의 냄새를 내는 것이 무엇이 있지는
않은지, 바르게 잘 직면해서 나아 갑시다. 나의 삶의 모든 여정, 지나온 모든 것을 인정합시다.
내가 우리의 환경,모습이나 돈이 없어 찌질한 냄새가 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풍겨나게 하시는 생명의 냄
새를 내가 풍겨날 때 그 냄새를 향기로 나게 될때가 올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