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주시는 복(창35:8~15) 2010-05-30
1. 차별하지 않는 복을 주시기 위해서
(8절)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갑자기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 학자들 사이에는 드보라가 야곱과 같이 하란으로 떠났거나 나중에 가나안에서 다시 만났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드보라의 이름은 꿀벌이란 뜻이며 그녀는 부지런했고 하나님의 주권으로 그의 나라에 들어간 인물이다. 그녀는 구레네 시몬처럼 여종의 신분에서 원치 않는 십자가를 감당했다. 야곱의 어미 리브가를 잘 키워서 엘리에셀의 눈에 띄게 하여 이삭과 결혼시키는데 일조했다. 그리고 야곱의 멘토가 되어 언약가문의 2대를 잘 섬겼다. 우리는 여종인 그녀가 무시를 받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과 교제하며 작은 일에 충성하여 즐거움을 상으로 받은 드보라는 마25:21절의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다. 대단한 믿음의 조상 야곱도 그런 드보라를 위해 상수리나무(제단, 성지)에 장사하고 심히 통곡하였다. 이에 반하여 리브가의 죽음은 언급이 없고, 라헬은 길에서 장사되었다. 우리는 착하고, 잘나고, 내게 잘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구속사로 믿음의 한 지체임을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 비록 종이더라도 내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은 리브가, 라헬보다 높여주신다. 내 부모보다 좋은 것은 믿음의 지체이다. 구속사적으로 보면 드보라나 야곱이나 별 인생이 없다. 드보라가 여종이어서 불쌍해서가 아니라 구속사적으로 훌륭해서 야곱이 그의 장사를 지내고 머리를 숙인 것이다.
2. 본성이 돌아오는 복을 주시기 위해서
(9절)야곱이 세겜에서는 죄만 지었기 때문에 벧엘에 이르러서야 하나님께서 비로소 밧단아람에서 돌아왔다고 하신다. 장소의 복이 곧 본성의 복과 연결되기 때문에 세겜인지 벧엘인지가 중요하다. 복의 개념이 거듭나지 않으면 변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나안에서도 10년이나 걸렸다.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처자식과 재물을 주셨지만, 지금 다시 주시는 복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이다. (10절)32장에서 이미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하나님도 야곱도 그 이름을 안 불렀다. 속이는 자(야곱)가 아니라 죄와 싸워 이긴(이스라엘) 신앙의 인격으로 바뀌었다. 마치 아브람(존귀한 자)이 아브라함(열국의 아비), 사울(큰 자)이 바울(작은 자)로 바뀐 것처럼, 우리도 믿고 나서 새 이름(새 신분)을 받았기 때문에 기독교인, 크리스천임을 밝힘으로 내 몸과 이름이 함께 가야 한다. 우리는 본성이 돌아와도 천국에 갈 때까지 이 이름을 부르며 계속 죄와 싸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사소한 것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나의 찌질함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넌 믿어서 왜 그 모양이냐?”하고 남 얘기 할 게 없다. 변하지 않는 내가있기 때문이다.
3. 사명의 복을 주시기 위해
(11절)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약속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도 하셨다. (12절)언약을 재확인 한 것은 사명의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야곱이 갚은 서원이 후손에게 복이 되었다. 그리고 땅의 지경이 넓어지는 그 복이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 내려온다. 눈에 보이는 물질을 귀히 여기기 때문에 십일조와 같은 신앙고백이 온전하게 안 되는 것이다. 약속의 후손이 된다는 것은 내가 버려야 하는 것과 고달픈 면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실수를 했어도 지키시는, 내가 형편없어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인을 봐야 한다. 아이가 안기기를 싫어하면 절대 못 안는다. “교회에 가고 안 가고, 십일조를 내고 안 내고는 내 맘이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품에 안 가지 않는 것이며 이 때문에 사명의 복을 받지 못한다.
4.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영적 교제의 복(=다시 주시는 복)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택한 자를 만나주시고 말씀을 하신다. (13절)우리를 양육하기 위해 나타나기도 하시고 사라지기도 하신다. 야곱은 하나님이 떠나가셔도 그 분의 동행하심을 느낀다. (14절)돌 기둥은 구원과 은혜의 감격의 기념을 의미한다. 돌 기둥에 기름과 전제물을 부으며 하나님의 전을 감격스럽게 부른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감격이 전혀 없다. (13~15절)말씀하시던 곳을 3번 강조한다. 이것은 말씀과 구속사가 사무치도록 깨달아져서 감사해서 그런 것이다. 전에는 교회를 그냥 다니며 육신의 소욕대로 살다가, 말씀이 깨달아지니까 영적인 교제, 즉 다시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되었다. 성령으로 인침 받지 못하면, 즉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면 말씀을 못 깨닫는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영적 교제로 인해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나 한 사람이 받은 복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점차 제사장 교회로 발전한다. 말씀이 안 들려도 붙어만 있더니 달라지게 된 지독한 분들처럼 우리 모두가 다시 주시는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목장 나눔
양성훈: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심해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휴머니즘, 인본주의에 묶여서 제자들처럼 어려운 사람 도와야 할 것 아니냐고 말을 했을 것 같다. 정치적인 이야기 속에 담겨있는 말씀의 의도를 2부 예배때에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는데 3부예배 드리면서 알 수 있었다. 본성이 돌아오는 것의 중요성을 안다. 예수 믿어 고쳐진 것 같으나 또 안 되는 것도 있다. 나를 이스라엘이라고 불러주신 택자이지만 여전히 야곱이고 싶다. 달콤한 것들을 마주하면 오늘은 그냥 가고 내일부터 죄 안 짓겠다는 마음, 그리고 거절은 하지만 따라가고 싶은 준비된 마음이 있어서 나는 진짜 안 되는 죄인인 것을 절감한다. 이번 주 결국 죄 짓다 탈이 나서 수요예배에 불참했다. 목자모임은 없었고 토요일 연습도 취소되어서 1주일 만에 교회에 왔다. 죄인이라고 체념하는 게 아니라 죄인 것은 분명히 해야 한다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내 사명을 음악이라고 한정 지었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목자의 역할에는 소홀했다. 오늘 목원 전원이 불참하는 사건에서 전에는 다른 목자들의 파송의 아픔을 체휼하지 못했다. 이번 주에는 목원들에게 전화로 심방을 해야겠다. 안 나오는 목원들에게 애통함이 없었음을 회개한다. 오늘 예배 때문에 다시 나의 하나님을 부르짖었다. 나 때문에 수고한 6명의 목원들에게 미안했다. 둔감해서 모르고 있다가 이제서야 알았다. 야곱이 찌질해도 영적 교제를 할 수 있음이 감사했다. 찌질하고 안 되는 게 인생여정같고, 할 말없는 인생임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지만,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벧엘이기 때문에 계속 올라가야겠다. 오늘 말씀으로 나의 고백을 음악을 통해 더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형배: 한 주 동안 새벽예배를 드리면서 예배의 본질이 조금씩 회복되었고 일터에서도 초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일했기 때문에 생색이 나지 않아 좋았다. 목사님의 정치발언에 처음 들을 때는 당황했지만 여러 번 들으면서 어떤 의미인지 파악이 되었다. 나보다 수준이 높으신 목사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 말씀도 내가 모르는 게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ㅇㅇ부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예배 전에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참기 힘들어서 다시 본당으로 도망갔다. 다른 때는 혼자 잘 놀고 잘 먹는데, 이상하게 그 상황만은 견디지를 못한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붙지를 못하고 계속 방황한다. 먼저 다가가면 되는데, 나만 변하면 상황 종료인데 진짜 안 변한다. 바벨론 포로생활에 관한 말씀을 들은 게 있지만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정말 멀다. 오늘 ㅇㅇ형이 3부 예배도중 나가는 것을 보면서 따라가지 못했다. 나도 도망갔기 때문이다. 드보라에 관한 말씀을 들으면서 초심을 잃고 충성하지 못한 나를 본다. 영적 교제를 회복하여 다시 주시는 복을 누리기를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