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다시 주시는 복 (창세기35:8~15)
원래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들인데 복을 들여놨다 내놨다 써먹지도 누리지도 못하고 조금만 복을 받으면 모셔놓고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정말로 다시 주시는 복을 우리가 누려야겠는데 지난번 베델에, 상수리나무에 우상을 묻고 나니까 다시 복을 주시는데. 그 다시 주시는 복이 무엇인가 살펴보았으면 한다.
1. 차별하지 않는 복을 주셨다.
차별하지 않는 복은 구속사적인 평등한 복이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 야곱은 드보라를 상수리나무에 장사하고 통곡했다. 드보라 얘기가 뜬금없이 나온 것이 아니라 이유가 있어서 구절에 등장한 것이다. 신학자들이 드보라에 대해 연구한 해석이나 견해들이 여러 가지 가 있는데. 야곱의 어머니가 결혼해서 고향을 떠날 때 유모도 같이 갔다는 설과 야곱이 도망갈 때 이 유모가 따라갔고 하는 설 등의 여러 연구가 논의되었다고 한다. 성경에 그냥 이유가 없이 들어간 구절은 없다. 드보라는 꿀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아주 부지런한 여종이었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하나님 나라에 입성한 사람이었다. 베델에서 10년 동안같이 머물렀기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원치 않는 십자가 지고 간 구레네사람 시몬처럼 태어남부터 드보라가 자기가 종이 되길 원치는 않았을 것이지만, 종으로 태어난 드보라는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를 잘 키웠기 때문에, 이삭의 신부로 아브라함의 노종 엘리에셀에게 발탁이 되었다. 야곱에게는 멘토가 되어서 언약가문의 2대를 돌보고 성경에 찬란히 이름을 올렸다. 야곱의 험난한 인생사는 것을 보살피고 격려한 드보라가 있었다. 즉, 믿음의 가문과 함께한 종들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여종이고 뭐고간에 내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즐거움을 주신다. 여러분이 즐겁지 않으면 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대사가 아니고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대사를 경험하면 즐거움을 주신다. 주인인 야곱이 평범한 유모였던 드보라의 죽음을 슬퍼했다. 야곱의 베델에 와서야 드보라의 존재감을 확연히 알수 있었다. 알론바굿은 통곡의 상수리나무를 의미하는데 종이라도 엘리에셀과 드보라처럼 사랑과 존경을 받는 종들은 사람과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 아무리 언약가문의 이대 가문을 섬겼어도 표면적으로 종인 신분인 여종 드보라는 무시받고 살았겠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면 무시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믿음의 주인이 이렇게 통곡을 했다. 천국에서 야곱과 드보라가 누가 더 위에 있겠는가? 우리는 착한 사람, 잘난 사람, 나에게 잘하는 사람이 좋겠지만 이 와중에 구속사적으로 사람을 분별하기가 힘든 것이다. 성지 믿음의 베델에서 장사지낸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종, 드보라 였다는 것이다. 성지에 장사했던 야곱의 성숙함을 볼 수 있다. 그 이후에도 리브가의 장사지낸 얘기는 상대적으로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리브가의 인생은 말년에 드보라 보다 못하게 된 것 같다고 한다. 다음주일에 나오는 라헬은 길에서 장사가 됐는데, 종이라도 내 일에 충성하면, 리브가보다 라헬보다 하나님은 높이시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사료된다. 그래서 구속사적인 평등인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에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적으로 차별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야곱은 외모와 상관없이 드보라를 기쁘게 느낀다. 성공하기 위해 성공 복에 취해 있던 야곱이 여종 드보라를 최고의 성지에 장사시켰다. 드보라가 얼마나 중요하며 또한 천국에서는 종이라도 차별이 없으며 드보라의 믿음에 야곱이 머리 숙인 것은 실로 경이로운 것이다. 드보라가 낮은 자라 해서 차별한 것이 아니라 구속사적으로 훌륭해서 장사를 치러준 것이다. 야곱이 드보라에게 무릎을 꿇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서 삼백데나리온의 향유를 깨뜨린 것에 대해 그 값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지 왜 비싼 향유를 깨뜨리냐고 비난한던 열두 제자에게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은 세상 끝날 날까지 항상 있지만 나의 장례를 치루는 것은 이번 한번이기에 그것을 기념하는 것에 대해 비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즉, 구원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리아의 행한 일을 세상 끝날 까지 기념하여 전파하라고 하신 것이다. 만민의 차별이 아니라 우리는 구속사적으로 차별해야 하는 것이다. 죄는 차별받아야 하고 죄인은 차별하면 안 된다.
2. 본성이 돌아오는 복이다.
구속사적으로 차별을 해야 한다. 구속사적으로 죄가 있고 없고는 차별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이 돌아오고 영혼이 돌아와야 돌아온 것이다. 세겜은 이방인의 땅, 그 동안 하나님에게 처자식과 야곱에게 복을 허락하셨지만 이제 주시는 복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김양재 목사님은 공부하고 피아노친 것은 복이었지만, 결혼 후에 주신 복은 젊을 때의 육적 복과 질적으로 다른 복이었던 것이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갈등을 하기에 복을 못 받는 것이다. 서원을 지키지 못하면 복을 받기가 힘들다. 유사선교지인 세상인 밧단아람에서 돌아와야 한다. 크리스천임을 밝히면 술 마시는데 안 끼고 수요예배, 목장예배에 참석하는 것이다. 믿음 있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 불륜을 저질러도 죄의식을 못 느낀다. 힘든 사람 한 사람 있어서 우리 가족 모두를 기도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 힘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며 인내하고 기다려야 한다. 야곱도 10년을 기다렸다. 안돌아오는 것에 대해 절망만 하지 말고 하나님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반드시 하나님이 응답해주실 것을 믿기 바란다.
3. 사명의 복을 주시기 위해서다.
본문에 생육하고 번성하리라는 구절이 나온다. 야곱의 12명의 아들들이 사백년 후에 2만 명이 된 것이다. 왕이신 예수가 이 찌질 한 야곱의 자손으로 오신다. 하나님 때문에 별 볼일이 있게 된 목사님이신 것이다. 사명의 복을 주시기 위해서 이 언약을 재확인 하신다. 후손에게 그 땅을 준다고 한다. 야곱이 나의 하나님을 부르면서 십일조의 서원을 했기에 그 후손에게 갚아주시는 것이다. 그냥 있는 대로 하나님이 이렇게 후손에게 갚아주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다. 야곱은 형편없지만 아무리 실수해도 하나님은 아들로 여기시면서 사명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형편없어도, 뻗대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배신을 당해도 언제든지 돌아오기만 하면 우리를 사랑해주신다.
4. 영적교제의 복을 허락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13, 14절에 나온바와 같이 이제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 위해 나타나셨다가 말씀하시다 떠나셨다. 떠나시고 나서도 돌기둥을 세우고 기름, 전제물을 붓고 벧엘이라 불렀다. 돌기둥을 세워서 전제물을 부었다. 돌에 기름 붓는 것은 어떤 환경도 주님이 나와 교제하던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을 감격스럽게 부르는 우리들 교인의 모습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하나님이 말씀해주시는게 감사해서 고난이 축복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성령이 내게 와서 터치지하지 못하면 말씀을 들을 수도 깨달을 수 없다. 다시주시는 복은 본성에 돌아와야 되고 사명 때문에 영적인 감당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주시는 복은 구속사적인 인생이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속사적으로 죄인이 아닌 죄를 차별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복주시기 위해서 딸, 디나의 강간사건과 아들의 살인사건이 있었지만 그것은 구속사의 복이었다. 여러분은 다시 복 받기로 결심하면 복을 받을 줄 믿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