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세기 4:1~7)
1970년 스텐포드 심리학과 교수 짐바르도 교수가 모의교도소를 지은 후 평범한 대학생을 대상으로 교도소 모의실험을 하였다. 학생들은 교도관과 죄수로 나눠 유니폼을 입고 실제 교도소와 같은 환경의 모의실험에 임한 것이다. 실험 중 교도관으로 분한 학생들은 죄수로 분한 학생들을 폭행하는 등 극단적인 실험결과가 초래되어 당초 계획했던 2주의 실험을 5일 만에 종료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심리학 실험은 인간의 선한의지와 마음이 환경으로 인해 악한 마음으로 변화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환경에 의해 악인 혹은 선인이 될 수 있다. 선악과 먹고 죄를 지은 인간이기에 죄를 다스려야 한다. 죄인인 아담과 하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축복의 벌을 주셨지만 창세기 4장의 결과로 시기와 분노가 나타난다.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죄를 다스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신다.
1. ‘여호와를 말미암아 밖에’ 길이 없다.
여호와의 도움으로 여자에게 잉태와 해산의 고통으로 산자의 어미가 되는 고통을 주셨다. 잉태의 고통을 허락하셔서 자녀를 후사로, 선물로 주신 것이다. 여자의 잉태의 고통은 너무나 힘들고 극심하지만 이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가 나온다. 이 고통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뿐인 것이다.
인류최초의 인생이 출발이 된 것은 가인이었다. 가인의 이름은 ‘얻다. 획득하다.’의 의미를 가진다. 둘째 아벨의 이름은 ‘공허하고 허무하다.’의 의미이다. 즉 ‘여호와로 말미암아’라는 말을 가인에게는 했지만 아벨에게서는 ‘여호와로 말미암아’라는 말을 하지 않으니 인생이 허무해졌다.
2.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죄를 다스릴 수 있다.
가인은 많은 곡식 중에 그저 하나를 하나님께 드렸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나님께 드렸다고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 받지 않으셨다.
우리 신앙생활 가운데 기복적인 예배, 일시적인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 받지 않으신다.
아벨의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였다. 아벨은 없는 것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최선의 것을 드렸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예배에 관심을 가지셨다.
3. 분노를 다스려야 한다.
가인은 아벨에 대해서 시기하는 마음이 있다. 예배를 실패하면 분노를 못 다스리고 죄를 짓게 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 피의 제사, 아벨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없기에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내 힘으로 하니까 생색이 나오는 것이다. 십자가의 예배, 피의 제사, 아무리 때려도 십자가 잘 지고가면 하나님이 죄를 잘 가려주신다.
욕심과 탐심은 적극적으로 선을 행할 때 다스려진다. 말씀 듣는 구조가 최고라서 그것 이외에는 죄가 깨끗해질 수 없고 그것을 통해서 죄가 가지치기 될 수 있는 것이다.
버리기에 앞서서 채우는 욕심을 조절해야 한다. 말씀 듣는 구조 안에서 죄의 가치치기가 되어야 한다. 좌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여호와로 말미암아’가 되어야 한다.
어떤 것에도 분노가 일어나면 내 예배가 잘못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내 예배가 얼마나 잘못됐는지 성찰하는 자가 되길 바란다.
기도제목
이창엽
긴 연휴 후에 직장의 업무에 적응 잘할 수 있도록
1, 2, 3부 찬양인도 준비 잘하고 진행 잘할 수 있도록
성광모
부모님이 건강하고 구원될 수 있도록
일의 인도함 받을 수 있도록
유시윤
체력적으로 지치지 않도록